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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나?
2005.10.3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장 7∼11절

예수님은 죄와 가난과 질병의 포위망을 무너뜨려 
답답한 일, 핍박을 받아도 십자가 사랑으로 극복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과 부활의 징검다리

 사람들은 심한 고난을 당하여 헤쳐 나갈 방도가 없을 때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격려하는 말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은 이럴 때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우리는 질그릇 같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우리 속에 보배로운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보통 질그릇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보통 질그릇입니다. 아무렇게나 취급당할 수도 있고 깨어질 수도 있지만 믿는 자들은 그 속에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품은 질그릇입니다.

 

 1.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질그릇 같은 우리 인생은 예수님이 속에 계시기 때문에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가 않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사면초가이고 완전히 싸여도 실제는 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적군이 사방으로 포위할 때 피할 길이 없다고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을 때도 실상 우리는 싸이지 않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봐서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던커크는 도버 해협에서 영국을 바라보는 프랑스 항구로, 오늘날에는 인구 7만이 거주하며, 전자 및 조선과 각종 제조업이 발전한 도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5월 하순, 영국군을 비롯한 연합군 30여만 명이 바로 이곳 던커크에서 독일의 기계화 부대에 포위되어서 전멸의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의 처칠 수상은 전 국민에게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자신도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성가대석에 엎드려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5월 24일, 영국의 모든 작은 배들이 연합군 구조의 임무를 띠고 들어갔습니다. 때를 같이하여 독일의 철갑부대는 구데리안 장군의 지휘 아래, 던커크의 마지막 방어선인 운하를 막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히틀러가 구데리안 장군에게 즉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역사가들에게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사건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이것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영국 국민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해주셨던 것입니다.
 포위되었던 연합군은 6월 4일까지 11일간의 철수 작전으로 영국군 19만 8000명, 프랑스군 1만 4000명, 벨기에군 등 33만 8000명이 총 693척의 작은 배들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이처럼 작은 배들이 힘을 모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영국의 던커크 철수 작전은 역사상 ‘명예의 작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적군이 사방으로 포위하여 이제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적군이 스스로 포위를 풀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셔서라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해주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절대 싸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죄와 마귀, 병과 가난, 죽음이 포위한 인생입니다. 어느 곳을 봐도 죄와 마귀와 병과 가난과 죽음이 우리를 첩첩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떠날 수가 없고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을 칩니다.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계신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저주를 다 짊어지시고 힘껏 싸워서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려 다 이기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멸하시고 세상과 마귀를 이기시고 질병을 속하시고 저주와 가난을 짓밟으시고 죽음을 폐하시고 다 승리를 이루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포위망은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는 이 말씀을 통해서 볼 때도 죄의 포위망은 무너지고 질병의 포위망도 이미 무너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된 것처럼 성령이 오셔서 죄와 사망이 우리를 둘러 진쳐도 그 포위망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버리고 말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한 것같이 사망이 우리를 포위해도 주님은 사망을 멸하고 우리에게 생명으로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물질적인 세계가 영적인 세계를 포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손을 내밀어서 공기를 포위해도 공기가 포위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더불어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마음속에 세상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하늘이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늘이 임하여 계시고 우리는 하늘을 품고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 하늘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와서 계시고 천군천사들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으로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우리가 싸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부부간에 갈등, 자식을 기르는데 어려움, 이웃과 갈등, 사회생활에 갈등, 우리 생활은 일평생 갈등천지입니다. 그러나 갈등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우리가 낙심해서 거꾸러질 것 같아도 7전8기하여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폐아를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에서 수영 금메달리스트로 만든 김진호 선수 어머니의 간증을 몇 주 전에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자폐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나 절망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식과 운명을 같이하여 동반자살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함께 믿을 것이냐 그 갈림길에서 동반자살 대신에 믿음의 길을 택하고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4년간 하나님께 주야로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이여, 진호의 자폐를 고쳐 주옵소서’ 4년 동안 기도해도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좌절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자녀를 사랑하라. 내가 진호를 사랑하니까 내게 맡겨버리고 내가 기르는대로 너도 진호를 사랑하고 따라가라!’ 그 순간 회개기도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호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주님이 더 사랑하시고 주님이 이 아들을 책임지겠다고 하시니 나는 주님을 의지하고 진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는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고통스러워 몸부림쳤을 뿐 단 한번도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참된 사랑과 용기와 지혜를 주옵소서’ 그때부터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기 시작해서 수원에 있는 김장환 목사님이 세운 학교에 입학을 시켰습니다. 일반아동과 장애아동이 함께 공부하는 학교에 특차로 입학을 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수영도 시키고 그 기능을 발전시켜서 오늘날 세계장애인올림픽에서 수영 1등을 하고 금메달을 획득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자폐아로서 그 어머니가 그로 인해 좌절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너는 사랑을 같이하라. 내가 그 아이를 위해서 예비한 길로 이끌 터이니 너는 사랑하고 따라가라’고 말씀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마음에 낙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낙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처음과 나중이 되셔서 나의 일생을 다 알고 계시고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셔서 우리의 일생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눈에는 안보이고 귀에는 안 들리고 마음으로 알 수 없습니다. 도대체 이러한 어둡고 캄캄한 길에 무엇을 예비해 놓았을까 의심하겠지만 우리보다 지혜와 총명이 뛰어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한 것을 믿고 따라가면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에게 선의를 가지고 선으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은 말뿐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증명된 사랑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고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3.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사람은 우리를 버리려고 핍박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혹은 세계에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해서 버리려고 하지만 우리 속에 예수님이 들어와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주님이 붙잡고 계시기 때문에 핍박을 당해도 버린바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핍박당한 유대민족의 역사를 보십시오. 유대민족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이삭과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 후손들은 비록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으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함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징계를 하셔도 택한 자식은 틀림이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에 고통을 주어서 부모가 탄식하고 자식 낳은 것을 후회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혹은 쫓아내더라도 그가 자식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사랑과 긍휼을 늘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 2000년 동안 방랑하며 엄청난 핍박을 받았어도 유대인들은 버린바 되지 않고 지금도 살아남았습니다. 유대인들을 포로로 잡았던 바벨론은 온데간데 없고 앗수르도 사라진지 오래고 메데 파사도 없어지고 로마도 없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을 짓밟던 구소련 공산주의자들도 없어졌고 600만 유대인들을 학살한 독일 나치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끈질긴 민족입니다. 왜, 하나님이 그들과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핍박을 당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한것처럼 온 세상이 악한 마귀 안에 있기 때문에 마귀는 어찌하든지 천국 가는 주막인 교회가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교회가 없어야 구원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석권하고 나가서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고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자 마귀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10대 황제가 결심하고 연속적으로 핍박을 했습니다. 국력을 기울여 처참하게 예수교인들을 잡아서 원형극장에서 짐승들과 싸워서 죽게 했습니다. 나무에 매달아 기름을 붓고 횃불로 태우기도 한 것입니다. 네로 왕으로 부터 시작해서 300년간 어마어마하게 교회를 핍박하고 교인들을 잡아죽였습니다. 그러나 콘티탄티누스 황제 때인 주후 313년 밀라노칙령을 내려서 기독교를 공인하고 392년 데오도시우스 황제 때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해서 온 로마제국 치하에 있는 나라들이 국가의 명령에 따라 예수를 믿도록 변화되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와 그 핍박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대원군 때부터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에 6명이 순교를 당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6촌까지 처형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기독교의 불씨를 완전히 꺼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불씨는 꺼지지 않았습니다. 일제치하 30년 동안에 일본 사람들이 200교회를 폐쇄하고 2000여 명의 성도들을 투옥시키고 죽이고 고통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제국주의는 망했고 교회는 안 망하고 살아있습니다. 북한의 공산당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북한에 교회가 2000개 있고 성도들이 30만이 있었는데 1948년 교회 모든 재산을 국유화해서 교회를 강제로 국가가 접수하고 교인들을 풍비박산 흐트러 버렸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교회를 다 불태우고 수많은 교역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죽이고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은 지금 5만 교회, 10만 주의 종, 1200만 성도가 있고 미국 다음으로 두 번째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우리에게 계급장 달아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고난을 당하면 당할 수록 그것이 장차 우리 하나님께 나아갈 때 영광의 상을 받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핍박을 당해도 버림 바 되지 않습니다. 핍박을 당할 수록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가까이 계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로 12절에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음

