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귀삼 교수의 선교이야기
[조귀삼교수의 선교이야기] 교회의 존립이유는 ‘선교’
  • 소명의식 가진 일꾼 계속 육성해야 성도 동참할 때 ‘오병이어 기적’ 일어나 한국교회는 지금 선교로 충만되어 있다. 1만2000여 명의 한국 선교사들이 세계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또한 우리교회도 600여 명의 선교사들이 활발하게 구원의 복음과 성령 충만의 복음을 나누어 주고 있다. 이러한 교회의 선교는 한국교회와 우리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아야 하겠다.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신앙 고백 안에서 뿌리를 찾는다. 예수님과 베드로와의 흥미있는 대화가 마태복음 16장 13절부터 나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하신다. 베드로 사도는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한다. 베드로의 이 고백으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는 시작된다. 그러나 교회가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기회는 오순절 사건이었다. 120여 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에 성령 강림과 아울러 이들이 초대교회의 핵심 구성원들이 되었다. 그리고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는 강력한 조직과 인적 물적 자원이 있다. 특히 세계최대의 교세를 가진 우리교회는 선교를 위한 엄청난 달란트들이 축적되어 있다. 따라서 필자는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존립한다”는 논지의 글을 통해서 한국교회와 우리교회의 선교 동력화를 위한 몇가지 제언들을 열거하고자 한다. 첫째, 교회의 성도들은 세계선교의 동력화에 앞장서야 하겠다. 선교를 위한 동력화의 이유는 한 방울의 물방울이 대하를 이루는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방울의 물은 미약한 것이다. 그러나 한 방울의 물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룰 때에는 엄청난 자원이 되어 인간의 삶을 풍요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본다. 세계선교를 위해서 하루에 한 번의 기도, 한 번의 관심 그리고 지폐 한 장의 헌금이 모아질 때에 세계복음화의 성업을 우리 손으로 이루어 나갈 줄 믿는다. 필자가 미국 뉴욕에서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선교를 연구할 때에 몇몇 교회들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회 입구에는 선교사님들을 위한 1불(한화 1000원)헌금을 요청하는 헌금함을 볼 수 있었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그것이 모여들었을 때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는 선교사역이 되어질 수 있음을 알았다. 둘째, 소명이 있는 선교사들을 육성해야 하겠다. 이를 위해서 교회와 연관된 대학의 사역자들을 돕고 육성시켜야 하겠다. 우리교회는 한세대학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한세대학교의 젊은 신학도들은 당당하게 선교현장으로 달려가는 훈련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오지에서부터 세계적 분쟁지역인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동남아의 쓰나미 현장으로 달려가기까지 학생들은 선교의 영으로 충만하다. 이들의 선교적 소명을 뒷받침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셋째, 전인적인 차원에서의 선교를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겠다. 그동안 우리는 타문화권에서의 사역만이 선교라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선교를 해석해 보면 복음이 없는 지구촌 모두는 선교지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선교의 최우선 순위가 복음이라면 복음을 뒷받침하는 작업은 사회적 소외지역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세계적인 추세가 이제는 복합적인 선교를 요구하고 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며,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집단이 곧 교회이다. 따라서 교회는 지속적인 선교를 감당함으로서만이 이 땅에서의 존재가치가 있게 된다. 조귀삼 교수(한세대)
  • 2005.06.01

    [조귀삼 교수의 선교이야기] 성령 충만과 선교
  • 선교와 성령 충만은 불가분의 관계 십자가 지고 성령과 동행하는 사역 선교와 성령 충만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선교의 현장 속에는 항상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요 14:1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자신에 대해서 증거하실 것(요 15:26)이라고 하셨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의하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되어져 있다. 즉 초대교회의 설립과 함께 선교의 길목에서 강조되어진 것이 성령 충만의 명령이다. 성령님은 죄인인 인간 속에 들어오셔서 참다운 삶의 길을 인도해 주시고 구주 되시는 주님을 증거하도록 힘을 주신다. 