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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2005.06.2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 3장 19∼22절

 

 

 


주의 종들 철야 금식하며 부르짖은 결과 하나님의 손길 움직여
미국과 UN군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돼
교회 창대해지고 흥왕하며 빛과 소금 되면 나라가 살게 되는 것


 1950년 6월 26일 당시 저는 동래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날도 상쾌하게 기차를 타고 등교했습니다. 교실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뒤숭숭했습니다. 전날 미명에 공산군이 탱크를 가지고 침공해 왔는데 야크기가 김포공항을 습격했고 탱크는 이미 의정부까지 쳐들어 왔다고 했습니다. 전쟁이 난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을 불러 모아놓고 ‘특별한 지시가 있을 때까지 학교는 무기 휴학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장 군인들이 학교를 접수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길로 언제 학교로 돌아올지 기약 없이 집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 3년 1개월 동안 우리는 6·25 동란이라는 비참한 전쟁을 겪게 된 것입니다. 전쟁의 결과로 사망, 부상, 실종, 포로된 인명 피해만 해도 한국군인과 경찰이 62만명, UN군이 15만명, 한국 민간인이 99만명, 북한과 중공군이 200만명, 북한 민간인이 150만명 총 526만명이 사상을 당했습니다. 여기에 전쟁고아가 10만명, 전쟁 미망인이 30만명, 피랍민이 320만명, 이산가족은 1000만명이 넘게 발생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우리 한국에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1. 육이오(6·25)는 자업자득

 

 우리가 기억할 것은 6·25라는 이 비극적인 사건은 자업자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있어 정신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초래한 비극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강했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조선 말엽에 한국의 실정은 비극 그 자체였습니다. 무능한 왕조와 부패한 정치로 사색당파 싸움이 끊이질 않고 쇄국정치로 나라는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 무지하고 가난한 국민은 갈 바를 모르고 방황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7절에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고 한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무능한 왕조는 그 측근 세력들이 활동을 부추겼습니다. 고종의 아버지였던 대원군은 지위를 이용해 천주교를 박해해 어마어마하게 많은 천주교도를 참수해서 죽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고 무역을 청하러온 외국 무역선을 격파시키며 쇄국정책을 행했습니다. 만일 그때 나라의 문을 닫지 않고 열었더라면 우리 국가가 현대화되고 일본에 강점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라를 막아놓고 구태의연한 생활을 했습니다. 고종의 아버지 대원군은 서슬이 퍼렇게 주먹을 쥐고 흔들고 아내 명성황후는 명성황후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그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달려들어서 정치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왕조와 정치권의 부패는 국민들을 분노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에 1860년 최제우를 교주로 하는 동학란이 일어났고 전국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드디어 1910년에 힘없고 무력한 한국은 일본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일본에 병탄(倂呑)되고 만 것입니다. 그일 이후로 36년간 식민지 생활을 했으며 나라도 잃고 언어도 잃고 창씨개명하고 징병, 노역, 수탈, 신사참배, 정신대 등 비극적인 역사의 상흔을 남겨놓고 만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망한 이유는 우리 지도자들이, 우리 국민들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다고 즐거워했지만 스스로 풀지 못한 쇠사슬이었습니다. 강대국에 의해서 해방이 되었으므로 강대국에 좌지우지되고 우린 자율권을 잃어 버렸습니다. 연합군이 와서 해방을 시켰기 때문에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이 우리를 38선으로 갈라놓고 만 것입니다.
 스스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힘이 없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미소에 의한 38선이 분단되고 우리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격렬한 투쟁장소였습니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던 곳이 한국이었습니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앞세워서 우리 한국을 적화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우리 대한민국은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쟁으로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완전무장한 보병사단과 소련제 전차로 무장한 북한의 기습에 힘없이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서울이 함락되고 전국이 북한군에 짓밟히고 오직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부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애국가에서처럼 하나님이 개입해서 우리를 6·25의 비참에서 건져내 주신 것입니다. 트루먼 미 대통령이 바로 6·25가 나자마자 한국에 지원군 파병을 UN안보리에 회부했고 소련대표 말리크가 불참해 한국파병이 결의되고 UN 16개국이 파병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상임이사국은 미국, 중국, 소련, 프랑스, 영국 총 5개국인데 이중에 한 나라만 반대해도 UN군을 파견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만 반대했어도 우리 한국은 공산화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시편 118편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낙동 강변까지 소련 탱크로 무장한 북한군들이 쳐들어왔기 때문에 ‘오늘 부산이 무너진다. 내일 부산이 무너진다’ 그런 위기에 처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이승만 대통령께서 부산 지사관에 계셨는데 제일 큰 초량교회에 모든 피난 목사들을 불러 모아놓고 부탁을 했습니다. “북한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와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방어할 힘이 없고 며칠 이내에 하나님이 도와주지 아니하면 우리는 부산바다로 몰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 친구 맥아더가 B-29를 보내 융단폭격을 해서 침공하는 북한 공산군의 주력을 깨뜨려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지금이 8월로 우기에 들어서 비가 내리면 비행기가 뜨지 못합니다. 비가 오지 않도록 목사님들이 기도를 해주십시오”
 아무리 맥아더가 비행기를 보내 우리를 지켜주려고 해도 비가 오면 비행기가 뜰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호소를 듣고 초량교회에 모여서 열흘간 철야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에 만일 목사님들이 초량교회에 모여서 열흘간 금식하고 철야하며 부르짖지 아니했더라면 한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해 8월에 하루도 구름 낀 날이 없었습니다. 한 달 내내 하늘이 청명했습니다. 그때 B-29가 주야로 날아와서 폭격을 안했으면 한국은 그대로 공산군의 손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기도하는 맥아더 장군이 곧 인천상륙을 개시했고 인천에서 허리 중간을 막아 버리니까 독안에 쥐가 된 공산군들은 다 패퇴했고 그길로 UN군과 한국군은 진격해 올라가서 압록강까지 갔으나 중공군이 개입하므로 말미암아 다시 패퇴하고 오늘의 휴전선까지 내려와서 휴전 조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요엘 2장 12절로 13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재앙에 처했을 때 주의 종들이 철야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몸부림치고 부르짖은 결과로 하나님의 손길이 움직여서 우리 대한민국이 파멸에서 구출되고 오늘날 교회가 한국에 이처럼 살아서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

