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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을 넓게 열라
2005.08.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 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시편 81편 8∼10절


예수 믿으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은혜 입어
성령은 진리를 깨닫고 변화되도록 도우시는 보혜사
긍정적인 생각, 믿음으로 입을 넓게 열면 반드시 채워져

 어떤 정신지체 장애인의 아버지가 말한 것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장애인은 이미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또 신체가 부자유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가 없었습니다. 늘 아버지가 대소변을 받아내 주어야 하고 목욕을 시켜 주었습니다. 밥도 아버지가 입에 넣어서 대신 씹어 아들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씹어서 넣어 주지 않으면 이빨이 하나도 없어서 먹지도 못합니다. 아버지는 생활을 꾸려나가랴 장애아들을 돌보랴 너무 힘들어 죽고 싶은 생각이 여러 번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만 보면 함박웃음으로 웃고 온몸을 틀면서 좋아서 버둥대는 장애아들을 보면 마음에 한없이 불쌍한 생각이 솟아오르고 사랑이 가슴을 메워 도저히 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자가 그 아버지에게 어떻게 이 삶을 감당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이것이 다 운명이지요. 내 아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운명이고 나는 아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운명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운명대로 살아야지요” 그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기 위해 계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 운명입니다. 오늘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자기중심에 서서 자력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사랑

 

 사랑의 성품은 항상 주는 것입니다. 사랑이 내게 달라고 하는 것 있습니까? 사랑은 항상 주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식에게 줍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늘 생각하고 나라를 위해서 헌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만물을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예비하셔서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빛을 주시고 궁창을 만들어 주시고 땅, 바다, 식물, 일월성신, 물고기, 새, 육축 등 모든 것을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스스로 살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고 스스로 살겠다고 독립을 선포하고 하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외아들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타락하고 반역하고 배반한 자식까지라도 그대로 버려두지 못하시고 건지려고 그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은 어찌할 수 없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삶의 모든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3절에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이 땅에 생명이 끝난 이후에라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처소를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도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은혜

 

 은혜란 값없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아니하시고 값없이 복을 주십니다. 인간이 타락의 굴레에 노예가 되어서 몸부림칠 때 이를 벗기기 위해 주님이 타락한 인생의 모양으로 그 타락의 굴레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것을 벗어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죄를 대신지시고 죽음으로 청산하시고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은 선물입니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실 때 그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만들어서 새롭게 삶을 단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무엇이 새로워졌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옛사람은 청산되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었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와 의와 영광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거룩함과 성령충만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치료와 건강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부활과 영생과 천국의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이제 의로운 사람,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룩하고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치료받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얻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과 영생과 천국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거기에 보태어서 주님은 3대 재앙에서 삼중축복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주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죽음을 가져오고 저주를 가져오고 질병과 파멸을 가져왔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용서하시고 저주를 제하시고 사망을 철폐하시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새로운 우리의 모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름다운 지위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택하신 족속이라는 지위를 주셨습니다. 만민 중에 주님이 택하여 세운 사람,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생명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제사장의 위치를 주었고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이 친히 와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되고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하나님이 품에 품고 보호하고 지키고 돌보는 백성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 놀라운 삶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없는 은총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 하나님을 향해서 입을 넓게 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를 위해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는 봄이 되면 처마 밑에 제비가 집을 짓고 알을 낳습니다. 알에서 새끼가 태어나면 그때부터 어미 새는 정신없이 벌레를 물어다가 새끼에게 먹입니다. 새끼들은 어미가 오는 소리만 들려도 입을 찢어져라 벌리고 서로 먹이를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미 새가 조금 전에 누구에게 먹이를 먹였는지 기억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새들은 본능적으로 입을 크게 벌리는 새끼에게 먹이를 먹입니다. 그래서 입을 크게 벌리는 새끼는 계속해서 먹이를 받아먹고 입을 벌리지 못하는 새끼는 한 둥지 안에서 굶어죽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입을 넓게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입을 넓게 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의 교통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와 교통해 주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되고 우리는 거듭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종교를 얻어 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철학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윤리와 도덕 교훈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되지도 않는 소리 같지만 성령은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 영혼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진리를 깨닫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변화시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성령은 은혜로 주신 것을 우리가 알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 험한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성령께서 우리 도우미로 오셔서 모든 삶을 도와주셔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사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어렸을 때 운동회 경기 중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때 굉장히 달리기를 잘했습니다. 100뻍 경기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졸업할 때까지 1등을 맡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운동회 때 제가 꼴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이에 적혀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함께 달리는 경기였습니다. 저는 원래 달리기를 잘해서 당연히 1등으로 나갔는데, 종이를 펴본 순간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종이에는 ‘할머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할머니를 찾아 있는 힘껏 달렸지만 등수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늘 꼴찌를 도맡아 하던 아이가 그 날은 1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아이는 체육 선생님과 함께 달렸던 것입니다. 체육 선생님이 들쳐 업고 뛰자 앞의 아이들을 다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자기주체로 자조하며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인생경주를 혼자 뛰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과 함께 뛰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보혜사라는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 항상 곁에 있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성령과 함께 인생을 뛰어야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인간의 운명

