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영웅들
2.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 어떤 환경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길 걸어야 에녹은 세상적으로 특별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삶을 단 한마디로 기록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쁘게 받으셔서 죽음을 보지 않고 데려가셨다. 1. 죄악된 세상에서 구별된 삶 에녹이 살던 시대는 죄악이 점점 깊어지던 때였다. 그러나 에녹은 시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구별된 삶을 살았다. 그는 믿음의 계보를 이어받아 하나님을 섬겼고 세상의 기준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 역시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유혹과 시험이 가득한 시대일수록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지키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삶으로 고백해야 한다. 믿음 때문에 손해를 보고 오해를 받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2.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세기 5장 21~22절은 “에녹은…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잠시 뜨겁게 믿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다. 동행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에녹은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동행했다. 우리의 신앙도 감정이나 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히브리서 11장 5절은 에녹을 가리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고 말씀한다. 에녹은 사람의 인정이나 자신의 만족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출발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 11:6)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도 선택의 순간마다 질문해야 한다. “이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우리의 생각과 말, 행동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볼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하나님을 닮아갈 것이다. 4. 죽음을 넘어서는 믿음이 삶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한 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겨졌다. 이는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를 붙드시며 믿음의 삶에는 영원한 천국 소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에녹의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의 초대이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무엇보다 우리의 믿음이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고 가정과 일터를 비롯한 모든 삶의 자리에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에녹이 보여준 믿음의 모습이다.
  • 2026.10.02

    1. 희생의 제사를 드린 아벨
  •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성경에는 죽었으나 지금도 말하는 사람이 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영웅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믿음의 영웅 아벨이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히브리서 11장은 창세기의 흐름에 따라 믿음의 증인들을 소개한다.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은 첫 증인이다. 아벨의 히브리어 이름은 ‘헤벨’이다. 숨이나 입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를 뜻하며 여기서 ‘덧없음’과 ‘허무함’이라는 의미가 파생됐다. 반면 가인의 이름은 ‘얻다’, ‘획득하다’라는 뜻과 연결된다. 하와는 가인을 낳은 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고백했다. 주목할 것은 이름과 삶이 빚어낸 역설이다. 형 가인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아벨은 그의 이름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벨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반면 ‘얻은 자’ 가인은 하나님의 인정을 얻지 못했다. 창세기 4장은 가인과 아벨은 각자의 생업에서 얻은 것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다고 기록한다. 농사를 짓던 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양을 치던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 가인의 제사가 거절된 이유를 단순히 ‘곡식이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훗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를 정식 예물로 규정하셨기 때문이다. 레위기 2장의 소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양식에 감사하며 자신을 봉헌하는 예물이었다. 레위기 5장에서는 산비둘기조차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고운 가루를 속죄제물로 허용하셨다. 두 제사를 가른 결정적인 차이는 아벨이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데 있었다. 아벨은 자신의 소유 가운데 가장 먼저 난 것과 가장 귀한 것을 구별해 하나님께 드렸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단순히 양이라는 제물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한 아벨의 중심을 받으셨음을 알 수 있다. 가인의 농사와 수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가인이 자신의 성과를 앞세워 믿음 없는 행위만으로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데 있었다. 아벨은 이와 달리 자신이 이룬 성과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렸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외적인 행위에 앞서 그 사람의 믿음과 중심을 보신다. 오늘 우리의 기도와 예배, 봉사도 마찬가지다. 기도는 자신의 경건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며 봉사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얻기 위한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헌신이어야 한다. 자신의 행위를 내세우다가 분노와 시기에 사로잡힌 가인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가장 귀한 것을 드린 아벨의 길을 걸어야 한다.
  • 2026.09.04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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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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