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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서게 될 때
2006.05.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서 10장 37∼39절


벼랑 끝에 서는 체험으로
깨닫게 된 믿음의 날개
능력있는 신앙인의 삶 살게 해

 

 삶의 벼랑 끝에 서게 되면 우리는 마음에 여러가지 시련과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삶의 벼랑 끝에 서는 체험을 진퇴유곡이란 말로 표현하는데 이는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놓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배수의 진을 친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뒤에 바다나 강이 있어 뒤로 물러날 수 없고 앞에는 적의 공격을 받을 때 쓰는 말입니다.  그 어느 것이나 쉬운 것은 없습니다. 모두 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사생결단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이 이와 같을 지라도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바로 믿음의 길인 것입니다. 옛말에 백척간두에 진일보란 말이 있습니다. 높은 벼랑에 섯을 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한 발자국 발을 내딛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천길만길 벼랑에서 한걸음 내딛을 수 있게 하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퇴유곡의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1. 홍해 가에 온 이스라엘 백성

 우리는 홍해 가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가에 이르렀을 때 뒤에는 바로가 애굽군대를 거느리고 공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에는 창렬한 홍해가 펼쳐져 있는 진퇴유곡의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뒤로도 물러갈 수 없고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9절에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들이 장막 친 데에 미치니라”고 말하므로 백척간두에 선 이스라엘 백성은 좌절과 절망속에서 바로에게 두손들고 항복할 태세였습니다. 벼랑 끝에 선 이스라엘 백성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원망과 탄식으로 인생을 포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지경에 놓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0절로 11절에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야훼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라고 말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향한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14장 12절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말하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백척간두의 난간에 섰을 때 그냥 뒤로 물러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 난간은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운 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다 탄식하고 뒤로 물러설 때 유일하게 이 난간에서 믿음으로 한발자국 내딛는 사람은 모세 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이 절대절망의 벼랑 끝이었지만 이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한발자국을 내딛었던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한 말은 모세의 위대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는 것처럼 믿고 담대한 믿음의 선언을 통해 백척간두의 난간에서 한발자국을 믿음으로 내딛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홍해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홍해의 창렬한 바다가 갈라지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갈라진 바다 사이를 마른땅처럼 지나갈 수 있었지만 그 뒤를 따라오던 애굽군대는 물이 도로 흐르매 전부 물에 빠져 몰살하고 만 것입니다.

 

 2.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믿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똑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두라평지에서 금신상을 세워 모든 나라 문무백관들을 전부 불러 모아 금신상을 제막하는 날에 그 앞에 경배하도록 명하였습니다. 다니엘 3장 6절로 7절에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명령이라고 거역하겠습니까? 금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풀무불에 던져 태워 죽이겠다고 하므로 모두다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하지만 오직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사람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경말씀에 ‘너희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에 따라 우상에 절하지 않으므로 사느냐, 죽느냐의 백척간두의 기로에서 믿음의 진일보를 한 것입니다. 비록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지만 그들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므로 양심과 신앙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때에 갈대아 사람들이 즉시 왕에게 참소하므로 진노한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렀습니다. 다니엘 3장 14절로 15절에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라고 말함으로 최후 통첩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선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죽기를 각오하고 믿음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 3장 17절로 18절에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말하므로 느브갓네살 왕의 진노를 더욱 고조시켰던 것입니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군사들에게 명령하여 풀무불을 칠 배나 뜨겁게 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당장 풀무불 가운데 던질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던지려 했던 군인들조차 타 죽을 정도로 거센 풀무불 속에 산채로 들어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불속에 들어가자마자 결박이 풀리고 예수님과 함께 풀무불 가운데서 함께 춤을 추고 뛰놀았습니다. 다니엘 3장 25절에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백척간두에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친히 오셔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 세력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손을 잡고 춤을 추셨던 것입니다. 이에 놀란 느브갓네살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부르자 전혀 상하지 않은 몸으로 왕앞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다니엘 3장 27절에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탄을 했던지 느부갓네살 왕은 조서를 만들었습니다. 다니엘 3장 29절 30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서서 세상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은 위대한 믿음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작은 벼랑 끝에 설 때도 있고 천길만길 큰 벼랑 끝에 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처지에서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믿음의 길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없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을지라도 오직 주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주님만 의지하므로 벼랑 끝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의 선조들이 선택한 길을 좇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우리가 당하는 크고 작은 벼랑 끝 인생

