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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
2012.04.0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중략)…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장 12∼20절

 

아담의 타락 영혼·육신·환경 삼중저주 불러와
십자가는 마귀 향한 선전포고와 결전의 장소
예수 부활로 죄와 마귀 폐기처분돼 삼중축복 열려


 2천년 전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의 극형을 당하여 죽으신 예수님께서 아리마대 부자 요셉의 무덤에서 장사 지낸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복음은 2천년 동안 온 세상 끝까지 전파됐고 사람들은 주님을 그리고 구주로 경배하며 믿고 찬양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마스 아놀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보다 완전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실들이 인류 역사 가운데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톤 경과 길버트 웨스트는 예수님의 부활과 바울의 변화를 거짓말이라고 반증하기 위해 연구하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어 자신들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우리에게 그처럼 중요한 것일까요?

 

 1. 아담의 타락과 마귀의 다스림

 태초에 인간에게 주어진 세계는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지배아래 떨어져 사망의 권세 잡은 마귀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의 죽음과 죄악의 노예로 전락한 비참한 존재인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우리를 굉장히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 놓았는데 스스로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너무나 비참한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죽음과 죄악의 노예가 되어 마귀가 시키는 대로 끌려 다닙니다.

 마귀는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을 반역한 죄악의 존재로서 아담을 유혹해서 자기와 똑같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교만한 죄를 짓게 만든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은 영혼의 죽음과 노예 뿐 아니라 육체의 질병과 죽음도 가져왔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원래 우리는 죽지 않을 몸을 얻었는데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찾아 왔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몸이 흙으로 돌아가자면 늙고 병들어야 되기 때문에 병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질병의 고통은 죄로 말미암아 왔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저주를 받아서 하는 것마다 고통을 당해 결국 인간의 삶이란 절망의 삶이 되고 만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란 사형 언도를 받은 죄수가 감방에서 밖을 내다보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 세상을 큰 감옥으로 비유하면 한 사람 두 사람 내 이웃이 죽음이라는 사형장에서 처형 당해서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은 빈부귀천 남녀노유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은 그 영혼이 죽고 세상은 마귀의 다스림을 받게 되고 그 이후 인생은 육신의 질병과 죽음, 가난과 저주와 절망의 삶 가운데 떨어져서 노예 생활을 하며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누구든지 죄의 절망에 빠졌고 삶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대답이 없고 죽음의 절망에 허무하게 사라지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이와 같이 아담의 자손들이 절망에 빠져서 헤어나갈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영원의 옷을 벗고 인간의 시간 속에 뛰어 들어와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사망의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우리는 죄 값으로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죄 값을 지불하자면 누군가 대신 죽어야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 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다 책임지고 고통당하고 죽으셔서 청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결과로 대가없이 우리에게 용서와 의로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가 가지고 있던 큰 열쇠인 죄와 허물을 청산하셨고, 그 다음에는 병과 저주를 청산하셨습니다. 마귀가 타락한 인류를 잡고 있는 또 한가지 절망의 고리가 병과 저주인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저주를 받아서 허덕이고 고난 받게 합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병을 가져오고 저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병과 저주를 청산해 버리면 마귀가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또 다른 열쇠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로마의 군인들에게 끌려가서 채찍에 맞았습니다. 집채 만 한 체구의 군인들이 엄청나게 단련된 체력으로 채찍을 가지고 번갈아 가면서 예수님을 때립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매를 맞은 것은 우리의 모든 병의 고통을 위해 철저히 맞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법적으로 2천년 전에 이미 다 청산된 것입니다. 다 고침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과 저주를 통해 마귀가 더 이상 우리 위에 군림할 수 없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부요하신 예수님이 그렇게 가난하게 된 것은 우리 때문에 그렇다고 이처럼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의 가난을 이미 다 청산하고 “내가 너 때문에 가난해졌으니 너는 가난하지 말아라.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고 또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복은 우리의 복을 이웃과 나누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을 받은 것은 사명을 가지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라고 주신 복이니 나누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복을 구해야 됩니다.

