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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2005.01.23 / 정홍은 기자

제 목 :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설 교 : 조 용 기 목사
말 씀 : 로마서 8장 33∼39절

<서론>
  어느날 개미가 열심히 먹이를 구하려고 분주히 다니는 것을 보고 밥 한톨을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개미가 자기가 그 밥알을 발견한줄 알고 뛸뜻이 기뻐하며 밥알을 물고 가는데 다른 개미 한 마리가 그 밥알을 빼앗으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래서 개미 두 마리가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펜으로 뒤에 온 개미를 튕겨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개미가 자기 힘으로 이긴 줄 알고 의의양양하게 밥 알을 끌고 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그 개미들의 투쟁을 보고 “싸움은 너희가 싸웠으나 승패는 내가 결정해 주었다. 실상 배후의 힘은 나였다.”고 스스로 말하고 웃었습니다. 인생 40고개를 넘어본 사람은 인간의 삶이 자기의 능력으로만 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한 배후의 힘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 배후의 힘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게 됩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운명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운명을 알아보고 싶어서 손금도 보고 관상도 보고 사주팔자도 보고 혹은 점치는 집을 찾기도 합니다. 그것은 배후에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이 자기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애굽도 아니요, 이스라엘도 아니요, 배후에 보이지 않는 막강한 하나님의 능력이요, 영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서 430년 종살이 하던 애굽땅을 떠나 의기양양하게 나왔지만 얼마 후 홍해앞에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뒷편에는 바로가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 왔습니다. 
  출애굽기 14장 5절로 7절에 “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 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 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굽 군대 앞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애굽에 포로로 잡히든지 홍해에 빠져 죽든지 진퇴양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상황 속에서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애굽기 14장 11절로 12절)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사람도 모르고 이스라엘 백성도 모르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개인이나 나라의 운명은 배후에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결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군대가 많아도 전쟁에 이기는 법이 없고 아무리 잘뛴다고 해서 반드시 일등하는 법이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운명은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좌우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말입니다. 뒤에는 막강한 초 강대국의 대군이 습격을 해오고 앞에는 망망한 대해가 가로막았는데 모세는 운명의 결정은 하나님 손에 있는 것이지 현실적인 상황에 있지 않다고 외치고 있으니 보통사람 볼 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현실적인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이 되시고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역사를 지으신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 되시고 역사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인간의 주인이 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운명은 배후에 계신 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2. 배후의 힘은 기도를 통하여 나타난다

 

  그런데 배후에 계신 위대한 하나님의 그 손을 무엇으로 움직입니까?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하나님의 손은 성도의 기도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왔을 때 아말렉이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오랜 여행에 지치고 영양도 부실하고 군대조직도 없는데 순식간에 아말렉의 잘 무장되고 훈련되고 먹은 군인들이 처들어오니 대항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급해서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한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싸웠으나 백전백패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아말렉 앞에서 죽고 짓밟히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전쟁터를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서 아론과 훌과 함께 손을 들어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전까지 패배에 패배를 거듭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갑자기 일당백, 일당천의 큰 힘이 임하였습니다. 쫓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서서 아말렉을 파죽지세로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피곤해서 팔을 내리고 기도를 그치니까 또다시 아말렉 군대에게 밀리게 되었습니다. 모세게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손을 든다는 것은 기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말렉이나 이스라엘은 대리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말렉은 마귀의 군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배후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 마귀가 아말렉 군대에게 힘을 주어서 이스라엘을 쳐서 이기게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기도를 하면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의 천사들이 와서 이스라엘을 도와주므로 아말렉을 쳐서 물리쳤습니다. 모세의 기도가 전쟁의 승패의 요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아론과 훌의 도움으로 해가 질 때까지 기도하자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이스라엘은 아말렉을 멸하고 위대한 승리를 가져올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것은 기도에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아니하면 배후에 힘은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3. 우리의 발걸음은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1940년 2차대전 당시의 일입니다. 영국군 33만 5천명이 독일군에게 쫓겨서 프랑스의 조그만 어촌 덩커거에 포위되었습니다. 독일 전차와 기갑부대에 포위되고 공중에는 독일의 전투기들이 계속해서 폭탄을 투항하고 기총소사를 하고 바다에는 잠수함 유투보트가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는 영국의 33만 5천명 대군이 그곳에서 몰살되든지 포로로 잡힐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 유럽은 독일에 의해 접령될 상황이었습니다. 홍해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현상입니다.