 

 거꾸러뜨린다는 것은 죽인다는 것입니다. 망한다는 것은 파멸 당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지옥에 떨어지거나 버림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거꾸러뜨렸졌으나 망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사람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거꾸러뜨리면 끝이 날 줄 알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꾸러뜨려서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부활하셔서 사망과 음부를 철폐하시고 영원히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다스리며 오늘날 교회의 몸이 되시고 머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서 주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우리들은 죽음과 부활을 함께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는 누구나 죽습니다. 사람은 칠십, 강건하면 팔십을 살다가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죽음이 겁내지 않는 것은 죽기는 죽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는 어떻게 죽어도 우리는 부활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돌로 얻어맞아 돌무더기 속에 들어갈 때 그는 하늘을 쳐다보고 말했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는도다” 스데반은 비오듯이 쏟아지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그 영혼이 떠날 쯤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 보좌 앞에 예수님이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음이 옴과 동시에 부활도 함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망을 당해도 거꾸러짐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죽음과 부활을 함께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로는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교회에 와서 있지만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하여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히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육신이 죽는 그 순간에 우리의 속사람이 하늘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 없는 사람은 망해도 믿는 자는 이미 부활 승천하여 그리스도 안에 앉아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2장 6절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말씀 하신것 처럼 오늘 우리는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교회에, 영으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로 39절 말씀처럼 내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끈끈한 사랑의 줄이 하나님 손에 잡혀 있어 어떠한 능력과 힘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품에 있기 때문에 죽음조차도 우리를 거꾸러뜨릴 수가 없습니다. 죽음이 다가오면 부활이 함께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죽음과 부활의 징검다리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질수록 부활의 생명은 항상 심신에 넘쳐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죽이겠다고 십자가에 못 박지만 십자가 다음에는 부활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못 박으면 못 박을수록 더 부활하고, 핍박을 할수록 더 주님께 가까워집니다. 우겨싸이면 싸일수록 해방되고 답답한 일을 당할수록 예수님의 사랑을 더 체험하게 되는 정말 역설적이고 놀라운 기적적인 은혜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 밖에서는 이런 일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우리가 마음속에 구주로 모시면 이 보배를 질그릇에 모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보배로운 빛을 우리를 통해서 발하시는 것입니다. 우겨싸일 때 주님께서 빛을 발하여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답답한 일을 당할 때 사랑의 광채를 나타내셔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핍박을 당할 때 더욱 품어 주시므로 버린바 되지 아니하게 하십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하면 부활하여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어떠한 시련과 환난과 고난이 다가와도 이 질그릇 속에 예수님을 섬기며 모시고 있으므로 예수님 안에서 이미 승리한 결과를 가지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죽음조차도 우리를 멸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우리는 부활의 품 속에 안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므로 예수 믿는 신앙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알게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주님을 찬미하고 의지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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