 

 예수를 믿는 사람은 운명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마치 오늘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불구자인 아들이 별도리 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살아야 될 운명인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을 받아서 살 운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인간은 자기 주체로 스스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중심으로 내 힘으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존재 형식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사람을 성전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전은 성령이 와서 거하셔야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내용이 있어야 하지 텅 빈 공간만 있으면 그것은 성전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전같이 내용을 가져야 될 존재입니다. 우리 속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야 될 운명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로 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인간은 하나님을 모시는 질그릇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릇은 내용물을 담아야 그릇이지 내용이 없는 그릇은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포도나무와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인데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수분과 양분을 받아서 살 수 있지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우리 스스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 성령님을 모신 성전이요, 하나님과 아들, 성령을 모신 그릇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가지이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했으니 우리들은 입을 넓게 열고 아버지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또한 활짝 펼쳐진 그릇이 되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그릇 속에 담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에 꽉 붙어 있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물기와 양분을 받아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 생각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내 힘으로 인생을 산다는 생각을 없애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 기록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처럼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섬기고 살면 하나님이 채워 주시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채우시는 하나님을 늘 바라보면 하나님이 채우시는데 없는 것만 바라보고 절망만 바라보고 땅만 바라보면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한없는 사랑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그 끝없는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성령님의 놀라운 교통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예비하고 찬미하십시오. 시편 103편 1절에서 5절에는 “네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이와같은 큰 변화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채워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 나는 성전이니 성전을 채우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나는 그릇이니 그릇을 채우시옵소서. 하나님이여 나는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니 가지에 수분과 양분으로 채우소서’ 하나님께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그리고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건강하다는 표시는 감사와 찬송과 기쁨입니다. 내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거는 원망과 불평과 탄식과 좌절입니다. 아주 쉽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병들었는지 건강한지 내 스스로가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항상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뻐하고 긍정적이면 내 영혼이 건강하지만 원망과 불평과 탄식 그리고 좌절하면 내 영혼이 깊이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13장 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처지가 어렵고 고통스러울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며 믿음의 입을 넓게 열면 하나님이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썼던 조지 프레드릭 헨델(George Friderich Handel, 1685∼1759)은 많은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헨델이 몇 편의 가극에 실패했을 때 그의 라이벌이었던 지오바니 보논치니(Giovanni Bononcini, 1670∼1747)는 쉴 새 없이 명곡을 만들어 그는 거의 파산지경에 봉착했습니다. 런던에는 ‘헨델은 이제 끝났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습니다.
 절박해진 헨델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헨델이 이렇게 기도를 시작한 지 23일 만에 완성한 곡이 바로 그 유명한 ‘메시아’입니다. 그는 23일 동안 기도하다 작곡하고, 작곡하다 무릎 꿇고 기도하면서 그 대곡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합창곡 제44번 ‘할렐루야’를 작곡한 후에는  눈물을 흘리며 “내 앞에 천국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았다. 오,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구나!”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가망이 없다”고 하던 때에 그는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바라고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악상을 떠오르게 하셔서, 대곡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를 채우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다 포기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믿음의 입을 넓게 열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채워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을 받아야 삽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교통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고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활짝 열고 깨어진 마음과 항복하는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믿고 성령과 교통하며 영혼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성장해서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신앙생활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는 사랑받을 운명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할 운명이고 성령님의 변화시키고 교통을 해주시는 은혜를 받아야할 운명입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운명입니다. 또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은혜받기 위해서 태어난 인생인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과 교통해야 살 수 있는 인생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성령님의 은혜 속에 더 깊이 입을 넓게 열고 들어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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