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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당할 때 그와 함께 하여
2014.05.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91편 15∼16절

 

험한 골짜기 같은 인생 고난없는 삶은 없어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 은혜와 축복 담는 그릇
낙심말고 끝까지 참고 감사하면 큰 영광 누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장영희 교수의 책「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는 “사람은 누구나 등에 운명 자루를 하나씩 메고 살아가는데 그 속에는 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가득차 있다”고 쓰여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은 좋은 일뿐 아니라 어렵고 힘든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험한 골짜기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욥기 14장 1절은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고난의 배꼽을 달고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어떤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고난은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고난은 잘못을 회개하게 하는 막대기입니다. 고난이 오면 반드시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1. 고난은 회개를 위한 막대기이다

 우리는 고난의 막대기에 얻어맞을 때 스스로 잘못된 것을 찾아 회개하게 됩니다. 시편 119편 59절로 60절 그리고 71절은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율례를 한쪽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곤 했는데 고난을 당하자 마음에 깨달음이 와서 하나님의 율법을 깊이 생각하게 되고 율법을 따라서 살겠다고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환난과 고난이 있으면 그것으로부터 건지시는 하나님께서 항상 같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7절로 19절은 “의인이 부르짖으매 야훼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환난과 고난이 없는 사람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아도 그 분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릇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이 환난과 고난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릇입니다.

 우리에게 환난이 다가오면 외롭고 괴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환난과 고난입니다. 기쁘고 좋고 평안할 때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고 필요 없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환난과 고난을 당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을 때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게 되고 그렇게 구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어릴 때 나쁜 짓을 해서 어머니나 아버지께 호되게 종아리를 맞고 피가 흐르면 부모님께서 약을 발라주시고 붕대로 감아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때릴 때는 무슨 마음으로 때리고 약을 바를 때는 무슨 마음으로 발라주는 거지’하고 부모의 심정을 몰라서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는 자식이 잘되라고 뜨거운 마음으로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2. 고난은 하나님께 기도하게 한다

 고난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기도하게 합니다. 기독교 작가 루이스(C. S. Lewis)는 “고난이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고난은 이런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확성기다”라고 말합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난이라는 확성기를 사용하시면 잘 들립니다. 고난을 당하면 더 기도하게 됩니다. 편안할 때는 기쁘고 즐거움에 싸여 회개할 줄 모르지만 고난을 당하면 회개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만에 그 성을 멸망시키겠다”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라는 명을 받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앗수르가 회개하여 멸망 받지 않는 것이 싫었습니다. 차라리 적국 앗수르가 완전히 멸망해 버리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전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하나님의 눈을 피해 배 밑으로 내려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바다로 떠나가자 큰 파도가 쳤습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을 막은 것입니다. 온 배가 파선에 이르게 되니까 선원들이 잠자는 요나를 깨웠고 요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 풍랑은 다 나 때문이니 나를 바다에 던지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죽더라도 니느웨에 가서 그런 경고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엄청난 애국자요 민족주의자였던 것입니다. 결국 버티고 버티던 선원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고 마치 예비된 듯이 큰 물고기가 나타나 요나를 통째로 삼켜버렸습니다. 차라리 죽기를 원했지만 죽지도 못하고 3일간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는 결국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나 2장 1절로 2절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고난과 환난 중에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또한 시편 91편 15절로 16절은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우리를 완전히 멸하기 위해 꾸짖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새롭게 만들기 위해 꾸짖으십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듣고 우리를 용서하고 도우십니다. 

 

 3. 고난은 우리를 깨뜨려 겸손하게 한다


 고난은 우리로 겸손하고 깨어지게 만들어 온유하게 만들어 줍니다.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도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하면 깨어지고 낮아지고 겸손해집니다. 깨어지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자기가 옳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해보면 압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말은 전부 틀렸고 자기만 옳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까지도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깨어진 사람은 모든 면에서 “내가 잘못했다. 내가 돌이켜 변화되겠다. 그리고 더 노력해 보겠다”고 먼저 말합니다. 낮아진 사람이 깨어진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열심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밭에서 일을 하는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에게 상속을 주십시오. 결국 아버지는 죽을 것 아닙니까?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빨리 상속해 주십시오”하고 재산을 받아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흥청망청 재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은 굶주림에 지쳐 돼지를 치며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 끼니를 때우다 아버지가 계신 집이 생각났습니다. 그제야 그는 회개하고 ‘차라리 종이 될 지라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자’라고 결심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니까 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아버지 집으로 이제 돌아오는 데 아버지는 매일 같이 동네 어귀에서 아들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옛날 유대인의 관습은 부모에게 불효하고 떠난 사람이 돌아오면 제일 먼저 본 사람이 잡아 돌로 쳐 죽여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는 혹시 돌아오던 아들이 돌에 맞아 죽을까봐 매일 동네 어귀를 지켰던 것입니다. 결국 둘째 아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 절뚝이며 걸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아버지가 쏜살같이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누더기 옷을 입은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리고는 종들을 불러 목욕을 시키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신발도 신겼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었습니다.

