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장 37절
누구든지 하나님 갈망하는 근원적 목마름 있어
고독과 외로움 치료해 주실 유일한 분은 예수님
주 이름 부르며 나오면 영·혼·육 삼중축복 얻어
모든 사람은 마음속에 근원적인 목마름인 고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듀크 대학의 메디컬센터 정신과 의사들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1974년까지 전직 미국 대통령 37명 가운데 절반가량의 사람들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심한 것이 ‘우울증’이었는데, 주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고독’이라는 것입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미국과 세상을 호령하고 다스리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 고독으로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처럼 대통령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고독의 문제에서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고독의 문제는 화려하고 인기 있는 삶을 산 사람일수록 깊이 느끼는 허무감입니다. 그 결과로 외로움이 가져다주는 슬픔과 허무감으로 세상을 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1. 아담의 범죄로 다가온 인간의 고독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을 때는 고독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할 것을 아시고 아담과 하와를 함께 지으시고 서로 대화하며 사랑하는 행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원래 아담과 하와에게 고독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짓밟고 자기들 마음대로 나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그 결과로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그 결과 고독이 저들의 영혼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수의 근원에서 끊어졌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서로 교제할 때 생명수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와 마음속에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하여, 땅에 살아야 될 아담과 하와가 가는 곳마다 땅이 그들에게 반발합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내고 괴롭힙니다. 그들은 이제 가시와 엉겅퀴에 찔리면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살아갑니다. 하나님과의 사랑관계가 끊어졌기에 고독한 이 땅에서 원수들이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이제 아담과 하와는 땅에서 화평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땅도 아담과 하와와 원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아담과 하와가 함께 잘살아야 되는데 부부간에도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죄를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 “아내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있어 부부간의 갈등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담도 하나님께 꾸짖음을 받았을 때 책임을 아내 하와의 탓으로 떠넘기며 변명을 했습니다. 그는 선악과를 따먹은 첫째 이유는 하나님이고 둘째 이유는 아내 하와라고 말했습니다. 아담은 “제가 언제 하나님께 하와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아내가 나를 꾀었기 때문에 그 꼬임에 내가 안 넘어갈 수 있습니까? 그녀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습니다”라고 변명을 하며 모든 책임을 하나님과 아내에게 다 떠넘겼습니다.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서로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후로 부부간에도 갈등이 끊이지 않고 두 사람이 함께 있어도 너무나 고독한 존재들이 돼버린 것입니다.
형제간은 또 어떤가요? 창세기에 보면, 아담의 첫 아들 가인과 둘째 아들 아벨의 제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 첫제사를 드릴 때 가인은 자기가 힘써 농사지은 농작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서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생 아벨은 어린 양을 잡아 태워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자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벨에게는 복을 주시고 가인에게는 복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가인은 화가 났고 심기가 아주 불편해 졌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직설적으로 “네 얼굴이 왜 그러느냐? 왜 화를 내고 있느냐?”고 말씀하시며 꾸중하셨습니다. 그러자 더 화가 난 가인이 아우 아벨을 아무도 없는 들판으로 불러내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렇게 형제간에 미움이 생기면 원수보다 더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에 사랑이 있고 이해와 동정이 있는 것이 당연한데 실상은 질투가 있고 살인까지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말미암마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도 원수가 되었고, 부부간에도 서로 논쟁으로 아웅다웅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식을 낳으니 형과 아우가 싸워 형이 아우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가인과 아벨이 이와 같은 슬픔을 가져왔으니 이제 집안 전체가 콩가루 집안이 돼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죄를 통한 삶의 질고를 물려받은 후손들인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부부는 부부대로, 형제들은 형제대로, 정말로 평화를 가지고 사랑을 하고 이해와 동정을 가지고 고독을 뛰어넘어 사는 것은 정말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 대인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모이면 서로 끄집어 당기고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처럼 평안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25편 16절로 17절은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라고 더 비참하게 심경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살펴보면 외롭고 괴로운 일이 너무 많고 마음에서 근심이 떠나지 않습니다.