오순절 사건과 함께 성령이 충만케 임했다. 120여 명 성도가 다 방언을 말하고, 선교의 영으로 충만케 되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은 계집 종 앞에서 예수를 부인해 버렸던 어제까지의 나약한 제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담대하게 나아갔다. 그리고 나무십자가 사형 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던 예수가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대하였던 메시아(왕)라고 선포하였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의 눈에는 세상의 권세와 힘 그리고 안락한 삶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오직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만을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였다. 성령 충만한 선교의 삶 속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 희생정신의 삶이 발현된다. 자기희생 없이 선교는 될 수 없다. 초대교회로부터 주님의 복음이 증거 되어지는 선교의 현장에서는 희생정신이 있었다. 둘째는 담대함이었다. 베드로 사도의 담대함이 산헤드린 공의회를 통해서 핍박해오는 생명의 위험을 돌파하게 만들었다. 셋째는 사랑이 나타난다. 주님도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대속의 고통을 십자가 위해서 참으셨다. 성령 충만한 사랑은 대가없이 베푸는 것이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사랑의 묘약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성경은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 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 얼마나 위대한 삶의 모습인가. 넷째는 열심이 있는 선교의 삶이 나타난다. 게으르고 나태한 삶은 선교적이라고 볼 수 없다. 자기 책임을 묵묵히 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삶이야말로 열심있는 선교사의 삶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확신 있는 삶이다. 복음의 확신이 없을 때에 지속적인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없다. 그리고 선교를 통한 면류관도 기대하기 어렵다. 여의도순복음교회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성령 충만한 교회다. 미국의 오순절운동과 함께 도출된 이 복음은 성경 속에 잠재되어 있는 다이나마이트와 같이 폭발하는 능력을 현실화하였다. 1928년 서양선교사인 렘시 선교사에 의해서 이 복음이 한국 땅에 뿌려졌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복음은 영산 조용기 목사를 통해서 한국의 토양 속에서 꽃을 피웠다. 오늘날에는 세계선교의 현장에서 이 복음이 열매를 맺혀 가고 있다. 세계선교가 더욱더 활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더욱더 성령 충만해야 하겠다. 그리고 그 복음을 가지고 앞을 향해서 전진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불신과 불의로 가득찬 세상, 가난과 절망 그리고 죽음의 벽 앞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가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의 메시지는 역시 성령 충만의 복음이기 때문이다. (한세대)
  • 2005.04.27

    [조귀삼 교수의 선교이야기] 평신도 선교의 극대화
  • 진젠도르프,루터와 윌리엄 케리의 가교 역할 ‘모라비안’ 선교 … 평신도·자급자족·순종 우리나라 경우 과학자 중심 FM&C 선교활발 루터의 종교개혁과 현대선교의 아버지 윌리엄 케리의 가교를 놓은 사람이 있다. 바로 진젠도르프 백작이다. 진젠도르프는 1700년 부유한 집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이도 아버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마저 재혼을 해버린 관계로 할머니와 숙모의 품속에서 성장하였다. 비록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 성장하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신앙은 진젠도르프로 하여금 경건신앙 속에서 흠 없이 자라게 하였다. 루터교의 경건주의자인 프랑케로부터 커다란 영적 감화를 받은 그는 기도 가운데 “겨자씨 선교회”를 만들어 세계의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봉사할 것을 서약하기도 하였다. 진젠도르프는 1719년 유럽을 여행하고 있을 때에 한 미술품 전시회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영감을 얻게 되었다. 마치 주님으로부터 “이 모든 고통은 다 너를 위하여 겪는다”라는 음성을 듣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부터 백작으로서 호화롭게 사는 삶 보다는 십자가의 고통을 체험하면서 살기로 작정을 하였다. 1722년에 종교전쟁으로 피해온 일단의 그룹인 “모라비안”들을 자신의 영지로 받아드리면서 “모라비안 형제단운동”을 일으켰다. 경건 신앙이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실천하였다. 더 나아가서 그와 같은 경건신앙은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다. 모라비안 공동체는 훗날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의 동력이 되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크나큰 선교의 줄기가 되었다. 