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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2010.03.2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중략)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1∼6절

 

세상 사람들은 목적없이 살다 죽음 맞이해
삶의 나침반 되시는 예수님 바라보고 살아야
봉사와 헌신, 가치있는 삶 통해 올바른 삶 성취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반드시 해봐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부귀영화 공명에 둘러쌓여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 같아도 바로 그순간에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삶의 나침반을 꼭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1. 목적이 분명한 삶

 우리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취생몽사합니다. 술취해서 살다가 꿈같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갈 때 반드시 삶의 목적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광야에서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속에 목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광야에서 사람들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알지 못합니다.

 미국 기독교계의 지도자 존 맥스웰은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점을 “성공하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과 비전이 있고,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재만 보고 지금만 보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목표가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했는데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지능지수, 학력, 성장배경 등이 비슷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7%는 목표가 없고, 60%는 목표가 희미하며, 10%는 단기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3%의 사람만이 분명한 장기 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장기목표를 갖고 있던 3%는 25년 후 사회 각계의 최고 인사가 되었고, 단기 목표를 갖고 있던 10%는 사회의 중상층 인사가 되었습니다. 목표가 희미했던 60%는 중하위 층이 되고, 목표가 없었던 27%는 모두 최하위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표가 이끄는 삶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삶의 목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처럼 큰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목적을 갖되 매우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한 삶을 취생몽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방황하지 않고 어둠에 허덕이지 않고 살려면 빛과 진리 속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는 빛이 필요합니다. 거짓이 있는 곳에는 진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광야같은 인생을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빛과 진리속에 살아야 되는데 그 빛과 진리가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가지고 있는 마음의 죄책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사람들마다 마음에 죄책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죄책을 매일같이 씻어내고 평안을 갖고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내 죄 때문에 몸찢기고 피흘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그 앞에 기도하고 죄를 씻고 평안하게 되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때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 먼지와 때가 몸에 붙습니다. 그러나 먼지와 때가 묻으면 목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고 용서와 마음의 의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모실 때에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인간은 누구든지 태어나면 사라질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허무와 무의미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그리스도 안에 살아야 우리가 허무와 무의미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죽었으나 천국에서 또 만날터이니까 허무와 무의미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를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이미 미래가 다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있을 곳을 다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집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 더구나 이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세계에 들어갔는데 영원히 있을 곳이 없는 사람은 영원히 버림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에 있는 러쉬 대학 병원에서는 1200명의 노인들을 인터뷰하며 인생의 꿈과 목적을 질문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인생의 확실한 목표와 방향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이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적이 없고 방향이 없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습니다. 연구원들은 삶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억제하는 호르몬이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목적이 있는 사람 속에는 삶의 호르몬이 나와서 스트레스를 중화시키므로 빨리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목적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빛과 진리 안에서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와 허무와 무의미에서 해방되고, 죽음을 극복하며, 하나님과 함께 참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제일 중요한 것이 앞으로 영원히 살아갈 목표를 분명히 갖고 사는 것입니다. 목표가 이끄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목표에 의지하여 살면 마음에 평안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봉사와 헌신의 삶

 그리고 우리는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7절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내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되 또한 내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웃없이 나 혼자 못살지 않습니까?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고 일가친척이 있고 이웃사촌이 있고 우리는 이웃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을 섬기며 사는 것이 참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왜 여리고로 내려갔습니까? 여리고에는 농산물이 풍부하게 잘됩니다. 농산물을 예루살렘에 가서 팔고 도로 여리고로 내려갈 때는 돈을 많이 가지고 올라갑니다. 그러므로 도둑놈이 기다리고 있다가 돈을 빼앗기 위해서 사람을 죽입니다. 한 사람이 거의 죽게 되었는데 아무도 이 사람을 돌봐주지 않습니다. 제사장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 보고 “왜 조심해서 다니지 무엇하다가 강도를 만나 얻어 맞아 죽게 되었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지나가 버립니다. 성전에 일을 돌보는 레위인도 와서 보고 고개를 흔들고 종종 걸음으로 가버립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이 사람을 보고 포도주를 부어서 소독을 하고 기름을 부어서 유하게 만들고 자기 옷을 찢어서 붕대를 만들어서 감아줍니다. 그리고 그를 자기 짐승에 싣고 주막에 가서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면서 “잘 돌봐주시오. 내가 일끝나고 돌아올 때 비용이 더 들었으면 내가 갚아 주리다”라고 합니다. 굉장한 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말을 하시고 누가 이 사람이 참된 이웃이 되겠느냐 질문합니다. 말할 필요없이 선한 사마리아인인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5절로 16절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웃과 인생의 짐을 같이 걸머지고 사는 것입니다. 우는 자와는 같이 울고 웃는 자와는 같이 웃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우리가 도와주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면서 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관심한 삶을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웃이 죽든 살든 나는 잘먹고 잘입고 잘살면 된다’ 그것은 인생을 잘못 사는 것입니다. 반드시 자기도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이 36년 동안 일본의 수탈을 당하고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다 파괴되고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경제재건을 해서 국민소득 2만 달러에 도달하게 되니까 우리가 오늘날 이웃을 돕고 있습니다. 아이티에서 지진이 나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사람들이 갈데올데 없을 때 우리가 많은 헌금을 드려서 이웃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돕는 사랑의 손길을 계수하고 있는 이상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을 통해서 이 사회에 밑을 들여다 보면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가 2년 동안 은퇴하고 난 다음 사랑과 행복나누기 운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너무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서 고통을 함께 나누어 주고 사랑을 함께 나눠주면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복받은 사람은 이웃의 가난한 사람에 꾸어주는 것이 복을 더 많이 받는 길인 것입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인데 어떻게 해서 더 복을 받습니까? 복을 나누어 주면 더 복을 많이 받는 것입니다. 복을 나누어 주지 아니하면 있는 복도 뺏기는 것입니다.

