한번 뿐인 인생 의미있고 보람되게 살아야
사명 감당하여 충성하는 것, 성도의 의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요한복음 21장 15∼17절
사람은 누구나 단 한번 뿐인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고, 의미 있고, 보람된 삶으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이 같은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꿈과 사명을 감당해 나아갈 때 비로소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1.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실 때 모든 제자가 예수님을 떠날지라도 자기만은 결코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마 26:33). 그리고 더 나아가서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마 26:35). 그러나 베드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였고,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마 26:74). 바로 그때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 통곡하였습니다(마 26:75).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때때로 예수님을 배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진실이 아닌 거짓을 택하는 경우가 바로 예수님을 배반하는 때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사회에 나가 크리스천이 아닌 것 같이 살아가는 경우, 죄 짓고 불의를 행하는 경우, 이 모든 행위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절대로 예수님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베드로를 찾으시는 예수님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예수님을 떠나 고기 잡던 옛날 어부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요 21:3). 3년 전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도 이 날처럼 밤새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었습니다(눅 5:5).
예수님을 떠난 인생, 예수님 없는 인생은 빈 그물이자 빈 배의 인생입니다. 주님 없이 내 힘으로 하는 노력은 아무리 수고하고 애써도 무엇 하나 얻어지는 것 없이 절망만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 없는 인생의 달음질은 무익하고 헛된 것입니다(시 127:1). 그러나 감사한 것은 절대 절망에 처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절대 희망되신 하나님의 독생성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절망에 처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 동이 트기 시작했고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절망 중에 빈 그물만 건져 올리고 있는 바로 그 때 주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요 21:4). 예수님은 성공한 베드로가 아니라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지금 어떤 일에 실패했습니까? 바로 그때가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성공했을 때만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에도,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에도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범죄한 아담에게도, 동생을 죽인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도, 낙심한 엘리야에게도,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게도,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에게도 먼저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처럼 실패와 절망의 디베랴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절망의 자리에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 절망에 처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절대 희망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부르십니다(마 11:28).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의 잃어버린 신앙을 되찾게 됩니다. 또한 잃어버린 기쁨, 잃어버린 열정, 잃어버린 행복을 다시 찾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절망과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는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셔서 부활의 새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1:6). 그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을 때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잡히는 엄청난 축복이 쏟아졌습니다. 주님께 순종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실패가 성공이 되고, 빈 배가 차고 넘치는 배로 변하게 됩니다. 빈 그물이 가득 찬 그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언제나 텅 빈 그물일 뿐입니다. 우리의 배가 혹시 빈 배는 아닙니까? 그 빈 배에 주님이 찾아오시기를 구하시고, 빈 배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 염려하지 말고 내게 맡기라”고 하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빈 배가 채워집니다.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어 집니다. 절망은 희망으로 바뀌어 집니다.
3.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베드로는 고기가 가득 잡히자 3년 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고기가 가득 잡혔던 일이 기억났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이 찾아오셨음을 알게 됐고, 너무 감격해 주님을 만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요 21:7). 예수님은 온 몸이 젖어 추위에 떨며 육지로 올라온 베드로를 위해 숯불을 피워 놓고 떡과 생선을 굽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왜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느냐?’고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추위에 떠는 베드로를 따뜻하게 해 주시고 밤새 일하느라 허기진 배를 떡과 생선을 구우셔서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우시고, 숯불 앞에서 다 용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불의하고 추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눈물로 음식을 대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예수님께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 이렇게 3번을 물으신 후 사명을 맡기셨습니다(요 21:15). 주님은 결국 ‘네가 네 이웃이나 네 자식이나 네 재산이나 네가 좋아하는 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의 잘못이나 실패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베드로처럼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되풀이하셨습니까? 베드로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이 베드로의 가슴 속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새겨졌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세 번 반복하여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주심으로, 그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요 21:15).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나오는 ‘어린 양’이란 교회 안의 약한 지체들, 믿음이 약한 성도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믿음이 어린 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여 신앙이 견고하게 잘 자라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여길 수 있는 어린 자녀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기 때문에 문제아가 되고, 무관심속에 마음에 병이 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사랑의 관심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요 21:16).
“양을 치라”는 말은 ‘나의 양들을 보호하라, 보살피라’는 뜻이며, 여기서 “양”은 교회의 구성원들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을 거짓 교사들과 이단, 세상 유혹에 물들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성도와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도 돌봐야 합니다. “양을 먹이라”는 말은 영적성장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다시금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우리에게 맡기시는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가난하고,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들을 돌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며 우리의 사명을 다시금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명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만방에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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