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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보혜사 성령님
2011.07.2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4장 16∼18절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삼위이신 성령님
성령님은 인격적이시므로 좋은 관계 맺어야
성령님과 동행하여 교통할 때 신앙생활 형통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도움과 희망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삼위이신 하나님입니다.  


 1. 신약성경에 나타나신 성령님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마지막 남긴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 들어찼을 때 주님께서 위로의 말씀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어떤 자매님이 신앙상담을 와서 “목사님, 기도를 하면 내 깊은 속에서 음성이 들려오는데 이게 뭡니까? 저는 골반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다리를 잘라야 된다고 하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도와달라고 하니까 깊은 영혼의 속에서 ‘너의 골반은 암에서 나았다’고 합니다. 그 깊은 음성을 듣고 난 다음부터 몸이 점점 낫기 시작해서 암이 완전히 떠나고 깨끗이 나았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바로 성령님의 음성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며 우리의 영혼속에 와서 거하십니다. 영속에 거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이 분은 예수님과 똑같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보혜사’라고 말할 때 헬라어로는 ‘다르다’는 말이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알로스라는 말이고 또 하나는 헤테로스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다른 보혜사라고 말씀하실 때에 ‘알로스 파라클레토스’라고 하셨습니다. 똑같은 둘 중에 하나를 알로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첫째 것이고 저것은 둘째 것인데 둘이 똑같습니다. 바꿔도 똑같고 돌려도 같을 때 알로스를 씁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하늘과 땅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것은 헤테로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예수님은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영어로는 ‘카운슬러’고,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인데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냥 하루 이틀 돕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그날부터 천당가는 날까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서 도와주시는 분을 파라클레토스라고 말합니다.

 이 보혜사 성령은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감정이 있으니까 희노애락을 느끼지않습니까? 근심을 하는 것은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가 있는 것은 고린도전서 12장 11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뜻대로가 아니라 성령님 뜻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을 택해서 선교사로 보낼 때에도,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내가 시키는 일을 위해서 택하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택해서 세우신 것입니다. 의지를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아무리 우리와 같이 계셔도 우리가 무시해 버리면 성령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실 수가 없습니다. 성령은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성령님을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모셔드립니다. 의지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도움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강단에 나설 때 “The Holy Spirit! Let’s go! 성령님 함께 갑시다! 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님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성경에는 성령님을 바람이나 생수나 비둘기나 불이나 기름으로 비유를 하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비인격적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비유를 쓰는 것은 성령의 성격을 우리에게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 현실적인 사물을 가지고 비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구만리장천 멀리 계신 이도 아니시고 저 태평양 건너 계신 분도 아니시고 바람이 와 있는 것처럼 우리와 같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8절에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로 39절에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며 성령을 생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2절에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고 성령을 비둘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3장 11절에는 불로 표현했는데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2장 27절에는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며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얘기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통 사람에게도 기름 부어서 왕으로 만드십니다. 또 기름을 부어서 선지자로 만드시고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는 사람은 기름을 부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기름 부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기름 부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택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특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인격을 지니셨음으로 거역하지 말고 소멸하지 말며, 슬프게 하지 말며, 훼방치 말아야 됩니다. 마태복음 12장 31절로 32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과 우리는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이 하시는 일

 성령이 하시는 가장 주된 일은 회개시키는 일입니다. 1906년에 평양 교회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에서 부흥회를 열었는데 길선주 장로님이 일어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동기로 해서 성령이 바람처럼 불어와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슴을 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기 시작해서 이 부흥운동이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온 전국으로 퍼져나가서 우리 한국에 큰 부흥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부흥의 역사도 성령께서 역사하는데 성령이 우리를 회개시키고 또 회개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마음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마음 문을 열어서 깨닫게 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로 11절에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제일 무서운 죄가 예수님을 안 믿는 죄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 아들이냐. 정말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냐’는 의심을 많이 합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는 자격을 말합니다. 죄를 다 갚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옥에서 나와서 하늘나라에 가셨으므로 완전한 구주가 되신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께서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의인이요 우리를 영원히 죄에서 구속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성령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은 마귀가 이미 심판 받았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죽으셨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능력을 빼앗겼습니다. 죄를 짓게 하는 능력, 병들게 하는 능력, 저주와 가난에 허덕이게 하는 능력, 사망과 음부로 끌고 내려가는 그 능력을 마귀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이기고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으며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었으며 치료받은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큰소리치고 돌아다녀도 모든 능력을 빼앗긴 거짓의 아비일뿐입니다. 지금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협박하고 공갈하고 속여서 하는 것입니다. 거짓말로 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종노릇하지, 깨달은 사람은 단호하게 물리치고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가장 위대한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께 대한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예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보면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주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통해 예비해 놓은 것이 용서와 성결과 치료와 축복과 영생복락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리를 깨달아 알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9가지 은사로 능력을 주십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함, 영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 통역의 은사를 주십니다. 또한 열매로 함께 해주셔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함께 해주십니다. 은사도 성령께서 주시고 열매도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사와 성령의 열매가 맺어져서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안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의 체험

