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장 1∼10절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봄의 따뜻함 알 듯
내 약함 통해 하나님 은혜의 소중함 체험
세상에서 시련과 고통 당할수록 믿음 성장해
지난 겨울은 대단히 추웠습니다. 그 때문에 다가오는 봄과 여름이 퍽 따뜻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평온함에 감사하려면 폭풍우를 당해봐야 압니다. 항상 밝은 대낮만 있으면 빛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을 지나게 되면 빛의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1966년 중국에 문화대혁명이 일어났을 때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박해를 당했습니다. 감옥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지식인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의 어둠 속에서 복음은 더욱 찬란하게 중국 땅에서 빛나게 된 것입니다. 중국이 공산화되던 1949년에 당시 기독교인 숫자가 가톨릭 신자를 포함해서 433만 8900여 명이었는데, 2010년에 1억 3470여 만 명이 되었습니다. 극심한 박해를 견디면서 61년 만에 23.8배나 증가한 것입니다. 수치는 중국 인구의 7.63%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울수록 신앙은 더 불같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현재 북한은 교회를 박해하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정치범으로 몰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문이 열리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음의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려고
첫째로,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둠이 있어야 빛이 증명 되는 것과 같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듯이 병들어봐야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고맙고 의술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죽인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거기에서 건져주는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용서받은 은혜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1절에는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음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야 예수님께서 도우시는 능력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보이려면 내가 체험한 것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가 사망을 당하여 그것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극복함으로 그 영광스런 생명의 증거가 주위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망이 다가와도 예수님만 계시면 끄떡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풍랑이 다가옵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죽음의 풍랑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문제는 풍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 풍랑을 잠잠케 하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가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한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권능의 주님이 이 자리에 살아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생각할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진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알아야 될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로 5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도 이미 사망을 이기고 부활의 생명속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보존하게 하려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십니다.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부르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말을 잘할 수 있는 은사를, 병을 치료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 방언을 하는 사람에게는 통역할 수 있는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특별히 사역을 맡길 때는 하나님이 은사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은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받고 난 다음에 기도를 안하면 잃어버려요. 그런데 보통 편안하고 좋은 일만 생기면 기도를 안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로 7절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하나님께로부터 은사를 받을 때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가 몸 안에서 올라갔는지 몸에서 빠져나가서 영혼이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셋째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남보다 많이 매를 맞고 감옥에도 수없이 들어가고 굶고 고통도 당했습니다. 그런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체험한 강한 힘이 있어야 했습니다. 셋째 하늘에까지 올라간 체험을 했으니까 죽어도 천국간다는 용기와 담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 선생이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체험케 하신 것입니다.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사람이란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면 자랑을 하게 되고 교만하게 됩니다. 바울도 육체의 가시를 통해 고통을 당했으나 이로 인해 더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약할 때 강함을 주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오면 기도하게 됩니다. 지금 일본 교회 성도들이 기도를 많이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기도를 많이 합니다. 고통스러우니까 기도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다가오는 것은 하나님의 기도하라는 지시인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련과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은 구하라고 하나님이 신호를 주시는 것입니다. 구하면 한 단계 더 높은 단계로 축복을 받아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로 10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약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강하다고 자랑하면 내가 내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약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한 자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닉 부이치치를 기억하십니까? 작년에 우리 교회 금요철야에 와서 간증한 호주 청년인데, 저도 그 청년 때문에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는 1982년 호주의 브리스번에서 목회자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낳고 보니 팔다리가 없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수많은 절망과 낙심과 좌절과 우울을 경험했습니다. 자살의 유혹도 수차례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님 안에서 장애를 딛고 일어나 19세부터 시작해서 29세가 된 지금까지 세계 각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내 존재의 목적을 찾았습니다. 당신이 불 속에 던져지는 고통 중에 있다 하여도 그에 따른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팔도 다리도 없는 저를 사용하셨듯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여러분을 쓰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필요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필요가 있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믿는 우리가 환난을 당하여 그것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극복함으로써 그 영광스런 생명의 증거가 주위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더 큰 은혜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작정하신 것입니다.
