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균 목사의 크리스천 리더십
리더의 인격이 곧 운명이다
  • 온전함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운명론자. 이들은 타고난 인간의 운명은 절대로 바뀔 수 없다고 믿고 있다. 그리스-희랍의 비극문학은 대부분 운명론에 기초하고 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이야기다. 태어나자마자 아비를 죽이는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 났다는 신탁을 듣게 되는 오이디푸스. 출생과 더불어 아비의 명령에 따라 죽음의 문턱으로 내어 몰리지만 극적으로 살아나 이웃 나라의 왕자로 성장한다. 장성한 오이디푸스는 이웃 나라를 침공, 그 나라의 왕을 죽이고 왕비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자신이 죽인 왕이 자기를 나아준 아비였음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스스로 장님이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타고난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운명론자들의 지론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 운명을 팔자로 부르기를 즐겨한다. 그래서 “타고난 팔자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하며 “내 팔자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넋두리를 늘어놓고는 한다. “내 팔자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팔자소관이라며 맥 놓고 있는 사람들, 부르기 좋은 말로 운명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운명과 팔자라는 것,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최근 미 대통령 후보 지명 선거전에서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인격이 운명이다’(원제: Character is Destiny)라는 책을 통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단지 인격을 믿을 뿐이다” 이 말은 미국의 양심이라고 불리우는 리더, 존 맥케인의 삶의 철학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말이다. 존 맥케인은 3대째 미국의 고위관리 가문에서 태어나 개혁파 정치가로서 승승장구하기도 하였으나 베트남전에 참가하여 5년 동안 전쟁 포로로서 온갖 고문을 당하며 심한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통해 ‘운명처럼’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어야 옳았던 ‘인격의 가치’를 깨우치게 되었다고 한다. 리더의 인격이 곧 운명이다. 리더는 운명론자가 되어서는 안되며 인격론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운명론과 인격론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운명은 타고나고 주어지는 선천적인 것이라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바꿀 수 없다고 하지만 인격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덜 되었다”는 말은 사실 “그 사람의 인격이 덜 되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리더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도 인간이 덜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없다. 사람을 크게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무엇이든지 타고 난 사람이 있고, 무엇이든지 배워서 머리에 든 사람이 있고 무엇을 하든지 된 사람이 있다. 이 중에 리더가 가장 먼저 되어야 할 사람은 ‘된 사람’이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인격적인 사람을 만나기 원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인격적인 사람을 만났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인격을 말하면서도 인격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크리스천 리더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3:3∼4) ‘인자’와 ‘진리’는 각각 ‘사랑’과 ‘충성’을 의미한다. 결국 크리스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과 충성으로 충만한 인격을 갖추어야 하다. 리더로서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온전한 인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온전히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끝> 이장균 목사(대학청년국장)
  • 2008.03.14

    리더가 갖출 최고 덕목은 도덕성
  • 하나님 앞에서는 늘 신실해야 진리의 카드라는 것이 있다. 이 카드의 앞면에는 “진리는 뒤에 적혀 있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진리의 카드 뒷면에 적혀 있는 글은 “앞면에 적혀 있는 글은 거짓이다”라는 말이다. 우리 시대의 진리는 무엇이고 또한 우리 시대의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진리와 진실이 구분되지 않는 혼돈의 시대다. 저마다 진리와 진실을 외치고 있지만 무엇이 참다운 진리와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다보니 도덕성 훼손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즉, ‘모럴해저드’(moral hazard) 현상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적인 석학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에서 “21세기 기업가나 정치가는 성직자에 준하는 고도의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안 되며, 경영자의 도덕성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같은 진단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회계부정으로 파산한 장거리통신회사 월드컴과 복식 회계장부의 발각으로 한 순간에 몰락한 엔론사 사태를 겪으면서 올바른 지적임이 밝혀졌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나 장치는 무엇일까? 최고 경영자 스스로가 자신을 통제하는 길 밖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산업화 시대의 리더십은 제왕적 리더십이었다. 이 시대는 리더가 모든 정보를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시대는 정보화 시대로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시대다. 따라서 리더십의 유형도 변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를 반영하듯이 최근 발간되는 리더십 관련 도서를 살펴보면 ‘진실성’(integrity)에 관한 부분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실이라는 것은 감추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밝혀지며 또한 빛을 발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진실함을 가지고 있는 리더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적,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진리와 진실이 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함은 가변적인 것이 아니다. 쉽게 변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함이 어려운가? 「나는 내가 배워야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 제목과 같이 진실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사람을 찾기도 어려우며 진실한 리더를 만나기도 어렵다. 