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과 절망의 때에 영적인 믿음의 눈 떠야
성령으로 마음 뜨거워지면 놀라운 부흥 일어나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누가복음 24장 30∼35절
신앙생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충만 받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받아야 능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 받지 못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 당할 때 잘 감당하고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병을 고치려고, 기적을 구경하러, 호기심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제자들 중 어떤 이는 예수님이 왕이 되면 한 자리 차지하려는 마음으로 직업을 포기하고, 가정을 떠나 3년 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크게 실망하고,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자들이 하나 둘씩 절망 중에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부활의 소식을 모른 채, 혹 들었으나 그 사실을 믿지 못하고 낙심 중에 각기 제 갈 길로 갔습니다.
1.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
글로바라는 제자와 그의 친구도 예수님을 따라 다녔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절망에 빠져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곳을 향하여 내려갔습니다(눅 24:13).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은 참 기쁘고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나 항상 편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때때로 다가옵니다.
사람들이 큰 환난이 다가오면 때때로 예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갑니다. 본문 말씀에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25리나 되는 엠마오로 내려갔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갔다는 것은 영적으로 예수님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의 길로 가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길은 곧 절망의 길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의 삶에 다가온 것은 절망뿐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고 거지신세가 되어 결국 돼지 치는 자로 전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길은 낙심의 길, 절망의 길, 슬픔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두 제자들은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내려간다는 말은 실제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갈 뿐 아니라, 영적으로 그들의 신앙이 내리막길을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문제를 만납니다. 그러나 낙심치 마십시오. 사방이 다 막혀있어도 하늘은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스티브 도나휴의 책 ‘사막을 건너는 여섯가지 방법’은 실제로 사하라 사막을 경험하고 난 후, 사막여행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의 경험을 쓴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지도를 보지 말고 나침반을 보라고 말합니다. 전후좌우가 다 사막이고,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데 손에 든 지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처럼 인생의 내리막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절망과 슬픔의 내리막길을 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생길에 동행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함께 동행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절망의 발걸음으로 내리막길을 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으로 눈이 가리어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눅 24:15∼16).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옆에 계셔도 모르고 탄식과 절망 속에 살아갑니다.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합니다. 너무 힘들고 어렵다 보니 급기야는 목숨을 포기하고 자살까지 합니다. 그러나 영의 눈을 뜨십시오. 믿음의 눈을 뜨십시오. 절망에 가리어진 눈을 뜨십시오.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오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던 바울은 그 빛에 눈이 멀었습니다. 아나니아가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내렸습니다. 누구에게나 그 눈을 가리는 비늘이 있습니다. 욕심의 비늘, 교만의 비늘, 음란의 비늘이 우리의 영의 눈을 가립니다. 기도로 그 비늘을 벗겨내야 합니다. 바울은 비늘이 벗겨진 눈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목숨을 바쳐 주님을 위해 충성하여 1세기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뒤흔들어 놓는 위대한 사도로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한 번은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에워쌌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 군대만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두려움과 불신앙이 그의 눈을 가리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기도로 그의 사환이 믿음의 눈을 뜨는 순간, 엘리사와 자기를 호위하고 있는 수많은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영의 눈을 뜨지 못하면 하나님이 도우시는 손길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늘 두려워하며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영의 눈이 어두워 정작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언제나 나와 동행하시지만 영안이 어두워지면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시 119:18). 그러나 우리의 영안이 열리면 나와 함께 동행 하시는 주님을 느끼고 주님을 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생명의 말씀, 참 소망과 축복의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언제나 예수님께서는 절망에 처한 자에게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우리가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을 때 부활의 주님은 우리 곁에 서서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십니다. 좌절의 길목에서 만난 예수님, 그 분은 우리를 새로운 희망과 기쁨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망의 때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님 음성을 들으십시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가운데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야 됩니다. 말씀을 들어야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 워싱턴에서 사역할 때 교회에 장모님을 모셔다 드리고 늘 주차장에서 잠자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더운 여름날 교회에 들어와 앉았다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후 신학교에 갔다가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말씀 속에서 새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눅 24:30). 이 장면은 예수님의 마지막 성만찬을 기억나게 합니다(눅 22:19). 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돼야겠습니다.
3. 성령을 주시는 예수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비로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 졌습니다(눅 24:32). 성령님은 말씀 속에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말씀이 살아 역사할 때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성령의 감동이 임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베드로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령이 임했습니다(행 10:44). 이와 같이 성령님은 말씀을 통하여 듣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지고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20:22). 성령께서는 믿는 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확신과 기쁨을 가지고 살게 합니다.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기도하면 지치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서 성경을 읽으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지면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기쁨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서대문시절 우리 교회는 예배시간마다 성령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예배 후에 서대문 로터리가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성령 충만의 역사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권능을 받아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게 됩니다(행 1:8).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셨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말씀충만, 성령충만의 역사가 나타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뜨거운 예수의 사랑으로 목숨 바쳐 충성했습니다. 우리도 초대교회와 같이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성령충만이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말씀으로 변화되어 뜨거운 신앙이 되십시오. 항상 말씀충만, 성령충만하여 복음의 증인으로서 힘써 주의 일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져서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다시금 쓰임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 마음이 뜨거워져서 성령으로 충만해 우리의 남은 여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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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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