2월 27일자 순복음가족신문에 실린 양천대교구 김영수 집사님의 간증을 들어 보십시오. 5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술과 담배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고, 아침이면 밥보다 술을 먼저 찾았습니다. 이렇게 술과 담배에 찌들다 보니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점점 불러왔습니다. 병원 진찰 결과, 간경화였고 길어야 6개월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였기에 구역장에게 부탁해서 온 구역원들이 아침, 저녁으로 그 남편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남편 마음속에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만나는 길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교회 가겠다고 말하고 주일예배에 참석했는데 예배를 드리면서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제멋대로 살았는지 깨닫고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주일예배 때 제가 신유시간에 “간경화 원수 마귀는 물러가라!”고 기도하더랍니다. 이어서 “오늘 간경화증에 걸린 사람이 나았습니다”라는 선포에 부인과 함께 “아멘!”하고 믿음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때부터 기적같이 복수가 빠지고 좋아지더니 지금은 건강해져서 남선교회에서 봉사하고 있을 만큼 깨끗이 나았습니다. 의사는 6개월도 못산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것입니다. 이 분은 질병이 불행이 아니라 그 질병에 걸렸기 때문에 산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병을 축복으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재앙이나 환난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재앙이나 환난을 잠잠케 해줄 예수님이 계시느냐 안계시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미국 침례교 목사였던 로버트 로우리 목사님은 남북전쟁이 터지자 전사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하여 일선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시체더미 속에 아직 죽지 않고 살아서 신음하는 군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우리 목사님은 장례식보다 일단 죽어가는 사람부터 살려야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부상자들을 구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힘들게 했는지 그도 그만 기진맥진해서 시체더미 속에 쓰러져 같이 신음하고 거의 죽게 됐습니다. 일어날 기력도 잃어버리고 정신까지 희미해지는데, 갑자기 “로우리 목사야, 내가 살아있다. 나는 어두움을 이기고 살아났다. 지금 내가 부활의 능력으로 네 속에 살아있다. 너는 죽지 않는다!”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에 의지해서 열심히 환자들을 돌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지은 찬송이 바로 새찬송가 160장입니다.
어둠을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신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슬픔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살아있는 예수님을 찾고 만나고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믿고 환영하고 의지하면 예수님은 우리 속에서 죄를 멸하고 사탄을 내어 쫓아 주십니다. 또 병을 고치고 사망을 멸하고 생명과 영광으로 채워 주십니다. 마귀가 오는 것은 죽이고 도둑질하는 것이지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2천 년 전 갈보리 산 십자가 위에서 몸찢기고 피흘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저주를 짊어지신 예수님은 살아서 지금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3. 진리 속에 자라게 하려고
제가 삼중축복을 그렇게 외치고 부르짖는 것은 너무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렵고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그 진리를 붙잡았고 어려움 당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리속에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연약함으로 몰아넣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깨달은 것이 오중복음입니다. 죄를 용서하고 의를 주는 하나님, 거룩하게 하고 성령 충만 주시는 하나님, 병고치고 건강주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의 복과 형통을 주시는 하나님, 부활 영생 천국을 주시는 하나님, 오중복음을 부르짖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여러 가지 고난과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그 고난과 괴로움이 더 큰 축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계시지만 눈에 안 보입니다.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려면 하나님을 내 속에 모셔들여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거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기도할 동안에 하나님이 길을 보여 주셨는데 ‘우리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가 있다. 꿈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가 있다. 믿음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가 있고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품에 안기고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수가 있고 하나님과 함께 역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4차원의 영성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통해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내 속에 들어와 역사하는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말씀을 생각할 때 생각 속에 하나님이 와 계시고, 내가 성령을 통해서 기도하며 꿈을 꿀 때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고, 내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믿을 때 믿음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고, 내가 입술로 고백할 때 말씀 속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는 것입니다.
선교사 한 분이 아프리카에 선교를 가서 원주민들과 함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원주민이 큰 돌을 선교사 가슴에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큰 돌을 머리에 이거나 가슴에 안고 같이 강을 건너는데 선교사는 ‘이 사람들이 왜 나에게 무거운 돌을 안겨주는지 모르지만 시키는대로 하자’ 생각하고 강 중간쯤까지 따라가보니 물살이 굉장히 쎄서 돌을 안지 안으면 그대로 떠내려가 버릴 상황이었습니다. 돌을 안고 있으니까 물살이 쎄도 건너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는 것은 그 짐을 짊어져야 그 시련을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에 짐을 걸머지게 되는 것입니다. 짐이 있으므로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으면 어려움을 이기고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깨어 영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로 1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시련과 환난과 고통이 다가와서 우리 겉사람은 낡아져도 그를 통해서 반대급부로 속사람은 믿음, 소망, 사랑에 큰 은혜를 받아서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시련과 고난을 당하면 우리 영혼은 하늘나라에서 더 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은 그 위대한 능력으로 우리 속에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기적은 오늘날 우리를 위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
좋으신 하나님.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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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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