더욱 어려운 것은 진실한 사람 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요셉은 진실한 사람이었다. 진실했던 요셉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고난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진실함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요셉은 자신의 진실함과 신실함 때문에 고난으로부터 벗어난다. 크리스천 리더는 요셉의 진실함과 신실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리더는 앞서 가는 사람이며 또한 앞장서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리더가 부도덕하다면 누가 따를 수 있겠는가? 사울은 다윗 앞에서 진실함을 잃어버렸다. 다윗 앞에서 진실함을 잊어 버렸다는 이야기는 하나님 앞에 신실함을 잊어 버렸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 결과 사울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다윗은 도덕적으로 완전에 이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부도덕한 죄를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철저하게 회개한다.회개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신실함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크리스천 리더는 진실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함으로 진실함을 유지해야 한다. 크리스천 리더는 하나님 앞에서는 늘 신실함으로 또한 사람들 앞에서는 늘 진실함으로 서 있어야 하는 존재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진실함을 돌아보는 리더를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시고 또한 그러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이장균 목사(청년국장)
  • 2008.02.12

    크리스천 리더는 돕는 자이다
  • 성령의 인도함 받아 남을 성장 시킬줄 알아야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농업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글 창제 이전에 ‘농사직설’이라는 책을 만들었으나 농민들은 한문으로 기록된 책을 읽을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농민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만들기 위해 창제된 것이 한글이라는 것이다. 매우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집현전의 학자들은 이 일에 반대했다. 백성들의 어려움을 도울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농민들을 돕기 위하여 한글을 창제했고 이 일로 세종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는 왕이 되었다. ‘바람의 딸’이라는 불리는 한비야 씨는 한국인으로서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돈을 달라”고 생떼를 쓴다고 한다. 그 말을 꺼내기란 얼굴이 뜨거워지고 하기 어렵지만 재난을 당하여 긴급하게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거리낌 없이 그 말을 꺼내게 된다고 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서다. 한비야 씨는 정치인도 군인도 기업의 CEO도 아니다. 따르는 사람도 없어 리더라는 말을 사용하기에도 적절치 못하다. 그러나 그는 우리 시대의 탁월한 리더 중 한 사람이다. 조건 없이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다. 남을 돕는다는 것이 쉬운 일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국가를 리드해 나갈 리더급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나라의 어려움을 도울 줄 아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미국이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당시, 미국은 전 세계 최고의 원조국가였다. 현재 중국은 아프리카에 막대한 원조를 통하여 다른 나라들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리더를 남을 돕는 자라고 정의하기에는 무언가 어색하다. 이제껏 리더란 지시하고 감독하고 사람을 관리, 통제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스천 리더는 남을 돕는 자이다. 예수님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20:26). 이와 관련하여 최근 크리스천 리더십의 새로운 유형으로 ‘코칭 리더십’(Coaching Leadership)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코칭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잠재력을 계발하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이 인격적으로 자라나고 또한 하나님 나라에 공헌하도록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코칭 리더십은 성령의 리더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수님은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여기서 보혜사 성령은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도우신다. 보혜사라는 말 자체가 돕는 자(Helper), 변호하는 자(Advocate), 상담자(Counselor)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크리스천 리더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남을 돕는 자, 다른 사람을 변호해 주는 자,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듣고 상담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크리스천 리더의 도움은 구제와 원조의 차원을 넘어 도움을 받는 사람이 성장하게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많다. 그러나 도움을 베푸는 손길은 매우 부족하다. 현대 사회는 남을 돕고 베풀 줄 아는 리더를 원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남을 돕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남을 돕는 리더야말로 진정한 윈-윈(Win-Win)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가 될 수 있다. 크리스천 리더는 남을 돕는 것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펼쳐 나갈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크리스천 리더십이다. 따라서 크리스천 리더는 남을 돕는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남을 돕는 것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장균 목사(청년국장)
  • 2008.01.18

    리더는 섬기는 자이다
