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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배를 질그릇 속에 가졌으니
2010.09.12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린도후서 4장 7∼12절

 

우겨싸여도 싸이지 않고, 답답해도 낙심치 않고
박해당해도 버리지 않고, 꺼꾸러져도 망하지 않는
보배되시는 예수님 우리 안에 모시면 만사형통


 질그릇은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보배를 담으면 보배의 가치에 따라 질그릇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보배와 질그릇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와 사망을 철폐하시고 부활하시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보배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십니다. 우리가 보배이신 예수님을 질그릇인 우리 안에 모시면 우리 삶의 위치가 달라집니다.

 

 1.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음

 이 세상 살다보면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등이 우리를 우겨쌉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겨싸여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고난과 시련으로 우겨쌈을 당한 욥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스 땅에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던 것입니다.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었고, 그의 소유물은 양이 7000마리요, 낙타가 3000마리, 소가 500겨리, 암나귀가 500마리, 종도 많이 있었고 동방 사람 중에 제일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참소로 말미암아 아내를 제외하고 자녀들, 종들, 재산, 건강 다 잃어버리고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견딘 결과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욥기 42장 10절에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야훼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야훼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고 말씀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했을 때 인내하면 하나님은 그 기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더 위대한 삶을 살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이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나 또한 이 고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가득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 고통을 넉넉히 이길 힘과 능력의 근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보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엘리사 때문에 전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도단 성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밤새도록 군대를 보내서 첩첩이 둘러쌌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엘리사를 섬기는 종이 밖에 나가서 기지개를 켜고 눈을 비비고 보니까 온 산에 아람 군대의 군기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혼비백산해서 방에 뛰어 들어가서 “큰일 났습니다. 아람의 군대가 우리를 완전히 첩첩히 둘러쌌으니 이제 우리는 죽었습니다”라고 고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그렇지 않다. 우리하고 같이 있는 분이 아람 군대의 군대보다 많다. 하나님이여! 이 청년의 눈을 뜨게 해서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청년의 눈을 열어 주시니 아람군대와 엘리사 사이에 아람군대보다 더 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가득하게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람 왕이 군대를 보내어서 엘리사를 포로로 잡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사에게 모두다 포로로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고, 불의와 추악에서 해방을 얻게 하고, 질병에서 치료받게 하고, 가난과 곤궁에서 해방되게 하고, 죽음과 멸망에서 건져주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첩첩히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우리를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치 않음

 성경에 보면 요셉은 굉장히 답답한 일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요셉은 특별히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요셉을 시기했습니다. 더군다나 꿈얘기를 형들에게 하는 바람에 머나먼 객지로 팔려나가게 됩니다. 바로왕의 경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열심히 믿었습니다. 그게 요셉에게는 인생의 승리의 비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시므로 보디발의 집에서 하는 일마다 잘되니까 보디발이 가정총무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가정총무로 일하던 중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게 되고 그 유혹을 뿌리친 결과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성실해서 인정을 받고 술장관, 떡장관의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결국은 바로왕의 꿈도 해석하게 되고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이 답답한 일을 당해도 마음속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세상을 따라 낙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어려움에 처해 온 형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로 21절에 보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답답한 일을 당할수록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4절로 5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말씀합니다. 내 인생의 잔이 넘치게 되려고 하면 답답한 일을 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할 때 주님께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그것이 나의 생애 속에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것은 답답한 일을 당할수록 우리가 높아지고 풍성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3.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음

