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11. 절대 긍정
  •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기다리는 힘 말씀 묵상, 기도로 훈련할 수 있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절대 긍정은 단순한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이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나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론도 아니다. 절대 긍정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면서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는 신앙의 자세를 말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이시고,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며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우리는 모든 일에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면 필연적으로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하게 된다. 절대 긍정의 사람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믿음의 위인들은 모두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주실 땅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인 100세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들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해 이삭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해 나아갔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죄 가운데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 때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와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를 권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결코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살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은 고난을 승리로 바꾼 절대 긍정의 근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에 처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부활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마음에 품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다. 성령님은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 우리와 함께 하셔서 기적을 행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절대 긍정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절대 긍정의 신앙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다. 절대 긍정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해야하고 노력과 훈련도 필요하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절대 긍정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는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거룩한 꿈을 주신다. 이 꿈을 삶에서 실현하는 통로가 바로 기도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붙들고 기도할 때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우리는 언어도 긍정적으로 바꿔야한다. 가나안에서 돌아온 열두 정탐꾼에게 하나님은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 14:28)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가나안 정복이 가능하다고 선포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절대 긍정의 신앙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신다.
  • 2026.07.03

    10. 나누어 주는 신앙
  • 나누는 삶, 크리스천의 본분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 본받아 복 나누는 청지기의 삶 살아야 크리스천의 섬김과 나눔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가 마음에 가득 차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신앙의 표현이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과 세상에 전할 수밖에 없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이다. 나눔은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이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가르침에도 나와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추수할 때 밭의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두라고 명하셨다. 또한 십일조를 통해 레위인과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게 하셨다. 희년 제도를 통해서는 빚으로 잃어버린 삶과 자유를 회복하게 하셨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셨으며 소외된 자들을 품으셨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과 저주와 질병의 모든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셨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삶으로 실천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눴다. 안디옥교회는 유대 지역의 기근 소식을 듣고 구제 헌금을 보냈고, 마게도냐 교회들은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나눔에 동참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자연스럽게 나눔과 섬김으로 이어졌고,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찬받으며 부흥 했다. 나누어 주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을 충성되게 관리하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이웃에게 전하는 청지기의 삶이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고 교회와 선교, 구제와 사랑의 실천에 사용하는 것이 청지기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능, 물질과 건강, 직분과 은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기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하게 관리하고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원과 사명을 세상을 섬기는 데 사용하며 복의 통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순복음의 나누어 주는 신앙은 청지기 신앙과 깊이 연결된다. 우리 교회는 선교와 구제, 사회복지 사역을 교회의 중요한 사명으로 실천해 왔다. 매년 예산의 약 3분의 1을 선교·전도·구제에 사용하며 국내외 선교와 취약계층 지원, 장학사업, 재난구호, 사회복지 사역에 힘쓰고 있다. 교회가 받은 축복을 세상과 나누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시간과 재능, 관심과 사랑, 기도와 봉사 모두가 나눔이 될 수 있다. 성도들도 영혼 구원을 넘어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이웃을 돌보며 사회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개인의 구원이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더욱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순복음 성도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본받아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쁨으로 나누어 줄 때 우리에게는 더 큰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 2026.06.04

    9. 다시 오실 예수님
  • 재림 신앙의 의미와 성도의 자세 말씀과 기도 충만,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나그네처럼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 이처럼 죽음은 영원한 세계의 시작이며 예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그 영원한 거처로 데려가시기 위해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1. 재림에 관한 성경의 증언 ‘재림’이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을 말한다. 구약성경의 다니엘서는 환상 가운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권세를 받는 장면을 보여 주는데(단 7:13~14),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고한다. 신약성경은 더욱 명백하게 재림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제자들에게 친히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고 승천 당시 천사들도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선포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2. 재림의 목적과 그때 일어날 일들 예수님은 세 가지 목적으로 재림하신다. 첫째, 구원받은 성도들을 예비하신 하늘 거처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신다(요 14:2~3). 둘째, 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기 위해 오신다(고전 15:52). 셋째,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신다.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구분된다. 먼저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도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7년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 그동안 지상에서는 적그리스도의 7년 환난이 벌어진다. 환난이 끝나면 예수님은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강림하시어 아마겟돈 전쟁과 최후 심판을 통해 악을 멸하시고, 천년왕국을 여신다. 이후 백보좌 심판이 이루어지고, 구원받은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계 21:4). 3.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 재림의 시기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예상치 못한 때에 임할 것이다(벧후 3:10).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출현, 전쟁과 기근과 지진, 사랑이 식은 세상, 복음의 땅 끝까지 전파 등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 가지 자세로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을 유지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구하는 삶이다. 둘째,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종말의 징조 가운데 하나인 만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한다. 셋째, 천국 소망을 품어야 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재림 신앙 때문이었다. 우리의 소망을 이 땅에 두지 말고 영원한 천국에 두자.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은 현재의 어떤 고난과도 비교할 수 없다(롬 8:18).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토록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 2026.05.01

