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Q&A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례전’은 무엇인가요? - 성찬예식 ③
  •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성례는 두 가지 ‘성찬’과 ‘침례’이다. 성찬은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눠 먹고 마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교제를 나타낸다. 성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전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장 26절은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한다. 성찬식에서 떡과 잔을 받는 것은 온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널리 알리고 선포한다는 의미다. 성찬은 말이 아니라 먹고 마시는 행동으로 주의 죽으심을 널리 알리고 공포하는 것이다. 성찬은 그 자체로 일종의 전도이다. 성찬은 하늘나라 구원의 잔치를 미리 맛보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의 말씀에서 “오실 때까지”라는 기록은 주님의 다시 오심, 즉 재림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마 26:29) 것이며 주님의 나라에 함께 거하며 “주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게”(눅 22:30) 될 것이다. 장차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주님을 믿는 자들은 주님 베푸신 상에서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며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실 것이다. 성찬은 이렇게 기쁘고 즐거운 ‘천국 잔치’를 미리 경험하는 거룩한 예식이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7.24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례전’은 무엇인가요? - 성찬예식 ②
  •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성례는 두 가지 ‘성찬’과 ‘침례’이다. 성찬은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눠 먹고 마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지속적인 교제를 나타낸다. 성찬은 두 가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하는 예식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십자가 은혜로 화목하게 하셨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성도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자복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해야 한다. 예수님은 강한 자로서 약한 자의 연약함을 감당하셨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셨지만 한 번도 정죄치 않고 용서하셨으며 우리의 짐을 친히 담당하셨다. 그런 이유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한다(롬 12:2). 성찬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돼 하나 된 것을 확인하는 예식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살을 찢기시고 피를 쏟으셨다. 주님의 찢기고 흘리신 피와 살을 통해 그분 안에서 하나가 된 우리는 함께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서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형제자매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한 분이신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 돼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라고 말씀한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주님의 마음으로 형제를 바라보며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말과 행위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볼 때 우리의 신앙과 삶에 무한한 유익이 주어지게 된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6.26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례전’은 무엇인가요? - 성찬예식 ①
  • ‘성찬’이라는 말은 성경에 정확한 명사로 등장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기독교회에서 행해지는 매우 중요한 성례전이다. 예수 보혈의 은혜로 죄로부터 해방돼 새 생명을 얻음을 표시하는 ‘침례’는 평생에 단 1회뿐인 성례전이지만, ‘성찬’은 빵과 포도주를 주기적으로 먹고 마심으로 예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표시한다. 성찬이 행해지는 주기와 횟수는 교파별로 각기 다르지만, 아예 행하지 않는 교회는 없다. 이 거룩한 식사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성찬’(Eucharist) ‘주의 만찬’(Lord’s Supper) ‘성만찬’(Holy Communion). 헬라어로 ‘성찬’은 ‘에우카리스티아’라고 불리며, ‘감사’라는 의미를 지닌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기 전에 축사하셨던 것과 관련된다. ‘주의 만찬’으로서의 ‘성만찬’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행하셨던 기념의 만찬을 가리킨다(막 14:22~24; 마 26:26~28; 눅 22:12~20). ‘주의 만찬’은 바울이 사용했던 용어이고(고전 11:20) 그와 관련해 ‘주의 상’ ‘주의 잔’(고전 10:21)이라는 말로도 달리 표현됐다. 사도 바울은 이 만찬의 기원을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에서 찾고 있으며(고전 11:23~25), 이것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와 일치한다.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 처형과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아시고 떡과 포도주를 나눠 제자들에게 먹게 하시면서, 이것을 ‘자기의 몸’과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이 기념의 만찬 즉 성찬을 행하도록 분부하셨다. 초대교회는 이것을 반복해 시행했고, 그 전통이 현대의 교회까지 이어졌다. <다음달에 계속>
  • 2026.05.22

    교회에서 행해지는 ‘성례전’이란 무엇인가요?
