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 7장 14절
오랜 예언의 성취 그리스도의 탄생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이 되심
크리스마스 최고 선물은 바로 예수님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확실히 차원이 다른 점은 구원을 얻기 위해 해탈과 도덕적인 훈련과 공부와 명상과 고행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주님께 나와서 믿기만 하면 예수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도를 가르치는 선각자나 선생이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구원이십니다. 예수님은 2천여 년 전에 우리의 구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과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셨다 부활 승천하셔서 구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인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기념일입니다.
1.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탄생은 미리 예언된 것입니다. 주먹구구식으로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주의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 오시기 전 700여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성도 이사야 9장 6절로 7절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보통 어린 아기가 아닙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야훼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갓난아이를 강보에 싸서 엄마가 안고 있는데 그 어린 아기를 보고 ‘당신은 이름이 기묘자요, 모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시오, 평강의 왕이라’고 해 보십시오. 기막힌 일 아닙니까? 상상을 초월한 일입니다. 기묘자라는 것은 기묘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통 사람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묘한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말하시는 것입니다. 모사는 지혜의 근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린 아기를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영존하시는 아버지, 우리와 나를 지으시고 있게 해주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평강의 왕,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전쟁을 그치게 하고 싸움을 그치게 하고 평강을 가져오는 임금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 이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어린 아기가 없습니다. 예수 이외에 이와같은 이름을 갖고 태어난 이가 없었고 이것도 예수님 탄생 700여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된 일인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사야 32장 2절의 말씀은 굉장한 위로가 됩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라고 기록합니다. 광풍을 피하는 사람, 폭우를 가리우는 사람이 바로 그 어린 아기였다는 것입니다. 마른 땅에는 냇물 같은 분이고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 같이 그림자가 이루어지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2. 예언의 성취
예수님의 탄생은 예언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취가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성취됐습니다. 막연히 상징적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2천 년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로 25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칭찬할 만합니다. 그의 약혼녀가 아무리 성령으로 잉태했다해도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얻을 모욕과 정죄의 시선을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몸서리칩니다. 그런데 밤에 꿈속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 사연을 설명하니까 두말하지 않고 그 천사의 말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은 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왈가왈부 말을 하고 이유를 대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인간이 하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수하게 따르는 사람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해할 수 없어도 무조건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실 요셉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믿고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리고 와서 무사히 해산하도록 전력을 다해 도운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호적시행령으로 인하여 사람들로 붐비던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제일 먼저 누인 곳이 짐승의 여물통이었습니다.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물통에 누인 것은 모든 인류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 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도 부드러운 자리에 눕지 못하시고 짐승의 여물통에 누우신 것입니다. 그때에 들판에서 양무리를 치고 들판에 양무리 사이에서 잠을 자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예수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목자들이 달려와 아기 예수께 경배했습니다.
목자들만 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한 것이 아니라 동방박사 세 사람도 방문했습니다. 동방박사는 아마도 오늘날 이란이나 이라크에 있는 박사인데 이 사람들은 베들레헴까지 오는데 몇 달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들 앞에 나타난 별은 벌써 몇 달 전에 그들을 이끌어 인도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쯤 되어서 그들이 유대에 도착해 제일 먼저 헤롯궁을 찾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까 틀림없이 임금님의 궁전에서 태어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헤롯이 놀라 반역자가 태어날 것을 생각하고 이 사람들에게 만일 그 아기가 태어난 곳을 발견하거든 내게 말하면 나도 가서 경배하기를 원한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왕궁에서 나오니까 별들이 또 인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간곳이 짐승의 우리에서 말구유에 누워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들이 가져온 선물을 드렸습니다. 유향과 황금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황금은 임금을 상징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태어날 것을 상징한 것이고 유향은 미래를 예언하는 선지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몰약은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제물이 될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들이 이미 주님께 드린 선물이 임금이요, 선지자요,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는 희생양인 그리스도가 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들의 꿈에 하나님 사자가 나타나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마라. 다른 길로 고향으로 가라”고 했고 그후에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서 ‘빨리 이곳을 떠나라. 헤롯이 어린 아이의 생명을 찾는다’ 그래서 어린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어린 아기를 어느 정도 길렀는데 그 세월은 얼마나 걸렸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기적적인 탄생입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난 것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예언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태어난 장소의 예언대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목자들이 와서 경배한 것은 예수님이 목자장이기 때문입니다. “야훼는 우리의 목사시니 우리가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처럼 목자장이기 때문에 일반 목자들이 와서 절을 했고 그 다음 동방박사들이 와서 예수님의 생애를 예언적으로 미리 선물한 것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어서 왕이요, 선지자요, 희생제물이 될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오늘날 우리의 구원과 희망의 빛으로 오셨음을 믿고 깨달아야 합니다.