 로마서 5장 21절에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해서 지옥에 불타게 만들었으나 예수님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생하도록 천국에 영생하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사망은 철폐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썩지 않고 영원한 삶을 사는 은혜가 이제 우리에게 확실하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마귀가 죄를 빙자하여 우리를 포로로 잡았는데 죄가 청산되어 버려서 이제 더 이상 잡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허물과 병을 빙자해 잡고 있었으나 허물도 병도 예수님이 갚아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저주 받았으나 저주와 실패와 가난을 빌미로 해서 우리를 잡고 있었으나 예수님이 가난해져서 저주를 받아서 다 청산해 버렸으니까 그것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사망과 음부로써 잡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서 음부에 내려가서 사흘만에 다 청산하고 부활하셨으니 그것으로도 이제 잡을 수 없습니다. 이제 마귀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청산하시고 병과 저주를 물리치시고 죽음과 음부를 이기시고 그리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완전히 이기셨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마귀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3. 십자가의 결전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게 하여 대속제물 됨을 포기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8절로 19절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끝까지 견디시고 죽으심으로 첫 아담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다 갚으시고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승리하시고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해서 마귀는 참패했습니다. 인류를 잡고 있는 모든 조건이 다 십자가에서 철폐되고 만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밝히 벗어버려 승리하시고 해방과 자유를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보다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이 십자가입니다. 자다가 깨나도 십자가, 일어서나 앉으나 십자가, 십자가에서 우리가 변화를 받고 새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4절로 15절은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불리하게 하고 정죄하는 법조문과 증서를 지워 버리고 제하여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를 다스리는 마귀들, 통치자들, 권세자들을 무력화 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고 삼았습니다. 주님은 거기에서 완전히 100% 이기시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마귀를 100% 이긴 것입니다.

 

 4. 부활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새 조상이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로 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가 충분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절로 6절을 살펴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 무덤에 가서 예수님 몸에 향유를 부으려고 가니 무덤문이 열리고 천사가 그 돌 위에 앉았는데 지키던 군인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되어서 도망을 치고 무덤 안에 이편저편 천사들이 앉아서 “너희가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구나! 예수님은 살아나셨다!”고 한 첫 증언으로 시작해서 주일 이른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났고, 안식 후 첫날 저녁 모인 제자들에게 나타났고 제자들이 모였을 때 의심하는 도마에게 나타나셨으며, 갈릴리 바다에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에게 그 다음에는 500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고,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감람산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나시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타난 증거는 성경에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가장 놀라운 증거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이 복음이 온 천하만국에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이 지상에서 2천년 동안에 만국에 전파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 성령이 와서 우리 가운데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계시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확실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부활하사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이란 안믿는 사람의 죽음과 다릅니다. 안믿는 사람의 죽음이란 지옥에 가는 죽음이고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란 천국가는 죽음입니다. 육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영생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죽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이 내 부활과 내 생명으로 내가 이 땅에 살다가 예수님이 승천한 것처럼 몸을 벗어버리고 속사람으로 승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로 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늘에 있는 우리의 산소망은 썩어지지도 아니하고 쇠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는 유업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 놓아도 100년이 넘으면 다 썩어지고 낡아지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도 썩어지고 낡아지고 더러워집니다. 이처럼 육신의 장막집은 물질로 되어있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게 되면 별도리 없이 썩어지고 더러워지고 쇠하여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산소망이 있습니다. 천국에 올라가면 우리 영혼도 썩어지거나 더러워지거나 쇠하여지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천국은 썩어지거나 쇠하여지거나 더러워지지 않는 영원한 영광스러운 세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와 사망, 율법과 정죄, 절망과 지옥을 영원히 이긴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들을 모두 폐기처분해 버린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 힘으로 해방이 안됩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악과 죄를 청산시키고 욕심과 탐심을 없애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7절로 18절에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기록합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옛날에는 마귀가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주님이 빼앗아서 주님 손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로 55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기록된 것처럼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세는 마귀에게 있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죄도 마귀도 절단강산이 되어 다 폐기처분 당했으니 이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이기시고 성령의 열매를 가지고 오신 주님은 영원히 지금 우리와 같이 계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서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옛날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시간을 떨치고 영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영원은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습니다. 영원은 온 천지가 영원이요 공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수님은 영원히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는 그 능력을 가지고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은 우리를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50년 동안 목회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앙상담을 하러 찾아와서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각종 질병 때문에, 장애가 있는 자식 때문에,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가정형편 때문에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을 때,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니 주님께서 그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을 고통에서 모두 건져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예수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서 우리와 같이 계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버림받지 않았습니다. 혼자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목자가 되신 주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시며 지금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굳게 믿으며 나아갑시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몸찢기고 피흘리게 하시고, 또 우리의 사망과 질병과 고난을 완전히 청산하기 위해 그분을 다시 부활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죽음! 나의 죽음! 예수 부활! 나의 부활!”이라고 담대히 고백하며 아직도 그 놀라운 은혜를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전하길 원합니다.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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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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