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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만남
2013.07.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중략)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5장 1∼11절

하나님과의 만남은 가장 중요한 최고의 만남
아담과 마귀의 잘못된 만남으로 비극 시작돼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위대한 화해의 능력 얻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부부의 만남, 부모자식의 만남, 형제자매의 만남, 이웃과의 만남, 원수와의 만남처럼, 인간의 삶은 피할 수 없이 만남으로 시작하고 만남으로 끝이 납니다. 이렇게 만남이 귀중하지만 우리들은 만남을 위해 어떤 특별한 노력이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좋은 대화를 위한 노력이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각종 크고 작은 큰 불화를 그냥 눌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에서도 부부간에 혹은 부모자식 간의 문제도 터놓고 만나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대충 눌러버립니다. 사회적이거나 국가적인 문제도 무시하고 쉽게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작은 불화가 정신적인 암이 되어 결국 파괴적인 힘으로 큰 슬픔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에서 절대적이고 중요한 만남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와 사랑으로 교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와 대화를 통해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늘의 새, 땅에 있는 짐승, 바다에 있는 고기, 사물을 다스리게 하자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큰 능력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최대, 최고, 최선의 것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찾고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43장 7절과 21절은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였으며, 요한일서 1장 3절은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과 생활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하나님과 사귀고 산다면 우리에게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넘쳐납니다.

 세상을 정복하려 했던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세계를 정복하고 황제가 되었지만, 엿새밖에는 행복한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단지 엿새 동안의 행복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전장에서 죽이고 전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생후 19개월 만에 성홍열과 뇌막염으로 평생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던 헬렌 켈러는 항상 “난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고 복합 장애 때문에 삶에 절망과 좌절이 넘쳤을 텐데, 그런 그녀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까요? 그것은 가정교사였던 앤 설리번 선생님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앤 설리번은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장애아인 헬렌 켈러를 어릴 때부터 잘 이끌어 주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자서전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설리번 선생님과의 만남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만남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어떤 부모이든지 어떤 형제이든지 어떤 친구이든지 어떤 스승이든지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 전체가 바뀌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만남을 통해 인생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만남 중에 가장 중요한 만남이요, 최고의 만남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신명기 33장 29절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야훼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러한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2.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

 우리의 인생은 불안과 불행, 슬픔과 고통이 다반사입니다. 그 시작은 바로 아담과 하와가 마귀와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잘못된 만남이 엄청난 비극을 부른 것입니다. 오늘날의 전문가들도 “현재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구며,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가에 따라 5년 후에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과만 대화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악한 마귀와 만나서 대화하고 그의 유혹을 받게 되니 결국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을 만날 때 좋은 사람을 만나야지 나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유혹에 끌려 들어가게 됩니다. 이처럼 아담과 하와는 마귀와의 잘못된 만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저주와 병과 가난과 죽음의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과 만나지 않고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은 목적이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누리고 재물도 많고 쾌락을 많이 얻고 누렸던 유대의 왕 솔로몬은 죽기 전에 전도서 1장 2절에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전도서 2장 22절로 23절에 보면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들의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그 누구도 세월의 무게를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월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이란 아무리 젊고 아름답게 시작해도 세월이 지나면 얼굴이 쭈글쭈글 해지고 목에 주름살이 생기고 허리가 굽어지고 팔다리가 늘어져 죽음을 향해 행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삶의 목적을 찾을 수도 없으며 인생은 허무하고 무의미합니다. 결국 절망과 죽음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이 교제를 나누어야 참 행복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되면 큰 슬픔과 불안과 고통 속에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젊을 때보다도 나이를 먹으면 마음에 변화를 다스리기가 더 힘들어집니다. 젊을 때는 그래도 마음에 여러 가지 고통을 다스릴 수 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으로 찾아오는 슬픔을 다스리기가 힘이 듭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간구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마음에 진정한 평안이 다가오지 인간적인 수단으로는 마음에 평안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충만하여 하나님과 늘 같이 있기를 힘써야지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에게 행복한 삶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와 그 나라에 속해 있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3.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마귀와 그의 나라

