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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사는 길
2010.03.14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중략) …야훼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야훼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27편 1∼6절


 

두려움은 우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 가져와
마음 중심에 하나님 모실 때 두려움 사라져
다윗과 같이 신앙고백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람은 약 75가지나 되는 공포증으로 두려워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성공이론가인 나폴레옹 힐은 두려움에 대해 “두려움은 모든 논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모든 상상을 파괴하며, 자신감을 꺾어버리고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열성과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나태와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정의했습니다.

 두려움은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들의 마음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1.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우리가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삶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빈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에 하나님이 와서 거하실 수도 있고 사탄이 와서 거할 수도 있고 우리 자신이 빈집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의 마음에는 이 빈 공간을 세상과 마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빈집의 우환에서도 일곱 귀신이 들어가서 그 빈 공간을 점령했다고 말씀했습니다. 세상과 마귀가 점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아가 공간을 다 점령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우상화해서 자기를 마음속 빈 공간에 우상으로 세워놓고 경배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공간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와서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마음의 공간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단호하게 이 마음의 공간에서 마귀와 세상을 쫓아내고 자기 자신도 쫓아내고 예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이 이제 우리 마음의 빈 공간의 주인으로 점령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키가 크고 몸이 장대하고 그 마음의 빈 공간에는 마귀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 대한 원한과 미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과 그 군대는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될 것인데 자아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도저히 골리앗과 비교가 안됩니다. 그래서 골리앗이 나오기만 하면 전부 나무 뒤에 숨고 언덕에 숨고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그런데 다윗은 와서 하는 말이 사무엘상 17장 32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다윗은 나이는 어리지만 하나님이 그 마음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시를 많이 적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속에 있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함께 계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2. 다윗의 신앙고백

 거인 골리앗을 앞세운 블레셋 사람들은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다윗이 막대만 가지고 나온 것을 보고 저주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1절로 44절에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고 말씀했듯이 앳된 소년입니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블레셋 사람이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마귀와 싸우는 것은 처음에 말싸움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환경과 싸우는 것도 말싸움인 것입니다. 마귀가 꽉 들어차 있으면 마귀가 항복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으면 마귀의 협박과 공갈에 무릎을 꿇는 것이고 내 속에 하나님이 점령하고 있으면 마귀를 정복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를 발길로 차버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상 17장 45절로 50절에서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블레셋 사람 앞에서 말싸움을 하는데 인간적인 관점에서 말싸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 서서 말싸움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서 말씀하도록 한 것입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잘못 봤습니다. 다윗을 어린 소년으로 봤는데 실상은 다윗의 마음속에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같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한 골리앗은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다윗은 언제나 자기의 마음 공간에 야훼 하나님이 와서 계신다는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마음의 공간에 세상과 마귀가 들어와 있습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세상과 마귀가 들어와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는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육체와 마음의 욕심을 따라서 자기 중심을 점령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공간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이 와서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공간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단호하게 마음의 공간에서 마귀와 세상을 쫓아내고 자기 자신도 쫓아내고 예수님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도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은 그 마음의 공간에 자기가 3분의 2를 점령하였고 3분의 1을 하나님께 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3분의 1쯤 밖에 그 마음을 점령하지 못하셨는데 그를 위해서 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그 마음의 공간을 들여다 보면 자기가 방마다 꽉 들어차 있고 저 현관에 조그마한 방에 하나님 계신 곳이라고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열어 놓아야 됩니다. 내 인생을 다 열어 놓아야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왜 나는 기도를 해도 응답이 안옵니까? 왜 능력이 없습니까? 왜 마귀가 우리를 보고 쫓겨 나가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데 그것은 우리속에 너무나 많은 인간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들어와 계시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늘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은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3. 우리들의 신앙고백