    8.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
  • 십자가에서 완성된 치유의 은혜 오늘날 우리 삶에도 동일하게 역사해 오늘은 부활주일이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죽은 후 천국에 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저 천국을 소망함과 동시에,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성경에 나타난 동일한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대하고 간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질병까지 짊어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그분의 십자가 고난을 예언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으로 우리는 질병에서 나음을 얻고,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질병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성경은 그 근원이 죄에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기에, 질병과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질병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셨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모든 병자가 고침을 받았다. 한센병, 중풍병, 수종병, 열병, 혈루증, 간질,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자, 말이 어눌한 자, 손 마른 자, 다리를 저는 자, 귀신 들린 자 등 각양각색의 병을 예수님은 치유하셨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때 치유가 임한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아닌 예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주님 앞에 나와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우리에게 치료와 회복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육신의 병, 마음의 병, 환경의 병, 우리의 전인적인 영역을 모두 치료하고 계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픈 형제, 자매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하고 병 고침을 위해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믿음으로 병이 나은 모습을 바라보며 병이 나았다고 믿음으로 선포해야 한다. 하지만 치유가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치유는 복음 전파를 위한 표적이다. 사도행전에도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는데 이는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 이처럼 치유와 기적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일 뿐, 그 자체가 믿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믿음은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별히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의 신앙을 품은 순복음 성도들은 오늘 내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치유를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언해야 한다. 고침 받은 자의 삶은 그 자체로 복음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치유 경험과 간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욱 강력하게 전파되고 기쁨과 감사의 찬양이 하나님께 드려지게 될 줄 믿는다. 주님이 주신 강력한 무기인 보혈의 능력을 힘입고, 날마다 예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해 승리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자.
  • 2026.04.03

    7. 좋으신 하나님 신앙
  • 사랑과 공의의 완전하신 ‘좋으신 하나님’ 임마누엘 하나님 믿고 믿음의 전진 순복음 신앙은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으로 바라본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동행하시며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이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타난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적인 성품이다(요일 4:8). 하나님의 사랑은 일반적인 인간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르다.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흔들리고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무조건적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뤘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해 확증된 것이다(롬 5:8). 또한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대하시고, 모든 일을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행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신 32:4). 하나님의 공의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아모스 선지자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불의를 행하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는 것을 비판하며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전하는 통로가 되길 원하신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며, 우리의 믿음은 삶의 선한 열매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은 전지성, 전능성, 편재성, 영원성, 불변성 등의 속성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고 보호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절대주권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 이를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는데, 이 섭리를 통해서도 우리를 향한 좋으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비록 현실이 어렵고 고난이 닥쳐와도 낙심하거나 절망하면 안된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 여정을 통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부모가 자식에게 늘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듯,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마 7:11).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종종 목자와 양의 관계로 비유된다. 다윗의 인생은 고난과 문제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시 23:6)라며 주님이 늘 자신과 함께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했다. 주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렇기에 ‘좋으신 하나님 신앙’을 가진 순복음의 성도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믿음의 전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좋으신 하나님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뢰하고 복 주시는 하나님,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김주영 기자
  • 2026.02.27

    6. 땅끝까지 전하는 신앙
  • “가서 제자 삼아라” 예수님의 지상명령 세상 어떤 보물보다 귀한 영혼을 주께로 복음 전파는 먼저 믿은 자가 감당할 사명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됐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복음 전파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온 마을을 두루 다니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홀로 전도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불러 그들을 훈련하시고 전도의 일꾼으로 세우고자 하셨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유언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이를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핵심은 전도이다. 제자로 삼으라 할 때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이 세상에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채 멸망의 길로 가는 수많은 영혼이 있다. 먼저 믿은 우리에게는 그들을 전도할 책임이 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전도해야한다.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일지라도 갔다. 바울은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행 20:22)고 고백했다. 전도는 성령에 매여하는 사역이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에게 할 말을 주시고 보호하신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오순절 신앙을 전파한 사람은 메리 럼시 선교사이다. 그녀는 1906년 시작된 아주사 거리의 대부흥 집회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성령 충만을 체험하고 ‘한국으로 가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다. 낯선 땅이었지만 오랜 기도와 준비 끝에 1928년 봄, 마침내 복음을 들고 조선에 들어왔다. 메리 럼시 선교사를 통해 한국 오순절 운동이 시작됐고 이를 기반으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교단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하면 전도된 사람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전도자에게도 주어지는 여러 복이 있다. 전도자는 영적 기쁨을 맛볼 수 있으며 빛나는 영예를 얻는다. 천국에서 누릴 영예는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에 따라 달라진다. 성경은 복음을 전파해 많은 사람을 죄와 타락의 길에서 돌이켜 의와 구원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찬란하게 빛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도는 이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귀한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이다.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을 가진 순복음의 성도는 모두 선교 사역에 동참해야한다. 선교와 전도 일선에 나가 복음을 전할 수도 있고 선교사를 기도와 물질로 후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그날까지 순복음의 성도는 전진 또 전진해야한다.
  • 2026.01.30

