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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와 사랑
2009.10.25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로새서 1장 20∼22절

미움과 복수의 바이러스가 우리 심성 파괴
마음의 평화와 행복 통해 삶 지혜 터득
십자가 위에서 용서와 사랑 완성하신 예수님 의지해야


 노르웨이의 한 통계학자 조사에 의하면 지난 인류의 역사 동안 지구상에 1만 4530번의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을 계산하면 1년에 평균 2.6번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을 위해 소비되는 돈은 연간 550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약 600조 원이 됩니다. 한편 오늘날 이 땅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하루에 3만 5000명이나 됩니다. 인류의 문화사는 전쟁사와 같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항상 전쟁과 살육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와 사랑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 사랑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과 원수되게 만들었습니다. 하와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먹게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반역해서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반역자가 된 것입니다. 그때로부터 하나님과 사람은 원수가 되어 살았던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뜻을 이루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속여서 서로 원한을 갖게 만드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인 것입니다.

 600만 유대인과 수많은 동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히틀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평생 귓가에서 조용하게 소근 거리는 소리를 따라 행동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마귀가 그의 귓전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그처럼 잔인한 일을 했던 것입니다. 미움과 파괴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조그마한 미움과 저주도 마귀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 미움과 원수 됨을 철폐하시고 화해와 사랑을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이 2000년 전에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모든 죄악을 대신 담당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고 몸 찢기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를 사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가져왔습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로 22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다 용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쳐 죽이는 사람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애굽으로 팔아서 종살이를 하게 하고 온갖 고초를 당하게 한 그 형들을 나중에 애굽에서 만났을 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라고 용서했습니다. 오히려 형들을 위로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를 집요하게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을 용서했고, 아버지의 보좌를 찬탈하고자 반란을 일으켰던 아들 압살롬을 용서했습니다. 또한 반란을 피해 도망가는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하던 시므이도 용서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 당하시면서도 주님을 멸시하고 저주하며 비웃는 무리들을 향해서 십자가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님은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며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2. 미움과 복수심은 파괴의 바이러스

 요사이 신종 플루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그 바이러스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미움과 복수의 바이러스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옵니다. 잠언 14장 30절에도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12장 16절에는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여교장선생님이 관절염으로 심하게 고생을 하는데 아무리 병원에 가서 치료받아도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목사님을 청해서 기도를 받는데 목사님이 “언제부터 관절염이 생겼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우리 남편하고 이혼을 하고 난 다음부터 관절염이 생겼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동시에 그 헤어진 남편을 10년동안 욕했음을 고백했습니다. 미워하고 저주했던 그것을 통해 관절염이 낫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 통회자복하며 기도하고 헤어진 남편을 축복하자 관절염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미움은 온갖 결점을 다 드러내고 온갖 흉을 보고 무서운 다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잘못한 것을 다 덮어주고 감추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 주어서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로 16절에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악이 있고 귀신이 있습니다. 귀신이 마음에 시기와 분노와 다툼을 일으키고 그것에 불을 자꾸 놓아서 고통을 가져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기억하십니까. 만델라 대통령은 약 26년 동안 외딴섬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중한 정치범으로 간주되어 면회는 6개월에 한 번 밖에 안 되었고, 편지도 한 통밖에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흑인이기 때문에 분리주의자인 백인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무척 고통을 당하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듬해에 그 큰 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죽었지만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집에서 쫓겨났고, 둘째 딸은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감옥에 갇힌 지 14년째가 되던 때에 그의 맏딸이 아기를 낳았다고 면회를 왔습니다. 그리고 미리 보낸 편지에 부탁한 대로 아기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아버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딸에게 쪽지를 내주었습니다. 딸은 그 쪽지를 조심스럽게 펴 보고 그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여 통곡을 했습니다. 그 쪽지에는 그 딸의 이름을 “아즈위’(Azwie)라고 하라” “즉, ‘희망’이라고 하라”고 쓰여있습니다. 절망상태에 있는 아버지가 손녀의 이름을 희망이라고 써주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감옥에서 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즉위후에 첫번째 한 일이 당시의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여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고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사회를 만든 것입니다. 미움과 복수심은 자기의 심신을 파괴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훼손시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 땅의 미움과 원수를 철폐하시고 화해와 사랑을 가져오시고 계십니다.