  • ‘성례전’은 초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가 ‘신비 혹은 특별한 것’을 의미하는 헬라어 ‘뮈스트리온’을 라틴어 ‘사크라멘툼’(Sacramentum)으로 번역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 의미는 ‘성별 된 것이나 행동’ 혹은 ‘성스러운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도의 헌신과 순종을 상징하는 표지를 뜻하기도 한다.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캠폴로는 “성례전은 기독교인 스스로 자신이 기독교 신자임을 항상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전통이다”라고 설명한다. 개신교의 성례는 성경적 근거가 분명한 두 개의 성례 ‘침례’와 ‘성찬’이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할례를 ‘인(印)침’이라 하였는데(롬 4:11) 이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에 대한 증표이며 표징이다. 이처럼 신약성경의 ‘침례’와 ‘성찬’도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에 대한 증거이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연합해 그리스도의 의를 자신의 것으로 덧입고 그 은혜를 분명한 증표로 인치고 기억하고 지켜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성례전이다. 이는 복음을 듣고 믿을 때 하나님의 약속된 언약과 축복을 누리도록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례가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성례는 이미 믿음으로 성도가 누리는 은혜를 떠받쳐주는 기둥이지 그 자체가 성도를 언약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주는 것은 아니다. 성례전은 복음 선포와 함께 우리의 믿음을 돕는 은혜의 수단이다. ‘침례’와 ‘성찬’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 자신의 경건을 확증하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고 실천하도록 성례전을 몸소 체험하시고(침례, 마 3:13~17), 직접 제정하셨다(성찬, 마 26:26~29). <다음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4.24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란 무엇인가요? ③
  •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배는 사전적으로 헬라어 동사 ‘프로스퀴네오’를 통해 “하나님께 존경을 나타내며 최상의 가치를 돌리다”라는 의미로 이해됐다. 또 다른 헬라어 명사 ‘라트레리아’를 통해 예배는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는 헌신적 희생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 두 가지 의미를 관통하는 예배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예배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고집과 위선을 무너뜨리고 깨뜨려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를 실천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려고 모리아 산에 오르면서 자신의 종에게 스스로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러 간다”고 말했다(창 22:5). 이런 의미로 영어에서는 예배를 ‘봉사’ ‘헌신’의 뜻을 지닌 ‘서비스’(service)로 표현한다. ‘예배자’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몇 번 주기적으로 교회에 왔다가는 사람’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스스로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의지와 뜻에 온전히 맞춰가는 삶이다. 마치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신을 버리고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장 고귀한 예배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김에녹 목사
  • 2026.03.20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란 무엇인가요? ②
  •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배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동사 ‘프로스퀴네오’와 함께 ‘예배’를 의미하는 헬라어 명사에는 ‘라트레리아’가 있다. 이 단어는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헬라어 동사인 ‘라트류오’에서 유래했다. 명사 ‘라트레리아’(예배)는 우선 ‘보수나 보상을 위한 봉사’를 의미했으며 다음으로는 ‘봉사 일 수고 노동과 같은 신체적 돌봄’을 의미했다. 여기서 파생돼 결국에는 제의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신들을 영화롭게 함’ 또는 ‘예배’를 의미하게 됐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5회 등장하는데 구약성경에서 예배로 인식됐던 ‘희생 제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롬 9:4; 히 9:1,6; 요 16:2; 롬 12:1). 이러한 의미에서 유추할 수 있는 예배의 의미는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는 헌신적 희생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2장 1절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크리스천이 드려야 하는 예배는 분명히 세상과는 구별되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내적 생활과 외적 행위가 연결돼 있음을 강조했다. <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2.20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란 무엇인가요? ①
  •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배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스퀴네오’라고 한다. 이것은 ‘입 맞추다’라는 동사 ‘퀴네오’에서 유래했다. 고대 헬라인들 사이에서 이 동사는 ‘신들에게 경배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던 전문용어로서 ‘땅에 엎드리다 부복하다 무릎을 꿇고 경배하다’를 의미했다. 아마도 땅이나 신상에 입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바닥에 엎드려야 했기 때문에 이런 의미를 지니게 된 것 같다. 이후에는 통치자를 신격화하는 것과 로마 황제 숭배와 관련해 사용되기도 했다. ‘프로스퀴네오’는 예배에서 꿇어 엎드리는 외적인 행위 이외에도 경외심과 겸손을 나타내는 내적인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엎드려 절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종교적 본성의 표시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주로 예배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명령은 전능하시고 영광되신 그분을 창조자이며 심판자로 받아들이고 그 유일하신 주권을 인정하며 경배하라는 뜻이다(계 14:7). 그러므로 ‘예배하다’의 확실한 개념은 ‘존경을 나타내다’ 혹은 ‘최상의 가치를 돌리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존경을 나타내는 경건한 의식을 뜻하며, 최상의 가치를 하나님께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요 4:24).<다음 달에 계속> 김에녹 목사
  • 2026.01.23

    크리스마스트리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 해마다 겨울이면 거리의 풍경은 바뀌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바로 ‘크리스마스트리’(Christmas Tree)이다. 잎이 삐죽삐죽한 상록수에 반짝반짝 오색전등과 여러 가지 장식들을 달아매고 커다란 다윗의 별을 맨 꼭대기에 달아놓은 크리스마스트리는 한해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이상적인 거리 풍경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은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M. Luthern)로부터 유래한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루터는 평소처럼 숲속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언제나 어둡던 숲이 등불을 켜놓은 듯 환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영롱한 달빛이 소복하게 눈이 쌓인 전나무 위에 비춰 주변을 환하게 밝히며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루터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은 저 전나무와도 같다. 한 개인은 어둠 속의 초라한 나무와도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면 주변에 아름다운 빛을 비춰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는 이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고 그 전나무에 눈 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리본과 촛불을 장식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트리’의 시작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미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전나무는 한국이 원산지인 ‘구상나무’이다. 구상나무의 영문 학명(學名)도 ‘Abies Koreana Wilson’이며, 미국인 식물 학자가 1920년 제주도를 방문해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그 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쓰기에 가장 적합해 보였고, 그는 미국으로 구상나무를 가져갔다. 그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됐다. 김에녹 목사
  • 2025.12.26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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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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