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이사야 64장 8절
토기장이가 좋은 흙 고르듯 하나님도 천국백성 만들려 우리 선택
하늘나라 그릇… 보혈로 씻고 순종으로 깨뜨려 말씀으로 반죽
시련의 불가마는 단단한 그릇을, 성령의 불가마는 찬란한 그릇을
성경은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오 우리는 진흙이라고 말씀합니다. 토기장이는 좋은 진흙을 갖게 되면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좋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려자기나 이조백자 등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예술품입니다. 임진왜란 때 한국의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오늘날 일본이 세계적인 도자기 생산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 토기장이가 찾는 진흙
좋은 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기장이가 좋은 진흙을 찾아야 됩니다. 좋은 진흙을 찾지 않으면 좋은 토기나 도자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몇년 전 TV에서 처음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의 도공들이 일본에서 좋은 진흙을 발견하지 못하여 좋은 도자기를 구워낼 수 없어 참담한 고생을 하는 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진흙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아무 흙으로 도자기를 구울 수 없는 것처럼 아무나 붙잡아 천국백성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도자기를 만들 때 주로 고령토를 사용합니다. 고령토는 원래 중국의 까오루(高陸)에서 많이 산출된다고 해서 그 이름을 고령토라고 불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하동지방에 많이 있습니다. 이 고령토는 약간 회색을 띤 백색으로 조선백자, 분청사기, 청자의 백색 상감 등을 만들 때 사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동의 고령토는 지금까지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흙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 흙이나 가지고 도자기를 구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국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아무나 불러서 천국백성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1절에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행위로 말미암아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해서 불러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 응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골라서 그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이지 아무 진흙으로 도자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선택한 진흙을 토기장이가 공장으로 옮겨 잘 씻어서 돌이나 지푸라기나 흙을 제하고 온전히 토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세상에서 파내어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릇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짓기도 전에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다고 말씀하시니 하나님의 계획의 장대함을 보고 우리 마음에 큰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토기장이로서 우리 같은 진흙을 만세전에 이미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흙 같은 우리를 하늘나라 공장인 교회로 불러 오셔서 예수님의 보혈과 말씀으로 우리를 회개시키고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 감화, 감동이 오므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마음을 씻고 또 말씀으로 정결함을 받지 않습니까? 우리가 죄인 된 그대로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회개시켜 주시고 보혈로 씻고 말씀으로 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진흙같은 우리를 택하셔서 교회라는 거룩한 하늘나라 공장에 데리고 오셔서 말씀과 보혈로 씻어 깨끗한 진흙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2.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이제 이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흙을 부드럽게 부서뜨려야 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싣고 공장에 오면 공장에서 깨끗이 씻고 난 다음에 그 진흙을 찰지게 만들기 위해 부서뜨립니다. 진흙 그대로는 뭉쳐있으니까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릇이 되지 않습니다. 잘 부수어 깨끗이 하고 짓이겨야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하늘나라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말씀과 성령과 보혈로 씻어주십니다. 그다음에 우리를 깨뜨리십니다. 그냥 쓰다듬어서 깨뜨려지지 않습니다. 두들겨야 깨지는 것처럼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깨어집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상하게 하시고 징계를 내리셔서 우리를 깨뜨리십니다. 우리가 부들부들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야 합니다.
