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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제일 귀한 것이 사랑이라
2011.09.18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13절

 

항상 영원히, 지상과 천상에 남아있을 사랑
희생적인 실천만이 진정한 ‘사랑’ 이뤄
‘사랑’도 바라보고 꿈꿔야 실천 가능


 항상 영원히 그리고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귀, 영화, 공명, 명예, 지위 등입니까? 시편 103편 15절에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지위, 명예, 부귀, 영화, 공명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것은 풀과 같고 꽃과 같이 사라지고 시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직 지상과 천상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인 것입니다. 그 중에도 제일 빛나고 귀한 것은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믿음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해야 믿지 사랑하지 아니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또 소망도 사랑이 있을 때 소망이 있지 사랑이 없는 곳에 내일에 대한 즐거운 소망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랑은 아끼고 위하며 한없이 베푸는 일”이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한없이 베푸는 마음과 행위인 ‘사랑’만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제일 빛나고 귀한 것입니다.

 

 1. 삶의 진정한 목적은 사랑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율법도, 종교의식도 학문도 아닌 사랑이신 것입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라면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사랑’아니겠습니까?

 요한일서 4장 7절로 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사랑을 소유하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일을 하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함과 기쁨이 올라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면 마음이 충만하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은 사랑하는 부모, 형제, 처자를 찾지 그 이외에 다른 것을 찾지 않습니다. 또한 영원히 남는 것은 업적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가?”라고 하나님이 묻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가?”라고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인도 캘커타의 한 힌두사원에는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들이 마지막 은총을 갈구하며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그 사원 근처에서 한 위로자를 발견합니다. 그녀는 주름진 얼굴에 허리가 굽은 작은 여인으로 죽어가는 이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돼주며, 평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분명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을 겁니다” 그녀는 버림 받은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의 상처를 씻겨주고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며 죽음을 준비하도록 극진히 보살펴 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한 그녀는 87세에 지병인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사랑은 세계 24개국에 무려 5604개의 자선센터를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테레사 수녀입니다.

 요한일서 3장 17절로 18절에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은 사랑이며,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적인 실천이 따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그 어마어마한 희생을 감당하기 위해 아들 이삭을 바치러 모리아산에 올라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남겨 놓고 갈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가져갈 것도 어떤 업적이 아닌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2. 사랑이 증명되고 나타나는 길

 한 사람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는 바로 그 대상에게 관심과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시간과 관심을 쏟지, 싫어하는 것에 시간과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관심의 정도에 따라서 사랑이 증명됩니다.

 창세기 29장 18절에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을 때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같이 여긴 것입니다. 7년이 어디 쉽습니까?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라헬을 얻기 위해서 7년의 중노동을 해도 괴롭다고 생각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호관계입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에서 17절에 기록돼 있는 십계명은 ‘상호관계의 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처음의 네 개의 계명이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그 다음 여섯 개의 계명으로 이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계명 전체의 원리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관계된 네 가지 계명을 지키고, 사람을 사랑하면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 않을 나머지 여섯 가지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계명의 완성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40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는 말씀처럼 이 두 계명만 지키면 모든 계명을 다 지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면 율법을 자연적으로 지키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 주라” 그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주게 되는 것입니다. 내 것 다 챙기고 간청을 하면 그것에 못 이겨 겨우 도와주고서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사랑은 그 사람에게 어려움이 있으면 스스로 그것을 찾아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를 자원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우리가 그 분의 사랑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얼마나 강할까요? 성경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아가 8장 6절로 7절에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야훼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성경이 정의한 사랑은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합니다. 그 증거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님을 주셨고 아들 예수님은 그 목숨을 내어 놓고 우리를 사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죽음같이 강한 것입니다.

 유덕종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폐결핵과 위암으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 “인생은 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한때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아프리카에 가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과 함께 하는 일생을 살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1992년, 그는 서른 셋의 나이로 의사로서 앞날이 창창할 때 한국국제협력단 코이카(KOICA)의 정부파견의사로 아프리카 우간다에 들어가서 16년 간의 임무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우간다에 머물며 대학에서 의학을 강의하고 진료를 계속했습니다. 의료시설이 열악한 우간다 외곽에 병원을 세우기 위하여 동분서주했습니다. 20년 간 아프리카에서 의료 활동을 했을 때, 한 기자가 그에게 한국에서 자리 잡고 사는 동기들과 비교해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부동산도 없습니다. 집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다가 아닙니다. 내 눈길에 와 닿는 아프리카의 하늘은 아름답고 힘과 용기를 줍니다. 이곳에서 받은 사랑이 더 많기에 나는 사랑 때문에 집을 가진 사람보다도 부동산을 가진 사람보다도 세상에 명예와 지위를 가진 사람보다도 행복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인생의 시작과 끝을 알며 삶의 진정한 목적이 사랑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사는 의미를 발견하려면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누구나 다 사랑하는 사람을 누가 사랑 못하겠습니까? 사랑할 수 없는 혐오스러운 사람을 사랑해야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해야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부귀와 영화도 사랑 없는 것은 쓰레기인 것입니다.

