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히브리서 11장 29절
고난과 위기의 홍해가 넘실거리는 인생살이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기다리면 홍해 갈라져
항상 십자가 짊어지면 놀라운 기적 체험케 돼
모세는 그의 조상 야곱이 애굽의 고센 땅에 정착한 뒤 430년 만에 엄청나게 많아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민족 전체의 대이동이 이뤄졌는데 그 앞에 첩첩히 어려움과 위기가 쌓여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가로 막은 홍해 바다가 제일 큰 문제입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려는 데 그 앞에 홍해 바다가 ‘떡’하니 막혀 있습니다. 또한 바로의 명령을 받은 애굽의 군대들이 사방팔방으로 병거와 말을 타고 이스라엘을 잡으러 뒤를 쫓아 온 것입니다. 뒤에서는 애굽 군대들이 몰아쳐오고 앞에는 창일하는 홍해바다가 가로 막았으니 이스라엘은 실로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항복을 하든지 바다에 뛰어들어 죽든지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인도해 온 모세는 굉장히 어려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출애굽기 14장 13절로 14절에 기록된 것처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이나 고백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마음에 느끼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휘몰아쳐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차라리 바로의 군대에게 항복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고함치며 야단법석인데도 불구하고 모세는 탁월한 믿음과 지도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절대적인 지도력에 이끌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성과 감정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합니다. 모세가 홍해 위로 지팡이를 대니 홍해가 쫘악 갈라지고 바다 밑의 육지가 드러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위를 걸어서 건넜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따라 들어와 홍해의 한가운데 왔을 때 모세가 지팡이를 거두자 양 옆으로 벽처럼 서있던 바닷물이 ‘쏴아’하고 도로 원상복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완전 무장을 하고 창과 칼을 차고 들고 있는 군사들은 마치 돌멩이가 가라앉듯이 ‘꼬르륵 꼬르륵’하며 가라 앉아 버렸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한 결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겪은 것과 같은 기적과 체험을 많이 하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들이 체험하는 출애굽 사건들
우리에게도 애굽이 있습니다.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애굽은 바로 날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세상살이’ 그 자체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점령하고 마귀가 우리를 다스리는 애굽입니다. 세상의 애굽에는 죄와 허물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질병과 저주와 가난과 배고픔의 바다가 넘실거립니다. 또한 죽어서 지옥으로 가는 영원한 지옥의 바다가 넘실거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야만 살 수 있는 바다가 홍해입니다. 그 바다를 건너야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세상살이’ 한복판을 가로막는 이러한 홍해들을 건너야 됩니다. 그래야 저 건너편에 생명과 부활, 축복과 영생의 젖과 꿀이 넘쳐나는 가나안 땅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다를 건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리가 총명하고 세속적으로 훌륭한 자리에 있어도 이 바다는 절대로 갈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는 절대로 이 ‘세상살이’의 홍해를 가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리면 삶의 홍해가 갈라집니다. 죄와 허물의 바다가 갈라지고 질병과 저주의 바다가 갈라지고 가난과 죽음의 바다도 갈라지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께서 이 바다가 갈라지게 하시기 위해 모든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걸머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대가를 지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몸이 찢어져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그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원수의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우리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기만 하면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다 이루었다. 걱정하지 마라. 네 앞의 바닷물이 갈라진다”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서 6절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700년 전부터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고난당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주님이 주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십자가에 매달려 고난당하신 그 큰 공로를 통해 우리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삶을 허락하고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이뤄주신 것들을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것을 택할 것인지 부정적인 것을 택할 것인지 분명히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사람은 하루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고 말했으며, 노만 빈센트 필 박사도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세계도 바꿉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생각도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면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생각하면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말씀처럼 우리를 가로막은 어떤 홍해도 결국에는 갈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D. L. 무디 목사는 “복을 받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바닥 났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믿음이 바닥났기 때문인 것입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항상 넘쳐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이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바닥이 난 것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믿음을 다시 회복시켜야 됩니다.
2.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마귀가 사용하는 종의 멍에를 십자가에서 철폐하시고 무너뜨리셨습니다. 다시 말해 마귀가 우리를 묶고 있는 멍에인 정사와 권세는 이미 철폐된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고 승리하신 것을 몸소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다시는 죄와 세속의 멍에, 질병과 가난의 멍에, 실패와 죽음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종교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됨을 전파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면 자유와 해방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 혹은 교회나 공동체, 민족과 국가 그 어느 곳이든지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마귀가 있는 곳에는 속박과 고통, 압박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오직 해방과 자유가 있는 곳은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계시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든지 우리는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을 의지하여 항상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사야 41장 10절로 14절에 보면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야훼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야훼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깨달으면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게 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항상 해야 될 것은 예수의 죽음은 바로 우리의 죽음이며 예수의 부활은 바로 우리의 부활이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을 우리가 가슴에 끌어안고 등에 걸머져야 됩니다.
