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카카오링크 보내기 버튼
알고 통하는 고난과 모르고 통하는 고난
2006.05.0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장 22∼25절


고난의 연속인 우리의 인생길
주님없이 지날 때 좌절뿐이지만
말씀통해 주어진 비전으로 역경 이겨내


 인생열차를 모르고 타면 굽이굽이 시험과 환난을 당할 때 불안과 공포에 몸부림치게 됩니다. 그러나 알고 타면 지나가는 길마다 공포에서 해방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1. 사도 바울의 로마행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죽도록 매를 맞았습니다. 그 당시에 예루살렘에주둔하고 있던 로마의 군대가 와서 그를 강제로 구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많은 대제사장, 사두개교인, 바리새교인, 교법사들이 모인 가운데 심문을 받았습니다. 심문을 받고 난 다음 돌아와서 밤에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에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돛단배를 타고 로마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로마에 도착할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떠나 가는 도중에 어떠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 선생에게 로마에 가서 가이사 앞에 서야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다 하여도 고난과 풍랑은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게되면 결코 풍랑이 다가오지 않고 평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가는 도중에도 굽이굽이 열두굽이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인생에 풍랑은 반드시 다가오지만 알고 당하는 풍랑은 안심하고 지나갈 수 있고 모르고 당하는 풍랑은 마음에 큰 고통과 좌절과 절망을 갖게 하고 심지어는 삶을 포기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로마로 떠날 때 그가 어떠한 풍랑을 당해도 반드시 도착하게 될 것을 이미 하나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중해의 뱃길이 아무리 험해도 아무리 폭풍우가 불어와도 아무리 고통이 다가와도 그는 로마에 반드시 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가 로마에 가서 가이사 앞에 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바울 선생은 그를 인솔하는 로마의 군대 백부장 율리오와 함께 다른 죄수들과 배를 타고 로마로 출발했습니다. 항해 중 유라굴로라는 대폭풍우를 만나 보름동안 풍랑에 표류하는 와중에도 바울이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자신은 반드시 로마에 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4절로 25절에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고 기록된 것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었으므로 평온함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27장 22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바울 선생과 동승했던 276명의 안전을 책임지실 것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도 꼭 한가지입니다. 삶을 출발하기 전에 미리 알고 출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출발하면 가는 도중에 사나운 풍랑이 다가와도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인생을 출발하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시험과 환난으로 인해서 파탄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에 도착하기 전 멜리데에 이르렀을 때에 뱀에게 물린 사건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8장 3절에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고 말씀하고 있고 5절에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 선생이 비록 풍랑에서는 살아 남았으나 독사에 물려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독사에게 물려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독사에게 물려도 전혀 상함이 없었던 것은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로 18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면 어떠한 역경을 당해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과 담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생을 사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던 89세의 할아버지 선교사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침상에 드러누워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할 정도로 너무 노쇠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인도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죽더라도 인도해 가서 죽지 미국에서는 죽지 않는다. 나는 기어코 이 중풍에서 일어나 하나님이 내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복음을 전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기 때문에 89세에 중풍이 걸려 움직이지 못했어도  그 질병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병과 싸웠고 결국에는 중풍에서 일어나 인도 선교사로 다시 돌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스탠리 존스입니다. 89살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중풍을 극복하고 다시 인도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아무리 중풍이 걸려 고통스러워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운명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넬 마리라는 사람은 스탠리 존스의 전기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으실 때까지 자신이 결코 쉼표를 찍지 않았다. 그의 고향은 미국도, 인도도 아니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다”고 말한 것입니다. 스탠리 존스는 자신을 인도의 선교사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뇌출혈과 고령의 나이를 극복하고 선교에 끝까지 힘을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요셉의 애굽행

 