 시편 27편이 바로 우리들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우리가 시편 27편 같이 이런 하나님 말씀을 고백하고 그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앙고백이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을 통해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을 들어보면 저 사람이 마귀가 들어 있느냐, 자기가 들어 있느냐, 그리스도가 들어 있느냐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1절로 2절에 “야훼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야훼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신앙고백은 입술로 늘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힘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늘 믿지만 늘 입으로 시인하면 그것이 구원의 힘으로 나를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늘 마귀와의 싸움에서 늘 지는 것은 입술로 고백을 안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시편 91편 2절로 16절에 “나는 야훼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야훼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입술로 고백해야 힘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은 그 말 자체를 가지고서는 힘이 안됩니다. 일단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야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승리하려면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두려움을 말씀으로 내어 쫓아야 됩니다. 시편 27편 3절에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보호하고 능력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종수 박사의 이야기를 감동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이종수 박사는 독일 본 대학의 교수로 간 이식 수술에서 세계 최초의 시술자입니다. 그는 그 공로로 독일인도 되기 힘들다는 본 대학의 종신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유럽에서 동양사람에 대한 차별이 굉장히 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람의 간을 떼어서 다른 사람 간에 옮겨주는 간이식 수술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했습니다. 독일의 의사들도 전부 안하려고 했습니다. 만약 그가 이 수술을 실패하면 본 대학에서 쫓겨나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는 수술실에서 간이식 수술을 마치고 환자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애타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과 고통을 주었는지, 이종수 박사는 그 때처럼 간절하게 기도해본 적은 없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박사는 기도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깊이 회개하고 의술보다는 사람을 더욱 소중히 여길 것이라고 서원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간 이식을 받은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수술실에 달려온 의사들은 전부다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습니다. 과학적 치밀함을 추구하는 의사로서, 그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두려움을 쫓아내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성공을 얻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기독교 청년운동을 시작한 미국의 롤링 박사는 아침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하고 세 번 외칩니다. 롤링 박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듯 신앙고백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어떠한 상황이라도 두려움 대신 평안과 기쁨으로 담대하게 마음속에 채워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D. L. 무디는 모세의 생애를 “모세가 처음 40년 동안은 바로의 공주로서 공주의 아들로서 장차 바로 왕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바로왕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을 때리는 애굽의 감독관을 죽이고 도망을 쳤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가서 40년 동안은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불타는 가시넝쿨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변화되었습니다”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능력의 원천은 우리가 일어나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하트마 간디도 “인간 자신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신을 하나님께 내맡기면 인간은 모든 것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나 혼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 맡겨 놓으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혼자 다닐 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강단에 서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매일같이 100%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넘쳐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고 나아가면, 우리가 가진 그 이상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질그릇입니다. 우리 뭐 대단할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 질그릇에 보배가 들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 성령 보배가 들어있으니 보통 인간이 아닙니다.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조지 뮬러에게 기자 한 명이 “항상 행복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온 비결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조지 뮬러는 “두 가지 비결이 있어요.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로 항상 날마다 깨끗한 양심을 지켜 왔다는 것과 두 번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조지 뮬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5만번 응답을 받았습니다. 한 평생에 5만번 응답을 받았으니 기도한 것마다 다 응답을 받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남은 생애를 사는 동안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우리를 지켜 주시고, 모든 원수들을 이기고 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혜롭기 때문에 우리를 쓰는 것도 아니고 잘났기 때문에 우리를 쓰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해서 우리를 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믿고 구원받아 교회 나오게 하신 것도 우리가 잘나서 나오게 한 것도 아닙니다. 만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오매 불러서 성도가 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배후에 끊임없이 마귀와의 투쟁이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버림을 받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어찌하든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기를 위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과 같이 우리 자신을 봐서는 안됩니다. 사울도 다윗을 보고 “너 아직 초립동이고 너는 아직 군대 올 나이도 아니다. 너는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지 못한다”고 했지만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우리의 든든한 배경이 되신다고 믿으십시오. 요사이 성도들이 점점 살아있는 실천적인 믿음이 없어져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마음으로 다윗처럼 하나님을 든든한 응원자로 삼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은 영원히 동일하게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두려움을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만 있으면 우리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퍼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하나님은 의지하는 자에게 평안으로 넘치게 채워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땅에서 불안, 공포, 좌절, 절망을 당할 때도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와 같이 계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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