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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2012.05.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야훼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야훼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야훼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창세기 4장 1∼8절

 

오직 피흘린 죽음만이 죄사함 가능케 해
아벨의 피흘린 제사는 겸손과 순종의 모범
예수의 보혈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의 보증

 카펫이 더러워지면 임시로 다른 천으로 덮어서 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카펫 전부를 세탁해야지 일부분을 가려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는 사망의 죄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아담이 그 죄와 사망의 역사를 짐승의 피로써 일시적으로 덮을 수는 있으나 영원히 그 죄를 덮을 수는 없습니다. 항구적이고 영속적인 해법은 아닙니다. 이처럼 구약시대에는 제사를 지낼 때 사람이 죽는 대신에 임시로 짐승을 잡아서 그 피로 덮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양의 새끼를 잡아 피를 흘리고 기름을 태워서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임시로라도 죄를 덮어 잠시나마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것입니다.

 

 1. 죄의 값은 사망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즉 죄는 죽어야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는 무섭습니다. 원래 죄의 근원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 천사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가브리엘, 미가엘, 루시퍼를 세 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가브리엘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장이고 미가엘은 전쟁하는 천사고 루시퍼는 찬양하는 천사입니다. 이 루시퍼가 교만해져 ‘내가 하나님께 찬양 드릴 이유가 무엇이냐? 하나님과 나도 똑같아 질 수 있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똑같이 좌정하여 우주를 통치하고 천사를 다스리는 자가 되겠다는 잘못되고 교만한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죄악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루시퍼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과 순종의 마음을 품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섬기고 하나님과 대등하게 행동하려다가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도 똑같이 꼬여내어 선악과를 범하게 하였고 오늘날도 반역의 흑암의 왕궁을 세운 공중권세 잡은 원수 마귀가 되어 공중에 진을 치고 하나님께 대적하고 거역하며 온 인류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기록합니다. 공중에 권세를 잡고 거기에서 온 세상의 믿지않는 사람들을 손에 잡고 죄악을 짓도록 이끌어 가고 있는 원수마귀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처음 지음을 받을 때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지위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그의 타락이 그 무엇보다 더 무서운 비극을 가져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영원한 하나님이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으로 인간인 우리를 창조하셔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에 순종해야 되는데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거역했으니 그 대가는 사망이요 죽음입니다. 죽음은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이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과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데 아담과 하와는 순종치 아니하고 악한 세력을 가진 원수 마귀의 꾐을 받아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좋다’ 그리고 ‘나쁘다’ 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 주권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눈에 아무리 좋게 보여도 하나님이 좋지 않다 하면 좋지 않습니다. 사람 눈에 아무리 나쁜 것 같아도 하나님이 좋다면 좋은 것입니다. 그게 바로 선악과의 시험인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마귀는 “먹으면 너도 지혜를 얻어 하나님처럼 되니 좋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쁘다는 것을 아담과 하와가 거역하여 따먹었으니 결국 하나님과 대결한 것이 되어 축복의 땅 에덴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그렇게 반역을 택하여 스스로 옳고 그름을 결정했던 아담의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쫓겨난 것입니다. 그 후에 육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제 피흘림 외에는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대리 죽음과 피흘림을 통해서 일시적으로 우리의 죄를 덮고 하나님께 나갔던 것입니다.

 

 2. 가인과 아벨의 제사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의 차이는 바로 그것에서 다른 것입니다. 가인은 ‘내 마음대로 제사 지내면 되지 하나님이 무슨 그렇게 잔소리가 많아. 내가 제사 드리면 그냥 받으십시오. 농사지어 좋은 곡식으로 제사 드리면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주십시오’라는 교만하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피로써 죄를 덮어야 한다’는 말을 마음에 두고 양을 잡아 피를 흘려 죄를 덮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아 주시고 가인의 제사는 물리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순종의 제사를 드린 아벨을 사랑하고 가인을 싫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가인은 화가 나서 아벨을 들에서 몰래 돌로 쳐 죽였습니다. 결국 가인은 살인죄를 지은 것입니다.