  • 섬김의 본 되신 예수 따라 이웃 사랑해야 ‘가라’고 하면 헤드십(headship)이고, ‘가자’고 하면 리더십(readership)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급격하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전통적 리더십 유형이 도전받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가장 잘 부합되는 최적의 리더십 유형은 무엇일까? 최근 리더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리더십은 1977년 AT&T에서 경영관련 연구를 담당했던 그린리프(R. Greenleaf)가 저술한 『Servant Leadership』에서 처음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96년 미국의 한 출판사에 의하여 『On Becoming a Servant-Leader』로 새롭게 출간되면서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리더십 유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섬김의 리더십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인물로는 일본의 전국시대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1534∼1582)의 어린 장수였던 모리 란마루를 들 수 있다. 노부나가가 신하들과 있는 자리에 지방에서 귤이 올라왔다는 전갈이 왔다. 모리가 쟁반 가득 귤을 담아 오자 그것을 보고 있던 노부나가는 “조심해라, 떨어뜨릴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쟁반에서 귤이 굴러 떨어졌다. 사람들은 모리의 실수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모리의 실수가 아니었다. 모리는 다른 신하들 앞에서 귤을 아무도 모르게 떨어뜨림으로 주군인 노부나가의 지적이 얼마나 옳았나를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하루는 노부나가가 신하들이 모인 방에 들어 가다가 “내가 바깥문을 안 닫고 들어온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모리가 밖에 나가보니 문은 잘 닫혀 있었다. 그래도 그는 그냥 들어오지 않고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가 ‘쿵’ 소리가 나도록 다시 닫았다. 당시 모리는 10대였지만 이런 모리를 노부나가는 봉록 5만석이 어엿한 영주로 대접했다. 노부나가는 1582년 부하가 반란을 일으키자 자결하였다. 그때 함께 죽은 사람은 열 일곱 살의 모리 란마루였다. 모든 리더는 중간 리더일 뿐이다. 최고의 리더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크리스천의 리더십은 근본적으로 섬김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리더가 되는 것보다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의 리더들은 섬기려하지 않는다.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었다(막 9:35). 예수님은 말씀뿐 아니라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것으로써 섬김의 모범을 친히 보여주셨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말씀도 결국은 이웃을 섬겨야한다는 말씀과 다르지 않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크리스천 리더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간 리더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위의 영적 권위에 순복함은 물론 중간 리더로서의 영향력을 잘 발휘해야 한다. 섬김은 끝이 없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에게 있어 섬김은 매일 같이 반복되는 훈련이요 사명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 모두 리더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리더가 되어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하지는 않는다. 세상의 리더십은 섬김을 말하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리더가 되어도 그 자리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섬길 것을 말씀하셨다. 크리스천은 다른 사람을 섬길 때, 더 큰 리더로 성장할 수가 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섬김의 리더십 원칙이다. 섬기는 자가 리더가 되고 복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리더로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나라와 민족을 섬기는 크리스천 리더가 되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장균 목사(청년국장)
  • 2007.12.20

    리더에게는 책임감이 뒤따른다
  • 하나님은 자녀들을 리더로 세워 일에 최선 다하는 정직성이 요구 완전군장한 소대병력이 전투능력 측정을 위한 10킬로미터 구보를 준비한다. 측정을 앞두고 구보 훈련을 하지만 막 소대로 전입해 들어온 신병은 낙오를 거듭한다. 낙오하지 않는 방법을 찾던 소대장, 측정 당일 소대 병력 인솔자로 신병을 세운다. 소대병력을 이끌고 갈 리더의 역할을 신병에게 맡긴 것이다. 당일, 측정에서 신병은 낙오하지 않는다. 구령을 붙여야하는 리더로서의 책임감이 그를 낙오하지 않게 했던 것이다. 1982년 미국 시카고, 존슨앤존스사(J&J)에서 생산, 판매하는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에 누군가 독극물을 주입하여 일곱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제임스 버크 회장은 주저 없이 "‘모든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 즉시 시카고뿐 아니라 미국 50개 주에서 시판 중이던 모든 타이레놀을 회수한다. 총회수비용으로 1억 달러, 시장 점유율과 매출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기업 활동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기까지는 3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이 회사는 망하지 않았다. 그 대신 CEO의 책임감과 회사의 정직성을 확인한 소비자들에 의하여 믿을 수 있는 회사로 인정받게 됐다. 그 결과 이 회사는 1999년과 2000년 연속으로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하는 미국의 존경받는 기업 1위에 오른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위기 속에서도 이 회사가 세계굴지의 보건 의료품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을 책임감에서 찾는다. 이 회사의 책임의식은 1948년에 내 놓은 ‘우리의 신조’에 잘 들어나 있다. 사람들은 이 신조를 미국 최초의 기업 사명 선언서라고 부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의사, 간호사, 환자, 환자 식구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우리는 전 세계 각지에서 우리와 같이 일을 하는 모든 남녀 직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우리가 생활하고 근무하고 있는 지역사회는 물론 세계 공동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넷째, 우리는 회사의 주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감은 리더가 가져야 하는 기본 덕목 중의 하나다. 리더가 왜 리더인지 아는가.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리더다. 리더의 자리는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다. 책임을 지기 싫으면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된다.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에서 책임감은 분리될 수 없다. 정치,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의 특징은 리더들에게서 책임감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문제가 생겨도 책임지는 리더가 없다면 그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큰 리더이든, 작은 리더이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더가 책임을 지지 않거나 희생양을 찾는다면 그 조직과 리더는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리더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모든 크리스천들은 책임감을 상실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는 것에 있다. 회개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릴 뿐이다. 이런 크리스천은 잘못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탓이요, 그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의 탓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 리더가 다른 사람의 탓만 하고 있으면 리더가 아니다. 잘못이 있으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철저히 회개하고 자기 책임을 다할 것을 새롭게 다짐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쓰시는 리더가 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장균 목사(미국 하와이 오아후순복음교회 담임)
