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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희망을 노래하라
2010.10.03

세상은 마음븡육신븡환란의 절망이 가득한 곳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나갈때에 축복받아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야훼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박국 3장 16∼19절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사람은 꿈과 희망을 갖고 산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절망 가운데에서도 꿈과 희망만 있다면 모든 어려움은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지금 칠레에는 33명의 광부들이 갱도가 무너지는 바람에 700m의 깊은 굴속에 갇혀 있습니다. 몇 달이 걸리는 구출작업도 꿈과 희망을 가지고 견뎌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절망 중에 부른 희망의 노래입니다.


 1. 절망의 내용


 하박국은 남왕국 유다의 요시야 왕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요시야 왕의 재위기간은 주전 640∼609년까지였는데, 가장 훌륭한 유다 왕들 중 한명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나라를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로 세운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 결과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도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주전 609년 애굽과의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 왕이 전사한 후, 유다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종교적인 타락과 도덕적인 부패, 사회적인 혼란이 온 나라를 뒤덮고 말았습니다.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는 요시야 왕의 또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이 유다의 제 18대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지만, 그는 왕이 되자마자 정권 유지를 위해 백성들로부터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죄악 가운데 타락한 유다를 심판하기로 하셨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들은 하박국은 큰 충격을 받고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혔습니다(합 3:16).
 우리에게 오는 절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절망, 육신의 절망, 환경의 절망입니다. 그 중에서 마음의 절망이 가장 큰 절망입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잠 4:23).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육신도 무너집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저항력이 떨어져 온 몸에 병이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마음의 절망, 육신의 절망에 이어 환란의 절망도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양도, 외양간에 송아지도 없었습니다(합 3:17). “못하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라고 부정적인 말이 여섯 차례나 반복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들의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한숨과 절망의 노래를 불러야 할 상황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해도 가장 소중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인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2. 희망의 내용


 하박국 선지자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야훼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합 3:18).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0∼33절에 보면 갈릴리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불어오는 바람과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는 순간 두려움에 휩싸여 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지 않고 주님만 바라봤을 때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봐도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보다 훨씬 큰 능력의 주님을 바라봤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희망이라고 불렀습니다(렘 14:8). 그리고 시편기자는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야훼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시 146:5).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겠습니다” 이러한 신앙이 바로 절망 중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나의 힘이신 야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십시오. 절망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했고, 이 희망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갑니다.
 하나님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만이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포기하거나 희망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3.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고, 우리의 능력이십니다(합 3:19). 하박국 선지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이 되시며 모든 필요를 채우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에 야훼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하박국 3장 19절 말씀에 나오는 사슴은 험한 산악 지역에서도 민첩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동물입니다. 사슴은 높은 곳에 다닐지라도 두려워하거나 피곤해 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바벨론으로 인하여 조국 유다가 환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하박국 선지자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힘이 되셔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십니까? 물질이 풍성하기 때문입니까?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사업이 잘 되기 때문입니까? 직장에서 잘 나가기 때문입니까? 자녀들이 잘 되기 때문입니까?
 좋은 일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만으로 기뻐하고 감사 찬양하는 것이라면 그 이유들이 사라질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원망하시겠습니까? 고통가운데 머물러 자포자기하시겠습니까? 기뻐해야할 외적인 이유들이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고난과 어려움을 능히 이기도록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십시오.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사랑의 하나님만 붙드십시오(습 3:17).
 하박국의 예언대로 악행을 저지른 앗수르나 바벨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대민족을 다시 일으키시고 그 민족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세계의 중심이 되는 나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고난 받는 것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희망과 소망의 줄이 우리에게 있는 한 얼마든지 찬양할 수 있습니다(시 42:5).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몸의 면역 기능이 활발하게 되어 웬만한 일에도 견뎌낼 수 있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이전에 아무리 건강했다 하더라도 오늘의 안녕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잃는 것은 곧 절망을 의미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절망의 벼랑 끝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냥 무너지면 안 됩니다. 그 절망의 한가운데에 서 계신 주님만 바라보면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십시오. 절대 긍정의 믿음을 붙들고 당당히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희망으로 어둠을 물리친 사람만이 새로운 인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문제 가운데 절대 주저앉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힘이 되어 주시고, 우리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이 되게 하사 절망의 산을 뛰어 넘고 슬픔의 담을 뛰어넘어 높은 곳으로 뛰어 다니게 하십니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문제와 고통과 절망이 다가와도 꿈과 희망을 노래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꿈과 희망을 노래함으로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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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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