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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 놓은 전쟁
2003.10.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로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애굽기 3장 7∼10절



사람들은 자기의 미래에 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속는 줄 알면서도 새해가 되면 점을 치고 사주팔자를 봅니다. 우리가 내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안심하고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내일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그 ‘믿음대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내일을 향해 현실을 이기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약속

이스라엘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애굽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출발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가는 도중 수많은 장애물로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3장 7∼10절의 본문 말씀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동안 일어나는 일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들이 애굽을 나와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대 군대가 그들을 잡으려고 달려오고 있고 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일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겠다고 하셨으므로 도중에 홍해가 앞을 막아도 그 문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지식과 믿음이 없어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을 알고 믿었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까지 데리고 가시겠다고 하셨으니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애굽의 군대가 뒤쫓아와도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지식이 없고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모세에게 부르짖어 애굽에 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 내어 죽이려하느냐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14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믿으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불안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를 무사히 건너 광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사흘 길을 걸어도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당황하여 모세에게 마실 물이 없는 것을 불평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다면 조그마한 어려움은 견뎌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임으로 우리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을 이루는 방법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기 때문에 일의 중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와 장애물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5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모든 길에서 이미 해결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미 해결되어 있다는 지식과 믿음,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중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고 손 털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홍해가 가로 막고 있을 때도 하나님께서 바닷물을 갈라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이 건널 수 있게 하셨고,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에도 물을 달게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시편 55편 23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면서 겪게 될 양식의 부족과 물이 없는 것, 건강의 문제 등 산적한 문제의 해답은 이미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인내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자신들이 앞서 해결하겠다고 발버둥치며 원망하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명령을 지키면 그 다음 일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모두 행하십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사사건건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백성들은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잊고 믿음을 포기하고는 좌절하고 절망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7∼29절에는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후에도 원망하고 불평하며 탄식하고 반항을 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멸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있던 일곱 족속과 전쟁하는 것도 이미 이겨 놓은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곳에 당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자면 가나안의 일곱 족속과 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들어가도록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는 이미 이겨 놓은 전쟁입니다. 이미 이겨 놓은 전쟁을 단지 치루는 것인데 그로 인해 왜 불안해하고 당황해합니까?
출애굽기 23장 31절에는 “내가 너의 지경을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하수까지 정하고 그 땅의 거민을 네 손에 붙이리니 네가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낼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 손에 붙여 놓은 것이므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쫓아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명기 1장 30절에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서 싸우셨으므로 우리는 그 뒤에 따라가면서 전리품만 거두면 되는 일인데 무엇이 어렵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고 이를 믿고 평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에 어려움이 다가온다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이 거짓말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렇게 고난에 처하게 했느냐고 원망, 불평, 탄식하면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좋은 날도 있고, 어려운 날도 있고, 비오는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생사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어떠한 일에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알고 믿어야만 합니다.

