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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시작하면서
2006.01.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잠언 4장 20∼27절


정의로운 개인, 가정, 사회를 위하여
기독인, 섬기는 사랑 실천 앞장서야
사랑은 타인과 나를 잘되게 하는 것


 우리는 새해를 여는 출발시점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우리의 삶을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피터 모페스는 “우물을 청소하는데 주의를 기울이기 보다는 차라리 그대 마음을 청소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라. 그대의 양떼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살찌게 하라. 그대의 집을 방어하기 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지키기를 더욱 힘쓰라. 그대의 돈을 지키기 보다는 그대의 마음을 지키기에 더욱 힘쓰라”고 말했고, 청교도였던 존 훼볼은 “어떠한 조건하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바르게 관리하는 일은 기독교인의 생활에 있어서 위대한 사명에 속한다”고 말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1. 정의롭고 정직하고 거룩하게 살자

 

 이 땅에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중에 완전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해에는 우리가 마음속에 결심을 하고, 보다 정의롭고 정직하고 거룩하게 살겠다고 각오를 해야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항상 정의롭고 정직하고 거룩하게 살자는 생각이 가득해야 합니다. 성경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쓰게 되는 수많은 돈에 정의가 없게된다면 부정과 부패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생활의 기본적인 통용수단, 곧 돈에도 정의로움이 있어야 올바르게 벌고 올바르게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권력에도 정의가 없으면 독재와 폭정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당하게 권력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권력을 정의롭게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 중심으로 사용하면 권력이 부패해지고 독재와 폭정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29장 2절에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고 쓰여있는 것을 간과해선 안되겠습니다.
 1942년 2차세계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는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30만명의 독일군에게 “소련 모스크바를 점령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히틀러의 명령에 독일군은 참모진들의 반대에도 넉넉하지 못한 식량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낡은 무기들을 가지고 진격을 감행했습니다. 결국 독일군은 소련군에게 패배하여 20만명이 전사하고 9만명이 포로가 되는 치명적인 패배로 후퇴해야 했습니다. 살아 돌아온 병사는 겨우 6000명뿐이었습니다. 히틀러 한 사람의 불의한 욕망과 고집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것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사회질서”라고 말했습니다. 정의가 있는 곳에는 질서와 평화, 발전과 번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의는 소금과 같아서 정의가 없으면 부정, 부패와 독재, 폭력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정의가 없으면 불행이 다가오게 됩니다. 잠언 13장 23절에 “가난한 자는 밭을 경작함으로 양식이 많아지거니와 불의로 말미암아 가산을 탕진하는 자가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또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으며 시편 112편 2절로 3절에도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가정에도 정의가 있으면 부와 재물이 함께 따른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불의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정의를 버리고 불의를 따라 행하므로 이 불의의 세력을 멸하고 우리에게 정의를 찾아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모든 불의를 지시고 십자가에 올라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몸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는 한없는 고통을 당하면서 우리의 불의를 다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불의를 헐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수 있도록 길을 내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정직하게 살기로 마음에 결심을 하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거짓이 판치고 있고 온 세상이 악한 마귀 아래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했으며,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라고 말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거짓말 안하고는 정치인도 되지 못하고 경제인도 되지 못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하게 살기로 결심만 하면 성령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기적을 통해 축복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정직이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사람만이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짓은 일시적으로 형통한 것 같으나 뒤는 아담이 체험한 것처럼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쓰디쓴 재앙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은 남을 속일뿐 아니라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을 속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신뢰를 잃을 뿐 아니라 자기도 자기를 믿을 수 없는 인격적인 파탄을 가져오고 분열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작금의 세상은,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곳이 없습니다. 세상은 온전히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을 따라서 탐욕으로 넘실거리는 홍수로 덮여있습니다. 이 우주 가운데 거룩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노력해서 거룩하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홍수속에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살면 어떤곳에 가서도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중심으로 사는 생활이 거룩한 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생활에 물들어 빠지지 말고 거룩하게 살아야 됩니다. 떠있는 배 안에 물이 들어오면 배는 침몰하고 맙니다. 세상의 탐심과 우상숭배가 우리속에 들어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속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있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거룩한 생각, 거룩한 말, 거룩한 행동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경고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6장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로마서 6장 22절에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께 의지하여 거룩한 삶을 살도록 결심하고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이웃을 섬기며 살자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신데, 이웃 사람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이 짊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금번 겨울에 호남지방에 폭설이 왔습니다. 고통과 고난이 다가왔습니다.그러한 가운데 제 마음에 큰 감동이 밀려온 것은 전국에서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부상을 당하고 지붕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도 열심히 눈을 치우고 비닐하우스를 정리해 주는 광경이었습니다. 많은 군인들과 경찰들이 있는 힘을 다해서 협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에게 가서 그 짐을 함께 짊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새해에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서 이웃을 섬기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져 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시편 68편 19절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말한 것처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여 죽기까지 우리를 섬겨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위에서 몸찢고 피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주님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인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남을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빌립보서 2장 2절로 3절에도“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부스가 구세군을 창설한 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구세군에 지원했습니다. 그중에는 성공회 감독을 꿈꾸었던 사무엘 브랭클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미국의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부족함 없던 그가 환경의 만족을 뒤로 한채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왔습니다. 부스는 그를 면접하고 맘에 들어하지 않았으나 그 열정에 탄복하여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의 교만함을 간파했던 부스 장군은 브랭클에게 다른 훈련생들의 군화를 닦으라고 지시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던 브랭클은 마음에 화가 잔뜩 났습니다. 위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자기에게 그 꿈에 걸맞는 중요한 역할이 맡겨질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일이 손에 안잡히고 짜증만 늘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며 기도하던중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비천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낮아지신 예수님의 모습에 큰 감화를 받은 브랭클은 곧 회개하고 교만을 버렸습니다. 결국에는 구세군 최초의 미국인 감독관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기는 삶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군림하는 자세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허리를 굽히고 낮아지는 자세인 것입니다. 먼저 남을 대접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내가 존경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존경하고, 사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도움을 받고 싶으면 남을 먼저 도와줘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도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부호였던 앤드류 카네기는 훌륭한 사업가이면서 동시에 자선사업가였습니다. 그는 재산을 가지고 죽는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명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카네기는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3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일심으로 사업을 일으켜 마침내 큰 거부가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밖에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사회에서 번돈을 사회에 환원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자 카네기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철왕이 되고 재벌이 되었습니다. 평소 생각대로 문화, 예술, 구제, 평화를 위해 여러 연구소를 설립하고 자선사업을 벌였습니다. 1892년에는 뉴욕에 카네기홀을 만들어 예술진흥에 주력하고 1902년 카네기 연구소를 창설했고 1904년에 카네기 기금을, 1905년에는 카네기교육진흥재단을, 1910년에는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그는 각 지방의 교회에 약 7000대의 파이프 오르간을 기증하고 2800곳의 도서관에 자금을 제공했습니다. 카네기는 거부가 되기까지 돈을 번 것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일생동안 사회에 많은 재산을 기증했습니다. 사회에 환원한 액수가 지금의 화폐가치로 몇조원이 넘습니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면 하나님께서 그를 더욱 더 큰 도구로 사용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남을 먼저 대접하면 내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

