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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의 관심사
2010.01.03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전서 2장 1∼2절

 

세상의 관심사는 ‘일, 배우자, 돈’
우리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

 2007년 한 취업 사이트에서 대학생과 직장인 56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20대 이상 성인남녀가 인생의 최우선 순위로 꼽은 것을 보면, 남성들의 경우는 부모가 최우선 순위였고 그 다음으로 연인과 배우자, 일과 직장 등의 순위였습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연인과 배우자를 최우선으로 꼽았고 그 다음으로 일과 직장, 부모 등의 순서로 꼽았습니다. 포털사이트 엠파스에서는 3361명을 대상으로 한 해 소망 중 가장 큰 것이 무엇인가를 설문조사 했습니다. 그 결과 1위가 “돈 벼락을 맞고 싶다”로 72%였습니다. 2위는“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9%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인생의 관심사는 무엇이 제일 커야 할까요?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1.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그러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막연하게 바라볼 것입니까? 땅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바라볼 때 막연하게 바라봅니까? 마음속에 예수님을 막연하게 바라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속물이 되신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내 죄를 대신해서 매달린 것입니다.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고난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 모든 세속과 더러움을 청산해 주시고 우리 병의 대속물이 우리 저주의 대속물이 되시고 우리의 죽음과 멸망의 대속물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완전히 희생제물이 되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전의 우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허물과 죄악과 평화와 나음을 가져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변화가 없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우리 마음이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좌절감에서 희망으로,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져야 하나님과 교통이 되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 대속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서 우리가 마음에 새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가 쓴 유명한 소설 「나인티 쓰리」라는 책에는 아주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 직후에 숲을 지나가던 병사들이 우연히 배고픔에 지친 어린 아이 셋을 데리고 있는 어머니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사들 중에 한 상사가 빵 한 덩이를 끄집어내서 그 어머니에게 주자, 어머니는 지체할 시간도 없이 그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서 첫째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상사와 같이 그 광경을 보던 한 젊은 병사가 빵을 주던 상사에게 물었습니다.“저 여자는 배가 전혀 안고픈가 봅니다. 빵을 받자마자 아들 셋에게만 나누어주는 것을 보세요” 그러자 상사는 젊은 병사의 어깨를 탁 치면서 “야 이 사람아 그게 아니야, 어머니가 왜 배가 안 고프겠어? 그러나 어머니의 배고픔보다 그 속에 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강했기 때문에 배고픔을 억제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사랑을 따라서 빵을 나누어 준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라고 빵 안 먹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사랑 때문에 자기는 굶어도 자식들은 먹여야 되겠다고 빵을 나누어 준 것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우리의 죄와 더러움, 병, 저주, 죽음과 멸망의 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온 몸이 물과 피를 쏟기까지 고통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어느 누가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당하고 죽고 싶겠습니까? 예수님도 기도하시기를 “하나님이여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고통을 면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짊어진 것은 고통의 괴로움 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하나님 창조의 근본으로 돌아감

