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카카오링크 보내기 버튼
부활하신 예수님
2006.04.1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장 1∼5절

이천년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
성령과 말씀, 성찬과 교회를 통해서
지금도 부활의 신앙을 증거해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 이후 무덤에 계시다가 3일만에 부활하사 40일 동안 확실한 증거로 살아계심을 제자들에게 친히 보이셨습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어찌할 줄 몰랐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다시 믿음을 굳게 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하신 이후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행적과 지금도 우리에게 증거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님

 

 주님은 부활하신 이후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이 되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수의만 있고 시체가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간 후 혼자 남아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홀연히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5절로 1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소식을 알리려 돌아가던 다른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8절로 9절에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세 번이나 당신을 부인함으로 자책감에 시달리고 좌절과 절망에 처해있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은 부활하신 모습으로 베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1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는 말씀에서 시작하여 주님은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의 존재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로 20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도마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엠마오로 향하던 다른 두 제자와 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나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그 못 자국에 손을 넣어 보고야 믿을 수 있다”라고 말한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다시 한번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6절로 29절에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열한 제자에게 다시 살아나심을 분명히 나타내시고 난 이후에 “내가 너희를 갈릴리에서 만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21장 5절로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말씀하심으로 디베랴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물을 끌고 해변가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이 이미 숯불을 피워 떡과 고기를 구워놓고 제자들을 기다리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2절로 1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손수 떡과 생선을 가져다가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과의 조반을 마치시고 난 다음 예수님은 당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에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라는 말씀에서 주님은 베드로의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심으로서 다시금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다시 갈릴리의 어느 산에서 열한 제자를 불러 모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로 19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신 후 주님께서는 또 다시 베다니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을 종용하심으로 약 500명의 성도들에게 나타나시고 구름떼같이 모인 성도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말씀하였고 누가복음 24장 50절로 51절에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뻞하늘로 올려지시니뻨”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고난 받으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를 확실히 증거하시고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모습을 분명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2. 왜 우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시는가?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셨던 것 뿐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속에 와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아니하셨으므로 예수님이 나타나셨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여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한복음 16장 7절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4장 16절로 20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바로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므로 성령을 통하여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환상 가운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우리 안에 항상 계시므로 따로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은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있으므로 오늘날은 예전처럼 주님이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몸으로 계실 때는 특정한 사람들과 같이 계셨지만 무소부재 하신 성령님은 온 세상 만민과 함께 계시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모든 사람속에 와서 계시므로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는 고아와 같이 버림을 받지 아니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자리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은 나타날 필요없이 우리는 매일 같이 함께 살아만 가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나타나실 필요가 없는 것은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장 1절로 2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을 읽으면 예수님을 읽는 것이요, 말씀을 모시면 예수님을 모신 것이요, 말씀을 깨달을 때 예수님이 계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들을 때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옷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말씀을 떠나서는 거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살므로 꿈이나 환상 가운데 예수님이 특별히 나타나실 필요가 없이 언제나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모신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을 받아들인 개인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고, 또 그 나라는 예수님이 함께 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를 통해서 말씀을 받아들인 개인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말씀을 받아들인 나라마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말씀을 버린 사람이나 말씀을 대적하는 나라들은 예수님께 버림을 받고 종국에는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면 바로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므로 예수님을 다른 곳에서 찾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 에드워드 모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는 처지로, 어렸을 때부터 가구 공장에 들어가서 직공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런던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트는 무심코 한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말씀이 그의 심령에 확 다가오면서 말씀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환상을 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 마음속에 들어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그 말씀을 통해서 크게 변화를 받고 그날부터 예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느끼고 마음속에 허무와 무의미와 공허를 다 극복하고 가치있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고 뜨거운 소망으로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주님과 함께 그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점점 축복을 받아서 나중에 가구공장 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도 크게 확장되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날이 갈수록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너무 감사하여 뜨거운 감격으로써 시를 짓게 되었는데 찬송가 539장이 바로 그 시인 것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보잘 