 1800년대 중반에 스위스 출신의 실업가요 은행가인 한 사람이 더 많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나폴레옹 3세가 있는 불란서로 갔습니다. 그의 야망은 나폴레옹 3세를 만나서 불란서와 스위스의 경제협력을 맺고 유럽 대륙의 부의 중심부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나폴레옹 황제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위해 이미 이탈리아 북부로 떠난 뒤였습니다. 그도 나폴레옹을 따라 전선으로 나갔다가 치열한 전투의 장에서 양국 군의 시체와 피 흘리는 부상병들의 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그는 이 전장을 떠나면서 그 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새로운 꿈을 갖게 된것입니다. 적군과 아군을 막론하고 부상당한 군인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을 해야 되겠다. 나아가 그는 민족과 인종을 뛰어 넘는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이룰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국제 적십자 운동이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이 사람이 바로 적십자 운동을 창시한 앙리 뒤낭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어느 마을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교회 안 뜰에는 교인들이 돈을 모아서 예수님 상을 만들어서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서 예수님상이 깨졌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 잿더미에서 예수님 상을 일으켜 보았더니 두팔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두팔이 잘려나간 예수님의 몸둥아리만 있는 동상을 갖다 놓고 교회에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깨뜨려서 새로운 동상을 만드느냐, 아니면 팔 두 개를 만들어서 갖다 붙이느냐, 안그러면 팔없는 예수님 동상을 그대로 세우느냐. 격렬한 토론한 끝에 교인들이 동의한 것은 팔없는 그리스도의 동상을 그대로 세우자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 그 밑에 이런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주님은 팔이 없습니다. 당신의 팔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팔을 통해서 사랑을 베풀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팔을 빌려주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두 팔이 되겠다는 각오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가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고 행복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가치 있는 삶

 그 다음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은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제1차 목표고 그 다음에는 이웃을 섬기고 셋째는 자신을 섬기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섬겨서 가치있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월은 빨리 갑니다. 세월이 지나가기 전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정말 빨리 갑니다. 제가 20대에 목회를 시작한 것이 어제 오늘 같은데 이제 74세가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소녀와 결혼했는데 제 아내가 68세가 되었습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활과 입에서 나온 말과 시간입니다. 성경은 에베소서 5장 16∼17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끼고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우리가 가치있게 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산다는 것이 우리가 자기가 정말 후회하지 않고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하지 않고 낭비하고 보내버렸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지 않습니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씀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맡든지 충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을 섬기는 것도 주님을 섬기듯이 충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 충성은 그 보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2004년 4월 ‘올해의 아름다운 중국 청년상’이라는 시상식이 중국에서 있었는데 한 젊은이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합니다. 이름은 장원청(張雲成)으로 25세인 그는 앞으로 3년 정도 밖에는 살지 못하는 근육병 환자였습니다. 장원청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글씨를 터득하고 작가의 꿈을 향해 처절하게 싸웠습니다. 그가 글씨 한 자를 쓰는데 무려 6분이 걸렸습니다. 하루에 그가 쓸 수 있는 글자수는 77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 그가 17만 자의 육필 원고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13억 중국인들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정신의학자 퀴블러 로스와 케슬러는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받아 적어 책으로 엮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생수업’이라는 책인 것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즐겁게 지낸 놀이의 순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죽음이란 삶의 한계점이 있기 전에 지금이라도 빨리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우선 사는 목적을 분명히 안 후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봉사와 헌신된 삶을 살아가야 하고, 항상 매일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삶만이 참으로 후회하지 않는 올바르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모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되어서 우리 개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생활의 방향을 행복해질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십시오. 많이 웃고, 많이 감사하고, 시간있으면 친구들하고 놀러가기도 하고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가지고 살게 되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로 올해 정년 퇴임한 국제정신분석가 이무석 박사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당시 교수님 중에는 고함지르고 욕도 하시는 매우 무서운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심지어 수술 중에 실수한 레지던트를 때려서 발로차서 내쫓았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수술실력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 우리나라 최고라는 찬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무석 박사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분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일 예배 시간에 헌금 위원으로 봉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무석 박사가 교수님을 만나 그 경위를 묻자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았어. 비과학적이라 생각했지. 의사 생활을 하면서 말기 암 환자들이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욕을 하며 불안에 떨다가 죽어 가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지. 그런데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환자가 있었는데, 그분의 얼굴은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어. 그분은 지독한 통증을 잘 참으면서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어. 내가 회진 나가면 그분은 언제나 나에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어.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분은 예수님을 믿고 있었어. 그분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지. 그후 주위를 살펴보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도 다르더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첫째,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자. 둘째,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자. 셋째, 가치있는 삶을 살자. 그렇게 하면 올바르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으로 역사하셔서 모두다 예수 믿고 구원받게 도와주시옵시고 가치있는 삶을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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