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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2016.07.10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 영혼아 야훼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편 103편 2절)

 사람은 자기의 삶에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어디든지 찾아 갑니다.
 최근 구라파나 러시아에서 우리나라에 수술을 받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병이 나을 수 있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하셨을 때 죄를 용서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사람들이 구름 떼같이 몰려 왔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역을 성령을 통해서 바라보며, 예수님이 베푸신 은택을 잊지 말고 감사하며 찬송하라고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죄를 지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만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죄를 지어 만약 50년형을 받았다면 50년을 교도소에서 지내야 되고, 종신형을 받았다면 평생 교도소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종신형 정도가 아니라 사형선고를 받은 존재인 것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사형선고를 받은 우리를 하나님은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냥 우리의 죄를 눈 감고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서 자기 아들을 나무에 매달아 죽음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 대신 죄의 대가를 치러주신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재판관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편협하게 우리의 죄를 그냥 눈감아 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두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학생들은 시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중년들은 직장이나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노년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두려움은 죄 때문에 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자 그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와서 하나님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게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를 지으면 그 마음에 두려움으로 꽉 차게 되는 것입니다. 잡초를 뽑을 때 뿌리 째 뽑지 않으면, 아무리 잡초를 뽑아도 어느새 다시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또 집안에 있는 거미를 잡지 않으면 거미줄을 아무리 치워도 거미줄이 다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인생에 가시와 엉겅퀴가 가득하고,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것은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만 용서하십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조차도 죄를 용서하시는 대가로 그 아들의 생명을 나무에 달아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고로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조금도 두렵지 않고, 하나님을 보면 한없이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고, 사랑이 넘쳐 나오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하게 되고 두려움이 들어오게 된 것은, 하나님을 반역해서 죄를 짓자마자 그런 일이 생겼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 있을 뿐 아니라 죄가 있는 곳에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0절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하시며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죄는 차원이 높을수록 더 큰 두려움을 가지고 옵니다. 마가복음 14장 33절로 36절에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으므로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알고 계십니다. 이 죄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하니 엄청나게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말미암아 버림받는 것이 얼마나 서운 지를 체험했으며, 배신당하는 것이 괴롭다는 걸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서 당해야할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게 괴로운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미리 고민하시고, 괴로워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 고통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다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 고난당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고통 내 고통, 예수 버림 내 버림, 예수님의 음부의 괴로움은 나의 음부의 괴로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습니다. 전도서 1장 2절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했듯이 우리의 삶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취생몽사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고, 산사태와 홍수가 나도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을 정말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이 잘났기에 만세 전에 하나님이 자녀로 택하시고, 손으로 지명해서 부르시고, 영생을 주셨겠습니까? 은혜를 받은 우리는 생명을 바쳐서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32편 1절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고, 로마서 6장 17절로 18절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속의 은혜를 허락한 그대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온 세상이 우리를 버려도 우리는 버림당하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핍박을 당해도 버린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24시간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택을 잊지 말고, 감사하고 찬송하며 그 은택을 누리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우리가 예수 믿고 속사람이 살아날 뿐 아니라, 우리가 집 삼고 사는 육체의 병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명함을 ‘야훼 라파’라고 하셨습니다. 라파는 의원이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야훼 라파다. 너의 의원이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은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야훼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
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야훼임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건강의 생명을 갖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병은 인생을 극한적으로 괴롭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병을 미워하시고, 병을 영원히 멸하기 위하여 자기 육체가 채찍에 맞는 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에는 항상 양면성이 있습니다. 죄를 지시고, 우리 병을 담당하셨다고 성경은 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죄 사함을 말했으면 꼭 병 고침이 뒤따라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 사함과 더불어 병을 고치는 것이 주어진 사명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9장 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촌락에 다니면서 천국 복음을 증거 하시고, 어떤 질병의 고통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얼마 전 순복음가족신문에 난 간증입니다. 우리 교회의 김지희 집사님은 1995년 첫 아이를 출산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몸이 이상해서 건강진단을 받았더니 췌장암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말기 암으로 6개월밖에 살 수 없는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의사선생님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으니 한 6개월 동안 남편하고 맛있는 것 잡수시고, 기운 있을 때 여행도 좀 하시고, 죽을 준비를 해야 되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나는 살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당시 남편은 교회에 나가지만 자신은 교회를 안 나갔습니다. 그래서 남편 따라 교회를 나가면서, 충청도로 내려가 죽음을 맞이하려고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간증에 보면 이렇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너무 간절하게 땅을 치고, 몸부림치며 기도를 하는데, 겁이 덜컥 나더랍니다. ‘저러다가 나를 따라 죽겠구나. 그러면 딸내미는 어떻게 하지? 하나님을 만나봐야 되겠다. 내가 살든지 남편이 살든지, 살아있어야 자식을 돌보지. 그냥 무책임하게 갈 순 없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하고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목숨을 내어놓고 기도를 하는데, 마침 부흥회 기간이라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여 왔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강사 설교가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반드시 병 고침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자세히 그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다음 설교를 마치고 난 다음 병자를 위한 기도를 하고, “오늘 암에 걸려서 피를 토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와 있는데, 하나님이 고쳤다”라고 선포하자 갑자기 마음속에 ‘저 말씀은 날 보고 하는 말이다’라는 묵시가 왔다는 겁니다.