2. 하나님이 우리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모든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신 후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주께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반드시 이룬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십자가를 바라보며 찬송 부를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이루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의로움과 영광을 허락하시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어 죄의 옷을 벗기시고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히시어 영광을 허락하신 바로 그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셨으니 우리는 단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주께서 이미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디도서 3장 6∼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이루어 놓으셨으므로 믿음으로 거룩함을 구하고 믿음으로 성령충만을 구하면 우리에게 이미 이루어 놓은대로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질병에서 나음을 입었는데 왜 그것을 취하지 못합니까? 주께서 우리를 모든 질병과 저주에서 해방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나는 종종 하나님의 풍성한 식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격에 맞지 않는 하찮은 것만 구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좋은 것으로 식탁에 풍성하게 예비해 놓으셨는데 그곳에 앉은 자녀들은 그 풍성함을 누리지 않고 하찮은 것에 매달려 구하고 있다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부활과 천국도 주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모든 것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죽음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영원히 있을 곳을 예비해 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00여 년 전, 영국의 한 청년이 미국으로 가면 잘 살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갖 고생과 노력 끝에 미국행 배표를 구했습니다. 미국으로 떠나는 날 그는 배를 타면서 닷새 동안 굶을 각오를 했습니다. 표를 구할 돈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배에 올라 그는 삼등 선실로 들어가 다른 손님들과 함께 항해를 하는데 식사시간이 되자 다른 승객들은 모두 식사하러 갔습니다. 어떤 승객이 청년에게 왜 식당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돈이 없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그냥 ‘별로 먹을 생각이 없다’는 말만 하였습니다. 식사시간이 지나고 밤이 되어 다른 승객들은 편안히 쉬는데 이 청년은 배가 고파 잠을 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굶었습니다. 나흘째까지 굶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자 닷새째 배가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은 배가 고프다는 생각으로 식당으로 가서 잔뜩 먹었습니다. 그리고 책임자에게 가서 배가 너무 고파 밥을 먹었지만 식사비를 낼 돈이 없으니 무슨 일이든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간청했습니다. 식당주인은 이상한 눈으로 청년을 보면서 “기선표에 식대가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왜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죄사함과 성령충만, 치료와 축복, 영생복락의 그 모든 것을 포함하여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의 모든 은총을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지 천국에만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께서 이루신 그 모든 일을 이 땅의 삶 가운데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문제는 우리의 이해와 믿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당황하고 절망하며 원망과 불평만 하게 되어 나중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시편 81편 10∼11절에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채워주시려 하는데 우리가 입도 열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고린도전서 10장 10∼11절에서 바울 선생은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나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 그 다음 과정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9∼10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과 에덴동산을 예비하여 놓으시고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에게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신천신지,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천국으로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저주와 죽음은 사라지고 그를 믿는 자에게는 영광과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모른채 아직도 속박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사막을 보고, 고통을 보면서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고 이를 목표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하나님께서 건지실 것이라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도 약속의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아야지, 현실에 내가 처한 환경을 보며 불평하고 원망하면 안됩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죽은 나사로의 무덤가에서 무덤의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시자 마르다는 “오라버니가 죽어서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아야지 현재의 무덤을 바라보면 믿을 수 없습니다.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데 그것을 보고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각,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냄새 맡는 것, 만져지는 것 등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하는 것이지 환경이나 감각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볼 수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으로 예비해 놓으셨다고 믿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그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주님은 예비해 놓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었으면 기도할 때 어찌하든지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고 믿어야만 됩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야고보서 1장 6∼8절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고 구한 기도에 대한 응답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믿어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기도하고 난 뒤,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기도하고 믿었으면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여도 담대하게 시인해야 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도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시인해야 합니다.
잠언 18장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2∼24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을 하되 긍정적으로 잘해야 합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 만큼 믿음의 위대한 인물은 없습니다. 그는 평생에 5만 번 기도해서 5만 번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독일 사람으로 영국 런던에 가서 수천 명의 선교사를 훈련하여 선교지로 보내고, 3000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히며 교육시켰습니다. 그의 기도실에는 ‘야웨 이레’ 즉 “하나님은 예비하신다”라고 크게 써 붙여 놓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고아원의 총무가 목사님께 다음 날 아침 식사가 없다며 당황해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성경책을 들고 기도실로 들어가 ‘야웨 이레’라는 글자 앞에 엎드려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 조지 뮬러 목사님은 식탁을 준비하고 수천 명의 아이들을 식탁에 앉게 했습니다. 그러나 식탁 위에는 물 한 컵 외에는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당신의 자녀 수천 명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양식에 축복하시고 먹고 건강을 가지고 오늘 우리가 행할 일을 다 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모두 “아멘”하고 눈을 떴는데 식탁 위로 막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여느 때보다 더 좋은 음식이 차려져 아이들은 실컷 먹을 수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시내에 있는 일류호텔에서 그날 아침에 큰 컨퍼런스가 있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겨 그만 취소되었습니다. 호텔에서는 수천 명분의 음식을 준비했다가 컨퍼런스가 취소되자 남은 음식을 어떻게 할까 상의하다가 조지 뮬러 목사님의 고아원에 주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호텔에서 컨퍼런스를 위해 준비한 일류식탁이 고아들에게 공급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필요하면 컨퍼런스를 취소시켜서라도 양식을 주십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끝까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믿음으로 담대했습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며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것은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이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른다는 것은 입으로 담대하게 긍정적으로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33절에서 예수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얼마나 단순한 논리입니까? 그러나 얼마나 확실한 논리입니까?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장애물과 위험과 광야의 어려움을 지나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인생이 끝없는 불안이요 고통의 연속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탄식했습니다. 예수님 또한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탄식하셨습니다.
우리 각자는 주께서 택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천국까지 데려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는 주님이 이미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헤아리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천국에 이르도록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십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과정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님이 돌보아 주십니다.
주님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기도 -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것은 인생을 위한 예비하심입니다.
우리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를 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초청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깨닫고 믿어 평안하게 따라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므로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고 어두움과 고통이 다가와도 하나님만 바라보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어떤 상황일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원망과 불평하지 말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으며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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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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