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 1장 2절
하나님 지으신 최고의 걸작품, 인간
마귀에 속아 영혼육 삼중재앙에 빠졌지만
예수 보혈 공로 의지하면 삼중축복 회복 돼
우리는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아야 어떻게 살아갈 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경험하는 고난의 의미와 예수님 안에서 주신 생명의 언약을 알면 담대한 믿음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는지를 알고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면 우리는 마음에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종교개혁가 칼빈(J. Calvin)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가 누군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 자신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자세히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1.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
첫째,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사람은 짐승과 같지 않습니다. 미생물에서 진화되어 원숭이가 사람이 됐다고 하는 진화론자처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로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돼있습니다. 두 가지 사항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것입니다.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운명과 환경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됩니다. 운명과 환경에 지배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운명과 환경을 정복하고 다스려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근본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도전하는 범죄와 행위를 했기 때문에 형벌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동산 모든 실과는 다 먹어라. 에덴의 낙원이 너희 집이다. 지구상에 너보다 위대한 존재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다. 동산의 모든 실과는 다 먹되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명하셨습니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좋다’ 혹은 ‘나쁘다’를 결정하는 주권행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주권행사는 하나님만 하신다. 너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믿고 순종하고 따라야 된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너무나 위대하게 지으셨고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권을 주신 이상은 선악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람은 하나님의 선택권에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선악과를 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와서 하와를 꾀었고 결국 아담과 하와는 둘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했습니다. 먹지 말라고 한 것을 먹었고 하지 말라는 짓을 했으니 하나님과 대항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로 그들이 받은 형벌이 무엇입니까? 먼저 영혼이 죽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영혼이 죽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던 에덴동산에서는 쫓겨나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황폐해진 땅을 개간해 먹고 살게 돼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흙으로 돌아가면 곱게 돌아가는 것입니까? 몸이 흙으로 돌아가려니 온갖 병이 들고 온갖 고통을 당하고 결국 몸이 무너지고 주저앉아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죄악과 정죄에 짓눌리고 인간 삶은 허무와 무의미에 짓밟히고 죽음과 무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살다가 결국 흙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
참으로 절망적인 선언 아닙니까?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해서 영혼도 죽고 범사에 저주를 받고 흙으로 돌아가 사라지게 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우리는 마귀가 하는 일을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 도적이 누구입니까? 마귀가 바로 도적인 것입니다. 마귀는 원래 ‘루시퍼’라는 하늘나라의 천사장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름다운 천사장이었는데 자기의 아름다움에 도취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고 하나님께 도전하라고 말한 것처럼 자신도 하나님께 도전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똑같이 하늘보좌를 깔고 하나님과 똑같이 통치권을 행사하겠다고 해서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입니다. 그때 하늘천사 3분의 2를 데리고 쫓겨난 것이 오늘날 사탄이요 그 한 패들이 마귀인 것입니다.
2. 마귀가 하는 일
둘째, 마귀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직접 대항해서 훼방은 못합니다. 하나님께 감히 마귀가 어떻게 도전을 합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가슴에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어찌하든지 고통을 주기 위해서 간접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성경에 나오는 욥에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 찾아와 사고와 재난, 질병과 사업 실패 등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욕하게 만들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미 타락해서 죄의 노예가 되고 허물의 노예가 되고 질병의 노예가 되고 저주와 가난과 고통의 노예가 되고 죽음과 멸망의 노예가 됐습니다. 마귀는 이 타락한 열매를 가지고서 그것을 증폭시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절대 마귀는 우리에게 좋은 일 안합니다. 그러니 정말로 나쁜 마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동기에서라도 우리를 나쁘게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좋게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유를 통해 말씀하기를 “자식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자가 있겠는가.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 줄줄 알거든 하물며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주지 않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이해할 때 ‘좋으신 하나님’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은 시편 23편 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평생에 나에게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이다. 좋은 하나님, 자비로운 하나님이요, 나쁜 하나님이 아니다”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떠한 역경에도 강하고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41장 10절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는 항상 이런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을 가지고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셋째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둘째 아담으로 즉 마지막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둘째 아담, 왜 아담이라고 하는 걸까요? 인간의 조상인 첫 아담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왔으니 예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사망의 빚을 짊어질 것을 이사야 53장은 예수님 탄생 약 700여년 전에 이렇게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 형벌을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깊이 생각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구원과 성령 충만을 주시기 위해서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지 않고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을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은 것은 주님이 우리를 찾아와 우리의 죄를 대신 끌어안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엄청난 사랑인 것입니다.