 

 3. 잊지 말아야 할 은혜

 

 옛말에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은 물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은혜는 다 물로 떠내려 버리고 원한만 돌에 새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과 UN군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 우방의 군사들이 물질적 도움이 없었으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6·25를 체험하지 못했지만 6·25를 겪은 우리 연배의 사람들은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산에 피난민들의 삶이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죽음을 눈앞에 둔 삶이었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습니다. 있을 곳이 없어 산에 굴을 파고 판자로 집을 지어서 겨우 비를 피하고 추위를 피했습니다. 수많는 사람들이 굶어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래도 대다수의 국민이 살아남은 것은 미국 사람들이 갖다 준 식량과 의복과 의약품 원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적인 의지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미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날 수 있다는 마음의 의지가 있고 희망이 있었습니다. 실질적으로 한국 재건의 기본적인 원조는 미국이 해주었습니다. 8·15해방 이후 미국은 지속적으로 한국을 원조했습니다. 경제통계연보에 의하면 1945년 해방된 때로부터 1950년 6·25발발 전인 그때까지 미국은 우리나라에 금액으로 따지면 약 5억 8400만 달러를 원조했고 전쟁이후 1965년까지 약 33억달러나 원조해 주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 땅의 선조들이 뼈를 깎는 고통과 눈물을 흘리며 헐벗고 굶주리면서 나라를 건설한 것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연히 이렇게 잘 살고 잘 먹고 잘 입는 일이 일어난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점에 와서 꼭 알아야 될 것은 지금 누가 우리 편인가를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누가 우리 편인지 혼동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우리 동족끼리 뭉쳐서 살자’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동맹을 한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우리와 멀리 있으니까 우리가 자꾸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상징만 존재할 뿐 가치관과 체험 등에서 어떤 공감대도 없습니다. 언어와 외모를 빼면 같은 점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이질성을 무시하고 ‘같은 민족이니까 무조건 통일해야 한다. 뭉쳐야 한다’는 주장은 함께 죽자는 얘기일 뿐입니다.
 오늘날은 동맹이 통하는 시대입니다. 동맹이란 얼굴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더라도 이해가 같고 사상이 같아서 함께 살면 그것이 진짜 동맹이 되는 것입니다. 민족끼리 하나 되자고 하는 말은 허구입니다. 북한은 우리를 미혹하기 위해서 ‘동족이니까 하나가 되자’고 합니다. 하지만 동족이라고 하면서 주머니에 총과 원자탄을 감추고 있습니다. 겉으로 ‘우리와 같이 살자. 우리에게 쌀다오. 비료다오, 돈다오, 도와다오’라고 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가 거기에 미혹되었다가는 큰 코를 다칩니다. 북한은 김일성 이후로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적화통일의 야욕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북한이 원자탄을 가지고 있다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북한이 원자탄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함께 망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이 원자탄을 가지면 물론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의 모든 무장은 해제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원자탄 앞에 재래식 무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원자탄을 가지면 일본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일본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우리는 사방에서 협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만도 핵무장을 하게 될 것이고 이러면 미국이 가만있지 않습니다. 미국은 반드시 북한을 공격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남북은 공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길은 우리와 이해관계가 같고 사상이 같은 미국과 굳건한 동맹을 가져야 안전할 수 있습니다. 미국을 멀리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6·25때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터키, 대만, 그리스, 남아공화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노르웨이 등에 35만명의 군인이 우리 한국에 와서 우리를 도와주었고 총 15만 4881명이 죽었습니다. 미국 군인이 3만 7000명, 영국 군인이 1078명, 터키 군인 742명이 남의 땅에 와서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죽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고난당할 때 피 흘려 싸워준 우방들입니다. 동족이라는 말보다 동맹이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역사적 비극을 막기 위하여