것 없는 일개 가구공장의 직공이 교회가서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복된 삶을 살고 또 찬송시를 지어서 모든 이들이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상 중에 예수를 만나고자 방황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말씀 안에 있고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면 오늘날도 그리스도는 살아계셔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환상에나 꿈에서 볼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는 성찬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4절로 25절에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 마지막 성찬 때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떡을 떼고 잔을 기울여 주시면서 이는 내가 너를 위해서 흘리는 새 언약의 피니 받아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은 주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시고 나를 위하여 장사지내시고 나를 위하여 부활하셔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찬은 단지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죄를 다 청산하시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파하시고 또 사망과 지옥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생명이 된 것을 우리에게 증거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3절로 5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찬을 먹으므로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주와 함께 거하게 되므로 무엇을 꿈과 환상으로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명으로 내가 살게 된 것이기 때문에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은혜를 직접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패트 노벡은 보스턴의 교외에 위치한 병원의 목사로 봉사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찾아와서 한 환자를 보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환자는 60대의 존이라는 사람인데 병원에 어떤 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로 쇠약해지며 2주 동안이나 전혀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않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트 목사님이 존이라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마음속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성찬을 받고 싶은지 묻고 성찬을 받게 하라’하는 성령의 강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밥도 안 먹고 물도 안마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인 성찬을 받겠습니까?” 그러자 존은 “그럴 수 없어요! 나는 죄가 너무 많아서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룩한 성찬에 참여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지 의인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의인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러 왔으므로 당신이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몸 찢고 피 흘렸으니 감사함으로 성찬을 받아들이면 살아계신 예수님이 당신에게 들어와서 당신이 살아날 것입니다”라고 권면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존은 죄를 회개하고 다음에 목사님이 주시는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시고 난 다음에 갑자기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 몸속에 들어온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모든 마음에 고통과 육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이후로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병원에서 퇴원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찬을 통해서 살아 계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주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에 임할 때 형식과 의식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므로 성찬은 우리 생활에 지극히 중요하고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에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회중으로 모인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몸이므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교회안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와 계심에도 불구하고 믿지 아니하므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라도 바리새교인, 사두개교인, 교법사들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또 그들을 위해서 주님께서는 아무런 기사와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는 믿는 사람을 위해서 주님은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환영하지 아니하고 모셔들이지 않고 믿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의 도우시는 손길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있는 그대로 믿으면 성경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1장 23절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교회 안에 계셔서 만물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훼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은 교회 안에서 마음속에 의가 없어서 오는 사람 의로써 채워 주시고 거룩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거룩함으로 채워 주시고 건강이 없는 사람에게는 건강으로 채워 주시고 축복이 없는 자에게 축복으로 채워 주시고 소망이 없는 자에게는 소망으로 채워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 있으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보는 것과 듣는 것, 그리고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또한 돈과 권력이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세상 쾌락이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두 다 만족을 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도 권세도 터진 웅덩이요, 부귀와 영화와 공명도 터진 웅덩이요, 쾌락도 터진 웅덩이입니다. 아무리 부어도 부어도 밑빠진 독에 물 흐르듯이 다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만족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 마음속에 오시면 우리는 모든 기쁨과 모든 평안과 모든 소망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30절에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이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에 살아계신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기도할 때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또한 병을 고칠 때에도 우리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이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시고 또한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일하시고 계시는 예수님의 몸된 교회에 속한 지체가 된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천년 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보다 더 확실하게 예수님을 모시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계시므로 확실하게 우리는 예수님의 영과 함께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을 옷입고 우리 가운데 와 계시므로 말씀을 받아들일 때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들어오시고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생활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고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들어가서 일체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된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와서 그 몸의 지체가 되어 있으므로 예수님의 성령이 우리 몸을 통해서 흘러 넘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죄와 병을 벗어버리고 저주와 가난을 벗어 버리고 사망과 음부를 벗어버리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승리하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2천년 전에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33년을 거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사망과 음부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신 주님, 오늘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 가운데 계시니 감사합니다. 성령과 말씀과 성찬을 통해서 그리고 몸된 교회를 통해서 실제적인 우리의 삶 속에 와 계신 주님 감사합니다. 살아 계신 주님 오늘도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PDF

    지면보기

  • 행복으로의 초대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