 

 3. 왜 사랑이 제일이며 영원한가?

 고린도전서 13장 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인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종교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어떠한 화려한 종교, 장엄한 종교, 거룩한 종교를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로 3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이 우리를 평가할 때 무엇으로 평가할까요? “네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 대통령을 했느냐? 장관을 했느냐? 세계적인 교회를 세워서 목사가 되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은행에 예금이 얼마냐? 세상에서 네 취미가 무엇이냐?”라고도 묻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없습니다. 온 세상은 마귀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 2장 11절에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기록합니다. 내가 한 일과 수고한 모든 노력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네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나님께 얼마나 시간을 내며 관심을 가졌느냐가 바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관심을 두라.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아 주신다. 자녀가 성장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부모님의 뜻을 이루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먼저로 삼으면 그 다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로 35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서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행함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어떻게 사랑을 했느냐” 이것이 바로 주님이 묻는 질문인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는 “어디서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 품 안에 깃들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자로 삼은 사랑의 실천자였습니다. 여수순천반란사건 때 공산당 학생들이 손양원 목사님의 두아들을 목사 아들이라고 잡아 죽였습니다. 나중에 치안이 평정되고 그들을 죽인 두 사람을 잡았는데 처형하려고 할 때 손양원 목사님이 “그들을 내 아들로 삼겠다”고 하고 그 살인자들을 자신의 아들로 길렀습니다. 손 목사님도 우리와 같은 사람 아닙니까? 자기 자식을 죽인 그 사람을 자기 아들로 받아들일 때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은 실천해야 사랑이 또 생겨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다시 생겨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미엔 신부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저도 한센병 환자로 만들어 주소서. 내가 한센병 환자가 되지 않으면 저들을 이해할 수도 없고 저들이 한 형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저를 한센병 환자로 만들어 주소서!”라고 기도해서 자기 스스로 한센병 환자가 돼 그들의 마을에 들어가서 평생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얼마나 실천했느냐에 따라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에서 제일 귀한 것은 사랑입니다.

 

 4. 사랑의 특징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7절은 사랑의 특징에 대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저는 이전에는 이 구절을 안 읽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용기가 없었습니다. 내가 이 구절들은 보니 도저히 실천 불가능입니다. ‘천사가 아닌 다음에 이것을 어떻게 실천하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예수님의 사랑을 내 마음속에 깊이 깨닫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넘치게 되니 자연적으로 이렇게 살게 되어 갑니다. 그러니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것을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고 상상하면 그대로 이뤄집니다.

 한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가보니 자녀들 방에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7절을 크게 써서 붙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아니 집사님, 왜 저 것을 붙여 놓았습니까?”하고 물으니까 “목사님이 늘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라고 했잖아요. 애들이 시킨다고 합니까? 저 것을 자꾸 바라보면 바라봄의 법칙에 의해서 꿈이 우리를 붙잡는다고 했는데 그것을 바라보고 꿈을 꾸고 있으면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집사님의 말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아! 안되는 것은 써놓고 바라봐야 되겠구나!’ 평생 내가 가르친 것을 다시 깨닫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도 고린도전서 13장 4절로 7절을 크게 적어서 붙여 놓고 매일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오. 자연적으로 이것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드려 우리를 사랑하셨음으로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믿을 수 있고 믿기 때문에 소망이 생깁니다. 그 은혜를 인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지 우리 행위로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은 끝이 없고 자로 잴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 한량없는 사랑의 물에 뛰어 들어 헤엄치는 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 그 물속에 내가 들어가고 그 물을 마셔 내 속에 들어오고 그렇게 사랑이 충만해져 실천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사랑이 없는 종교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율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성공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랑이 있으면 작은 집도 작은 돈도 작은 명예와 지위도 축복이 되고 영광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마음속에 지금 바로 사랑이 우러나지 않더라도 억지로라도 사랑할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사랑하지 아니하면 허사입니다. 아무리 헌신해도 사랑하지 아니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부터 사랑할 것을 다짐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믿습니다. 독생자를 주시고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신 희생이 또한 그 증거임을 믿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죽음으로 그 사랑을 증명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니 사랑하며 살기를 다짐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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