 구약시대 요셉의 애굽행도 같습니다. 요셉은 두 번이나 꿈을 꾸었습니다. 한번은 들에 나가서 곡식단을 거두는데자기 단이 가운데 서고 열한 형제의 단이 둘러서서 절하는 꿈을 꾸었고 두 번째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를 향해서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그 마음속에 꿈을 심어 준 것입니다. 요셉은 앞으로 고된 시련과 고난을 당하는 인생길을 살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결과를 꿈으로 심어준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 출발한 것처럼 요셉은 형제들이 자기에게 엎드려 절할 것을 알고 인생을 출발한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 받았으나 마음속에 희망의 꿈을 품고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무엇을 알게 된 다음에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그를 배반하여 구덩이에 넣었을 때에도 그 마음속에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내 육신은 비록 구덩이에 빠져 좌절과 절망에 처해있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꿈으로 본여 주신 일들이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구덩이에서 절대 죽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은 형제들이 내게 와서 엎드려 절하는 것이므로 그날이 오기 전에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이처럼 구덩이 속에 빠져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높음으로 하나님의 길을 우리가 미리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나가되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신 꿈을 통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11년 동안의 고달픈 종살이 생활을 하였습니다. 또한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서 정치범들만 수용되는 시위대뜰 감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수년간의 종살이와 짐승만도 못한 대우, 그리고 억울한 누명으로 인한 열악한 정치범 감옥소 생활은 요셉이 혹독한 고난의 세월을 보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의 마음속에는 꿈이 있었습니다. 언제 그 꿈이 실현될지 모르지만 종살이에 고달프고 괴로워도 언젠가는 형제들이 절하게 되는 자리까지 높아지게 될 것이므로 지금의 고난과 역경이 자기 인생의 종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은 2년동안의 감옥살이 동안에도 꿈을 품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그 감옥에서 다시 살아나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형제들이 자기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절하므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꿈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 선생이 고린도후서 4장 8절로 9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속에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쥐를 캄캄한 독 안에 넣어두면 3분을 못견디고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 독 안에 한 가닥 빛을 비추어 주면 무려 36시간을 살아 남습니다. 과학자들은 쥐들이 캄캄한 독 속에서 3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것이 체력 때문이 아니라 절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둠에 빛이 비추이듯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그분의 인도 가운데 있으면 캄캄한 독과 같은 곳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고난당할 때 미래를 아는 꿈을 품고 통과하기 위하여

 