  • 2007.11.15

    리더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
  • 최악 상황에서 최고의 결과 끌어낸 섀클턴 ‘윈윈 전략’ 위해선 리더의 행동이 큰 역할 『인듀어런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1999년 퍼블리셔 위클리에 의해 1999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책이기도 하다. 부제가 흥미롭다.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인듀어런스는 1914년 남극대륙 횡단을 위하여 영국에서 출발한 배 이름이다. 섀클턴은 그 배의 선장 이름. 탑승한 대원의 인원은 27명. 남극대륙횡단이라는 벅찬 꿈을 안고 힘차게 출발했던 인듀어런스 호. 그러나 남극대륙에 도착하기도 전에 남극해를 떠도는 얼음, 부빙에 갇혀 난파하고 만다. 이때부터 생존을 위한 27명의 몸부림이 장장 18개월, 634일간에 걸쳐 펼쳐진다. 선장이었던 섀클턴의 임무는 남극대륙 횡단에서 27명의 대원 모두를 구해야 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나 부빙에 갇힌 남극해에서 선원 모두가 살아 돌아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상황마저 최악이었다. 구조를 기다리기는커녕 구조를 요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 게다가 살인적인 추위와 그로 인한 선원들의 부상 그리고 식량의 부족은 상황을 더욱 더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섀클턴은 어떠한 환경에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대원들을 이끌고 당시에는 무인도였던 앨리펀트 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5명의 대원을 데리고 남아 있는 다른 대원들의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하여 떠난다. 그리고 조난 당한지 634일 만에 모든 대원을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구출 당시 한 대원은 이렇게 고백한다.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더라도 섀클턴이 리더라면 두렵지 않다” 1999년 영국 BBC는 지난 1000년 동안의 최고의 탐험가 10인을 선정하면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제임스 쿡, 닐 암스트롱, 마르코 폴로에 이어 섀클턴의 이름을 다섯 번째로 올린다. 그는 비록 남극대륙 횡단이라는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그 실패를 통하여 탐험역사에 길이 남을 리더의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섀클턴은 훗날 이렇게 고백했다. “길고도 험했던 여정의 마지막 단계인 얼음산을 넘을 때, 우리 일행은 분명 3명인데 난 4명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생각돼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그 힘들고 어려웠던 여행 내내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셨음을 난 믿는다” 리더가 가져할 할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인내(Endurance)다. 인내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다. 따라서 인내가 없는 리더는 리더로의 자격을 상실한 존재일 뿐이다. 인내심이 없이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조급하게 결정하고 행동하면 성공에 도달할 수 없다. 위대한 믿음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인내였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받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기 때문이다(히 6: 13∼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되어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빠르게 변화되어가는 시대의 특징은 오직 결과와 실적만을 중요시한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단 시간 내에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하여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결정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리더는 인내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인내는 어려운 시기에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참지 말라고 한다. 참는 것은 손해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참는 자, 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약 1:12). 큰 리더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크게 행동하는 리더는 인내 후에 행동한다. 인내할 것인가? 조급할 것인가? 리더는 항상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장균 목사(미국 하와이 오하우순복음교회)
  • 2007.10.18

    리더는 감독이다
  • 영적리더십 공백 성령 통해 메워야 성품, 능력, 행동력 골고루 갖춰야 이등병이 사단장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단장이 이등병의 일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전쟁터에서 이등병은 명령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싸우면 된다. 사단장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전선에 걸쳐 작전을 지휘하고 전투 명령의 권한을 행사한다. 사단장이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할지라도 이등병의 역할까지 감당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대기업 총수가 하루 종일 산업현장에서 제품 만드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 기업은 존속할 수 없다. 리더는 감독(Direction)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같은 리더십을 ‘오케스트라 리더십’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즘은 확실히 ‘주연이 누구인가’하는 관심만큼이나 ‘누가 감독인가’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02년 한국의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히딩크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가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표팀의 감독으로 누가 선임되느냐하는 것은 주요관심사 중의 하나다. 감독에 따라 대표팀의 경기력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말씀을 통하여 인간에게 감독자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스스로 감독의 기능을 벗어 던지고 노동의 기능을 떠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얼굴에 땀을 흘러야 먹을 것을 먹으려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 19). 