 

 3. 용서하며 사는 길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용서하며 사는 길을 선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나하고 저 사람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똑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상대와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대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와 똑같이 생각하라고 할 권한이 없습니다. 나와 다르다고 욕할 이유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개성이 있기 때문에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화하며 서로 조화롭게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장 13절로 14절에도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용서와 사랑, 이것이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평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간디가 어느 날 폭력배들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습니다. 이 일로 법정의 증언대에 서게 되었는데 간디는 또렷한 목소리로 “저기 앉아 있는 피고인들은 나에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었기에 나를 때렸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원한을 그들에게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저들을 알지도 못하고 또한 내 개인적으로 아무런 원한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나도 저들을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 풀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들의 석방을 요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폭행한 사람들을 폭행죄로 감옥에 집어넣지 아니하고 용서해주고 풀어준 것입니다. 잠언 20장 22절에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야훼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말씀하셨고 로마서 12장 19절에도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가 쓴 ‘빙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여인이 눈 덮인 언덕 길을 향하여 걷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알고보니까 여태까지 어머니로 모셨던 분이 자기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친어머니가 버린 자기를 거두어 키워준 것입니다. 그것을 알자 마음에 큰 충격을 받고 고통을 당하다가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자살하려고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운데 조심스럽게 일직선으로 산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까 자기 발걸음이 비틀 비틀합니다. 자기는 바르게 왔다고 했는데 걸어온 발걸음을 위에 올라가 보니까 눈자국이 비틀 비틀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 마음에 크게 깨닫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자신은 똑바로 온다고 왔는데 발자국은 이리저리 비뚤어져 있는 것을 보니 인생에 자기는 옳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완전히 삐뚤어진 인생을 산 것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우리 친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을 하고 자살을 하려는 것은 친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답답했으면 자기 딸을 낳아서 기르지 않고 버렸을까 생각하며 자기가 잘못을 알고 자살을 포기하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적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아담의 후손이므로 죄인의 한사람이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나만 의인이고 저 사람만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저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할 때 나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인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죄인입니다. 누구나 알게 모르게 죄를 지었으며 또한 회개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용서하고 사는 길이 친히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않고 모든 판단은 하나님께서 맡기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서와 화해를 앞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독일 아우슈비츠의 참담한 수용소에서 생존한 유대인 디무르는 전쟁이 끝나고 1961년에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 재판 증인으로 소환되었습니다. 재판관은 디무르에게 히틀러의 참모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을 가리키면서 “저 사람을 똑똑히 보십시오. 저 사람이 아이히만이 맞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수백만 유대인을 죽인 사람입니다. 재판관의 말에 디무르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졸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에 깨어난 그는 “제가 그 사람을 봤을 때 그 사람이 너무나 순진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에 기절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을 무참하게 죽인 사람이 너무나 순진하고 평범한 사람입니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계속 이어서 “나는 그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를 그 자리에 만나니까 당장 그를 처참하게 죽이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에 불꽃같이 올라온 것을 보니 나도 아이히만 자리에 있었으면 같은 일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쉽게 비평하지 말고 남의 입장을 남의 입장에 서서 충분히 생각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주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언제나 용서와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용서와 사랑을 하기가 힘듭니다. 저도 50년 동안 목회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내 마음속에 용서와 사랑이 나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용서와 사랑은 내 힘으로 안되기 때문에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용서와 사랑을 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로 15절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용서받은 것처럼 나도 이웃을 용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이 갚지 내가 갚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만은 말년에 여러 가지 질병으로 불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의사가 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환자에게 처방을 해 왔지만 아픈 사람에게 가장 좋은 처방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휘트만은 크게 공감하면서 “그런데 그 사랑이란 약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요?” 그러니까 의사가 웃으면서 “한봉지로 처방해서 안나으면 두봉지, 세봉지, 많이 처방을 해야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한번 사랑해서 안되거든 두 번, 세 번, 네 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야 될 것은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과거에 죄를 수 없이 지었는데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오면 하나님이 다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존 브로크만은 그의 책 ‘지난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에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121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인쇄술, 전기, 비행기, 컴퓨터, 인터넷 등이 포함되는데 거기에 예외로 한가지 놀라운 발명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지우개’입니다. 지금까지 발명한 발명품 중에 지우개가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힌 것 입니다. 존 브로크만에 의하면 지우개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인류의 기록문화가 극적으로 발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창조주이신 하나님도 실수투성이인 우리 인생을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라는 지우개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 지우개가 없었다면 우리 인생은 늘 고칠 수 없는 실수와 죄 가운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 입니다. 용서하며 사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슴에 끌어안고 아픈 상처를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 보혈의 지우개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끌어안고 그 모든 원한을 다 지워버리고 풀어버리고 그 대신 사랑과 화해를 가져오면 이것이 참 크리스천의 생활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모든 우리의 죄를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두 손을 활짝 내밀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받아들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관대한 용서와 사랑과 화해가 아니면 우리는 하루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의지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제3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되면 정말로 힘이 듭니다. 원한의 바이러스를 용서로써 죽이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갖는 것이 이 세상을 사는 지혜로운 길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이 세상에는 미움과 원한이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미움과 원한이 사라질 때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속에 계신 미움과 원한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다 지워 버렸습니다. 하나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십자가를 끌어안고 모든 원한과 미움을 다 지워버리게 도와주시옵소서.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가져오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우리 과거를 다 기억하신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이웃의 과거를 비평한다면 어떻게 친해질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과 화해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도와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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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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