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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 젖은 비둘기
2005.05.1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3장 21∼22절


영원히 하늘문을 열어 놓기 위해 십자가 제물되신 예수
오순절날 강림하신 성령 비둘기 예수의 보혈에 젖어
성령이 요구하는 예수 보혈의 대가는 자유, 거룩함 등


 오늘날의 일년은 옛날의 백년에 견줄만큼 지식이 증가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례해서 악과 재앙과 전쟁과 무질서와 폭력도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정부도 국가권력도 지구상의 문제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인간이 이성과 과학을 통하여 지상낙원을 건설할 것이라는 말은 이제 순진하기 짝이 없는 동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엄청난 지구와 인간의 재앙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러한 세계를 만드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세상은 참으로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여섯 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셨기에 여섯 번 연달아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좋은 세상을 지으신 좋은 하나님이 계신데 왜 이 세상은 이렇게 험악하고 나쁘고 흉한 소식이 들끓는 재앙으로 꽉 들어찬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까?

 

 1. 닫혀진 하늘문

 

 그 첫 번째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하늘문이 닫혀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지으시고 동방에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그 낙원에 거하실 때는 하늘문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하늘문이 사통팔방으로 열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곳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매일같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 가운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속에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넘치도록 받으면서 산 것입니다. 정말 천국이요, 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반역했을 때 에덴의 문이 닫히고 인류에게 하늘문이 닫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담의 반역과 닫혀진 에덴문은 정말 비극입니다.
 창세기 3장 23절로 2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아야 할 에덴동산이 닫힌 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접근할 수 없도록 닫아버린 하나님은 인류 위에 하늘문을 닫아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결과로 다가온 것은 대재앙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행하던 아담과 하와가 영적인 죄로 말미암아 죽음으로 하나님과의 대화가 단절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되는데 아담과 하와의 영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대화가 단절된 것입니다. 죽은 사람과는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욕을 해도 칭찬을 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떠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영이 죽었으므로 하나님과 전혀 대화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버린 인간은 혼과 육체의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에 가시와 엉겅퀴가 났습니다. 땅이라는 것은 우리 인류 삶을 전체다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 어느 곳에 가나 가시와 엉겅퀴가 납니다. 마음에 미움의 가시가 돋아나고 좌절과 절망의 엉겅퀴 밭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가정도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사업과 생활에도 언제나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사람은 찔리고 피투성이가 되고 고통을 당해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사는 저주의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는 병들고 늙으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며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극을 얻게 된 것입니다. 거대한 재앙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늘문이 닫히고 인간이 하늘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결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인간의 삶은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가 시키는 데로 하는 인본주의의 굴레 속에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강화하고 강화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에 혼돈을 가져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꽉 들어차고 안목의 정욕으로 꽉 들어차고 세상의 자랑으로 꽉 들어차 하늘나라에 영광이 도저히 비취지 못하게 방벽을 쌓아 놓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은 오직 인간중심에 서서 인본주의로 살고 물질의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2. 하늘문을 여신 예수님

 