 

 한국이 역사적인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정치가 새로워져야 됩니다. 정치가 잘되야 나라가 삽니다. 우리 정치가 잘되면 나라가 잘되고 정치가 못되면 나라가 못됩니다. 우리는 꿈과 지도력이 있는 정치인들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없고 지도력이 없이 서로 싸움만 하는 정치인들을 갖다 놓고는 우리나라에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민을 잘 먹고 잘 입고 잘살고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꿈과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정치지도자는 애국 애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파벌이나 위하고 정치를 통해서 자기 이익만 도모하는 정략적인 사람이 아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정치인들이 우리를 이끌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부정부패가 없어야 합니다. 불의가 있는 곳에 국가가 바로 설 수 없고 부정부패가 있는 곳에 국민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의욕이 생겨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미가 6장 8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도 현명해져야 됩니다. 나라와 민족 사랑이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면 전라도도 없고 경상도도 노인도 젊은이도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또한 나라가 살기 위해서 국민이 현명하여 서로 손잡고 함께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 이 좁은 땅에서 도가 나뉘고 지역이 나뉘고 계층이 나뉘어지는 것입니까? 서로를 위하며 아끼고 협동하는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부강한 나라 건설을 위해 우리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부강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뿐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도 대접을 받습니다. 나라 부강을 위해서 우리 국민 전체가 서로 상부상조하고 손을 잡고 나가야지 지역 간에 갈라지고 계층 간에 갈라지고 노사 간에 갈등으로 나라를 망쳐 버리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서 배워야 됩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서고 우리가 강하면 아무도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가 우리 한국에 있다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우리와 같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국을 볼 때 교회를 계산에 넣지 않습니다. 한국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군사, 산업만 계산해 넣지 교회를 계산해 넣지 않습니다. 중대한 잘못입니다.
 우리나라에 5만 교회와 10만 주의 종과 1200만 성도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아 놓으면 열 자도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창대해지고 교회가 흥왕하고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면 나라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6·25때는 우리 한국 교회가 미약하기 짝이 없고 성도수도 별로 되지 않아서 힘이 되지 못했지만은 지금은 국민의 4분의 1이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6월 25일 대학로에 수 만명의 우리 성도들이 모여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은 반드시 효과를 발생합니다.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하나님이 반드시 들으신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지금까지 망하지 않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고 하늘에 보존되어 있어서 그 기도의 효과로써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로 14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사회의 빛이 되어야 되고 교회가 도덕적인 소금이 되어야 되고 교회가 기도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불사조처럼 6·25의 잿더미 위에서 오늘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정치, 군사, 경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능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저는 저의 어릴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몇 번이고 가슴을 두드렸는지 모릅니다. 정말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어릴 때 본 한국의 처참하고 황폐한 상황에서 55년 만에 이렇게 부하고 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세워 주셔서 마지막 때에 제사장의 국가로 세우시사 아시아와 세계의 빛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과거 1919년 3·1운동 때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한수의 시를 지어서 한국 국민에게 보냈습니다. 옛날 아시아의 황금시절에 찬란한 등불이었던 코리아. 다시한번 그 등불 밝히는 날에는 온 세계 빛이 되리라고 말했었습니다. 그 시성이 말한 것처럼 이제 다시한번 그 등불이 우리에게 비춰지는 것은 다른 것을 통한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으로 온 세상을 비취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6·25의 잿더미에서 우리를 건설하사 오늘이 있게 한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는 우리들이 다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다시는 6·25와 같은 민족적 비극을 당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행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나라사랑, 이웃사랑을 충실히 당하는 우리 개인이 다 되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인간으로서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이 간섭하여 주셔서 건져 주시고 오늘날과 같이 잘살게 만들어 주신 것은 기적이요, 상상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살리심은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오니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우리 한국에 품고 계신 뜻을 다 이루어 주옵소서.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지 말게 도와주시옵소서. 한국을 제사장 국가로 삼으셔서 그리스도의 빛을 만방에 비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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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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