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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란 우상
2006.07.2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에베소서 5장 5절


 하나님의 계명은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금,은,동,철의 우상은 섬기지 않는다 해도 더 사특한 자기 자신의 욕망이란 우상에 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우선시되는 그 어떠한 것도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정이나 직업, 취미도 하나님보다 앞세워지면 우상이 되고 이러한 우상을 섬길 때에 모든 불행과 고통과 환난이 우리의 삶 가운데 다가오게 됩니다.

 

 1. 욕망의 우상과 아담

 아담의 타락은 욕망이란 우상을 섬김으로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범죄한 이후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실상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욕망의 우상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3장 4절로 5절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는 말씀에서와 같이 마귀의 유혹이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탐욕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자기 분수에 지나쳐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되면 그때부터 욕망이 이끄는대로 겉잡을 수 없이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도 마음속에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으므로 마귀에 유혹에 쉽게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보면 바홈이라는 농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소유의 넓은 토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더 많은 땅을 갖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서 주야로 그것을 소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갖고 싶은 만큼의 땅을 가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그곳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곳의 지주는 농부에게 “당신이 하루종일 밟고 다닌 토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 한 평의 땅도 가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농부는 새벽부터 될 수 있으면 많은 땅을 소유하려고 뛰었습니다. 대낮에 강렬한 해가 내리 쬐어 땀에 범벅이 되고 심장이 멎을 것 같았지만 조금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식사도 거르면서 뛰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숨이 턱에 차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마침내 출발점에 다시 돌아왔지만 극도의 피로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욕망이란 우상을 섬기게 되면 우리의 생명도 이 우상의 재물로서 바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마음속의 욕망으로 인해 그 인생을 파멸로 치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의 원죄는 자기 욕망이란 우상앞에 무릎을 꿇은 결과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욕망의 우상에 걸려 넘어져 불행과 죽음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욕망의 우상과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욕망의 우상 앞에 무릎을 꿇고 수많은 시험과 환난을 당했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전적인 순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네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신 아내와 조카 롯과 함께 본토에서 모은 재산을 수레에 싣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욕망이란 우상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을 따랐으므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심한 기근을 내리사 아브라함이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하기 위해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창세기 12장 10절에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탐욕에 이끌려 하나님을 거역하고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아브라함은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모욕과 시련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이 지났을 때 아직 후사가 없으므로 그 아내 사라는 자기의 여종을 통해서 자녀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창세기 16장 2절에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야훼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녀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탐욕과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대신 육체의 정욕이라는 우상을 쫓아 하갈을 취함으로 지금까지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간의 끝없는 분쟁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잉태된 욕망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을 동반하고 이 죄된 행동으로 인해 사망을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하면서 자기의 고집과 욕망에 따라 살게 되면 결국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3. 위대한 헌신은 무엇인가?

 위대한 헌신은 자신의 마음속에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므로 하나님보다 더 따르는 탐욕의 우상을 깨뜨리는 것에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최후에 그 마음속에 자리잡은 탐욕이라는 우상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인 이삭이 자라 소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2절에 “아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알려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시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 가운데 이삭을 사랑하므로 생긴 우상을 깨뜨리려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은 시험이 닥쳤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창세기 22장 9절로 10절에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시험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12절에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동방 사람의 침략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기드온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출하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기드온이 전쟁을 수행할 군사를 모았을 때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자를 포함해서 탐욕과 욕망이 마음속에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온전히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용사들을 선별하셨던 것입니다. 사사기 7장 5절에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야훼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의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욕망에 포로된 자들을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언제든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나아갈 태세로 앉아서 물을 개의 핥는 것같이 먹고 또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300명 만을 추려내어 아말렉을 물리치게 하셨던 것입니다.

 

 4. 욕망의 우상과 그리스도인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신이 되고 인본주의가 우상이 됩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중에도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그 마음속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환경 가운데 시험과 환난과 고통이 다가오는 것은 욕망과 탐욕의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먼저 경배하고 하나님 중심에 있게 되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에 계시므로 우리 마음속에 의와 평강과 희락과 함께 믿음, 소망,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때에 하나님 안에서 자녀와 가정과 환경과 나라를 사랑하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부귀, 영화,공명을 통해서 행복과 기쁨이 주어지고 세상의 부요와 풍성함 속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무지함 때문에 생긴 오해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돈과 명예와 지혜와 권세는 우리를 타락하고 방탕하고 음란하게 만들며 결국에는 마귀의 종이 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돈도 행복을 가져오고 권력도 행복을 가져오고 좋은 환경도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욕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우리 삶속에 계신 예수님을 통해서 진실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사에 위대한 성자며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15년 동안 부정한 여인과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다스리기 시작하자 성적인 탐욕의 노예로 살았던 모든 사슬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때 잃어버릴까봐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헛된 기쁨들이 한꺼번에 다 제거되었을 때 제 마음은 정말 상쾌했습니다. 제게서 그것들을 모두 몰아내신 주님은 진정 최상의 기쁨입니다. 제게서 그것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대신 취하신 주님은 그 어떤 즐거움보다 감미롭습니다. 오, 나의 구원이시여!” 어거스틴은 죄의 줄이 끊어지자 놀라운 하나님의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믿는 자들도 항상 탐욕이라는 우상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회개하고 주 하나님만 섬기며 우리의 탐욕을 십자가에 못 박으므로 주를 따를 때 진실로 기쁨과 행복과 평안을 느낄수가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아브라함은 탐욕의 우상 때문에 가나안에서 큰 환난과 수치를 당했으나 온전한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탐욕이라는 우상을 깨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또한 회개하고 돌이켜 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만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하나님과 예수님 이외에 어떠한 탐욕의 우상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쫓아내므로 우리를 거룩하고 성결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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