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되신 예수님 만날 때 참된 자유 얻어
낙심·절망 내려놓고 약속의 말씀 붙잡아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1∼32절
1910년 일본에 강제 합병을 당한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해방될 때까지 36년간 식민 통치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고 이웃 나라의 지배를 받는 것은 온 민족의 고통이자 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해방을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참된 자유, 참된 해방을 얻기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문제에 결박돼 고통 가운데 살면서, 어려움으로부터 놓여나 자유함을 받기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자유는 없습니다.
1.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온 것은 진리를 전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유대를 통치하는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유대 총독으로서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였으나,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사를 결정할 권세를 가지고 있는 빌라도 앞에서도 당당하고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태도에 당황하고 놀란 빌라도는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세상적인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로서 영생의 진리요 구원의 진리였으며 또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진리 그 자체가 되시는 우리의 구세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스위스 출신의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미국 시카고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을 끝마치고 나갈 때 학생 한 사람이 따라와 물었습니다. “교수님, 당신은 한 평생 많은 책을 쓰고 여러 가지 연구를 하셨습니다. 또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 그 과정에서 깨달은 진리란 무엇입니까?” 질문을 듣고 칼 바르트 교수는 어릴 때부터 즐겨 불렀던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칼 바르트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진리라고 답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영생의 길이 되십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진리로 보이나 진리가 아닌 거짓에 현혹돼 참된 진리를 모른 채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방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것도 알지 못한 상태로 절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내가 어디에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이 질문에 답변을 주실 분이 없습니다. 참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만이 분명한 인생의 목적을 깨닫게 해 주시고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참된 진리를 알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 절망에 처한 우리를 도와주며 끝까지 함께 해주실 분은 진리되시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재물이나 세상 친구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 때 우리는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안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해 깨달아 알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나의 의지적 결단을 통해 믿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배우는 것만으로는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전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이 있어야 참 진리를 깨닫게 되고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운명이 변화되기 바랍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고 늘 함께 하시며 갈 길을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며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되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삶 가운데 넘쳐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참된 자유
진리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속박을 싫어합니다. 자유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자유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는 어디를 가든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력으로 추구하는 자유는 스스로에게 파멸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 히피문화가 시작됐습니다. 히피족들은 기존의 모든 질서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집에서 사는 것을 거부하고 집시처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양복과 넥타이를 풀어 버리고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결혼을 인생의 굴레라 여겨 마음에 맞는 사람과 마음대로 살다가 마음대로 헤어졌습니다. 하지 말라고 금하는 것은 모두 하여 마리화나를 하고 향락을 즐기며 방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다가온 것은 허무와 공허, 절망뿐이었습니다. 탄식 가운데 ‘예수님께 돌아가자’는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이 히피족 가운데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그들을 받아들인 교회가 척 스미스 목사님의 갈보리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기타와 드럼을 치며 찬양하는 예배를 드렸는데, 여기에서 오늘날과 같은 자유로운 형태의 예배가 시작됐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자유란 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노예가 된 적이 없으므로 이미 자유의 몸이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요 8:34)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란 목표에서 벗어난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은 모두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 것이 다 죄입니다. 우리는 죄에서 돌이켜 다시 주님의 목표를 향해 돌아와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죄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너무나 강합니다. 대학살을 자행한 히틀러나 폴포트, 스탈린은 인간이 죄의 종임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 죄인이기도 하지만,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마귀의 종노릇을 하여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며 속이고 상처 입히고 죽이는 끔찍한 죄를 범하며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 죄를 사할 능력은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로부터의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 우리의 영혼이 죽음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환경의 저주가 변하여 축복이 됐고, 육신의 질병이 치료됐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케 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구원과 성령충만의 은혜, 축복과 형통의 은혜를 받았으며, 영생 천국을 선물로 받게 됐습니다.
미국의 노예 해방 이후, 한 흑인이 시장에서 새를 샀습니다. 새를 사서 밖으로 나와 곧장 새장 문을 열고 새를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이러기를 몇 차례 되풀이했습니다. 이 광경을 본 가게 주인은 흑인에게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두 가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 번도 노예가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노예의 비극을 알지 못합니다. 또한 노예로 있다가 자유를 얻은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저는 이 두 가지가 너무 기쁘고 감사해 새에게도 자유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유를 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후 무엇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늘 불안과 걱정과 고통 속에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평안을 얻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와 기쁨을 지키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믿음으로 포도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주님께서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낙심과 절망, 고통, 죄책감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축복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구주되신 예수님을 통해 죄와 저주와 사망의 권세에서 놓여나 참 자유를 얻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남은 일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원하오니, 늘 함께 하여 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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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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