모라비안 선교단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기 위해서 차거운 얼음 땅인 그린랜드에서부터 당시에 인디언들의 땅이었던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의 주요지역에 선교기지를 만들고 헌신적인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순교를 당하고, 파송된 지역에서 뼈를 묻으면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해 나갔다. 그들의 순결한 신앙은 그린랜드에서는 얼음을 녹이고, 사막에서는 폭풍을 잔잔케 만들었다. 모라비안 선교단의 선교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먼저는 평신도들의 선교였다. 선교사의 대부분은 전문적으로 신학을 연구한 사람들이 아니라 기술자들이었다. 따라서 선교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면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라브라도에서는 상업을 통해서 얻어진 돈으로 에스키모인들의 생필품을 무료로 공급하면서 선교하였고, 남아메리카의 북단에 있는 수리남에서는 양복점, 시계공장, 제빵 공장 같은 사업을 하면서 선교를 하였다. 두 번째는 자급자족을 최우선시하는 선교를 감당했다. 그들 형제단들은 60명의 교인이 한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즉 생활의 전부가 선교에 있었다. 비록 이러한 적극적인 후원에도 사역비와 생활비는 감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모라비안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교사로서, 의사로서 일을 하면서 자급자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세 번째는 철저한 순종이었다. 선교 본부의 지시를 철저하게 따랐다. 예로 모라비안 선교사들에게 독신사역을 권장하였지만 결혼을 통해서 선교사를 파송할 때에는 제비뽑기를 통해서 결혼을 시켜서 선교지로 파송하였다. 비록 제비에 뽑혀서 열악한 파송지로 떠나가게 되었지만 그들 누구도 불평하거나 항거하지 않았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평신도 파송선교운동이 보편화 되었다. 대학에서는 선교자원을 위한 동기부여의 일환으로 각종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몇몇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하고 있는 FM&C 같은 선교단체는 컴퓨터 과학을 통해서 선교현지에 대학을 세우고 기독교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평신도 선교운동이 극대화 되어야 한다. 진젠도르프의 모라비안들처럼 순수한 복음의 열정을 안고 주님이 명령하신 곳으로 나아가야 겠다.
  • 2005.04.02

    [조귀삼 교수의 신학이야기] 현대선교의 아버지 ‘케리’가 주는 교훈
  • 사람마다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성경적 법칙이다.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활용하여 잘살았다고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 윌리엄 케리야말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윌리엄 케리(1761∼1834)를 일컬어 현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가 인도의 선교지로 떠나기 전에 설교한 내용인 “하나님께로부터 위대한 일을 시도하십시오”라는 말은 지금도 많은 설교자들에 의해서 인용되어지고 있다. 케리가 외친 이 말은 비록 200여 년이 흘렀지만 생동력을 점점 잃어가는 현대교회를 향한 소리없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선교를 열망하여 선교지에서 숨을 거두었던 윌리엄 케리는 순탄치 않는 삶을 살았다. 산업혁명의 사회적 분위기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기도 했다. 케리의 아버지는 직조공으로 가족의 부양을 위해서 공장의 노동자로 일했고, 케리 자신도 구두방의 수선공으로 일하면서 글을 읽지 못하는 부인과 네 명의 자녀들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할만큼 가난을 벗하며 살았다. 그러나 삶의 어떠한 어려움도 케리가 가고자하는 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구두수선공을 하면서도 공부와 평신도 성경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그는 언어를 깨우치는 능력도 부여받아서 라틴어, 불어, 이탈리아어, 폴란드어, 히브리어 그리고 헬라어를 습득했다. 1785년에 작은 교회 목회를 시작하면서 그의 세계선교의 꿈은 점점 증대되어갔다. 어느 날 평소에 잘아는 선배 목회자에게 가서 선교에 대한 꿈을 이야기 하였을 때에 그는 “젊은이, 앉게나. 만약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개종시키려 하신다면 자네나 우리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 걸세”라는 말을 듣게 된다. 윌리엄 케리는 1793년 꿈꾸던 선교의 길을 향해 인도로 갔다. 그리고 40여 년동안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인도인들을 섬기다가 선교지에서 잠들었다. 그는 선교지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한 고통의 결실을 통해 후대의 우리는 그를 “현대선교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다. 월리엄 케리는 세 가지 점에서 우리에게 선교의 빛을 주고 있다. 첫째는 사회적 공헌이다. 