요사이 황혼이혼이 많다고 합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가 2000년에는 1321건이었는데, 10년 후인 2010년에는 무려 4346건으로 많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남편이 퇴직한 후 부부가 함께할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간 살아오면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골이 깊어진 부부들이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부 사이에도 이해와 사랑 받고 싶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고 심하면 이혼이라는 파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 모두가 느끼는 정신적 감기인 고독
고독은 모두가 느끼는 정신적인 감기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42편 1절로 5절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결국에 우리의 목마름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을 찾기위해 갈망하지만, 그 속에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근본적인 해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근본적인 영혼에는 하나님을 찾는 갈급함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에는 근원적인 마음의 갈급함을 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만족은 없습니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말씀처럼 사람이 집을 짓고 가정을 이뤄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행복과 평안은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살아야지 하나님 없이 인간 홀로 행하면 고독은 한이 없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마음속에 한없이 이해와 사랑과 동정을 받고 싶은 목마름이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그렇고,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그렇고, 인간 상호 간에서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이해를 해주고 사랑해주고 동정해주기를 원하십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로 14절은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거룩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 다른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은 좋은데 이웃에게 이렇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알면서도 쉽지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곤고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마음에 선을 행하려 해도 육체가 악을 행합니다. 마음은 사랑하려고 해도 육체가 미워합니다. 마음은 평안하고자 하는데 육체는 평안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의 마음에도 갈등이 있고, 하나님과도 갈등이 있고, 부부간에도 갈등이 있고, 부모자식 간에도 갈등이 있고, 이웃 간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인간 세상은 어느 곳이든지 갈등이 있고 그 갈등으로 대화가 단절되어 결국은 누구에게나 고독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치명적인 고독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독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 마음에 기쁨과 행복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는 죄악의 담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써 청산해 주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서 천당에 가기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에도 행복하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행복의 조건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을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생명과 은총의 첫 번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생명수이신 사랑의 주님
영원한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 생명수를 통해서 우리 인생에 참 기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기록합니다. 아무런 대가없이 공짜로 마시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수는 끝없는 사랑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한없이 사랑받기 원하지만 그런 사랑이 세상에 있나요? 이 세상에서는 부모자식 간에도 부부간에도 형제자매 간에도 이웃 간에도 한없는 사랑이란 없습니다. 끝없이 주시는 한없는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해 죽기까지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측량할 수조차 없으며 한이 없는 이해와 동정과 용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미움, 좌절, 절망과 같은 쓴물이 솟아올라 평화가 없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면 쓴물이 달아지고 의와 평강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께서 물을 항아리에 채우게 하시고 그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잔칫상에 내놓았습니다. 예수님은 물도 순식간에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맹물은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만든 포도주는 최고의 향기가 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삶에 변화가 다가와서 향기롭게 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말씀에 취해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충만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으시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 중에 최상의 모습이 바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건져주는 장면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가르치시는데 사람들이 한 여자를 끌고 옵니다. 그녀는 머리채를 휘어 잡히고 신발도 벗겨져 울며 끌려와서 예수님 발 앞에서 던져졌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거기까지 그녀를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이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자는 돌로써 쳐 죽이라고 말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말을 듣고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온 하나님 아들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역습을 하려고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동기가 아주 나쁩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혔으면 상대방인 남자도 끌고 와야 하는데 왜 여자만 끌고 옵니까? 예수님이 가만히 그들을 살펴보시고는 그들이 손에 돌을 들고 이 여자를 반드시 죽이려고 작정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예수님은 엎드려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십계명을 적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그들의 죄를 적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8장 6절로 9절은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고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8장 10절로 11절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여자가 다시 범죄 할리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변화의 능력을 이 여자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죄도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를 비난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세상이 다 버려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해주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가 아닙니다. 의식도 아닙니다. 삶을 살기위한 절박한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와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구출하여 구원하시기 원하시며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 박사님은 자기 자신을 ‘평생 우물을 파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늘 알 수없는 갈증이 마음에 있었고 자신의 목마름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명예를 달라면서 글을 썼더니 명예가 생겼고, 돈을 벌려고 애쓰니까 돈이 생겼다. 또 병 때문에 병원에 다니니까 병이 나았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도 외로워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글을 봐도 마음은 채워지지 않고 ‘이 세상에 나 혼자구나’라고 느낌이 다가와서 절대고독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영혼의 목마름을 어디로 가야 채울 수 있을까?” 어떤 것으로도 자신의 목마름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그 갈증이 바로 진리에 대한 갈증이요 창조주에 대한 목마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우물을 파며 고독한 영혼의 광야를 통과한 후, 비로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샘물을 만났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렇게 진리의 하나님을 깨닫게 되니 목마름이 채워졌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절대로 하나님 이외에는 우리의 마음에 목마름을 채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수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처음과 나중을 책임지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되어 태어난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죽을 때까지 우리의 일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교육과 훈련만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책임져 주십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잘못도 사하여주시고, 우리에게 은혜의 생수를 부어주십니다. 그렇게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해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보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1장 6절로 7절에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목마른 자에게 끝까지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생수를 주시고 항상 우리 곁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마음에 외로움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에 아무것도 좋은 것이 없습니다. 겪어 본 사람은 외로운 것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러한 외로움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자격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진흙투성이가 된 그대로 받아 주시고 우리 마음속에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주님은 그 자체가 생수의 근원이요 사랑이며, 그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오면 우리의 삶은 구원받고 은혜와 사랑과 생수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수를 마시고 소생되어 희망찬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가 외롭고 괴로울 때도 떠나지 않고 우리와 같이 계시는 예수님 이 자리에 친히 와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속에 느끼고 평안을 느끼고 소망을 마음속에 갖고 살기 원하오니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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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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