 우리가 고난당할 때 미래를 알고 꿈을 품고 통과하기 위해서는 꼭 기억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 선생과 요셉에게 꿈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긴 사람에게는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속에 꿈만은 다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꿈을 품고 인생을 살면 어떠한 역경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바울이 당한 풍랑과 무서운 독사에게 물리는 경험과 그리고 형제들에게 버림받은 요셉이 당한 종살이와 감옥살이와 같은 절망스런 현실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다가올지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 꿈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는 이 말씀만으로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엄청난 꿈을 심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삶속에서 늘 경험합니다. 크고 작은 사망과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건강을 잃게 되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도 있고 가정의 파탄과 사업의 실패를 당하여 겪게 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자녀들의 탈선으로 인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등 여러 가지 환경으로 인해서 눈앞이 캄캄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환경이 이러할지라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주신 꿈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인생살이가 칠흑같이 어둡고 캄캄해도 예수를 구주로 모신 사람은 주님이 선한 목자가 되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소년 다윗을 보십시오. 17살밖에 안된 소년 다윗은 들판에서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이 달려들어 양을 물고 달아나도 이길만한 힘이 없습니다. 불과 17살밖에 안되는 소년이 사자와 곰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사자와 곰이 강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자와 곰에게 달려들어 양을 되찾고 몽둥이와 맨손으로 사자와 곰을 죽였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체험을 통해서 아무리 캄캄한 곳을 지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모든 일에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에서 패하여 전세가 불리할 때 소년 다윗은 골리앗과 맞서 “내가 나가서 싸우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왕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무모한 짓이라고 반대하였습니다. “너는 소년이라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장수이므로 그를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고 말할 때 다윗은 말했습니다. “저 할례없는 이방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둘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으로 곰과 사자를 쳐 죽인 것처럼 저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도 그 짐승들의 하나와 같이 되리라”고 말했습니다. 사울도 하나님 믿는 사람이고 그의 군대도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형식적으로 종교적으로 믿었지 실제적으로 현재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종교적으로 의식적으로 믿는다면 사울과 그 군대와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목자의 도구와 함께 지팡이 하나와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골리앗을 향해 나갈 때 자기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골리앗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눈앞이 아득하고 캄캄한 지경에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팡이로 인도해 주시고 막대기로 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골리앗을 물맷돌로 쳐서 죽이고 이스라엘에게 대승리를 가져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실 때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고 함께 계신 것입니다. 목자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팡이와 막대기 없는 목자는 목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목자로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오셔서 지팡이는 우리의 길을 여는데 사용하시고 막대기는 우리를 건져주는 능력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좌절되고 절망에 처해있어도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고 믿고 의지하면 그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여시고 구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훼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인생을 출발하면 풍랑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독사가 물고 늘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종살이해도 억울한 누명을 덮어 쓰고 감옥에 들어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눈앞이 캄캄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 주께서 함께 하시고 주님은 그 자리에서 길을 여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2절에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같이 계신 것을 알면 모든 고난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담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낮추시며 시험하시고 결국에는 복을 주기 위해서 연단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목자가 없이 고난을 당하면 좌절하지만 목자가 계신 가운데 당하는 고난은 연단과 훈련을 위한 것으로 우리에게 종국적으로 유익을 주고 또한 시험과 환난을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핑크(A. Pink)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첫째, 광야의 시련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못나고 허약한가를 발견하게 해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함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험과 환난을 통할 때 우리는 내가 얼마나 내가 못난 인간이며 내가 얼마나 허약한 지를 알고 나를 의지하지 않고 나를 자랑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광야의 삶을 통해서 체험하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했습니다. 광야를 통해야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답답한 곳이 있어야 시원한 바람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우리와 같이 계시면 목자가 우리를 광야를 통과하게 하실 때 우리를 깨뜨리시고 낮추시고 믿음을 강하게 하심으로 기어코 우리로 하여금 복을 받게 만들어 주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가 7장 8절에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야훼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잠언 24장 16절에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그것에 불평하기 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하나님은 역경을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요셉은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그 앞에 와서 무릎을 꿇어 절하고 사죄를 할 때 요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에게 해를 행하려 했으나 목자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그 지팡이로 내 길을 인도하시고 막대기로 나를 구원하셔서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악도 우리를 망하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악이 선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어떠한 풍랑도 우리를 망하게 하지 못합니다. 어떠한 독도 우리를 죽이지 못합니다. 어떠한 고통도 우리를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또한 답답하고 억울한 것도 우리를 망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좌절과 절망도 우리를 멸망시키지 못하는 것은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알고 겪게되는 고난은 희망과 꿈이 있습니다. 반대로 모르고 당하는 고난은 절망과 고통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알아야만 하는 것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 나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손에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어서 내가 모르는 길을 열어 주시고 내가 모르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내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일에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뻐하고 탄식하면서도 감사하고 찬양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인생길을 갈 동안에 크고 작은 시험과 환난과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함께 하심으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와 같이 하는 것을 알고 인생의 고난을 겪는 것과 주님의 함께 하심이 없이 나홀로 걸어가는 사람과의 결과는 천양지차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인정하십시오. 함께 계시는 주님을 환영하십시오. 항상 생활속에 모셔 들이십시오. 항상 모든 일을 주님께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구원을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가슴속에 품고 인생을 살아갈 때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살아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살아가면서 알고 당하는 고난에는 희망과 꿈이 있지만 모르고 당하는 고난은 절망과 고통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일을 살아갈 동안에 우리의 삶의 결과가 어떤 것을 우리로 하여금 다 알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 인생의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시는 주님이 목자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이 진리를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축복과 성공과 승리가 되는지 형언할 수 없음을 고백드립니다. 우리 영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