 

 우리의 삶을 돌아다보면, 늘 우리는 사랑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천을 쉽게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주위의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사랑을 실천하고 살면 언젠가는 그 범위가 확대되어 큰 사랑을 베풀 수 있고, 언젠가는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하고 보람되게 하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본 자가 없지만,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이 실천되는 곳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작은 사랑의 실천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은 빛을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왔다갔다 하면 좋은 종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종교인들을 반겨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실천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본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는 자를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강도 만난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가던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있는 것 다 빼앗기고 옷도 벗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길가에 쓰러져 있는데, 유대인이었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사마리아인은 정성을 다해 다친 사람을 돌보아 줍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고 그 만큼 사회적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어 줄 수있는 능력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사랑의 행동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당했던 사마리아인은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겉은 천해보이고 멸시받는 사람이었지만 그 사마리아인의 마음속에는 선함이 있었고 그 사랑이 행동으로 표출되어 실천하는 믿음으로 승화되었던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이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초기 한국교회 역사에 미국선교사 헤론이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테네시 의과대학이 생긴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은 수재로서 그 대학의 교수로 남아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하고 앞날이 보장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언더우드보다 두 달 늦은 1885년 6월에 한국으로 파송되어 왔습니다. 알렌이 선교사직을 그만 둔 후에도 병원장으로 일하면서 밤낮없이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 온지 5년이 되는 1890년 여름이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은 남한산성의 휴양지로 피해서 쉬고 있었지만 헤론은 폭염속에서도 서울까지 먼거리를 드나들며 환자들을 치료했습니다. 그러다가 더위와 과로에 지쳐 이질에 걸려 3주간 앓다가 낯선 땅에 젊은 아내와 두 딸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조선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보장된 길을 마다하고 낯선 땅에 와서 생명을 걸고 병들어 죽어가는 조선인들을 섬기며 사랑을 실천했던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 복음이 한국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은 상처를 치료해 줍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남의 상처를 자꾸 할퀴고 물어뜯으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15장 2절에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으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짐을 나누어 집니다. 남에게 짐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짐을 어깨를 밀어 넣고 같이 짊어져 주어서 가볍게 만들어 주는 것이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2절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5절로 16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에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중상모략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남이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성공을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공을 향해 함께 갈수 있는 비결입니다.
 새해에는 지극히 평범한 삶 속에서도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을 추구하고 이웃을 섬기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을 하십시다. 이렇게 할 때 천국의 영광은 우리들을 통해 삶의 현장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새해에 우리와 함께 하여 주셔서 우리가 정의를 위해서 노력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애를 쓰고 결단을 내리고 거룩하게 살려고 성령의 도움을 늘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 때 하늘나라가 우리를 통해서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새해를 맞은 우리들이 우리 마음에 다짐을 하고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새해에는  좀더 정의롭게 살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정의롭게 살겠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게 도와 주옵시고 어찌하든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정직하게 살고 거짓을 버리고 살게 도와 주시고 세속에 물들지 말고 거룩하게 살도록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여, 새해에는 이웃을 섬기며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가족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며 나라를 섬기고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작은 일에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도와 주시옵시고 큰 일을 못한다고 해서 사랑실천을 포기하지 말고 지극히 작은 일에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천국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온땅에 넘쳐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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