따라서 모든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주신 감독으로서의 리더의 기능과 역할을 회복하고 세상에서 나가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미 육군 리더십’교본에 수록된 미 육군의 성공적인 리더십 철학과 원칙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최고의 리더십』이라는 책에 따르면, 리더가 가져야 할 원칙으로서 ‘성품’(Be)과 ‘능력’(Know)과 ‘행동력’(Do)을 꼽고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은 감독으로서의 리더가 가져야할 대표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먼저 그에 맞는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 리더의 인격과 성품은 조직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감독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야에 대한 철저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국가 공공기관의 기관장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하여 종종 접하고는 한다. 소위 말하는 낙하산 인사의 부작용은 감독자로서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감독자로서의 리더는 탁상공론에 의존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행동하는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의 감독으로서의 리더십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것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으로부터 온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 이후에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영적 리더십의 공백이라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영적 리더십의 공백 위기를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극복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보혜사 성령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요 14:26). 따라서 감독자로의 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일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적 리더십을 능력있게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장균 목사(하와이 오하우순복음교회 담임)
  • 2007.09.14

    행동하는 리더가 필요하다
  • 예수님은 리더십의 최고 모델 끊임없는 자기 계발 노력 필요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에서 전쟁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영국 왕실의 앤드류 왕자가 공군 조종사로 참전하여 세계 언론의 집중적인 취재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왜 그랬을까? 왕실의 황태자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왕실을 나와 직접 전투기를 몰고 전쟁에 참가하였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중요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말이 있다. 그것은 ‘나를 따르라’(Follow me)는 말이다. 리더가 되기 위한 외적인 전제조건 중의 하나는 일단 따르는 무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리더를 따르는 것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무리를 앞장서 이끄는 리더를 따른다. 이것은 동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라는 말 자체가 앞에서 끌어가는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리를 앞장서서 이끄는 무리가 참된 리더다. 행동하지 않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다. 책상에 앉아 지시만 하는 리더가 있다. 그러나 반대로 현장의 중심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가 있다. 어떤 리더를 따르겠는가? 시가 총액(약 4130억 달러) 세계 2위, 연간 매출액 약 1600억 달러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의 재벌 제너럴일렉트릭(GE)을 이끌어 가는 제프리 일렉트릭 회장은 최근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바 있다. “리더는 ‘15분 안에 6만 피트(약 18km), 상공에서 지면까지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의 의미는 리더는 높은 곳에서 기업의 활동과 진행방향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언제든지 현장으로 내려와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에서 제작된 전쟁 영화를 보면 예외 없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전쟁터에 나가는 주인공이나 사람들이 대부분 상류층의 리더라는 점이다. 그들은 위기가 닥쳐오면 위기를 피하여 도망치지 않는다. 직접 무기를 들고 나가 싸운다. 행동하는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위기와 위험의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리더는 리더로서의 자격을 이미 상실한 사람들이다. 그런 리더를 따르는 사람은 없다. 만약 그러한 리더와 그러한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참으로 불행한 리더요, 불행한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행동하는 리더십의 최고 역할모델(role model)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을 부르실 때, 예수님은 분명하고 명확하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자들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현장 속에서 기적과 이사를 나타내 보이셨다. 그만큼 예수님의 사역은 철저히 현장 중심의 사역이셨다. 그러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율법에 정통하였던 유대인들은 권세있는 새 교훈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막 1: 27).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모든 리더의 능력과 권위는 현장에서부터 나온다. 리더의 능력과 권위는 말에서 나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활동을 통하여 나오는 것이다. 역사적인 위대한 리더들은 모두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행동하는 리더들이었다.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벌였던 간디가 그러했으며, 극심한 인종차별의 현장에서도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주옥같은 연설을 남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러했으며, 인종과 종교를 떠나 인도의 캘커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고아들을 돌보았던 테레사 수녀가 그러했다. 무엇보다도 이 시대의 영적인 스승인 조용기 목사는 지금까지 지구를 115바퀴나 돌며 72개국 250개 도시에서 300회 이상 부흥집회를 인도하셨다. 리더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행동하는 리더로서의 자질을 키우고 계발하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장균 목사(하와이 오하우순복음교회 담임)
  • 2007.08.17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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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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