    5.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
  • 지금도 계속되는 성령의 역사 성령 충만의 삶은 곧 예수 충만의 삶 주님과 동행하며 인격적 신앙 갖춰야 사도행전 2장 1~4절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는 장면을 생생하게 전한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일은 오순절 성령강림이라 불리며 교회 역사상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오순절은 유월절과 초막절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로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드리는 감사절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가 기도할 때에 성령님이 임했다. 이 때 먼저 하늘로부터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있던 집에 가득 했다. 또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임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셨을 때 모두 다른 언어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방언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 2:4) 말한다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 약속의 성취이자 성령 시대의 개막이었다. 성령님은 나이·지위·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임하셨고, 오늘날에도 그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 충만의 역사가 지금도 계속됨을 믿으며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간구해야 한다. 순복음 신앙은 성령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중요하게 여긴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보혜사로 함께하시며(요 14:16),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요 14:26), 예수님을 증언하도록 우리를 세우신다(요 15:26). 또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며,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요 16:8,13). 하나님은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부족함 없이 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신다.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 체험은 ‘성령 침례’와 ‘성령 충만’으로 나눌 수 있다. 성령 침례는 성도가 성령 안에 완전히 잠기는 체험을 말한다. 순복음 신앙에서는 성령 침례의 외적 증거를 방언이라고 믿는다.성령 침례를 받으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다. 성령 충만은 외적인 성령의 은사와 내적인 성령의 열매가 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성령 침례이후에도 계속해서 성령으로 가득한 상태를 유지하는 삶이 성령 충만한 삶이다. 성도는 성령 충만을 통해 예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고 권면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의 열매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사랑, 희락, 화평), ‘나와 이웃과의 관계’(오래 참음, 자비, 양선),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관계’(충성, 온유, 절제)로 분류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소개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성도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증거다. 오순절 신앙은 매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불길은 지금도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순복음의 성도는 날마다 그 불길을 사모하며 성령의 은사로 교회를 세우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야 한다.
  • 2026.01.02

    4. 갈보리 십자가 신앙
  •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구원의 은혜 감사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야 순복음의 12대 핵심진리 중 ‘순복음 7대 신앙’은 성도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앙의 기초를 제시한다. 곧 갈보리 십자가 신앙, 오순절 성령 충만의 신앙, 땅 끝까지 전하는 신앙, 좋으신 하나님 신앙, 병을 짊어지신 예수님 신앙, 다시 오실 예수님 신앙, 나누어 주는 신앙이다. ‘갈보리 십자가 신앙’은 순복음 교리의 핵심이며 인간이 구원받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임을 철저히 믿는 신앙이다. 1.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풍성한 삶을 누렸으나,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뱀의 유혹에 넘어가 따먹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무시한 불순종의 죄였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끊어지고 두려움 속에 숨는 존재가 되었다. 땅은 저주받고, 고통과 질병,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으나 가릴 수 없었고, 하나님은 짐승의 가죽옷으로 입히셨다. 이는 죄 사함을 위해 반드시 피 흘림이 필요함을 예표한 것으로, 장차 흠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실 것을 상징한다(히 9:22).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가운데 살아가며 궁극적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 상태에 놓여 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23). 구약 시대엔 짐승의 피로 속죄했으나 그것은 불완전한 제사로 반복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단번에, 영원히 속죄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죽으셨다. 그때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심으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셨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고, 바울도 그 사실을 증언했다(고전 15장).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의롭다 하심과 영원한 생명을 보증한다. 3. 거듭남의 은혜 크리스천은 두 번 태어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거듭남은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시는 사건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거듭남은 회개와 믿음으로 온다. 회개는 ‘메타노이아’, 곧 삶의 방향을 완전히 돌이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믿고,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그 결과 구원받은 자는 ‘양자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사람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칭의). 우리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게 되었다. 그래서 참된 크리스천은 “예수님만이 나의 의이며 나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한다. 결론적으로 순복음 성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과 부활을 통해 죄 사함 받았음을 굳게 믿어야 한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이 바로 ‘갈보리 십자가 신앙’이다. 정리=오정선 기자
  • 2025.12.05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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