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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2013.01.06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장 9∼10절

절망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영혼의 패혈증
우리 스스로의 행위로는 구원될 수 없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을 절망적인 존재라고 말합니다. 절망이라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칠 때는 쉽게 끌어 살려줄 수 있지만, 절망에 처한 사람은 어떤 힘으로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바로 “절망”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질병들이 많지요? 그 중에서도 패혈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혈관과 피가 썩어지는 죽어가는 병입니다. 그 같이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도 영혼의 패혈증입니다. 그렇게 절망이 영혼으로 들어오면 누구도 살릴 수가 없으며 그 무엇도 속수무책인 것입니다.

 무한에 대해 유한한 인간의 실존은 그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는 존재입니다. 불확실한 인간, 영원에 대해 덧없는 시간에 존재하는 인간은 이러한 자신의 근본적인 한계를 인식하는 순간 절망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해도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알아볼 것은 이렇게 허무한 인간이 도대체 누구이며, ‘나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겉사람

 성경은 우리 인간들을 가리켜 겉사람과 속사람이 합쳐서 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즉, 인간들은 모두 이중적인 인격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아서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느끼고 하나님처럼 보고 하나님처럼 듣고 살았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에 탐욕과 자존심이 들어오고 오만과 교만이 들어오자 인간의 인격과 삶이 갈라졌습니다. 선을 행하고 싶은데 악이 있고 잘살고 싶은데 못살게 하는 것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미움이 있는 이렇게 이중적인 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 기록합니다. 겉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겉사람은 육신의 사람입니다. 겉사람은 후패한 사람이요, 낡아지는 사람입니다. 겉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5장 19절로 21절은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의 일은 이렇게 육체적인 일이며 그것은 하늘나라의 일과는 완전히 상극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을 하면은 하늘나라를 얻지 못한다고 하니 우리들 중에 하늘나라로 들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겉사람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겉사람, 육신의 사람, 육체의 사람이란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사람이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으로서 인본주의적 인간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없는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온갖 부정과 부패의 노예가 되어있고 세상에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아 사는 존재이며 구원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는 부정하고 부패하고 가증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겉사람은 물로 닦을 것도 아니요 수양과 도덕으로 닦을 것도 아닙니다. 겉사람은 온전히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겉사람이 살아있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 죽어버리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모두 죽을 수 없으니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 죽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 것을 우리는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해주신 것을 믿고 의지해야 됩니다.

 우리 스스로 겉사람을 거룩하게 만들겠다고 일을 해봤자 실수투성이요 실패하여 절망감만 커질 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감당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구원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끌어안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만 믿습니다. 나는 할 수 없으니 주님만 믿습니다. 주님께서 온전히 책임져 주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주님은 기쁘게 우리의 할 일을 맡아서 해결해 주시고, 겉사람을 죽여 변화시키고, 속사람을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이루 말로다 형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속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들여 거듭나면 속사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거듭날 수 있을 까요? 한번은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율법학자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와서 “하나님께서 당신과 같이 계시지 아니하면 이런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없는 줄 압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장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습니까?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물은 회개를 말하고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자복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운 삶, 거룩한 삶, 깨끗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죄인임을 회개하고 자기 연약함을 고백하면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5절로 7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기록합니다.