  목사님이 대중을 보고 한 말인데, 묵시는 영혼 속에 임하니 머리에서부터 뜨거운 기름을 확 붓는데, 온 몸이 화끈해지고 고통이 눈 녹듯이 녹아진 것입니다. 집사님은 남편에게 닭도리탕이 먹고 싶다니까, 금촌 쪽으로 닭도리탕을 사 먹으러 갔는데 중간에 “아이고 화장실에 가야 되겠다”고 말하고, 급하게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 갔는데 고름이 뭉치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이튿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의사선생님이 하는 말이 “아니, 나를 놀리는 거요? 온 몸에 퍼진 암 덩어리가 며칠 만에 이렇게 깨끗해 질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얼마나 좋은 일인 것입니까! 예수 믿으면 이런 체험도 해야 돼요. 이런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 가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묵시를 주시고, 그 다음에는 기적을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머리에 기름 부으셔서 뜨거운 사우나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느끼는 것은 기가 막히게 상쾌한 생명을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던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고, 새로 결혼한 것과 같은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게 되었으니 그 고마움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삼서 1장 2절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라고 하는데, 이게 강건해지면 범사도 잘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교회가 “예수를 믿어도 잘 못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주 배고프고, 굶주리고, 고통당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 예수 믿어서 복 받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건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얼마나 슬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이 나고 난 다음 우리 한국에 굶어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미군부대에 쓰레기통을 뒤지러 가면 먹다 버린 온갖 쓰레기들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와서 끓여서 꿀꿀이죽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주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어 복을 받아 이만큼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꿀꿀이죽을 배불리 먹어서 좋겠네”라고 말하면 상대방을 놀리는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부요케 만들기 위해서 직접 자기가 가난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니
 
 그것뿐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해서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땅에서 임하여져 땀을 흘리며 먹고 살았는데, 이 저주를 주님께서 제하여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하고 번창케하리라”면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주에서 해방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은총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때문에 복을 나누니 좋은 이웃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고생시켰다는 말은 한 마디도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사랑하는 것입니까? 아담이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다가 흉악한 사탄의 계획에 빠져서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안 되고, 실패하는 것이 저주 아닙니까? 그런데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을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주를 받아서 가시와 엉겅퀴 속에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채소를 먹으라고 그랬어요. 요사이도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채소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채소를 잘 다스려서 먹으면 병이 낫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시작하고, 몸이 산성화되어졌지만 지금도 채소를 잘 다스려 먹으면 병들지 않습니다. 또 병들어도 낫습니다.

 출애굽한 1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저주를 받아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따라서 온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 자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2절로 23절에 보면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 다음 민수기 14장 32절로 33절을 보면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광야에서 다 죽은 것입니다. 그들이 뱀에 물려서 죽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뱀을 장대에 만들어서 높이 세우고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다 독이 사하여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달아놓고 “쳐다보라”고 하자, 쳐다본 사람은 다 살아난 것입니다. 하지만 반역하고 쳐다보지 않은 사람은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그것이 나보고 하는 말이다”라며 니고데모에게  요한복음 3장 14절로 15절을 통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므로 저주의 독을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축복을 받았다고 꿈꾸고, 믿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너는 복 받은 사람이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는 그릇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통해서 복 받은 사람이 된 생각을 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그를 통해서 성공한다고 믿고, 기도하고, 입술로 꼭 시인하십시오. 입으로 시인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하신 삼중축복의 놀라운 은택을 잊지 않게 하시고,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낼 수 있도록 성령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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