  그때 영국 수상 처칠은 온 교회와 온 교역자와 성도 심지어 믿지 않는 백성들도 33만 5천명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군인들도 다 기도하고 영국의 국민들은 기도하고 믿는 사람들은 금식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루종일 주님께 외쳤습니다. 영국의 처칠수상 자신도 웨스트민스터성당 성가대 좌석에 가서 앉아 가지고서 하루종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인간으로써 막대른 골목에 처해서 힘으로 능으로 할수 없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러자 크고 비밀한 일이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악천후가 다가와서 거대한 파도가 치고 소낙비가 쏟아져서 모든 독일 전차들이 진흙창에 바퀴가 빠져서 한 대도 구를 수가 없었습니다. 비행기도 뜨지 못했습니다. 독일의 기갑부대도 흙창에 주저앉고 비행기도 뜨지 못하고 파도가 너무 세니까 모든 독일의 잠수함들이 철수를 했습니다. 그렇게 폭풍우가 불더니 순식간에 영국군이 있던 덩커거만이 조용하고 폭풍우가 그쳤습니다. 다른 데는 아직까지도 비바람이 치는데 거기에만 조용했습니다. 영국은 그것을 이용해서 전 상선과 개인보트까지 다 동원해서 33만 5천명을 다 철수시켰습니다. 영국군이 다 철수하자마자 폭풍이 끝이고 날이 맑아지는데 독일군이 보니까 영국사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영국은 본토로 후퇴해서 다시 군대를 재정비하여 몽고메리 원수가 그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진격해서, 이집트에서 유럽대륙을 향해서 진격해 독일을 물리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가 멸망에 처한 영국을 구출하고 전 유럽을 구출한 것이었습니다.
  승패는 배후의 힘에 있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배후에 성령께서 하늘의 천사를 거느리고 와서 싸우면 못 이길 일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있고 총명하고 수단과 방법과 능력이 많다 하더라도 운명의 결정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잠언 16장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경영을 아무리해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계획을 세워도 응답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9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발걸음은 하나님이 움직이신다는 것을 우리가 늘 알아야 됩니다.
  아주 놀라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조선 태종이 모든 정사를 세종대왕에게 넘기고 풍양궁에 살고 있을 때 일입니다. 그는 어느날 우연히 뜰을 거니는데 두 아전이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논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갑이라는 사람이 “부귀와 영달은 모두 임금에게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을은 갑의 의견을 반박을 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 한 계급이 오르거나 벼슬을 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늘이 정하신 것이다. 비록 임금이라도 그것은 어쩔수 없다.”
  그래서 태종이 이말을 듣고 “고약한 놈! 모든 계급이 높아지고 벼슬이 높아지고 행복하게 된 것은 임금이 결정하는 것이지 어떻게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서찰을 적었습니다. 세종대왕에게 “이 서찰을 들고가는 사람에게 한계급 특진을 시켜라!” 그래서 모든 축복은 임금에게서 온다고 말하던 신하를 불러 왕에게 전달하게 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는 신하는 그 편지를 가지고 세종대왕에게 전하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갑자기 복통이 생겨서 도저히 편지를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축복은 하늘로부터 온다고 말하던 친구에게 대신 전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사람은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세종대왕에게 편지를 전하자 세종대왕은 그 편지를 보고 편지를 가져온 신하를 특진시켜 주었습니다. 그 이튿날 태종대왕이 보니까 자기가 계급을 올려줄 사람은 안올라가고 안올려줄 사람이 계급이 올라갔습니다. 깜짝 놀란 태종대왕이 자초지경을 들은 후 그제서야 “임금도 하늘의 뜻을 거스릴수 없구나!”라며 경탄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부와 귀가 모두 하나님께로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계획한다할지라도 걸음을 옮기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옛말에 진인사대천명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도 명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어서고 넘어짐이 하나님 손에 있지 사람의 손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가 그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째 아들인 요셉은 특별히 신앙이 좋았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신앙이 없었는데 요셉만은 신앙이 좋았습니다. 늘 기도하고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교통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셉에게는 특별한 꿈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형들과 추수하러 갔다가 형들의 단이 자기를 둘러싸서 절하는 것도 보았고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를 향해서 절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 일로 인해 형들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음식을 싸주면서 목축을 하는 형들이 안부도 묻고 이 음식을 전달해 주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음식을 들고 가는데 형들이 멀리서 오는 요셉을 보고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형들은 감히 하나님께 도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요셉에게 이미 보여준 것이기 때문에 요셉의 운명은 배후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이 좌우하시지 형들이 좌우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형들은 요셉을 죽이고 그 꿈이 어떻게 되는가 보자하고 요셉을 당장 잡아서 옷을 벗기고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요셉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운명은 하나님이 좌우하십니다. 