디도서 3장 6절로 7절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냥 구원한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십자가에서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그냥 내버려 놓은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진 부자 중에 부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가난을 자원하셨고, 그 결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저주는 철저히 청산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에게 저주는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가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 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짐승을 기르면 짐승의 새끼가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예수님 안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믿어야 됩니다.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저주와 상관이 없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저주를 청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질병을 대속하시고 건강과 장수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4. 우리가 해야 할 일
넷째로 우리가 해야 할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진리를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처럼 예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놓아 주시고 질병에서 대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삼중축복을 받은 사람, 전인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이며 이것이 우리의 반석입니다. 이 반석에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가슴으로 끌어안아야 됩니다.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며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는 이 진리를 끌어안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슴에 끌어안아야 됩니다. 힘차게 끌어안아야 됩니다. 바람에 불어도 흔들리지 말아야 됩니다. 이 진리는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는 꿈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진리를 확실히 알고 참된 자기 모습을 거울 보듯 상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모습은 초라하고 형편없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으며 내 환경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이 땅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비하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는데 우리는 무엇을 바라야 할까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그 모습을 우리도 바라고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인구원을 확실히 믿고 침노해야 됩니다. 절대로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말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우리가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져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우리부터 뿌리가 뽑혀서 흔들흔들하면 누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잘돼야 남 잘되기 위해서 기도해 줄 수도 있고 우리의 범사가 잘돼야 가지고 있는 것 나눌 수 있고 우리가 건강해야 하나님 사업도 활동적으로 감당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은 항상 말씀에 뿌리를 둬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믿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길 원하셨으니 그대로 해주시옵소서! 이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몸 찢고 피 흘려서 죄를 사하시고 몸 찢고 피 흘려서 저주를 사하시고 몸 찢고 피 흘려서 질병을 도말하셨으니 주님이시여 주의 피 흘린 대가를 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믿습니다!” 이렇게 힘차게 믿음으로 붙잡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했으므로 입술로써 부인하면 안됩니다. 입으로써 늘 긍정적인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살고 죽는 권세가 혀에 있으니 혀를 사용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술로써 이 단순한 말씀을 고백하십시오.
우리는 입술의 고백이나 말을 통해서 자신의 환경과 운명을 창조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입술의 고백으로 우리의 천지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3절의 말씀이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그 자체로써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배후에 하나님 말씀이 있어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은 천지를 지으실 뿐 아니라 천지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리는 것이요, 건강도 다스리는 것이요, 생명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와 누구를 통해서 일하십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안보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안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마음속에 말씀이 들어와서 우리를 통해서 이 말씀이 밖으로 나가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무엇으로 알 수 있나요? 바로 생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이 어떠하면 마음이 그러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뭘 믿는가를 보면 마음이 어떤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무슨 마음인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통해서 그 사람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꿈꾸는지 무엇을 믿는지 무엇을 말하지를 통해 우리 자신이 누군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생각에다 담아 놓고 말씀을 통하여 꿈을 꾸고 말씀을 통해서 믿고 말씀을 통해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새날을 맞이해서 마음을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고 흐트러져 있으면 마귀가 욥을 시험하듯이 우리 끝까지 시험하는 것인데 복잡하게 하지 말고 안 보이는 말씀이 인간의 마음을 통하여 나타나기 위해서 생각과 꿈과 믿음 고백을 말씀으로 채워 놓으면 우리는 이 1년을 평화롭고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2012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마음에 품고 꿈꾸고 입술에 고백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의 삼중고가 해결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영과 혼과 육의 고통을 이기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올 한해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며 살겠습니다.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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