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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정말 부활하셨는가?
2005.03.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중략)…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 1∼15절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
부활의 진실성은 흔들릴 수 없는 최고 진리
종의 신분에서 ‘왕같은 제사장’으로 회복


 세계 종교사상 그 종교의 창시자가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사 구원의 복음을 완성하셨다는 것은 기독교 이외에는 없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것이 중심내용입니다.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하나를 가지고 있소” 그래서 스탠리 존스 목사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있어서 우리는 정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신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빈 무덤밖에 볼 수 없지 않소?” 이 말에 스탠리 존스는 대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네 이슬람교와 우리 기독교의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기 때문에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 종교사상 그 종교의 창시자가 죽었다가 부활한 예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복음도 구원도 다 헛된 거짓이 되고 맙니다. 때문에 기독교의 원수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조작된 이야기라고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가룟 유다가 죽었다는 주장

 

 이것은 이슬람교도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르단의 초청을 받아서 암만대학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이슬람교 지도자들이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절대로 우리 암만대학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거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그러나 예수님이 동정녀로부터 탄생했다는 것은 말해도 좋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도 물론 좋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승천한 것도 좋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코란경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것은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이 아니라 가룟 유다가 죽은 것을 그렇게 기독교인들이 거짓으로 꾸며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써 죄사함 받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니 그 두 가지 사실은 전하지 마시오” 저를 보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가룟 유다가 죽으셨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예수님같이 위대하신 분이 십자가에서 죽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위대한 인물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나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교부사들은 예수님을 이단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정부에서는 예수님을 위험인물로 지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독립을 주장하던 가룟 유다가 잡혀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과 세상 역사가 기록한데로 유대종교와 로마정권이 결탁하여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입니다.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실신한 가사상태로 돌무덤에 장사되었다는 주장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큰 충격 때문에 기절을 했다가 무덤 안 시원한 곳에 앉혀 놓으니 도로 살아나서 무덤에서 기어 나왔다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물과 피가 흘러 나왔습니다. 만일 기절했다가 무덤에서 기어 나와서 부활했다고 말했다면 사람들이 도로 잡아 죽였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요한복음 19장 32절로 34절에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죄수들은 살아있기 때문에 다리를 꺾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셨기 때문에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심장이 터져서 물과 피가 흘러 넘쳐 나왔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9장 39절로 40절에도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죽으면 세마포를 몰약에다 적셔서 그것을 머리로부터 온몸 전체를 고치처럼  감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도 몰약에 적신 세마포로써 감아 놓으면 숨이 막혀서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덤에서 기절했다가 살아서 나왔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입니다.


 3.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가서 부활의 소문을 퍼뜨렸다는 주장

 