단단한 흙에는 물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진흙을 부서뜨려야 비로소 토기장이가 원하는 그릇의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진흙 그대로 물을 섞어 놓으면 물섞인 진흙이 찰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짓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순종과 말씀의 물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 손에 말랑말랑하게 찰지게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손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를 깨뜨려서 말씀과 순종을 통해서 찰지게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을 어떻게 합니까? 깨어져야 순종하지 자기중심에 서서 뻣뻣하게 있을 때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나무가 뻣뻣하게 있으면 바람이 불면 꺾어집니다. 그러나 대나무는 바람이 불면 허리를 굽혀서 바람 부는 대로 순종해 꺾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뻣뻣하게 서있으면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하다가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허리를 굽히고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해야 하나님의 손 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4절로 15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의 뇌성마비 시인 미즈노 겐조는 1946년 초등학교 4학년 여름에 심한 이질에 걸려서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뇌성마비가 되어 눈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극한 절망 속에서 미즈노는 한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희망의 복음입니다. 좌절과 절망과 죽음에 처한 사람도 말씀을 들으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희망이 솟아납니다. 미즈노는 희망이 넘쳐났습니다. 마음속에 희망이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매일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머니가 미즈노를 기대어 앉게 한 다음 성경을 펼쳐주면 한 면을 읽고 다시 책장을 넘겨주면 또 읽고 하는 식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신이 마비되고 눈만 움직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늘 성경을 넘겨줘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가 책장을 넘겨주지 않고 앉아서 졸았기 때문에 한면을 수십번씩 번갈아 읽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희망을 얻은 미즈노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벽에 붙여놓은 알파벳을 어머니가 차례로 하나씩 짚어갈 때 자기가 말하고 싶은 글자가 나오면 눈으로 깜박깜박해 표시했습니다. 어머니가 그 글자를 적고 또 쭉 짚어 맞는 글자가 나오면 눈을 깜박깜박해 어머니가 그것을 적고 그래서 시를 적습니다. 그러니 한 단어를 만드는데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까? 이렇게 하나하나 쓴 시가 지금은 여러 권의 시집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내가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았으리라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없었으리라”
고난중에 말씀을 만나자 그의 영혼이 찰지게 되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졌던 것입니다. 미즈노는 그런 고난을 통해서 마음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사용하는 시인이라는 그릇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을 찰지게 만들어 주십니다.
옛날 사람들은 찰진 흙을 녹로에 얹어 녹로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찰진 진흙으로써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택한 진흙으로 불러서 깨끗하게 씻어서 하나님의 손으로 녹로에 얹어서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그릇 중에는 기뻐하는 그릇도 있고 소망으로 넘치는 그릇도 있고 사랑으로 넘치는 그릇도 있고 구제를 하는 그릇도 있고 가르치는 그릇도 있고 형형색색의 그릇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사업을 안 한다고 할지라도 얼굴에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그릇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만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도 그분의 얼굴만 보면 태양처럼 빛납니다. 즐거움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그릇이 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어떠한 사람은 위로의 그릇이 되어서 사람들마다 위로를 받고 사람들을 격려하고 힘을 주고 위로해주는 놀라운 그릇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형형색색의 그릇으로 만들어줍니다.
로마서 9장 21절에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들어 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의 종이라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장로라는 그릇도 있고 권사라는 그릇도 있고 안수집사라는 그릇도 있고 평집사 그릇도 있고 지역장, 구역장 그릇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기쁨을 나타내는 그릇도 있고 소망을 나누는 그릇도 있고 사랑을 나누는 그릇도 있고 구제를 나누는 그릇도 있고 어떤 그릇이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데로 그릇을 만드십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그릇된 것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3. 불가마에 넣어 굽다
녹로에 얹어서 하나님이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면 그 그릇을 불가마에 넣어서 구워야 합니다. 불가마에 넣어서 굽지 아니하는 질그릇은 그냥 깨어집니다. 아무리 녹로에 얹어서 좋은 형태의 그릇을 만들었을지라도 굽지 않은 그릇은 그대로 깨어집니다. 이러므로 불가마에 넣어야 되는데 우리의 불가마는 시련과 환난의 불가마가 있고 성령의 뜨거운 불가마도 있습니다. 먼저 시련의 불가마를 지나가야 합니다. 불로 굽지 않는 진흙은 쉽게 부스러짐같이 우리도 시험과 환난의 불가마를 지나지 아니하면 아무리 하나님이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어 놓으실지라도 우리는 쉽게 부서지고 쓸모없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통하게 만들어주십니다.