3. 구원과 희망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을 대신해 새로운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종교지도자로 온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로운 혈통을 주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인류의 새로운 조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 45절로 47절에는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으로서 예수님 이후에는 인류 조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첫 아담은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왔으나 마지막 아담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어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생명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병든 적도 없습니다. 저주받은 적도 없습니다. 죽을 필요가 없는 분인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제물이 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통해서 놀라운 것은 새 생명을 받을 뿐 아니라 새 생명의 보혜사인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예수 믿는 사람에게 주셔서 성령이 온 증거로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로 16절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기록되었으며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는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증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성령이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다 그 속에 성령이 들어와 있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그 속에 마귀의 영이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영이 들어와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끌고 가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이 들어와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믿음, 소망, 사랑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전인치료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우리 마음속에 쓴물이 가득합니다. 왜, 이 세상에 살면서 늘 쓴물을 마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악의 쓴물을 마시고 미움과 원한의 쓴물을 마시고 질병과 고통의 쓴물을 마시고 저주와 가난과 낭패와 실망과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의 쓴물을 마시고 죽음의 공포와 좌절의 쓴물을 마십니다. 천지가 쓴물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쓴물이 가득하므로 불행합니다. 이 쓴물을 달게 해보려고 우리는 얼마나 애를 씁니까? 지위, 명예, 권세, 돈, 교육, 아름다운 집, 좋은 옷, 좋은 환경을 만들어서 쓴물을 없애려고 하는데 쓴물이 없어집니까?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병이 듭니다. 그런데 병이 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병을 이기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병을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매일같이 싸워서 이겨 병을 극복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의 쓴 물도 달게 해주시고 육체의 질병에서도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영원한 영적인 치료와 육신적인 건강과 환경에 가시넝쿨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해 아브라함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고 번창케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과 성령 충만을 항상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시므로 음부와 지옥을 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망과 음부에서 천국 낙원으로 가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기록합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천국에 올라오는 당신의 자녀들의 거처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앙에서 승리하려면 목표가 분명해야 됩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결코 승리 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롭게 된 모습을 항상 마음속에 상상 하십시오. 늘 꿈꾸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물러나지 마십시오. 한발자국 물러나면 두발자국 전진하고 두발자국 물러나면 세발자국 전진하더라도 물러나면 안됩니다. 물러나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강하고 담대하고 용감하게 말하십시오. “할 수 있다”고 말하십시오. “이긴다”고 말하십시오. 나는 “안 죽는다”고 말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십시오.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절대로 패배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통해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떠나서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필요하고 우리와 함께 주님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무효가 되지 말고 효과를 발생하도록 해주시기 축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곤비하고 참담한 땅에서 고통 받을지라도 십자가를 생각하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새 생명을 얻으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얻고 육체의 질병에서 치료 받고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각오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 다 잃어버려도 보배인 성경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죽음에서 다시 부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인간이 황무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을 받아들인 우리의 생각과 꿈과 믿음과 긍정적인 고백만 있으면 하나님이 그 가운데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하나님은 변하지 아니하십니다.
2천 년 전 크리스마스에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우리 가운데 와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행위로써 얻는 대가가 아닙니다. 구원이신 예수님을 믿고 모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선물은 대가를 치루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구원은 대가를 통해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대가없이 무조건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그 아들 예수님을 주셨고 그 아들 예수가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예수가 바로 영광이요 승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원받고 난 다음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될 일인 것입니다. 변화와 성장은 구원을 받고 난 후에 시작되는 것인 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오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구주로 오신 것을 기억하고 찬양해야 될 날인 것입니다. 이날보다 즐거운 날이 사실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죄와 죄책감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이러한 고통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자가 왔으니 얼마나 큰 선물이요 위대한 은혜인 것입니까? 죄에서 건져 주시고 허무와 무의미에서 건져 주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영원한 희망으로 우리 앞날을 비춰주시는 주님이 우리의 구주로 오늘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너희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 가운데 있겠노라”
-기도-
사랑 많으신 좋으신 하나님! 크리스마스에 가장 놀랍고 위대한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축복과 은혜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영원히 찬양하기 원합니다.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심을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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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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