 육으로 태어난 사람은 천 번 태어나도 육이요 영으로 태어나야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태어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온전히 영으로 태어나게 하는 중재자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끌어안으면 예수의 죽음은 곧 우리의 죽음이 되고, 예수의 부활은 곧 우리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죽음은 예수님을 통해 청산되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은 우리 안에 들어와 예수님의 생명은 곧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의 가장 위대한 점은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끌어안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 의지해서 우리가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치료받게 되고 축복받게 되고 영생복락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더 넘치게 흘러나게 되고 그 생명의 권능과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를 받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에베소서 3장 16절로 19절은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록합니다. 다시말해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예수님의 품에 안기면 그것을 통하여 놀랍도록 큰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찾아온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 됩니다. 예배는 온전히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자리입니다. 예배를 통해 예수님의 품에 안겨 위로 받고 격려 받고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는 2004년 UN이 선정한 ‘올해의 세계 지도자상’을 받은 흑인 지도자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참 비참하게 보냈습니다.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었는데, 그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남의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를 회상하며 그녀는 “단 한 번도 아버지가 나를 안아 주신 적이 없어요.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상처가 되어 그녀는 지금도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에 찬바람만 분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버지가 안아준 기억,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마디만 들었어도 인생이 얼마나 따뜻했겠는가 그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학자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기는 경험이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좋은 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의 정신신체학회에서 이런 발표를 했습니다. “안아주면 건강해진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아이들을 자꾸 안아주고 부부끼리도 자꾸 안아주세요. 상대방이 징그럽다고 버텨도 안아주세요.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큰 치료와 위로는 포옹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육신에만 해당되겠습니까?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속사람이 건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안아주심을 실제로 느끼고 체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행복이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부르면 하나님 사랑과 은혜에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쁨이 넘쳐나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속사람은 외부 환경이 아무리 편안하고 좋아도, 겉으로 많은 친구가 있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아도 외롭습니다. 목마르고 배고픕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오직 예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생명의 능력으로만 온전히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긍휼과 사랑으로 안아주실 때에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행복은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서 우리가 누리는 사랑과 행복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나는 누구인가?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은 신분증을 지녀야 우리 자신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누군지를 자기만 알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을 증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사람인 당신은 누굽니까? 우리는 교회를 왔다 갔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누군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누군지 알고 하나님도 우리를 아시고 마귀도 우리가 누군지 알아야 확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요? 성경에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찬찬히 살펴보면 의미가 깊습니다. 이처럼 속사람의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은 신앙이 탄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로 7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택함을 받고 예정 받은 사람이므로 우리의 신분이 얼마나 탄탄합니까?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옛날은 죄의 종이요 허물의 종이요 병의 종이요 죽음의 종이 되어서 질질 끌려 다녔지만 이제 우리는 왕입니다. 스스로 자기 위치를 알고 명령을 하고 다스리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을 주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찬양의 제사를 드리고 영광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의 제사를 기쁘게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로 7절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입니다. 또한 디도서 2장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의 백성, 예수님의 백성, 성령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고 하늘나라에 속해 있고 천사들이 우리를 둘러 진을 치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3차원의 세계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느끼는 세계 뿐만아니라 4차원의 세계 즉, 보이지 않는 생각 속에 꿈속에 믿음 속에 입술의 고백 속에 거하는 하늘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있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교제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장차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의 모든 상속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나라의 특권을 지닌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소망’을 모든 인간의 행위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힘이 바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힘이 임하면 우리 안에 소망이 들어옵니다. 소망이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성공의 비결은 소망을 잃지 않는데 있다”고 말했고, 헬렌 켈러는 “참된 소망은 모든 일을 가능케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으므로 우리 마음속에 아무리 소망을 꺼버리려고 해도 도무지 소망을 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께서 계시고 천국의 영광을 소유하였으니 어떻게 소망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좋아진다는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좋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루에 2만 5000마디 말을 하고 여자는 3만 마디 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 말 속에 소망의 말을 사용하면 할수록 소망이 우리에게 끌려오는 것입니다. 과거 죽을 수밖에 없던 존재였던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 종노릇하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빛 가운데 구원받은 존재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중생을 얻은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우리 앞에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몸소 체험하고 그 축복을 자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겉사람은 절대 절망의 사람입니다. 절대 절망의 사람인 우리는 이미 2000년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청산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속사람 즉, 영의 사람이 거듭나 살아나서 예수님과 하나가 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절대 절망에서 벗어나 절대 긍정의 삶을 살게 되었으며, 또한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이요,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요 소망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 소망을 가진 사람들인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사랑하시고 원해서 만세전에 예정하시고 택하신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인 것 또한 감사합니다. 오늘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이 자리에 온 사람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택함을 받아서 보냄을 받아 이 자리에 왔사오니 그들도 구원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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