 박해를 가하는 목적이 뭡니까? 버림받게 하기 위해서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집에서도 형제간에 박해를 받으면 대접을 못 받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박해를 하면 죽여 버리려고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믿는 자들을 얼마나 박해합니까? 교인들을 얼마나 박해합니까? 멸해 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보배를 가진 사람은 박해를 받을수록 버림받는 것이 아니라 더 왕성해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9절에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온 세상이 악한 자에게 속하여 우리를 박해해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우리는 이기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을 때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서 120문도가 성령 받고 나니까 유대인들이 엄청나게 박해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역사해서 베드로가 하루 전도에 3000명, 그 다음날 5000명, 구름 떼같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들어와서 예루살렘 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박해를 당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더 도움을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박해를 받을 때 더욱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더 주시고 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박해하는 원수앞에서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로 12절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박해를 받으면 우리 안에 계신 주님께서 함께 박해를 받으십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중국 공산당 치하에 혹은 소련의 공산당 치하에서 또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박해를 당했습니까? 그렇게 함으로 기독교가 사라질 것 같으나 실상은 그렇치 않습니다. 데이빗 바렛과 토드 존슨의 세계복음화운동 통계를 보면, 전 세계 기독교인 수는 1970년에 약 12억3400만 명이었는데 2000년에는 20억이 넘었습니다. 놀랄만한 숫자인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 거대한 부흥이 일어나서 하나님이 큰 교회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배를 가진 우리는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박해를 하는 것은 멸함을 받으라고 박해를 하는데 오늘날 대부분의 문명국은 다 예수 믿는 나라입니다. 북한하고 남한을 비교해 보십시오. 북한이 잘삽니까? 남한이 잘삽니까? 똑같이 잘살려고 노력했는데 우리가 이처럼 북한보다 엄청나게 잘사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1200만명이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북한에서 기독교를 그렇게 박해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통해 기독교가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 문화와 문명을 이끌어가는 주체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입니다. 우리나라를 잘되도록 이끌어 가는 것이 기독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도할 때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잘되는 것입니다.

 

 4.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음

 거꾸러뜨림을 당한다는 것은 죽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8월 23일 필리핀에서 12년째 빈민사역을 해 온 조태환 선교사가 괴한의 총탄에 거꾸러졌습니다. 그렇다고 선교사가 망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땅에 사는 것도 좋지만 이 땅을 떠나 주와 함께 있을 소망을 갖는 것이 더 좋습니다. 마음이 극도로 괴로울 때는 ‘하나님 나 데려가 주십시오. 주님 앞에 나가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면 속이 시원해집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는 일인데 주를 의지하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지옥불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지옥에 들어가면 부자처럼 아무리 기도해도 그때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천국을 예비해 놓았으니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하늘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언제나 흥하지 망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흥하게 하시지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게 하십니다.

 

 5. 예수의 죽음을 항상 몸에 짊어짐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항상 우리 몸에 짊어집니다. 어떻게 짊어지느냐. 우리가 생각을 통해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천당 내 천당, 예수 영생 내 영생. 예수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언제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난 것은 우리 생각을 통해서, 꿈과 환상을 통해서, 믿음을 통해서,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을 짊어지면 짊어진 만큼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은 생명을 주기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면 예수의 생명이 나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죽음이 내 죽음으로 받아들이면 예수 생명이 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은 마땅히 내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속에는 넘치는 기쁨과 소망과 사랑과 능력이 있습니다.

 

 6. 예수를 위한 죽음으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남

 고린도후서 4장 11절로 12절에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에 넘겨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감기가 들리고 혹은 암에 걸리고 관절염, 신경통, 고통, 죽음에 넘겨지는 것입니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목마름이 있어야 물이 효과를 발생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미문가에 있는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라!” 앉은뱅이가 일어나니까 하루에 5000명이 회개를 했습니다. 앉은뱅이는 예수의 영광을 위해서 앉은뱅이 된 것입니다. 그의 팔자가 나빠서 앉은뱅이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앉은뱅이 된 것입니다. 낫기 위해서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부자 되기 위해서 가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기 위해서 우리가 그 그릇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죽음이 육체에 나타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모세는 자기가 대단한 인물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쫓겨나서 그가 미디안 광야생활을 할 때 40년 동안 고생하면서 자기 자신이 떨기나무 보다 못한 비참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이 그를 사용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때는 하나님이 그를 쓰실 때 그가 위대한 인물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인 것입니다. 우리도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때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못난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쓰시면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배이신 예수님을 항상 생각하고 예수님이 우리가 보배인 것을 꿈꾸고 그것을 믿고 예수가 내 보배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찬미하며 사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담게 하시고 예수님을 담게 하시고 성령님을 가득 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승리하는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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