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후서 9장 6∼9절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
주고받고 심고 거두면
믿음의 씨앗 통해 풍성한 열매 거둬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신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녀를 많이 갖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셨지만 하나님과 대화하고 함께 우주를 다스리고 함께 살 자녀들 갖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충만케 하라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을 반역한 첫 인류 조상 때문에 하나님은 깊은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인류를 다시 구원하시기 위하여 계획을 세우셔서 그 결과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주신 것은 많은 자녀를 새로 얻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신 것은 많은 밀알의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주고받는 것과 심고 거두는 법칙이 시작된 것입니다.
1. 주고받고 심고 거두고
성경에는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 세운 영원한 법칙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 시대의 며느리들을 생각합니다. 요즘 며느리는 집에서 큰소리치지만 옛날 며느리는 집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고추 당추 맵다 말라 시집살이 더 맵더라’는 말이 있듯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눈치 아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친정에 한번 다녀오면 눈물이 얼굴을 가립니다. 친정에서 좀 편안히 있다가 돌아갈 때는 어머니가 어찌하든지 시댁 식구들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쌀이나 보리나 밀이나 곡물들을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해서 가슴에 안겨 주면서 “가져가거라! 가져가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잘 모시고 고생스럽지만 꾹 참아라. 네가 참으면 나중에 좋은날이 온다”고 따뜻하게 말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딸을 친정으로 보내는 모습이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면 주님께서 반드시 돌려줄 것이요,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므로 절대로 섭섭하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다가 씨를 심으면 30배, 60배, 100배로 거둔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알의 밀알을 심었는데 그 밀알이 30배가 되고 60배가 되고 100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근원은 심는데 있기 때문에 심지 않고 축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톰 버틀러 보던은 「CEO의 책꽂이」라는 책에서 20세기의 몇몇 거부들의 성공 비결을 설명했는데, 이들은 먼저 철저한 십일조와 베푸는 삶을 살았습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하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이 제게 돈을 주셨으니 제가 십일조를 하지요”라고 간단히 말했습니다. 폰더라는 사람은 신명기 8장 18절을 인용해 “네 하나님 야훼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으므로 하나님이 주신 재물 중에 10분의 1을 바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매우 큰 보험 회사를 경영하는 제임스 윌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성공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수년 전에 나는 사무엘상 2장 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라는 말씀에 의지해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을 존중하기 시작하자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미국의 실업가 하이드는 10의 9조를 드린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한 때 만 달러의 빚을 지고 아홉 자녀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무엇보다 먼저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쏟아 부어 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고받고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J. C. 페니는 미국의 부호로 이름이 난 후 증권 시장의 파동으로 재산을 잃고 병까지 얻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원에서 늘 고통과 불안에 떨고 있던 페니에게 어느 날 병원 예배실로부터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잠시 후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계기가 일어났습니다. 페니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찬송과 성경 말씀과 기도 소리를 들었을 때 캄캄한 굴속에 햇빛이 서서히 비치더니 나중에는 온 굴 속이 밝아져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 진 것 같은 느낌을 체험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하면서 그는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그의 사업과 생활의 표어로 정했었습니다. 재기한 후 그는 무엇보다 먼저 많은 헌금을 바쳐 플로리다에 은퇴 목사를 위해 주택 100동을 건축해 헌납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것을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감사하는 생활 속에 넘치는 복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백화점 왕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줄 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우리에게 안겨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고받는 법칙, 심고 거두는 법칙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는 이상 밤과 낮이 있는 이상,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이상 변하지 않고 우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새해 벽두부터 심고 거두고 주고받는 법칙을 우리 생활 속에 꼭 적용하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신앙생활에도 적용되는 법칙
성경에는 겨자씨 한 알을 심어 큰 나무가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1절로 32절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습니다. 옛날 중동에서 겨자씨 하나를 가지고 온 선교사님이 그 겨자씨를 병에 담아서 제게 보냈습니다. 병안의 겨자씨가 먼지와 같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서대문교회 시절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성도들에게 겨자씨 구경을 시키겠다고 줄을 세워서 겨자씨를 보여 주었는데 전등불 밑이라 잘 보이지 않아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와서 “안보여요”하다가 입 바람에 겨자씨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날아 간 겨자씨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뒤에 줄선 사람들이 모두 할머니를 보고 원망을 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겨자씨가 얼마나 작은 지 알았지? 그러나 네 믿음이 저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해도 된다. 믿음이 크고 적은 것을 탓하지 말라. 믿음을 사용할 줄 알아야 된다’ 이런 교훈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것이라도 심어야 됩니다. 안 심으면 아무것도 돌려줄 것이 없습니다. 겨자씨라도 심어야 이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의 씨앗을 심고 크게 거둘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로 8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실제적으로 씨앗을 심는 것과 함께 우리의 행동도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과 불의와 불결과 나쁜 행실로 심어 놓고 난 다음 아무도 못 봤으니 내 행동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행동을 씨앗으로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도 안 보는데 심어 놓아도 그것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심어 놓으면 그것이 30배, 60배, 100배가 되어서 거두게 되고 그것이 내대에 못 거두면 내 자손 대라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심은 자에게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10절로 11절 말씀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는 자에겐 심을 수 있는 씨를 주시고 따라서 먹을 양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심을 마음이 없어서 그렇지 심을 마음이 있으면 심을 씨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을 동안에 필요한 양식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가던 청교도들은 오랜 항해로 먹을 것이 떨어져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하는 자식이 굶어 죽어도 종자만은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배안에 종자씨앗을 많이 싣고 갔지만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도 종자씨앗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종자는 신대륙에 도착해서 뿌려야 하는 씨였기 때문입니다. 이것만큼은 소중히 지켜야 하는 생명의 종자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다고 종자씨앗까지 먹어 버리면 나중에 진짜로 굶어 죽습니다. 우리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종자씨앗인 것입니다. 내일을 위해서 종자씨앗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종자씨앗 조차 먹어 버리면 내일이 암담하고 캄캄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종자씨앗은 그대로 간수해야 다음 사람들이 종자씨앗을 심어서 먹고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삶의 문제를 당했을 때
