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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굴로”라는 폭풍 (2002.3.10)
2002.07.2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유라굴로”라는 폭풍
 성경말씀: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사도행전 27장 9~26절)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다가 체포되고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되었습니다. 바울은 율리오라는 로마의 백부장이 이끄는 죄수들과 함께 로마로 향하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거슬러 로마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레데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기도 중에 하나님의 묵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백부장 율리오에게 ‘이번에 출항하면 하물도 다 잃고 배에도 타격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에도 큰 해를 받을 것이니 여기에서 겨울을 지나고 떠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중하게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더 기울이면 큰 덫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백부장 율리오에게 권면했으나 백부장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듣고 그레데에서 출항해서 결국 유라굴로라는 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배는 유라굴로의 풍랑에 밀려서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틀째 되던 날 그들이 그렇게 아끼던 하물을 바다에 다 던져 버렸고 사흘째는 배의 기구까지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 해와 달과 별들이 보이지 아니할 정도로 그들은 풍랑에 밀려가게 된 것입니다. 오직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절망 가운데 바울은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않았으면 좋을뻔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안심하라. 나의 속한 바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 그 사자를 내게 보내사 말씀하기를 ‘바울아 내가 반드시 로마에 가서 황제 앞에 서야 되겠고 또 너와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너의 손에 다 주었다’고 말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셔서 생명에는 손상이 없고 배만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 그러므로 안심하라.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대로 반드시 이룰 줄을 믿는다”고 확신에 찬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1. 나의 속한 바
  바울은 무시무시한 유라굴로의 풍랑 속에서 모든 사람이 좌절하고 절망했을 때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나는 내가 속한 곳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바울은 ‘나의 속한 바 나의 섬기는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모두 크고 작은 단체에 속해 있습니다.
  인간에게 소속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간은 소속감을 통하여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소속을 잃어버리면 누군지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속한 곳이 있습니다. 가정, 단체 등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제가 해외선교를 가면 입양아들이 종종 찾아와서 한국에 있는 자기 뿌리를 찾아 달라고 합니다. 그때 제가 “당신들은 이 나라에 와서 여기서 자라서 이 나라 말을 하고 이 나라 문화에 익숙하고 이 나라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왜 당신을 버린 한국에 있는 부모를 찾으려고 합니까? 무엇 때문에 뿌리를 찾으려고 합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우리는 외국에서 자랐지만 우리의 뿌리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누군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끝없는 방황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가서 우리를 낳아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보아야 내가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가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찾기 위해서라도 부모를 찾아야 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직장이나 직업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럴 때 마음이 안전하고 든든합니다. 우리는 국민이라는 소속감이 있어야 됩니다. 탈북 난민이 중국에 와서 한국의 국적을 얻지 못하고 중국 국적도 없이 끝없이 방황하는 슬픈 유랑의 모습들을 신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소속을 잃어버릴 때 삶의 큰 풍랑에 부딪히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가정이 풍비박산될 때 뿌리를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직장을 잃은 후 위기감으로 개인, 가정, 사회에 크나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적 소속감을 상실할 때 버림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상실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처럼 절망적인 인생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리지 않는 영원한 소속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원한 소속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3장 26절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심으로 잃어버린 자에서 찾은 바 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소속감을 가지게 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됨의 소속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절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확실한 소속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천국 시민이 되었다는 소속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시민일 뿐 아니라 천국의 시민입니다. 세상이 풍비박산이 되어도 천국의 시민된 우리들은 요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국에 있을 곳이 있습니다. 사람이 있을 곳을 잃어버릴 때 절망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죽음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있을 곳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죽음조차도 우리의 있을 곳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절로 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 저 편에 있을 곳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합니까?
  이 땅을 사는 동안 어떤 시험과 환난과 폭풍우가 다가와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시편 91편 2절로 6절에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선생은 ‘나는 확실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이 그 풍랑 중에 소속된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나는 소속감이 확실하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 나의 소속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2. 나의 섬기는 하나님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그들은 그 유라굴로의 풍랑에서 그들이 섬기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배에 싣고 오던 재화를 이틀만에 다 바다로 던져 버렸고, 선원들은 배의 기구를 사흘만에 다 던져 버렸습니다. 이제 그들이 이 세상에서 섬기고 의뢰하던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절망에 처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그 풍랑 가운데서도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그 하나님이 나를 돌보신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환난과 고난에서 그들이 믿던 세상에 의해 건짐을 받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어떠한 환난에도 그들을 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삽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헛된 것을 섬기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탐욕을 섬깁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말했는데 탐욕 때문에 이 세상의 헛된 것을 섬기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합니다.
  사람들은 쾌락을 섬깁니다. 디모데후서 3장 4절에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쾌락주의에 빠져서 순간적인 향락으로 인생을 보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쾌락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대부 하워드 휴즈는 영화사, 방송국, 비행기 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소유하고 수많은 헐리우드 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며 평생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 당시 최고 액수인 2조 4천억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는 “Nothing! Nothing!”하고 죽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면서도 임종에 처했을 때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탐욕이나 쾌락은 계절처럼 지나가고 맙니다. 이 세상 모든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탐욕이나 쾌락은 계절처럼 지나가 버리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명예를 찾아 섬기지만 죽으면 그만입니다.