 인본주의적으로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불순종한 마음으로 드린 반역의 제사, 선악과에 대한 회개가 없는 제사,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사는 믿음과 순종의 제사입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다”고 했는데 창세기 4장 4절에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야훼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선악과를 따먹은데 대한 철저한 회개를 위해 어린양의 피를 준비하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것을 순종해서 자기를 대신해 양을 잡아 죽여서 피를 흘려 하나님 앞에서 그의 진노를 잠시 동안 덮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 나갈 때마다 각종 피흘리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3.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

 구약시대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먼저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속죄제사로 자신의 죄를 덮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인 원죄와 자범죄를 모두 덮어야 하는데 속죄의 제물 없이 하나님께 아무도 못나갔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는 언제나 하나님께 나가려면 속죄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속죄제사는 성경에 분명히 기록된 속죄받기 위한 제사로 의무적인 제사입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은 제사드릴 때 꼭 세 가지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 첫째가 반드시 드려야 되는 속죄제입니다. 두 번째 제사는 개인의 죄를 청산하는 속건제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즐겁게 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번제입니다. 피흘림이 없는 제사로는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죄는 피를 흘려야 청산되는 것입니다. 원죄와 자범죄 모두 피를 흘려야 용서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기쁘심을 주는 것도 피를 흘려서 제물을 드려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짐승의 피도 인간의 죄악을 임시방편으로 가릴 수는 있으나 죄를 씻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카펫이 더러워졌는데 임시로 작은 것으로 덮어 놓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완전히 빨지 않고는 카펫이 깨끗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예수님의 보혈로 씻기 전에는 일시적으로 짐승의 피로써 덮어 놓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로 9절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속죄제, 속건제, 번제는 할 수 없이 일시적으로 사람들과 하나님이 교제하기 위해서 드리기 위해 흘린 피라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제사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이 지은 죄를 짐승의 피로써 어떻게 청산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죄는 사람이 씻어야 되는데 우리 죄를 위해서 죽어줄만한 깨끗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해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을 우리는 감사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자꾸 더 깊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끝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으면 다 청산해 버리고 캐묻지 아니하시고 뛰어나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께 얼마나 감사해야 할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4.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는 아벨의 제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짐승의 피를 흘려서 하나님께로 임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려 영원히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타종교는 가인의 제사인 것입니다. 기독교 이외에 다른 종교는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나가고 자기 마음대로 구원받겠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또한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기록합니다. 피흘림이 없이 오는 것은 가인의 제사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제사를 통해 죄사함을 주시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기록합니다. 아벨의 제사를 완성한 예수 그리스도 이름 이외에 어떠한 이름도 우리 죄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죄가 없는 자가 죄인을 대신해서 죄를 청산할 수 있는데, 이 세상에 죄없이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죄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죄없이 33년 동안 살다가 우리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되어서 대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외에는 온 인류를 구속할 대속자가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로 18절에 보면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기록된 것처럼 십자가에서 한번 드림으로 우리를 영원히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라고 기록된 것처럼 영원이라는 것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합친 것이 영원인데 예수님의 유일한 제사는 우리의 영원한 과거의 죄를 다 청산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함을 선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선악의 절망의 저주를 다 청산하시고 생명이신 예수님을 먹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선악과를 따먹은 절망으로 인한 저주를 예수님의 보혈로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도 다 청산하시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병들었던 것도 주님이 다 청산하시고 죄지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것도 다 청산하신 것입니다. 이제 삼중저주는 떠나가고 예수님을 통해서 삼중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도 잘되고 육신도 강건하게 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역사를 예수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모두 다 덤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5절로 58절에 주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면 살을 떼서 주시고 피를 흘려 먹이시겠다고 하셨겠습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기고 피를 흘린 것은 그 살을 우리에게 먹이고 피를 우리에게 마신다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 살때부터 벌써 천국이 임하여 천국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의 죽으심을 통해 흘리신 피의 절대적 승리는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절망을 다 청산해버렸기 때문에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희망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허물에서 씻음을, 병에서 고침을, 저주에서 해방을, 죽음에서 영생을 주시는 희망인 것입니다. 그 변치 않는 희망이 우리의 기쁨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신앙 즉 희망, 예수 안믿는 것은 절망 즉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찬 꿈을 가지고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기독교를 ‘피의 종교’라고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가 온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 곧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종교’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기록합니다. 너무 큰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에 쉽게 우리를 버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그 모진 고통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했기 때문에 우리를 붙잡고서 놓지 않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화평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이제 예수의 보혈로 화목되어 언제나 우리를 환영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치료하시고 생활을 바꿔주시고 육체를 치료하시고 우리의 짐을 져주시는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6장 47절로 48절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그 생명의 떡을 먹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어서가 아니라 바로 지금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선악과의 절망의 저주를 청산하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교만은 다 청산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내 마음대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인간 기준의 인본주의는 청산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사망은 다 철폐되었습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으면서 주님 품에 사는 것입니다. 이제 두 손 들고 나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사랑하며 하나님과 하나 돼 하나님 안에 우리가, 우리 안에 하나님이 함께 사는 영원한 존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할 제사는 순종의 제사임을 깨닫습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까지도 내려놓고 유일한 정의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삶의 제사를 드리는 성도가 될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힘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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