 무덤에 있는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가서 부활했다는 헛된 소문을 퍼뜨렸다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도 감람산에서 다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 재판정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이런 사기 저하된 오합지졸들이 어떻게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훔칠 용기가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치려고 했다면 그 무덤을 지키던 세계 최강의 로마 군인들과 일전을 했을 것이요, 제자들 중 얼마는 잡히거나 로마군인의 창칼에 죽었을 것입니다. 호락호락 무덤을 내놓을 로마 군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로마 군인이 사명을 받고 무덤을 지킬 때 만일 그 무덤을 침탈당하면 군인들이 대신 목숨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쉽게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칠 상황이 아닙니다.
 또 훗날 예수님의 죽은 시체를 숨겨놓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목숨 바쳐 순교하며 지켰겠냐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축 늘어진 예수님의 사체를 훔쳐 나와서 숨겨 놓고 난 다음 “예수님이 살았다” 이것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주장하고 그 주장에 목숨을 바쳐 피로써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러면 거짓말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 피를 흘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결코 그런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 십자가형을 선고했던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황제에게 보냈던 빌라도의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형이 끝난 후 총독청으로 돌아오다가 저는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사렛 예수를 장사지내고 싶다며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청을 허락하면서 동시에 저의 부관 만유스에게 병사 몇 사람을 데리고 가서 매장하는 것을 감독하여 불경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제사장 한 사람이 제게 말하기를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쳐 숨긴 후 그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꾸미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제사장을 친위대장인 마르크스에게 보내어 무덤을 지키기에 충분한 병사들을 데리고 가서 배치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예수의 무덤은 비어있었고 그의 제자들은 각처로 다니며 예수가 생전에 말한 대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파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건보다 더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제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황제께서도 헤롯을 시켜 조사해 보시면 저에게 잘못이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사형선고를 내렸던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황제에게 보고했던 보고서가 바로 이것인 것입니다.
 빌라도 조차도 예수님의 무덤이 빈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황제가 조사를 해보고 빌라도가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편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을 증거 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결 같이 그 증거 때문에 목숨을 버렸습니다. 거짓말을 증거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릴 자는 없습니다. 두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목숨보다 더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에 그들은 아낌없이 복음을 위해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음으로써 증거했습니다.
 초대 교회사에 보면 제자들의 죽음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고, 안드레는 헬라에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엑스자형(X)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베어 죽었고, 빌립은 서아시아 부르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었고, 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면서 유대땅에서 전도하다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에베소에 가서 전도하다가 그곳에서 핍박을 받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지만 기적으로 살아나 다시 밧모섬으로 귀향 보내졌고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받아 기록하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으며,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베임을 받아 죽었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고,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한 후 다시 유대에 돌아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바사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고, 가룟 유다 대신 선출된 제자 맛디아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한 두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전원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 했겠습니까? 여러분은 거짓말을 위해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절대로 거짓말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요, 확실한 것을 그들은 증거한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다는 제자들의 말은 집단최면 현상이라는 주장

 

