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야훼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야훼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장 18절
믿음의 사람은 참고 기다려 승리한 공통점 있어
답답하고 힘들어도 인내하면 기다림은 ‘축복’으로 성취돼
절대주권에 순종할 때 힘 주시는 긍휼의 하나님
제가 어릴 때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장터에 가셨습니다. 그럴 때면 저와 동생들은 진장산 높은 곳에 올라 저 멀리 언양 천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실 어머니를 목매어 기다리곤 했습니다. 당시 저는 어렸지만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목마른 일인가를 가슴에 절실히 느꼈습니다. 먼 훗날 제가 목사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데도 항상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하나님이 우리를 따라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시는 곳에 우리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잠잠히 하나님을 앙망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1. 환상이나 꿈을 받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고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굉장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는 기다리는 것이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치고 나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이 앞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로 10절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가려고 하자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거나 하나님 사역을 할 때 우리 힘으로 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언제나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조병준씨의 ‘따뜻한 슬픔’이란 책에는 ‘기다려야 할 때’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작가는 “기다림이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얼마나 목마르고 애가 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답답하고 힘이 드는 기다림의 형벌은 결국 꿈이 성취되는 축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상이나 꿈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도 어떤 일을 소원하고 하나님께 뜻을 묻고 기다리는데 한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굉장히 마음이 답답하고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는가, 버리셨는가’ 그런 생각이 다 듭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때, 꿈이나 환상이나 이웃 사람들을 통해서 알려주실 때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꿈은 괴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우리에게 가져옵니다.
10억짜리 집에 사는 사람이 1억짜리 집에 사는 사람보다 더 행복할까요? 대학 교수가 유치원 교사보다 성공한 사람입니까? 커다란 외제 차를 타는 사람은 소형차를 타는 사람보다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단순히 외형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룬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성공한 삶입니다. 아무리 거창한 일을 해도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삶은 먼지와 티끌 같습니다. 지진으로 아이티가 무너지는 것 보십시오. 하나님이 한번 고개 흔드시면 한꺼번에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는 “나는 방직공장에서 일할 때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은 방직공장 최고의 직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직공장을 그만두고 우체부로 취직했을 때, 나는 최고의 우체부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강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 꿈은 강철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이루어 정말로 ‘강철왕’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기다리며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크고 작은 꿈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 꿈이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지고 삶의 진정한 성공과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자기의 삶을 정비하기 위하여
우리 신앙에는 회개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매일같이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매일같이 우리가 손발을 씻어야 되는 것처럼 매일같이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100% 온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잠언 28장 13절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나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회개하고 씻어내는 준비하는 시간이 바로 교회 와서 예배드리는 시간입니다. 기도원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시간 낭비같이 보이지만 아닙니다. 자기를 정비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 앞에 기다리고 정비하는 것은 십자가의 오중복음, 삼중축복을 마음속에 확인해 보고 가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내 마음속에 내가 누구라는 그 진실을 확실히 알고 어떠한 모습으로 가야 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성경에 말씀합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비춰 보면서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받고 의로움을 얻은 사람이다. 성결하고 성령충만 받은 사람이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치료와 건강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다. 나는 부활과 영생천국을 얻은 사람이다’ 마음속에 정체성을 확실히 알면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정체성을 가지고서 나가면 하나님의 은총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 삶을 정비하기 위해서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많이 알아도 그 말씀이 우리 생애속에 이루어지지 않고 관계가 안 되는 것은 4차원의 영성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입술의 말을 통해서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6절에 “사람이 야훼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시간을 갖고 마음을 정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바쁘게 살아갑니다. 좀 느리게 사는 것도 필요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늦게 응답하시는 것 같아도 분명한 계획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단지 잠잠히 기다리며 생각과 꿈과 믿음과 말의 4차원의 영성으로 우리 삶을 정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복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 혹은 앞서 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기다리지 않고 나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바벨탑의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우리가 탑을 쌓아 하늘 꼭대기에 닿게 하고 하나님과 동등하게 탑을 세우고 흩어짐을 멸하자. 하나님이 지상에 흩어져서라도 우리 그것을 면하자”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괘씸하게 여겨 언어를 혼잡게 하매 그들은 바벨탑을 짓다가 못 짓고 만 것입니다. 노아 홍수 후에 그들이 나아갈 때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지구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흩어져 살아야 될터인데, 흩어져 살지 않고 탑을 지어 하나님 보좌에까지 올라가보자 했던 계획을 세웠다가 망하고 만 것입니다.
성경에 웃시아 왕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웃시아 왕은 대단한 왕입니다. 외국과 싸워 이기고 나라를 부강케 해 금, 은이 풍부하고 아주 부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에 교만함이 들어왔습니다. 기다려서 하나님이 정하신 직분을 다해야지 하나님 원치 않는 직분을 자기가 행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향을 피워 드리는데 제사장이 놀라서 젊은 제사장들과 함께 들어와서 왕을 붙잡아 끄집어냈습니다. 제사는 왕이 할 일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할 일입니다. 큰 일 납니다. 웃시아 왕이 돌아서서 화를 내니 즉시로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나병이 생기면 하나님 앞에 절대로 못섭니다. 그 길로 그는 성전에서 나와서 평생 나병환자로써 별궁에 살고 비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물리치는 것입니다.