 그러면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면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영혼이 죽음에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이 우리에게 비극인 것처럼 영혼의 죽음은 더 큰 비극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육체가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순식간에 하나님 보좌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 용서를 받고 정결함을 얻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하루는 심신이 몹시 지치고 고통스러워 침대위에 드러누워 있는데 갑자기 마귀가 나타났습니다. 마귀가 나타나서 큰 두루마리를 펼쳐 보이며 “읽어봐! 읽어봐!”합니다. 거기 보니까 마틴 루터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가 전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기록을 보자 마틴 루터의 마음이 짓눌리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마귀가 웃으면서 “네가 무슨 종교개혁을 하느냐? 너는 지옥가기에 딱 적당한 사람이다” 마음이 떨리고 두려워졌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마음에 번개같이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마귀를 향해 외쳤습니다.“마귀야! 네가 잊은 것이 하나 있다. 내 일생을 다 적을 때 마지막 한 사건을 적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보혈로 모든 죄가 다 용서 받았다는 사실을 너는 적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는 이미 모든 죄에서 깨끗해졌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참소하던 마귀가 순식간에 얼굴이 샛노래지더니만 도망을 치고 두루마리도 사라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로 인해 영혼이 죽은데서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에서 해방이 되고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한국전쟁이 났을 때 얼마나 황폐하게 되었는지 그때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합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 부산 부두에 서서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나라에 희망은 다시 없다. 모두 다 거지고 모두 다 헐벗고 굶주리고 모두 다 배우지 못하고 모든 교육시설은 파괴되었고 우리에게 희망이 어디 있느냐’ 신학 공부하기 위해서 서울에 왔을 때도 종로에 나가면 다 무너진 건물밖에 없습니다. 서울 어느 곳에나 사람 사는 도시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50, 60년 짧은 세월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렇게 부강한 나라가 될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 무엇보다도 복음을 받아들인후 오늘날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우리나라에 허락하셨고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세계로 파송하는 나라가 된 것은 큰 축복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에서 가장 잔혹한 유아살해범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이 교회에 가 본 적이 없고, 폭력적인 게임이나 TV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12년 간 조사한 은행 강도들의 공통점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이 도박과 마약에 빠져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결국 죄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귀의 종 노릇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915년부터 2005년까지 90년 간 물리, 화학, 의학 등 자연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400명인데 그들의 종교를 분석 해보면 기독교가 65%, 유대교가 22%, 천주교가 11%, 불교는 0.9%, 이슬람교는 0.1%였습니다. 400여명의 노벨상을 탄 사람 수의 65%는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천주교도 11%니까 합치면 76%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아동심리학자이며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인 로버트 콜스 박사는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정치인, 사업가, 학자 등 3000명을 조사하여 이들의 공통적인 성공 요인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성공의 공통요인으로 첫째, 성경을 많이 읽었고, 둘째, 예배에 잘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예배에 많이 참석한 사람이 미국에서 다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저주 가운데 있으면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청산하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가져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을 때, 우리는 축복과 형통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병들고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데서 치료 받고 영생하는 복을 받고 싶은 사람은 주님께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한 심리학자가 연구한 결과 정신병자의 75%가 죄책감으로 고민하다가 자학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정신병에 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욕타임즈’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교회 안 다니고 술집 다니는 사람보다 장수한다는 연구결과를 실었습니다. 영국의 ‘더 타임스’ 일간지에서도 교회 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7년 이상 장수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모든 의과대학에서는 환자를 진료할 때 종교와 신앙을 접목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8세기 영국 희극작가인 죠지 쿨만은 “모든 의사를 찾아가도 고치지 못한 병이 있으면 그리스도께 나아오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가지고 나아오라. 그대의 병은 완전히 고침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굳게 믿으면 우리는 병들고 죽어 흙이 되더라도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치료받아 살고, 또한 영생하는 복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창조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3. 성령과 함께 사는 삶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쳐다볼 때마다 성령이 오신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은 곁에 있어도 느낄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성령을 하나님이 보내주셨는데 디도서 3장 5절로 7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에 의로움은 율법을 행해야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신약의 의로움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 성령이 우리의 생각과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면 기도만 할 것 아니라 기다리면 내 생각을 통해서 내 양심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이 들어옵니다. 성령의 생각이 우리 생각과 양심을 통해서 오면 그것을 따라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또 보혜사라고 합니다. 보혜사라는 것은 우리를 돕기 위하여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설교를 듣고 있으면서도 ‘성령 보혜사시여, 설교를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마음에 그렇게 구하면 설교가 귀에 쏙쏙 들어올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 곁에 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보혜사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하면 성령이 우리 손을 잡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은혜로 들어가서 축복을 받고 살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의지하면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지혜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기적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등을 나누어 주어서 우리를 돕습니다. 이 은사 받은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청지기같이 봉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아름다운 열매도 성령이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미즈노 겐죠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뇌성마비가 되어서 얼굴을 제외하고 몸 전체가 꼼짝도 못하는 장애인이였습니다. 그런데 절망 가운데 미야오 목사님을 통해 복음을 들었습니다. 차츰 마음 문을 연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미즈노 겐죠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하신 말씀을 읽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인생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내가 눈만 움직일 수 있는 이런 장애인이 되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그러자 그의 맘속에 “시를 적어라. 시를!”이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말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즈노 겐죠는 벽면에 히라가나를 붙여 놓고 엄마가 그것을 가르키면 눈을 깜빡깜빡 하면서 시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쓴 그의 시를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가 선정하여 시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시집은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중 ‘내 마음속에’라는 시는 저도 읽고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속에 희망이 있다 / 그건 그리스도가 부어 주신 것 / 고뇌할 때도 변하지 않아 / 보이지 않는 것 기다리는 희망이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 / 그건 그리스도가 부어 주신 것 /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아 / 이 세상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이
 내 마음속에 나가야 할 길이 있다 / 그건 그리스도가 열어 주신 것 / 빛이 없어도 어둡지 않아 / 그 나라에 가는 즐거운 길이”

 우리도 전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살 때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성령은 우리에게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희망을 주기 때문에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과 더불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1절로 22절에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굳건하게 하시고 하나님 성령의 우리속에 계십니다.

 “시계가 하나인 사람은 시간을 정확히 알지만, 시계가 두 개인 사람은 결코 확실한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쁘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목표를 설정해도 목표에서 벗어나가는 경우도 많고 때로는 초심에서 벗어나 인생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토저 목사님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삶의 최우선으로 생각하라. 그러면 삐뚫은 길로 가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늘을 쳐다보고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땅을 쳐다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묵상하며 그 십자가 중심으로 사는 삶이 있으면 우리는 다른 삶의 도움이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주님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삶이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영광스러운 삶이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아 알아야 됩니다. 마음이 달라져야 됩니다. 썩고 더러운 것을 다 쫓아내고 십자가로 씻어 버리고 우리 마음이 십자가를 통하여 달라지면 오중복음이 넘쳐나고 삼중축복이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지고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하늘나라가 임하여 역사할 것입니다. 그런 새해를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 마음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 말씀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과 함께 새해를 살게 도와주시옵시고 좋은 일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바람 따라 위대한 승리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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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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