 집단 히스테리적 최면현상이 40일 동안 동시다발로 일어날 가능성은 결코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이 너무나 그리스도가 부활하기를 사모했기 때문에 그들이 최면술에 걸려서 부활한 것처럼 잘못 보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은 것을 보고 낙심하여 부활할 것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낙심하고 뿔뿔이 흩어진 그들이 간절히 부활을 사모하다가 헛된 것을 보았다고 하는 원수들의 말은 거짓된 야유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후 무덤가에서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에 “예수께서 안식 후 첫 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여제자들이 무덤에서 돌아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일 새벽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네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이 사건은 새벽 주일 일찍이 일어난 사건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정오에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13절로 16절에 제자 중 두명이 예루살렘에서 25리 되는 엠마오로 가면서 일어난 체험인데, 이 일을 이야기하고 문의할 때 예수님이 동행하며 자신에 대한 성경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엠마오에 가는 두 제자들은 예수님이 변장을 하고 그들과 함께 동행을 하시면서 말씀을 하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는데 주막에 들어가서 떡을 뗄 때 축사하시고 제자들의 눈을 띄워주니 예수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주일 낮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부인한 제자에게도 나타나셔서 그 좌절과 절망과 낙심과 후회 속에 있는 그를 다시 격려하고 살려 일으킨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4절에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주일저녁 방에 숨어있던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8절로 43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이 영(靈)인줄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살과 뼈가 있다”라고 말씀하시고는 제자들이 먹다 남은 생선을 받아서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만 부활한 것이 아니라 육신과 함께 온전히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 한 주일 후에 도마와 함께 열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왜냐하면 한주일 전에 도마는 예수님이 나타날 때 없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나타났다니까 비웃었습니다. “참 정신없는 소리하지 말라. 나는 예수님의 손에 내 손가락 넣어보고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고야 믿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한주일이 지나서 도마가 열제자와 함께 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다른 제자와 도마가 같이 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마야 이리 오너라. 네 손을 내어서 내 못자국에 넣어 보아라.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 그리고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꾸중을 들었습니다. 도마는 너무나 놀라고 감탄하고 탄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렇게 고백할 때 예수님이 “본고로 믿느냐? 보지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번째는 갈릴리 호수에 이른 아침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4절로 6절에 “날이 새어 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기록된 것을 보십시오.
 그곳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고기를 먹이시고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세 번 부인했기 때문에 세 번 예수님이 회복을 시켰습니다.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들보다 너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또 잠시후에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너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마지막으로 “베드로야 이 모든 사람보다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부인한 만큼 세 번 베드로로 하여금 입으로 긍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해서 상처 입은 베드로가 다시 회복되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덟 번째 갈릴리 한 산위에서 지상명령을 주님께서 주시면서 나타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6절로 20절에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는 500명의 제자들을 불러 놓아 놓으시고 예수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고친 사람도 오라고 하셨을 것이고 중풍병자로서 나은 사람도 오라고 하셨을 것이고 장님에서 나은 사람도 오라고 하셨을 것이고 혈루병으로 나은 여자도 오라고 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그 많은 사람들 500여 명이 예수님 앞에 모여 섰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6절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라고 했습니다. 바울선생이 복음을 전할 당시에 예수님을 만나본 500여 명 중에 태반이나 살아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한 두사람이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500명이 동시에 보았으니 500명이 동시에 다 최면술에 걸렸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열 번째 주님은 야고보와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7절에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열한 번째는 40일 후 감람산 베다니 근처에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축복하시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승천해 올라가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0절로 51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친히 보았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그들 옆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이 왜 하늘을 처다 보느냐? 하늘로 들리운 이 예수님 네가 본대로 오시리라”고 말한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두 번째로, 스데반이 순교할 때 하나님 우편에 주님이 앉아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끌려 나가서 돌로 얻어맞고 죽을 때 예수님을 보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로 56절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죽기전에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이 서서 스데반의 영혼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열세 번째로 예수님의 교회를 열렬히 대적하던 사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났습니다. 사울은 열렬한 바리새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열렬히 핍박을 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증인으로 지휘를 했습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서 이웃나라 수리아의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와서 투옥하고 죽이려고 살기등등하여 가는데 다메섹이 눈 앞에 보이는 그 근처에 왔을 때 대낮에 갑자기 하늘에서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비취면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거꾸러졌습니다.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놀라운 체험을 하고 그는 열렬한 그리스도의 대적자에서 변화되어 뜨거운 그리스도의 증거자로 변화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절로 5절에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한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과 길버트 웨스트는 무신론의 두 가지 장애물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를 열렬히 대적하던 사도바울의 변화였습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연구가 끝난 후 그들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에 대한 반증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이 죄인임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수밖에 없다”고 열렬한 무신론자가 반증을 할 수 없는 증거 때문에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의 증거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원수들의 어떤 공격도 예수님의 부활의 진실성을 흔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복된 소식이 세계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의 삶도 예수님이 죽으심과 부활이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끝없이 외치는 음성을 우리 마음속에 듣습니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다 청산하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무덤에 들어가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십자가에 고난이 틀림없이 우리를 구원했다는 사실을 확증하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들은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었은즉 그러므로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죄악의 종의 멍에는 꺾어졌습니다. 세속과 마귀의 종의 멍에는 꺾어졌습니다. 질병의 종의 멍에는 꺾어졌습니다. 저주의 종의 멍에는 꺾어졌습니다. 사망과 음부와 지옥의 종의 멍에는 꺾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이를 우리에게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예수를 모시고 있지 않고 살아서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함께 다스리며 이 복음을 전파하고 이 복음을 가르치고 이 복음으로 축복을 주는 제사장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2천년전에 부활하사 오늘 보좌에 앉아 계실 뿐 아니라 부활의 영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고 오늘도 우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의 영광을 체험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종된 자리에 오심으로 모든 종된 멍에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멍에를 다 꺾어버리고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언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악의 멍에를 짊어지지 말고 세상과 마귀의 노예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병도 저주도 죽음도 다 벗어 버리고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자유와 해방과 소망을 갖고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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