 성령은 중생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와서 우리가 체험하게 됩니다.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예수님과 대화하다가 중생,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듣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그것을 깨닫게 해주셨으며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이 우리안에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이제는 성령이 성전삼고 들어와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중생의 체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체험인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체험은 성령 침례의 체험, 혹은 성령충만의 체험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합심으로 기도할 때 오순절날이 이르매 성령이 임하시므로 각 사람 머리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같더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믿을 때 이미 성령이 와 계시지만 이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해지는 것과 그냥 와 계시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면 그 증거로 다른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의 그 표적으로 방언을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굉장히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을 말할 때 성령이 나와 같이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1절로 12절에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혼비한 세상입니다. 생존경쟁이 너무나 심하고 삶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 마음마다 곤비합니다. 답답합니다. 슬픕니다. 우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마음이 상쾌하고 생명이 넘치게 바뀔 수 있을까요? 방언을 하면 마음속에 곤비한 마음이 사라지고 안식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엘리야같은 위대한 종도 갈멜산 전투이후에 너무 마음이 곤비해지고 피곤해지니까 낙심해서 광야로 나가서 로뎀나무 밑에 드러눕습니다. 누워서 “하나님 이제 충분하니 나의 영혼을 거두어 주시옵소서”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곤비해지면 힘이 없게 됩니다. 기진맥진하게됩니다. 그럴 때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방언으로 기도하시면 안식이 들어오고 상쾌함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상쾌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 사람은 마음에 안식을 얻기 위해서 술을 마십니다. 우리에게는 대신 방언이 있습니다. 방언을 하면 시원하고 안식이 오고 상쾌함이 다가오기 때문에 방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로 27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제게는 기도해 달라는 편지가 많이 옵니다. 가정에 우환이 있어서, 병이 들어서, 급한 일로 수술을 해야 되므로 기도해 달라는 요청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고 합니다. 방언기도하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하나님이 들어주실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하는 사람이 방언기도 안하는 사람보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것이 20배, 30배 나아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역사를 방언을 통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이 오시면 어떻다는 것입니까? 말세에 성령이 오시면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꿈과 환상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 주셔서 내일을 향해 힘차게 달려갈 수 있는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떠나가시면 희망과 꿈이 없습니다. 율법주의요, 종교주의요, 의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있는 교회는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넘치기 위해서 꿈과 환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꿈이 있고 환상이 있으면 성령이 와 계신 것입니다.

 구약 4000년은 아버지 하나님 시대요, 신약 33년간은 하나님 아들 예수님의 시대요, 그 다음 오순절 이후에 교회 시대는 성령님의 시대인 것입니다. 구약 4000년 동안은 아버지가 정면에 나서고 예수님과 성령은 뒤에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사자로 역사했는데 신약 33년 동안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정면에 나오고 아버지와 성령은 예수님의 백그라운드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 오순절 이후는 지금은 성령이 우리 가운데 와서 역사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님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모르고는 올바른 신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예배하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충만한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안계시면 이 곤비한 세상을 이겨나갈 수가 없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마귀에 대해서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이 오늘 이 자리에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전면에 나타나시고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은 성령님 뒤에서 역사하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님과의 교통이 신앙생활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성령님 없이는 우리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성령과 동행하여 믿음안에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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