 2천년 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닫혀버린 하늘문을 활짝 여신 것입니다. 하늘문이 닫히면 하나님의 역사가 전혀 일어날 수 없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로 22절에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하늘문을 열어 제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닫혀버린 하늘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렸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예수님은 종교나 철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 모시고 오신 분이요, 하늘문을 열어 제치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향해서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엄청나게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흠뻑 받고 하나님의 큰 기쁨을 받는 아들로서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자식을 기를 때 우리가 정말 사랑하고 정말 기뻐하는 자녀가 있으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극히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은 그의 기뻐하는 아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늘문을 열고 인생문제의 해답으로 성령을 강림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성령은 왜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왔습니까? 비둘기는 순결과 사랑의 상징인 것입니다. 성령이 바로 하늘 문을 열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 땅에 임하신 것입니다. 대재앙을 당하여 절망에 허덕이는 인생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성령비둘기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임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요, 예수님을 위해 하늘문이 열려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이 임하시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그곳에 하늘이 열리고 그곳에 성령이 계시고 그곳에 영생이 있고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은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어놓은 하늘문을 통해서 성령이 오시고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쏟아 부은바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부터 주님은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만물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로 2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으로 이 땅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텅 빈 공허를 생명과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히 채워 놓으셨습니다. 오늘날도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엄청나게 파괴되어 공허와 허무, 혼돈, 흑암 가운데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을 짓기 전에 있던 형상과 똑같이 죄가 인간에게 들어와서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파괴를 인간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텅 빈 가슴속에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으로 채워 넣으신 것입니다. 어느 곳이나 아름다운 생명으로 채워 넣으십니다. 혼돈을 천국질서로 공허하고 혼돈한 곳에 주님은 아름다운 질서로 채워 놓는 것처럼 혼돈한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 것을 가르쳐 주시고 잃어버린 우리 인생을 찾아 주셔서 하나님을 향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흑암이 가져온 깊음의 고통 위에 사랑의 치료 역사를 주님이 베푸신 것처럼 주님은 이 흑암의 가슴속에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고통을 가져오는 곳에 마음으로 육체로 우리의 환경으로 가는 곳마다 치료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는데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들어 주신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참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지으신 인생도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좋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빠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피에 젖은 비둘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강림하신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피에 젖은 비둘기인 것입니다. 그냥 오신 성령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에 젖은 비둘기로서 피의 능력을 가지고서 이제 우리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피로써 우리에게 언약을 맺었습니다. 성령은 언약의 피를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피에 젖은 비둘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처음 하늘문을 여실 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영원히 성령을 부으실 때는 성령은 그냥 오신 성령이 아닙니다. 피에 젖은 성령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갖고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6절로 8절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주고 산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피의 대가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에서 자유와 의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용서와 의를 주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로써 역사하는 피에 젖은 비둘기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와서 사망의 세력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멸하여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와서 마귀와 세상에서 자유와 거룩함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마귀 안에 있고 마귀는 세속으로 인간을 완전히 포로로 잡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과학도 지식도 수양도 도덕도 마귀가 묶어놓은 밧줄을 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피에 젖은 비둘기 성령은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병에서 해방과 건강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 심신을 누르고 우리 생활을 억압에서 온갖 병이 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갖고 와서 우리를 마귀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의로운 태양을 떠오르게 하셔서 성령의 빛을 비춰 우리를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피의 대속을 실행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면 병에서 해방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예수님이 피 흘려서 대속한 대가를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앞에 마귀는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오랜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못산다. 패배자’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 버리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밝고 맑고 환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으로 채워 놓아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의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넷째로, 가시와 엉겅퀴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청산해 버림으로 저주에서 해방과 아브라함의 복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보혈의 능력으로 저주는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긍정적으로 믿고 희망을 가지고 굳건한 믿음 속에 서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쫓아서 우리가 마음에 바라봄의 법칙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으면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고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으로 채워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다섯째로, 성령은 오셔서 우리에게 사망에서 해방되고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제 더 이상 사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을 겁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죽음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까? 인간의 종말이 죽음이요, 죽음 저 건너편에 무엇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모른다는 것은 불안과 절망과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오셔서 우리에게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저 건너편 강 언덕에 아름다운 땅이 있는 것을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늘나라가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다시 살려서 영원한 영생을 얻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아름다운 땅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0절로 11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령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성령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온 피의 젖은 비둘기인 것입니다. 오순절날 강림한 성령은 피에 젖은 비둘기로서 강림하신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값 주고 산 그 보배로운 은혜를 우리에게 실천하는 역사를 베푸는 것이 오늘 성령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을 우리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사람마다 머리 위에 하늘문이 열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내가 곧 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하늘문이 열린 사람이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늘문이 닫힌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위에는 하늘문이 열리고 우리 위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으로 부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은 피에 젖은 성령인 것입니다. 피에 젖은 비둘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우리에게 갖고 와서 우리로 하여금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예수께서 들어오시면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므로 공허와 혼돈과 흑암의 세력, 마귀와 타락의 깊은 심연은 다 사라지고 천국의 영광이 마음속에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지금뿐 아니라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지난 달보다, 내년은 금년보다 영원한 미래는 영원히 아름다워지고 좋아지는 것을 믿고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순절날 우리에게 강림한 성령님은 피에 젖은 비둘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값주고 산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의 생애 속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역사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새로운 창조를 이룰 때 변화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린 하늘문을 향해 아버지께 항상 기도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믿고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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