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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태운 나귀
2010.03.21

하나님께 쓰임받으려면 말씀 앞에 훈련되어져 있어야
십자가 지고 순종하여 주님 높이는 것이 우리의 본분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21장 1∼5절

 아이는 엄마 품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함께 있을 때 행복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을 때, 기쁨으로 주님을 섬길 때 행복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왕처럼 금관을 쓰고 말을 타고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셨습니다. 어린 나귀는 예수님을 모시게 됨으로 나귀로 태어나서 가장 축복된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되신 예수님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나귀처럼 일생동안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1. 예언의 말씀대로 쓰임 받는 나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읍까지의 거리는 2∼3㎞정도 였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것은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약 5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슥 9:9).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히 성취됩니다(눅 21:33). 예수님께서는 항상 구약의 예언 말씀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작고 초라한 나귀 새끼를 타시고 가장 겸손하신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나귀는 주인 집에 매여 있던 나귀로 길들여진 나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려면 나귀가 길들여져 쓰임 받는 것 같이 말씀 앞에 훈련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어 보고 회개하며 자신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나귀는 아직 아무도 타지 않았던 나귀 새끼였습니다(막 11:2).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는 나귀의 순수성과 순결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귀 새끼와 같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의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어떻게 순수하고 순결한 신앙을 갖출 수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순수하고 순결하게 합니다(시 119:9). 주님의 말씀은 빛이 되어 우리가 주 안에서 바른 길을 가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시 119:105).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여 말씀 앞에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우리를 온전하게 만듭니다(딤후 3:16). 성경에는 교훈과 책망이 있고, 우리를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늘 훈련되고, 성경을 묵상할 때 바른 인격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말씀 훈련이 잘된 사람은 선하고 순수합니다. 말씀을 늘 묵상하고, 순종하고, 말씀으로 훈련되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인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소유한 성경적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습니까? 말씀 속에 답이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말씀이 길입니다. 염려가 있습니까? 말씀을 읽을 때 염려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말씀의 성취를 간절히 기다리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피십시오. 그리고 겸손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 멍에를 질 나귀

 나귀는 평생 멍에를 메고 일하는 짐승입니다. 멍에는 주인이 짐승을 부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멍에를 메면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주인에게 구속당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 죄와 죽음의 짐을 벗겨 주시기 위하여 친히 십자가의 멍에를 지셨습니다(사 53:4).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소개했습니다(요 1:29).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온 몸의 물과 피를 쏟으시며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희생양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 희생의 대가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막 8:34).
 바울은 하나님의 선교의 제단 위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쳤습니다(빌 2:17). 바울이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제의 제물로 드렸기 때문에, 바울을 비롯해 바울처럼 헌신한 수많은 주의 일꾼들에 의해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증거되고 교회가 서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자원하여 멍에를 지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초청하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지금 어깨에 벗겨지지 않은 무거운 짐이 누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처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남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을 높인 나귀

 구약시대 왕들은 전쟁 시에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특히 정복자들은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기다린 왕 메시아는 이와는 전혀 다른 왕이셨습니다. 그분은 겸손한 왕으로서 평강과 구원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왕이었습니다. 그분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당시 나귀나 노새는 성읍의 방백이나 일반 사람들이 타던 짐승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심으로써 겸손함과 온유함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마 21:5).
 온유와 겸손의 성품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온유는 예수님의 성품입니다(마 11:29∼30). 예수님은 범사에 온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목숨까지도 내놓으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계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십자가의 고통을 아셨기 때문에 괴로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목숨까지라도 드릴만큼 그는 온유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마음의 쉼이 없습니다. 강퍅한 사람, 하나님께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 즉 자신의 마음과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절대로 마음에 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유하고 겸손하게 되면 마음의 쉼, 즉 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성경에서 강한 자기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여 온유한 사람이 된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민 12:3). 그는 히브리인으로 태어났지만 바로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그가 40세가 되었을 때 자기의 동족인 히브리 사람 하나가 애굽 사람에게 학대받는 것을 목격하고서는 그 애굽 사람을 주먹으로 쳐 죽였는데 그것이 발각되자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이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의 연단 생활을 통하여 모세는 비로소 하나님이 쓰실만한 온유한 그릇으로서 다듬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 모세는 출애굽의 영도자로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능력이 많고 지식이 많고 유능하기 때문에 우리를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고, 무지하고, 연약하여 보잘 것 없는 빈 그릇과 같은 우리이지만, 우리가 겸손히 엎드려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나타내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나귀는 겸손과 순종의 본을 보여주는 동물입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위해 겸손히 자기를 비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의 모습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7∼8).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참된 겸손이요, 순종입니다.
 왜 사람들이 겸손하지 못합니까? 자기를 비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내가’라는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 쓸데없는 자존심이 하나님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높입니다. 사람들은 낮아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겸손해야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히 13:12).
 겸손과 순종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겸손과 순종은 마귀를 철저하게 무력화시키는 방법이고, 열매 맺는 삶의 지름길이고,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을 통해서 우리를 불순종의 아들들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신분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면 가정이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 순종으로 옷을 입고 예수님만을 높이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생을 통하여서 영광을 받으시고, 복을 내려 주시고, 하나님의 그 귀한 뜻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나는 나귀같이 주님 앞에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같은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태운 나귀처럼 깨어지고 낮아지고 겸손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겸손과 온유로 옷 입고 주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주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나가는 주님의 자녀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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