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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2013.09.0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 1∼6절

 

연약한 양 같은 인생, 삶의 고난 이겨낼 힘 없어
선한 목자인 예수님 따르면 플러스 인생 살게 돼
좋으신 하나님 우리를 지키고 붙들어 복을 주셔

 목자 없는 양은 굶주리고 목마르며 못된 짐승들에게 쫓기거나 잡혀 찢겨져 오래 살 수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짐승들은 자기 방어 수단이 있습니다. 이빨이 무섭다든지, 뿔이 사납다든지, 아니면 도망치는 다리라도 빠르던지 그런데 양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뿔도 튼튼하지 못하고 이빨도 강하지 못하고 발톱도 없고 멀리 달려갈 수도 없습니다. 또한 심한 근시로 인해 눈이 나빠서 앞도 잘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목자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양을 지키면 양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가 지켜주므로 항상 안전하게 다니고 들판을 뛰놀며, 푸른 풀밭에서 배불리 먹고 편하게 눕습니다. 양은 배가 부르지 않으면 절대로 눕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풀을 뜯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이 양은 목자 인도를 따라 푸른 초장에 누인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사람도 이 연약한 양과 같습니다. 사람도 자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나운 짐승처럼 덤벼드는 인생의 고난과 시험에 대항할 만한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곁에서 목자와 같이 우리를 든든히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의 목자로 삼으면 모든 삶에 플러스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각하고 의논하고 기도하고 믿으면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된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도와주리라. 참으로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의 목자로 삼아 플러스 인생을 살 때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1. 예수님은 나의 목자


 우리 주님은 늘 한결 같은 분입니다. 항상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눕도록 풀을 뜯어먹게 해주시고 쉴만한 물가에 가서 쉬게 해주시고 마음을 소생시켜서 행복하고 만족하게 해주시고 바른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 플러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을 때는 우리 인생은 무엇이든지 마이너스입니다. 비록 우리 인생은 피투성이가 되어 고통을 당하고 절망적일 때도 많지만 예수님과 동행한 후 부터는 어느 곳에나 플러스 인생을 살도록 해주십니다.

 태초에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 온갖 고난과 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와 있을지라도 우리를 위해 날개를 퍼덕이면서 독수리같이 덮어주시는 이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종교도 철학도 아니며, 학문도 소설같은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때문에 우리는 만족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로 11절에도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양인 우리를 위해 실제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 즉, 플러스 인생을 살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죄와 허물,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죽음을 대신 짊어졌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동행하기 위해 우리에게 의롭게 살 수 있는 힘을 플러스해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죄악의 홍수에 휘말려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3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허물이 많고 입술이 정죄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같이 계시면 우리를 거룩한 삶의 자리로 드높여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씻어주십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신 후에 다시 성령께서 우리를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의 연약한 것을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친히 담당해 주시고 그리고 우리 병을 대신 짊어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건강의 플러스 알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병이 들면 예수님을 더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병을 대신 짊어지시고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말씀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날카로운 칼 같은 생명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는 질병을 잘라내고 없애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러한 말씀은 외워서 질병이 생길 때마다 고백하면 말씀이 싸워 이겨 주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을 보고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지 않으며, 예수님을 믿는 생활은 복받은 생활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저는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을 많이 해서 소위 기복신앙을 전한다고, 잘못된 복음을 전한다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거짓이 아니요 진실이니 어쩌겠습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머리 둘 집도 없이, 그렇게 가난하게 사신 것은 바로 우리에게 부요케되는 복을 플러스 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플러스 인생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면 복을 누리며 살게 되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죽음이 다가와도 겁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예비하신 영생 천국의 삶이 우리를 위해 보장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 사는 영생의 삶이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은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고 기록합니다.