  사람들은 부를 얻기를 원하고 부를 섬깁니다. 부를 얻기 위해서 온갖 죄악을 다 범하고 살인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잠언 23장 5절에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를 추구하는 사람은 허망하게 됩니다.
권력을 섬기는 사람도 삶에 폭풍이 다가오면 모두 잃고 맙니다. 당나라 황제 20명중 6명이 약물 중독으로 죽었습니다. 그들은 권좌를 오래 누리고 싶어서 불로장수에 효험이 있다는 비약을 먹었는데 이 비약에 모두 다 독이 들어서 오히려 더 일찍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 옛말에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라고 하여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을 넘게 가는 권력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욥기 21장 18절에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같이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인생이요,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은 ‘나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당당히 고백했습니다. 세상 탐욕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쾌락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부를 섬기는 것도 아니고 권력을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유라굴로의 풍랑이 다가오면 이런 것은 다 일장춘몽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입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합니다. 왜 주일날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섬깁니까?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하나님을 섬기라. 그 날을 복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은 복의 날인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주를 섬기는 것은 영과 마음과 몸과 생활의 복을 듬뿍 받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와 찬양으로 주일을 지키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과 충성을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고 충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리고 하나님께 몸 드리고 시간 드려 봉사도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로 17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직장도, 직업도, 생활도 하는 것입니다. 세계 1위 기업으로 부상한 미국 최대 할인점 월마트를 창설한 잭 웰치 회장은 1962년 조그마한 할인점에서 시작해서 불과 40년만에 세계 최대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성공 투자를 보면 성경을 읽다가 성경에서 열 가지 성공 비결을 발견하고 그것을 경영의 원칙으로 삼아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습니다. 그는 권력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 직원들을 인생의 동지로 예우했으며, 사업 목표를 돈버는데 두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업을 하겠다는 고차원적인 경영 목표를 세웠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가 세상에서 부귀, 영화, 공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부귀, 영화, 공명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
하나님을 섬기면 풍랑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유라굴로의 풍랑을 만났을 때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좌절과 절망에 처했지만 바울 선생은 그의 속한 바 그의 섬기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를 통해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좌절과 절망 중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다는 것은 생명과 구원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여러분의 생명에는 아무 손상도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나의 섬기는 하나님이 어제 저녁에 사자를 보내서 내게 ‘바울아 네가 로마의 황제 앞에 서야만 하겠고 너와 함께 한 사람들을 네게 주었다’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메시지가 그들에게는 생명의 광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속했고 예수님을 섬기면 이 세상에서 풍랑을 지날 때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풍랑을 당해서 동서남북을 분별할 수가 없고 좌절과 절망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다는 것은 생명의 빛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죄악의 폭풍우를 지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 가운데 죄악이 들끓고 죄악의 폭풍우가 다가와서 우리를 침몰시키려고 할 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용서와 의와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죄가 아무리 우리들을 침몰시키려고 해도 십자가에서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가 죄악의 풍랑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악의 풍랑이 아무리 다가와도 우리는 그 속에서 용서와 의와 영광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풍랑도 헤치고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속과 탐욕의 풍랑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천국과 성령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세속과 탐욕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풍랑 가운데 우리가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면 그 풍랑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속과 탐욕의 풍랑 중에서도 천국과 성령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붙잡고 우리는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신의 치료의 메시지도 십자가를 통해서 받고 있습니다. 질병의 풍랑이 다가와서 우리를 뒤흔들고 우리를 죽이려고 할 때 그 어둡고 캄캄한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려온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짊어 지고 갔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누가복음 9장 2절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질병의 유라굴로인 풍랑 중에 치료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 메시지를 통해서 우리는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의 풍랑 중에서도 축복의 메시지를 붙잡고 있으면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난과 저주 속에서도 축복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의 갈 방향이 뚜렷해지고 용기와 담력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풍랑 중에서도 영생복락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면 사망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고린도전서 15장 55절로 57절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망과 음부가 다가와도 구원의 메시지를 갖고 있으면 능히 풍랑을 이기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그 배에 탔으나 마음으로는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 율리오와 군인들과 승객들은 몸은 자유하였으나 마음은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노예였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격심한 폭풍우가 인생의 껍질을 다 벗겨놓자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섬기는 자의 절대허무와 무력과 절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시간에 우리들은 바울과 같이 유라굴로의 인생 풍랑을 만났을지라도 그곳에서 소속감을 확실히 알고 섬기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면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칼이나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고 나아가 믿음으로 나가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 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유라굴로의 풍랑을 늘 체험합니다. 이 풍랑을 만날 때 소속감이 분명하지 아니하고 섬기는 것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은 좌충우돌하다가 좌절과 절망에 빠져 침몰하고 맙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바울 선생의 신앙고백처럼 우리의 소속한 바가 분명하고 우리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랑 중에 주신 메시지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메시지를 부여잡고 어두움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풍랑을 고요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나타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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