3. 항상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지라
고린도후서 4장 10절은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 죽음은 우리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쳐다보고 예수님께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의 죄를 대신한 것은 우리의 모든 허불과 질병, 가난과 저주, 고통과 죽음을 지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의 삶 가운데서 기도할 때 예수님의 죽음을 끌어안고 죽으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으심을 함께 몸에 짊어 졌으니, 예수의 능력도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십자가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으로 삶의 변화를 받아야 진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종교적인 의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생명이 들어와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굉장한 체험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바라보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몸에 짊어지면 생각이 달라져야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우리가 짊어졌으니 부활의 생명도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희망찬 꿈을 가져야 됩니다. 이처럼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희망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진정으로 인생이 달라져야 믿을 ‘맛’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사시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바로 기적을 바라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온전한 믿음으로 항상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말이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늘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하면, 우리의 삶속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이뤄집니다. 그것은 우리가 돈주고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기도하면서 꿈을 꾸고 그 다음에는 기적을 믿고 그것을 입술로 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백번도 넘게 아니 천번도 넘게 계속해서 우리의 입술을 통해 말하다 보면, 그 말대로 창조적인 기적과 역사가 우리의 삶에 크고 놀랍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잘 안되면, 그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 수첩을 두고 거기에 글로 적어 늘 펼쳐서 하루에 몇 번씩 읽어보고 지내십시오. 그것이 ‘삐약 삐약’ 알을 깨고 나오면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 병아리가 우리 생활과 삶속으로 깨어 나와서 장성하여 복의 씨암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다른 결과를 얻게 됩니다. 생각이 꿈을 낳고 꿈이 믿음을 낳는 것처럼 생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꿈을 갖게 됩니다. 국제기아대책기구의 부총재로 전 세계에서 가난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수십 년 간 도왔던 대로우 밀러(Darrow L. Miller) 목사는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가난의 원인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생각과 사상에 있으며, 가난한 국가는 가난한 이유가 있고, 성공하는 국가는 성공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바로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에 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에 들어가서 아무리 돈을 빌려주고 자원을 지원해 주어도 부자가 못되는 것은 바로 마음속에 잘못된 ‘운명론’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운명적으로 못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팔자가 못살게 되어 있으니 아무리해도 안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해도 잘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로우 밀러 목사는 그의 책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
맞습니다. 생각은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잘 살 수 있다’하면 그 결과가 나타납니다. 생각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생각이 달라져야 합니다. 생각이 달라져야 인생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져야 가정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져야 사회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져야 국가도 달라집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로 죄를 사함 받고 의롭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의롭게 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병에서 낫고 건강을 얻는다’라고 생각하니 우리의 질병이 낫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저주와 가난에서 벗어나고 복을 받는다’라고 생각하니 정말로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곳에 가든지 ‘나는 잘된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그 생각이 결과를 낳아 잘되는 것입니다.
한 일본의 식물학자가 한 나무에 ‘수십개’가 열리는 토마토 나무를 보면서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그는 일단 토마토를 심어놓고 ‘이 토마토 나무에는 열매가 수십개가 아니라 수백개가 열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실험을 시작한 그 토마토 나무는 많은 식물학자들이 보는 앞에서 수십개가 열리던 열매가 수백개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는 토마토 나무를 볼 때마다 그리고 열매가 열릴 때마다 축복을 했습니다. “토마토야 많이 열려라. 주렁주렁 열려라. 수백개씩 열려라”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달리하고 자꾸 말을 해주니 그렇게 많은 토마토가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안에서든 어디에서든 언제나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하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과 말을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큰 기적과 역사를 나타내시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겉사람은 여전히 3차원의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은 사람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록 육신은 3차원의 세계 속해 여러 가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지만 속사람은 이미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돼 4차원의 세계가 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차원 세상에 살아도 구원받은 4차원으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나타나서 항상 기적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겉사람이나 육체가 아니고, 우리는 육체에서 거듭난 신령한 생명이 들어가 있고 영적인 4차원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4차원의 능력을 통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꿈꾸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며 말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아름다운 결과가 맺게 됩니다. 우리 의 삶 하루하루가 이러한 4차원적 영성으로 향상되고 발전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죄와 허물, 가난과 저주, 질병과 죽음에 시달리던 우리를 예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해방시키고 자유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몸에 지고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요, 예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됨을 믿고 의지합니다. 3차원적인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4차원적인 영의 생각과 눈을 주셔서 보이지 않는 실상을 볼 수 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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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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