새해를 살아가면서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문제들이 우리 앞을 막습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이여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이 응답 안 해 주시면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태산을 옮기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벙어리 되고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이 아들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와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오니 사람들이 제자들을 몰아 세우고 있고 제자들이 당황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장 그 아들을 데려다가 귀신을 쫓아내고 고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우리는 귀신을 못 쫓아냈습니까?” 주님께서는 “너는 믿음이 적은 연고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었으면 이 산들에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고 해도 될 것이요 못 할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살아있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겨자씨를 심어 놓으면 줄기가 나고 잎이 나고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 정도로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인생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께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는데 한 알의 밀알이라도 심어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도 행동으로 옮겨 심어놓고 기도해야 태산이 옮겨가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라는 씨앗을 심어 놓고 시험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어코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는가 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내 주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다른 면에는 시험치 말라고 했지만 십일조만은 시험해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 씨앗을 심으면 산 믿음을 심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꿈과 믿음을 가지고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심을 때 그냥 억지로 심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을 때 마음에 큰 나무가 될 것을 꿈꾸고 태산이 옮겨갈 것을 마음에 꿈꾸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게도니아 교인들이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바울이 그 선교비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조그마한 헌금을 보냈는데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모든 것을 채우시는 은혜를 마게도니아 교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겨자씨 씨앗을 심고 난 다음 꿈과 믿음으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해야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서울에 한 사업가가 있었는데 사업을 하던 중에 부도가 났습니다. 그때 손에 남은 돈은 500만원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돈으로 필리핀의 파나이 섬에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하고 남은 마지막 돈을 선뜻 내놓았습니다. 마침 교회 지을 돈이 없어서 나무 밑에서 예배를 드리던 필리핀 사람들이 그 돈으로 교회를 건축하여 교회 이름을 ‘부도난 교회’라고 붙였습니다. 왜 그 이름을 붙였느냐 하면 부도난 한국의 사업가를 잊지 않고 언제나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교회 이름만 보면 ‘부도난 사업가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매일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도가 났던 그 사업가의 사업이 다시 일어나 오늘 번창한 기업으로 변화되었다는 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태산 같은 삶의 문제를 당했을 때 믿음의 씨앗을 먼저 심으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심고 거두는 법칙인 것입니다.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답도 있습니다. 그 해답은 꿈과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씨앗을 심을 때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관계를 연구하여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썼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가 가는 곳마다 경제가 살아난다” “기독교 국가가 모든 국가 위에 머리가 된다” “예수를 잘 믿는 가정이 그렇지 않은 가정 위에 머리가 된다” 이러한 이유를 막스 베버는 성경 안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막스 베버는 유명한 경제학자입니다. 그가 하는 말이 기독교가 들어가는 나라마다 경제가 흥하고, 기독교를 잘 믿는 가정마다 흥한다는 것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하고 주고받는 법칙을 기독교에는 사용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은 전부 자기중심으로 삽니다. ‘내게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하고 삽니다. 그러므로 심지 않는 경제를 가지므로 자라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주고받고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하기 때문에 나라의 경제도 개인의 경제도 자라고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영국의 알프레드 마샬은 인류의 오랜 역사를 통해 생존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두 요인은 ‘종교와 경제’라고 말한 것입니다.
OECD 국가 중 상위에 속하는 미국,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은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임은 이를 잘 증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높이는 개인과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심고 거두는 법칙은 자연적인 법칙이요, 영적인 법칙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에서 건짐을 받고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금년 새해에 하나님이 손잡아 건져 주시고 우리를 오른손으로 높여 주시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법칙을 사용하고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들의 기도를 통하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하나님이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오늘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가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 보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던져 많은 생명을 건져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심고 열심히 이웃을 돕는 생활을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나누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면 우리에게 더 큰 사랑이 오고 더 큰 행복이 온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신 이 말씀을 잊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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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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