 마침 돌아온 맏아들이 이 요란한 잔치를 보고 화를 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저런 놈을 용서하실 수가 있지? 당신 곁에서 늘 최선을 다한 나를 위해서는 잔치 한번 열지 않으시더니’하며 마음에 섭섭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는 잔치에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난 맏아들에게 “아들아! 너는 늘 나와 같이 있었으므로 내 재산이 다 네 재산이 아니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들어가자!”라고 했지만 끝끝내 큰 아들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탕자와 같은 작은 아들을 그래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사랑과 은혜로 자식을 대하지만 맏아들은 율법주의로 대했습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에 어긋난 것은 절대로 받아들이지도 용서하지도 않겠는 것입니다. 이 맏아들처럼 한다면 그는 율법에 어긋나면 천당도 안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입니다. 과거를 용서해줄 뿐 아니라 과거를 잊어버리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함께 힘써주십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와 돌아온 둘째 아들과 온 집안 식구들은 잔치에 참여하여 살진 송아지를 먹으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는데 맏아들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은 스스로 ‘나는 그런 사람과 같이 있을 수가 없다’고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추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오만하고 교만한 사람을 깨뜨려 겸손하게 만들고 온유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12번도 더 변합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고난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어져 겸손하고 온유하게 만들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실 때가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4.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한다

 고난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케 합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은혜를 체험케 됩니다. 우리가 어렵고 고난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고난을 물리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질병으로 고난을 당해 부르짖으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은혜를 줄 때가 왔기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때 일찌감치 도와주시면 좋은데 우리의 체험을 통해서 보면 ‘떨어지면 낙동강, 떨어지면 낙동강’ 즉, 정말 견딜 수 없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바칠 때도 칼을 빼어 들고 아들을 죽이려고 하는 순간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제가 여의도에 이 교회를 지을 때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서 교회 옆에 있는 초원아파트 7층에 올라가 ‘이제 뛰어내려 죽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어디선가 벌들이 몰려와 저를 방해하며 입으로 코로 들어가고 귀로도 들어갔습니다. 죽고 싶은 생각조차도 모두 사라지자 저는 “왜? 하나님은 응답은 안주시고 벌만 주십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응답받을 때가 왔으니까 네가 조금만 참아라”하며 마음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 순간 참고 인내하는 것도 좋아 보이고 사는 것도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순식간에 달라집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고 복을 주셔서 여러 가지 길이 열려 이 교회를 무사히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처럼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고난의 그릇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사는 것입니다. 고난은 곧 은혜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고난도 많이 겪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다가오면 버림받았다고 절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와 UN 장애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강영우 박사는 사실 불광동에 가마니 깔고 천막치고 예배드릴 때 우리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부모님을 다 여의고 여동생과 남동생을 데리고 그 추운날 내복도 없이 여름 양복을 입고 와서 벌벌 떨며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학교에서 공에 맞아 한 쪽 눈이 멀었고 나머지 눈도 시력이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수기도를 해주었더니 성령께서 제게 ‘이 강영우는 장님으로서 큰 인물이 될 것이다’는 음성이 자꾸 들려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게 말이 됩니까? 그건 벌이 아닙니까? 장님이 돼야 큰 인물이 될 수 있다니요?”라고 되묻자 “그래도 내가 고쳐주면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살 것이고 장님이 되는 것을 참고 견디면 그는 큰 사람이 된다”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다음부터 안수기도를 해주지 않으니까 안수기도 안 해주는 교회 안 다닌다고 하면서 떠났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보니 정말로 그가 미국의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와 UN장애위원회 부위원장이 된 것입니다. 한국인으로 미국의 백악관에서 그렇게 큰 자리를 얻은 사람은 강영우 박사가 처음입니다. 이제 아무도 그가 장님 되었다고 동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 부러워합니다. 하나님 은혜가 그의 고난의 그릇을 채운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고 그러면 고난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립니다.

 

 5. 고난은 인생에 가장 귀한 것을 깨닫게 한다

 고난은 인생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이 세상에 부귀와 영화, 공명과 물질 이런 것들이 최고로 좋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들이 제일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그런 것이 다 일시에 물거품이 되고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집회를 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성회 마지막 날이라 아주 땀을 뻘뻘 쏟으면서 말씀을 증거하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그 다음에 호텔에 들어왔습니다. 제 방은 27층이었습니다. 목욕을 하고 아주 잠에 푹 빠졌는데 전화가 자꾸 울리길래 받아보았더니 “호텔에 불이 났으니 빨리 로비로 내려오세요”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려갔는데 저만 안내려간 모양입니다. 이미 연기도 자욱하고 불길도 치솟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잠옷 바람으로 일어나 나가려는데 복도가 연기로 자욱해서 통로와 계단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복도에는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가득했습니다. 모두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까지 정신이 아뜩했습니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데 순간 제 마음에 ‘세상 돈도 명예도 지위나 권세도 다 필요없다. 오직 예수님뿐이다. 예수님만이 참 생명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꾸 예수님을 입술로 불렀습니다. 그러자 눈이 밝아지고 문도 보이고 복도도 보이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Jesus! Jesus! Jesus!”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이라고 외치며 저를 따라 내려가자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제가 전도 한번은 기가 막히게 잘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평안히 앞장을 서자 사람들이 질서를 지켜 저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모두 무사히 27층에서 아래의 로비까지 내려왔습니다. 이처럼 절체절명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장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통에도 예수님만 함께 하시면 능히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23편 4절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면 주님께서 그 크신 은혜와 긍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은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모시고 가장 귀하게 여기도록 만들며 그로 말미암아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습니다. 고난은 은혜와 축복을 걸머지고 우리를 찾아온 변장한 천사입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참으십시오.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나중에는 고난 때문에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성령으로 함께 동행하시며 환난 때마다 은혜와 축복의 단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인도하옵소서. 고난은 변장한 축복이요 은혜임을 기억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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