케리 당시 인도에서는 남편이 죽음과 함께 살아있는 부인을 화장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또한 종교의 제물로서 유아를 살해하여 신 앞에 바치는 제도가 있었다. 케리는 단호하게 비성경적인 악습을 폐지시키는데 공헌을 하였다. 둘째는 교육적 공헌이다. 케리는 지도자 양성을 위해서 세람포대학을 세워서 직접 강의와 함께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셋째는 선교적 공헌이다. 케리는 성경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세람포의 선교기지를 세워서 동역선교의 효시를 만들었다. 불경기와 사회적 갈등 그리고 많은 문제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성도들은 “위대한 일인 선교를 계획하자!”는 구호가 실제화 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목적지향적인 삶이되어야 한다. 즉 땅 위의 것들만 추구하는 삶이 아닌 영원한 것인 선교의 꿈을 꾸어야 한다. 세계는 한국인 성도들을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정이 많고, 헌신적이고,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역량을 하나님의 법칙에 맞추어서 설계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평범했던 케리가 위대한 일을 꿈꾸고 살았을 때에 선교의 빛을 세계에 나타냈듯이 우리도 위대한 일을 꿈꾸면서 살도록 하자. 조귀삼 교수(한세대)
  • 2005.03.02

    [조귀삼 교수의 선교이야기] - 최고 선교사 바울처럼 살자
  • 선교를 말할 때마다 반드시 떠오르는 인물이 사도 바울이다. 그는 A.D. 10년경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했다. 당시의 다소는 교육도시로서 헬레니즘의 문화가 활짝 핀 곳이었다. 바울은 비록 헬라문화의 토양 속에서 성장했지만 유대인의 생활방식에 따라서 엄격한 훈련을 통해서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살았다. 바울의 종교교육은 당대의 유명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바리새인으로서 철저하게 훈련받았다. 따라서 자신이 “율법에는 흠이 없는 자로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근본주의적 바리새 신앙은 당시의 기독교인들을 종교재판에 회부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급기야 그는 예수믿는 성도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유대를 넘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선교를 위해서 바울을 크게 쓰셨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핍박하는 바울을 선교사로 쓰셨는가? 첫째는,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통해서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의 민족만을 위한 분으로만 이해되었다. 따라서 이방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전통적 유대민족의 신앙관에 배치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인간타락 이후부터 땅 위의 모든 족속들이 복음안에 들어오도록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초림과 함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복음은 차별이 없게 되었다.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하면서 인류구원의 선교를 감당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특권을 누리면서 이방인들을 멸시하였다. 더구나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포함된다는 바울의 복음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여 복음이 유대인의 경계를 넘고 있음을 증명하면서 선교사역을 감당하였다. 둘째는, 바울은 선교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지리적인 경계를 넘고, 문화의 벽을 넘어서 나아갔다. 바울은 그의 생애 가운데 3차례 선교여행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안디옥 교회가 파송하여 보낸 선교의 1차 여행은 구브로에서 시작하여 소아시아 지역을, 2차 여행은 아시아를 넘어서 주로 유럽 지역을, 3차 여행은 아시아와 유럽을 돌아다녔지만 중심 사역지는 에베소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죄수의 몸으로서 그토록 가기를 원했던 로마에 입성하였다. 선교지마다 상황에 맞는 특색있는 사역을 감당하였다. 때로는 무서운 영적 대결을 펼치기도 하였지만 승리하였고, 말씀을 가르치면서 예수 제자화를 실현하였다. 바울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복음의 절대적 진리를 분명하게 증거한 선교사였다. 셋째는, 그는 고난을 이긴 사람이었다. 선교란 고난을 밥먹듯해야 성취될 수 있는 사역이다. 바울은 40에 하나감한 매를 수 없이 맞았으며, 강도의 위험과 배고픔을 견디어 내어야 했다. 한번은 필자에게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선교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바울의 사역지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나 비행기를 통해서도 다니기 힘든 길들을 바울은 두 발이 부르트도록 걷기도하고, 풍랑 속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면서 사역을 감당해 나갔다. 위대한 선교사인 바울은 이미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러나 바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선교적 교훈은 우리도 바울처럼 살라는 것이다. 이기주의적인 삶과 배타적인 삶으로 가득찬 우리에게 바울은 오늘도 살아 있어서 선교의 삶을 독촉하고 있다. (한세대학교)