마리안 앤더슨은 미국의 유명한 복음 가수입니다. 그녀가 찬양하면 상처받은 영혼들이 위로를 받고 많은 불신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곤 합니다. 그녀가 이처럼 은혜로운 복음 가수가 된 데에는 작은 일화가 있습니다. 마리안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그녀의 노래 실력이 뛰어나서 몇 년 동안 개인 교습을 받은 후 뉴욕에 있는 홀에서 독창회를 했는데 독창회가 대단히 비극적인 평가를 받고 그는 완전히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실의에 찬 마리안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이렇게 위로 했습니다. “얘야, 은혜가 위대함보다 먼저 있어야 된다. 네가 음악가로써 위대한 사람이 되기 전에 하나님 은혜부터 먼저 받아야 된다” 그 어머니는 무식하지만 올바르게 판단했습니다. 주를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성령충만부터 먼저 받아야 됩니다. 사업을 성공하려고 하든지, 체육에 성공하려고 하든지, 정치에 성공하려고 하든지 그 무엇을 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부터 받으면 하나님이 함께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복하기 위하여 잠잠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힘을 믿고 나아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복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복되게 만들어주는 근본 능력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은 어느 날 교인 중에 한 사람이 양조장을 크게 지어서 축복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축도 시간에 무디 목사가 축도하게 되었는데 “하나님 이 양조장이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내일부터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양조장 문이 열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 양조장이 문을 열면 엄청난 술이 생산되어 수많은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고 타락하게 될 것입니다. 또 수많은 어른들도 술을 마시고 취하여 제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오늘 밤 이 양조장 주인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서 내일 아침 이 양조장이 문을 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이런 축도를 하자 사람들은 예배 후 축하 파티를 하려다가 모두 당황하여 뿔뿔이 헤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잔치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습니다. 그날 밤, 양조장 주인은 밤새 고민하느라 한잠도 못 잤습니다. 그는 새벽에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기다렸습니다. 양조장을 짓기 전에 기다리지 않고 지어놓고 이제 기다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감동이 그에게 물결치듯 다가옵니다. ‘양조장 문을 열지 말라. 양조장을 하지 마라’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이튿날 그 건물을 하나님께 바쳤고, 그 양조장이 무디신학교가 되어 수많은 주의 종들을 생산해 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 듣지 않고 앞서서 하면 큰 상처와 손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 너무나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급하게 서두르면 안되는 것입니다.
4.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또 우리가 왜 기다려야 하면 믿음이 진실성을 증명하려면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 믿는 사람은 끝까지 기다립니다. 정말 안믿는 사람은 조금 기다리다가 집어치워 버립니다. 아브라함이 85세에 아들 얻겠다고 약속하고 난 다음에 무려 1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100살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철저히 믿었습니다. 그렇게 안 믿었으면 중도에 포기했을 것인데 그래서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3절로 15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했는데 당장 안 일어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래 참는 것을 하나님이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무려 13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애굽에 국무총리가 될 것을 하나님이 꿈으로 보여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종살이 13년에 잔뼈가 다 굵었습니다. 그 오랜 기다림 후에 하나님이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기다린 것이 안타깝고 답답하겠습니까?
시편 105편 17절로 19절에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야훼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나타나는 반응은 여섯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첫째, 기피 또는 은둔형입니다. 어려움이 오면 도망치고 회피하려는 태도입니다. 둘째, 절망 또는 자학형인 것입니다. 고난에 처할 때 스스로 절망하여 자살까지 쉽게 해 버리려고 합니다. 셋째, 책임전가형 입니다. 언제나 잘못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자기는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넷째, 원망 혹은 분노형입니다. 고난이 오면 남을 원망하고 마음에 분노가 쌓여 혈기를 부리는 태도를 보입니다. 다섯째, 전투형입니다. 어려움이 오면 무턱대고 싸우려고 들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성숙형입니다. 고난에 처하면 원망하거나 절망하지도 않고 분노로 공격적이 되지도 않고 고난 중에 무슨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참고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고난을 만나면 여러 가지 다른 반응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난당했을 때 올바른 반응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다. 나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이 고난을 내게 보낼 때는 무슨 뜻이 있을 것이니 하나님 뜻을 기다리자. 미리 나가서 하나님 뜻을 헝클어지게 하지 말고 기다리자”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고통은 누구나 동일하게 당하는 것이지만 그에 대한 결과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로 온 시련이므로 하나님 뜻을 기다리려고 하는 사람은 차분하게 기다리며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성급하게 내 힘으로 나가서 대적하다가 싸움을 일으키고 상처를 입고 무서운 파괴를 당할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으로 신앙의 모범을 보인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 참고 기다림으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참된 믿음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 이를지라도 하나님께 우리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끝까지 참고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나를 연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까지 참고 기다리자. 그게 제일 올바른 태도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워드 위트만은 “인생은 기다리는 시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 자체가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때를 기다리고, 청소년들은 자신이 자동차를 몰 수 있는 면허를 얻을 때를 기다리고 의학도는 의사로서 면허 받을 때를 기다리고, 젊은 부부는 자기들의 새 집을 살 때를 기다리고 이와같은 기다림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면에는 반드시 기다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생도 기다리는 기간이고 신앙 생활도 기도하며 기다리는 생활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르는 데에는 더욱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 마음에 맞지 않는 괴로운 일을 당할때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기다리는가 안기다리는가 그것을 알아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귀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고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아무도 몰라주고 나 혼자 망하는 줄로 탄식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 속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기 위해 기다리게 하옵소서. 조급하게 느끼지 말고 기다릴 줄 아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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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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