마침 아라비아 대상이 지나가니까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그들에게 은 20냥에 팔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팔려가는 것도 배후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일할 때에데 요셉의 배후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요셉이 하는것마다 잘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요셉은 인물이 잘나고 준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보고 탐을 냅니다. 매일같이 요셉을 괴롭히며 동침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런데 때가 왔습니다. 요셉이 대청에 할 일이 있어서 늦은 아침에 들어갈 때 종들은 다 밭에 가버리고 없고, 남편은 출근하고 아무도 없으니 부인이 늦잠자고 일어나다가 요셉을 끌어안았습니다. 요셉이 떨치고 나오는데 옷이 부인의 손에 잡혔습니다. 아무도 본사람 없습니다. 부인이 그 다음에는 고함을 칩니다. “요셉이 나를 겁간하고 들어오는 것을 내가 고함치니 옷을 벗어놓고 도망을쳤다”고 고함을 치니 밭에 있는 종들이 다 모여오고 남편이 바로궁에서 뛰어오고 요셉은 묵묵부답입니다.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 보디발의 부인의 손에 자기 옷이 들려 있습니다.
  안 죽을만큼 얻어맞은 요셉은 정치인 수용소인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운명은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역사해서 최악이 최선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시위대뜰에 감방에 들어갔는데 바로의 술장관, 떡장관이 잘못해서 왕의 진노를 사서 그 감방에 들어와서 며칠을 있게 되었는데 요셉이 그들을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루 각각 꿈을 꾸고 꿈해석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꿈대로 요셉이 해석해 주었는데 술장관은 꿈대로 사흘만에 복직되고, 떡장관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복직되는 술장관에게 “당신 나가거든 나를 바로에게 이야기해서 좀 건져 주십시오. 나는 애굽에 내려온 히브리사람으로 아무 죄도 안지었는데 이곳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들어왔으니 나를 건져 주십시오”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술장관은 요셉의 간청을 2년 동안이나 잊고 있었습니다.
  2년이 지난 후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해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술장관이 요셉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바로에게 추천을 하게 됩니다. 바로가 요셉을 데려오게 하매 왕 앞에 선 요셉은 왕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리고 요셉의 해석을 들은 왕은 그의 총명함에 감탄을 하며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돌아볼 때 모든 일이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역사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언 16장 33절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제비를 뽑아도 결과는 하나님이 정하는 겁니다.
  인간의 삶은 항상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내일을 예측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에 둘러쌓여 있고 또다가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우리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배후에서 일하는 하나님에 의한 것을 알게 되면 마음에 평안을 갖고 확신을 갖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최악을 최선으로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가 기도하여 부르짖지 아니하면 그대로 운명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주님께 부르짖어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간섭하므로 우리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사건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최선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도록 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아버지 하나님! 사람의 길이 사람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 손에 있사옵니다.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선택에 있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택에 있사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온 세상이 다 나를 죽이려고 해도 하나님이 안죽이려고 하면 절대 죽지 않습니다. 온 세상이 다 넘어뜨리려고 해도 하나님이 넘어뜨리지 않으려고 작정하시면 아무도 넘어뜨릴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써 값주고 산 주의 백성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이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의 귀가 기울어지고 이 백성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친히 능력의 손으로 인도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 오늘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다 품에 안으시고 강을 건너시고 엎으시고 사막을 건너가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도록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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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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