 왜 우리는 벼랑 끝에 서야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택할 것인지, 세상을 택할 것인지를 확인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벼랑 끝에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고 망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택하는 것이 어떠한 삶인지 다니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사 제국의 왕 다리오가 나라 전체를 맡긴 세명의 총리 중 한 사람인 다니엘은 지혜와 총명이 탁월하고 정직하고 성실하였을 뿐만 아니라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다니엘은 다리오 왕의 총애와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시기하는 관리들로 인해 세워진 금령은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금령을 어겨 사자굴에 던져지기 까지 매일매일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감사를 쉬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나라의 금령과 법도에 의해서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고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고 봉하였으나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아 다니엘을 사자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다니엘 6장 22절로 23절에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의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의 하나님을 믿음이었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백척간두의 처지에 있었어도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는 말씀처럼 벼랑 끝에 섰을 때 살아갈 길은 믿음의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작고 큰 벼랑에 서는 체험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이냐 세상이냐를 우리의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진실성을 가리기 위해서는 벼랑 끝에 서봐야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평생을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그의 나이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디로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순종하므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이 75세에 인생을 재출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되어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칠 것을 명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절로 2절에 “그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독자를 잡아 각을 떠서 장작불로 태워 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낳은 아들이 이제 소년이 되었는데 이를 잡아서 제물로 드리라는 것은 천길만길 벼랑 끝에 서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뒤로 물러나 하나님을 배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하게 그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사흘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묶어서 장작불 위에 놓고 그의 목을 겨냥한 칼로 이제 막 찌르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1절로 12절에 “야훼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로써 확인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발을 옮겨 놓으므로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세상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택하는 마음의 결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의 진실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벼랑 끝에 서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는 천국 소망이 진실한가를 알기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고난이 다가오는 것은 진실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 또한 진실한 천국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를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천국 소망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맨소래덤(Mentholathum)을 만들어 미국의 거부가 된  하이드(A. A. Hyde)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사이는 맨소래덤이 잘 사용되지 않지만 예전에 손발이 트고 갈라지는 아이들에게 유일한 치료제가 맨소래덤이었습니다. 맨소래덤을 발명한 하이드는 사업 초창기에 10만 달러의 빚을 지고 회사는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업을 계속 진행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에 부딛히자 회사 문을 닫아야 하는 백척간두의 난간에 서 있는 처지에 몰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10만불이라는 회사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십일조를 내는 것에 대해 가족과 회사 사원들은 강하게 반대하면서 그를 비웃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10만불의 빚은 사람에게 진 빚이요, 십일조는 하나님께 진 빚이다. 하나님께 빚지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느냐? 하나님이 복을 주면 사람의 빚은 쉽게 갚을 수가 있다”라고 말하며 그는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에서 믿음으로 한발을 내딛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사업을 축복하셔서 회사빚 10만불을 눈깜짝할 사이에 다 갚을 수 있게 하시고 사업을 번창시켜 마침내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때 이후로 그는 맨소래덤을 통해서 많은 선교사업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회사가 도산할 정도의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그의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믿음에는 기적의 날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벼랑 끝에 서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독수리는 다 성장한 새끼들에게 냉혹한 비행훈련을 시킴으로 날개가 있다는 것과 그 사용방법을 가르칩니다. 어미는 먼저 둥지에만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장시간 굶주린 새끼들은 둥지를 나와 어미의 날개 위에 올라 타게 됩니다. 어미는 날개 위에 올라탄 새끼들을 높은 창공 위에서 떨어뜨림으로 독수리 새끼들이 스스로 날개의 사용방법을 깨닫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벼랑에서 밀쳐 버리시는 이유는 우리가 여지껏 몰랐던 믿음의 날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알게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가운데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로 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절벽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절벽에서 겨우 발을 붙이고 서 있는 저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하고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곤두박질하며 떨어질 때 발견한 것은 내게 날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우리가 가진 믿음의 기적의 날개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서야 믿음으로 인생을 살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아∼ 이제는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지 않고 내가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 수 있겠구나’하는 신념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벼랑 끝에 서기를 두려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크고 작은 벼랑을 우리 생활 가운데 늘 보내어서 벼랑끝에 선 우리인생이 하나님과 세상, 그리고 진실한 신앙과 거짓된 신앙사이에서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믿음에 거하는 삶을 살 것인가, 세상을 따라 살 것인가를 결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언제나 벼랑 끝에 선 신앙이 살아남는 길은 믿음의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벼랑 끝에 섰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함께 고난 당할 것이냐, 도망칠 것이냐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로잡힐 때 벼랑끝에서 도망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벼랑 끝에 서게되면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담대한 믿음으로 발을 내딛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순교를 당할 때까지 주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벼랑 끝에 섰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뒤로 물러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참된 자세인 것입니다. 벼랑 끝에 설 때에 이상한 일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의 신앙이 이 벼랑 끝에 서는 훈련을 통해서 성장하고 증명되므로 능력있는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인생에 크고 작은 벼랑 끝에 끊임없이 서게 됩니다. 벼랑 끝에 서므로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에 서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벼랑 끝 시험에서 뒤로 물러가지 말게 도와주시고 낙심하여 패배하는 자 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벼랑 끝에 서는 믿음의 훈련을 통하여 믿음의 날개를 활짝펴고 믿음으로 인해서 기적의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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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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