  • 2005.02.01

    새해에 생각해 보는 선교
  • < a> 새해에 생각해 보는 선교 지리, 정치, 문화의 경계 넘어서야 생명씨앗으로 주님 제자 만드는 것 한국교회가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숫자가 1만2000여 명이 된다. 이들 중에 우리교회의 600여 명의 선교사들도 당당하게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선교사의 숫자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 가는 선교대국으로 우리를 성장케 했다. 이러한 선교의 위상은 그동안 한국교회의 성장이 보여준 경이로움과 함께 세계선교의 역사에서도 기적을 이룰 선교국가로 부상하였음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오늘 이러한 엄청난 선교의 중심에서 선교의 본질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10여년 이상을 신학대학교에서 선교학을 강의해온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선교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즉 선교란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논지를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의 몇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선교는 지리적 경계를 넘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지상명령 이후에 사도들을 통해서 복음은 지리적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여러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지리적 영역을 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토록 뛰어넘기를 꺼려했던 유대 땅을 넘어서 이방 땅인 소아시아, 유럽 그리고 로마, 본인이 세상 끝이라고 여겼던 스페인까지도 복음의 지경을 넓히고 순교하였다. 이후에 복음은 유럽을 정복하고 1000여 년을 지탱하였다. 이후 종교개혁과 함께 가톨릭은 바스코 다 가마정책에 의해서 남미와 아시아에 십자가를 세웠고, 청교도들은 북미에 복음의 터를 잡아 지금까지도 세계선교에 힘썼으며 태평양을 넘어서 한국 땅까지 지리적 확산을 가져왔다. 둘째, 선교는 정치적 경계를 넘은 것이다. 초대교회 역사에 AD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는 기독교를 공인된 종교로 선포함으로서 복음이 정치적 경계를 넘는 시발점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는 선교사들이 중동지역의 선교에 있어서 정치적 벽을 넘는데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경험들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셋째, 선교는 문화적 경계를 넘어가는 것이다. 문화란 일단의 그룹들이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얻어진 습관들이 체계화 되어서 나타난 것이 문화다. 복음은 유대의 자민족 중심주의 문화를 넘어서 사납기로 유명한 앵글로색슨 문화를 넘었고, 남미의 잉카문화, 그리고 한국 속에 있는 한(恨)의 문화를 뛰어 넘었다. 넷째, 선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류를 흔히 미전도 종족이라는 말을 쓴다. 미전도 종족이란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겠으나 광의적으로 보면 예수 생명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따라서 정글 속에 있는 문맹인이나 대도시 속에 있는 문명인이나 예수가 없는 사람은 다 미전도 종족일 수 가 있다. 다섯째, 선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좋은 소식들이 있다. 로또 당첨의 소식부터 부자 되었다는 소식까지 다양한 소식들이 우리를 들뜨게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앗이 전해져서 생명의 싹이 성장해 가느냐에 선교의 성패가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여섯째, 선교는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주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은 자신을 통해서 예수믿는 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주님과의 관계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제자화의 중요성은 제자화만이 인간의 심층부에 자리잡은 세계관이 바뀔 수 있어서 주님을 앙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독자들로 하여금 선교의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였다. 앞으로 글이 전개될수록 조금 더 가벼운 이야기를 통해서 선교를 나누고자 한다.
  • 2004.12.31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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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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