 

 2.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과연 어디일까요? 우리가 사는 삶 자체가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매일매일 지나가지만 매일매일 눈에는 안보이나 내 곁에 주님이 같이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돌보아야 되고 스스로 보호할 양을 야생 동물이나 도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야 되고 이탈된 양은 찾아와야 되기 때문에 절대로 양을 떠나는 목자가 아닙니다. 목자는 항상 양 곁에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우리와 나를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결코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같이 계심으로 더 가까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망의 골짜기인데 그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우리에게 주님이 오셔서 죄와 허물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께서 주시는 의로움의 옷을 받아 갈아입고, 보혈로 씻어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 2절로 3절은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기록합니다. 바로 진노의 자녀가 돼 마귀의 손아귀에 있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마귀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만 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질병과 저주도 예수님은 철저히 제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저주를 받아서 쫓겨났기 때문에 저주란 아주 무섭습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잘살게 되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는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실패하여 낭패에 부딪힙니다. 이 저주의 삶을 축복의 삶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에 달려 죽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라고 기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대신하여 나무에 못박혀 매달려서 우리의 저주를 청산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플러스 알파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죄와 허물도 겁나지 아니하고 질병과 저주도 겁나지 아니하고 사망과 음부의 삶도 겁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갈보리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주님은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해 주시고 바라봄의 법칙이 승리하는 것같이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뱀이 사람들을 물어 죽게되어 여기저기 쓰러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세가 만든 놋뱀을 쳐다본 사람마다 살아난 것처럼 이 세상에서는 예수님을 쳐다본 사람 모두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라봄의 법칙을 통해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으니, 어려울 때도 바라보고 슬플 때도 바라보고 외로울 때도 바라보고 고통스러울 때도 바라보고 답답할 때도 바라보고 좋을 때도 바라보고 기쁘고 즐거울 때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힘들 때는 큰 위로를 받고 기쁘고 즐거울 때는 더 큰 승리와 축복을 얻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에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이런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십니다.

 

 3. 원수의 목전에서 차려 주시는 밥상


 우리가 세상에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원수와 같은 관계가 생깁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그런 원수들은 쥐어박아버리고 고소하고 보복하기를 원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생각을 달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원수가 오면 그의 앞에서 우리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는 오히려 우리에게 밥상 가져오는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원수가 오면 그 원수가 우리에게 고통을 준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 차려진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우리는 전혀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기름을 머리에 바른다는 것은 일을 잘되게 만들어 성공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의 공격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만들어 주셔서 오히려 원수가 기절초풍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38편 7절에서 8절은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야훼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리이다 야훼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주님과 같이 있으면 우리는 버림받은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참된 즐거움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의 말씀대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굉장히 친밀하셔서 그림자가 몸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와 같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버림받지 않으니 전혀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처음 보혜사이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보내신 성령이 바로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에게 보내신 조력자’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님께서 조력자로 즉, 도우미로 항상 함께 계십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 속에 오셔서 거하십니다. 또한 그분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합니다. 영원이란 과거와 미래가 합쳐져서 지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인간적인 시간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그 영원의 시간동안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도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도와주십니다. 세상은 성령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은 마귀가 통치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도둑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고요하고 잠잠하게 우리의 생각과 심령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해놓으면 생각이 안정됩니다. 잠잠하고 조용한 가운데 성령님께서 플러스의 생각을 넣어 주시면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이 버림받아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이가 들어 은퇴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외로움입니다. 우리의 지위를 보고 찾아오던 사람들, 돈을 보고 따라오던 사람들도 결국은 다 떠나갑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정말 제일 무섭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가 천국에 이를 때까지 손잡고 함께 해 주십니다. 예수님 덕분에 외롭지 않고 마지막까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외로움과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


 마지막으로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이 있습니다. 시편 23편 6절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는 죽어서도 천당에 가서 영원히 살 것이므로 마지막까지 인생을 절대 긍정의 믿음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슬프다. 나는 고통스럽다. 나는 외롭고 죽으면 절망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기쁘다. 좋다. 행복하다. 나는 천국에 집이 예비돼 있다’라고 생각하며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28절과 32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와 같이 계시며, 우리를 죽을 때까지 아니 영원토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간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는 인본주의자는 패망하고 말 것이지만, 이 자리에 모인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예비된 천국으로 올라가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을 늘 마음에 새기고 기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시며 좋으신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기도-

 선하시고 인자하신 좋으신 하나님! 아무 힘이 없고 눈이 어두운 양과 같이 세상 가운데 던져진 우리를 목자같이 지키시고 동행하여 주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목자와 같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의 죄와 허물과 질병과 저주가 모두 청산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부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세상에서도 승리하며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예비된 천국을 소망하며 살도록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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