불같은 시련을 겪지않은 인생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굴복하고 맙니다. 시련을 통해야 순종하는 강한 신앙인이 만들어집니다. 일본의 어느 회사는 직원들을 채용하는데 후지산 꼭대기에서 면접을 합니다. 후지산이 굉장히 높지 않습니까? 그 산 꼭대기에 올라온 사람만 면접을 한다고 그럽니다. 그만큼 체력이 강해야 회사원으로서 일할 수 있기 때문에 체력이 약한 사람은 아예 신청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그릇은 불가마에 구워야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이 선택한 진흙이라도 이것이 구워져야지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속이 강해지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약한 진흙으로 있으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어서 그냥 부스러지고 맙니다. 이렇기 때문에 시련을 통해야 순종하는 강한 신앙인이 만들어집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3절로 4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같은 시험을 통해서 인내가 만들어지고 강해져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깨어지지 않고 튼튼한 그릇이 되게 주님께서 만들어 주십니다.
이 세상에 환난과 고통의 불가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거기에 보태어 성령의 불가마를 지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불을 받아야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의 영롱한 빛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성도가 됩니다. 그릇을 불가마에서 구워 내놓으면 아름다운 색깔을 냅니다. 그냥 굽는다고 영롱한 색깔이 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유약을 칠해서 구워야 아름다운 색깔을 가지게 되는데 그 유약이 성령의 유약입니다. 성령의 유약을 발라서 성령의 불가마를 통하면 우리가 영롱한 색깔의 의, 평강, 희락,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진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온 천하에 보내어서 영광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조지 왕이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는데, 가는 길목에 똑같이 생긴 두 개의 꽃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는 윤기가 흐르고 생동감이 넘쳐 보이는데 다른 하나는 빛깔이 흐릿하고 윤기도 없어 투박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지 왕이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
“한 도자기는 윤기가 나고 아름다운데 나머지 하나는 모양은 같은데 왜 저렇게 볼품이 없는가?” 그 물음에 안내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윤기 나는 도자기는 불가마에서 구운 도자기이고, 투박하고 못생겨 보이는 도자기는 구워지지 않은 도자기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불가마에 들어갔다 나온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는 이처럼 차이가 납니다. 성령의 불가마에 들어갔다 나온 성도만이 믿음, 소망, 사랑, 의와 평강, 희락의 영롱한 빛을 내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증거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시련과 환난의 불가마를 통할뿐 아니라 성령의 불가마를 통해야 합니다. 바울선생은 에베소교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의 영롱한 영광의 빛을 비치는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내적으로 강한 인격이 되고 헌신과 충성스러운 그릇이 되었다할지라도 성령의 불가마를 통해야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게 됩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하기 위해 기도하고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집안에서뿐 아니라 이웃과 사회, 국가, 세계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진흙 같이 버려진 우리들을 택하여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담는 아름다운 천국 그릇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만들어진 대로 우리는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나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에서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설교하기 전에 이희아 자매님이 피아노를 치는데 네 손가락으로 얼마나 기막히게 치는지 모릅니다. 거기에서 저는 ‘꿈과 믿음이 있으면 불가능이 없구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내가 꿈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지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겠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네 손가락으로 기가 막히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사용하시는 것을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스스로를 버리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주님 손에 내 인생을 맡기고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긍정적인 꿈과 믿음을 가지면 어떠한 형편에 있는 그릇이라도 하나님은 사용하신다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떠한 처지든지 하나님이 사용하는 놀라운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고 난 다음 어떠한 시험과 환난의 불가마를 통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우리를 아름다운 하나님의 그릇으로 만들어서 구원하십니다. 성령의 불가마를 통해서 충만해지면 하나님은 우리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놓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흙같이 버려진 우리를 택하사 하늘나라의 영광을 닮는 아름다운 천국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어떤 형편이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최선의 그릇을 만드십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으면 우리는 사용하려고 택한 진흙입니다. 하나님께 맡겨 놓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고 찬미하십시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하십시오.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십시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감사하고 찬양하고 믿으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를 놀라운 그릇으로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오 우리는 진흙입니다. 못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셔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진흙으로 씻어 주시고 깨뜨려 주시고 이겨주시고 살찌게 만드시고 그릇을 만드시고 불가마에 구워서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만들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 맡깁니다. 주의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드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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