 현재 온 세상은 마귀의 정사와 권세가 지배하고 흑암의 세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은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고 기록하였으며,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뜻이 아닌 악령의 뜻을 쫓아서 인생에 불의를 가져오고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죄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이것은 ‘과녁을 빗나간 화살’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는 이 세상에서 정의를 빗나가게 만들고, 거룩함에서 빗나가게 만들고, 행복에서 빗나가게 만들고, 평안에서 빗나가게 만들고, 모든 것 다 실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죄를 덮어 씌워 모든 일에 실패하게 만들고,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여 슬픔으로 인생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8절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마귀의 종이 돼 자유를 잃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우리가 마귀의 종이 돼 온갖 더러움과 추함의 노예로서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불쌍히 여기셨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4. 우리와 화해하기를 원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려면 죄없는 인간의 탄생과 대속을 위한 죽음의 사역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없는 인간으로 이 땅에 태어나셔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3장 5절로 6절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700여 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의 대가를 자신의 고난과 죽음으로 몸소 지불한 것입니다.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악과 허물을 짊어지고, 우리의 질병과 저주를 짊어지고, 우리의 죽음을 짊어지고 그 아픈 십자가를 감당하고 그 모든 대가를 다 지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 열매를 받아 죄와 허물의 용서를 받아야 마땅하고, 병에서 고침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저주에서 해방되고 죽음 이후에는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이 땅에 내려와서 33년을 계셨고, 자신의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소 주신 이러한 은혜만큼 기독교 신앙에서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을 대가로 값주고 사놓은 것을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6절로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권세로 이제 마귀의 정권은 법적인 위력을 잃고 쫓겨났습니다. 정권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마귀의 정권은 물러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정권이 이 우주를 점령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마귀에게 속하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정권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2장 14절로 16절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우리는 모두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족이 화평하고 형제가 화평하고 이웃이 화평하고 원수가 화평할 수 있도록 보혈을 통한 화평의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5. 화해의 시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서 우리가 주앞에 나오면 하나님은 우리와 원수 되었던 담을 허물어버리시고 죄악을 다 멸해버리시고 우리를 품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예수의 십자가를 걸머짐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나타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와 화목되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장 18절로 19절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제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화목의 근원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기고 아버지는 우리를 품으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세상의 사람으로 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으며, 하나님과 우리는 원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하늘나라의 모습을 좇아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족함 없게 만들어 주십니다.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수는 항상 있고, 고난은 항상 다가오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 앞에서 오히려 우리에게 밥상을 차려주시고 우리를 만족케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니 외롭지 않습니다.

 로마서 5장 9절로 11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으니 화목을 이룬 사람마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매일 기도하고 간구하므로 기쁨을 요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화해의 십자가는 우리의 마음에 기쁨의 근원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를 통해 엄청난 사랑과 기쁨과 행복을 갖게 되었으니, 우리의 이웃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엄청난 사랑과 기쁨과 행복이 있으니 이웃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며 축복과 기쁨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너무나 크고 위대한 화해를 가졌으니 세상의 어떠한 불화도 끌어안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우리는 기쁨의 사람이요, 평안의 사람이며, 화해의 사람입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를 마음속에 모시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힘이 없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우리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굉장한 능력을 가진 성도들이 된 것입니다. 너무나 크고 위대한 화해의 능력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해봐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우리의 주변을 화목하게 잘 살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도록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지으신 은혜 너무나 감사합니다. 또한 악한 마귀와의 만남을 통해 당신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와 사망에 포로 되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니 그 은혜 말로 다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과 다시 화목되게 하시고 참된 화평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화평으로, 이제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 형제간에 그리고 더 나아가 이웃과 원수까지라도 함께 품을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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