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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부활
2009.10.11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십자가야말로 복음의 진수
구원받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 지는 삶
내 십자가 짊어지고 기도하며 살아가야


 십자가는 고대 로마에서 극악한 죄수를 처형하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죄수를 못박아 놓으면 3일에서 5일 동안 피를 흘리고 고통을 당하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처형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어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원이 되시고 난 이후 십자가는 자랑과 영광의 표상으로써 승리의 상징이 됐습니다.

 

 1. 십자가의 의미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21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보면 십자가의 의미를 잘 알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은혜입니까? 니고데모와 그 시대 사람들은 십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법을 지킨다해도 다 지키지 못하므로 위선자가 되고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므로 그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정작 육체의 장막집을 떠나고 난 다음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곤욕스럽습니까?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과거를 용서하시고 구원 해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 프란시스는 십자가 앞에서 기도할 때 큰 은혜를 받고, 그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라비안 교회를 창립한 진젠돌프 백작도 한 미술관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성화를 보고 그 앞에서 기도 할 때 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칠 것을 결심했고, 그 후 모라비안 교회가 세워지게된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위대한 사랑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깨워 일으켜서 기도하게 하며 은혜를 받게 하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큰 일을 하게 만들어 줍니다. 전도할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나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져 주셨으므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2. 십자가는 복음의 진수

 십자가야말로 복음의 진수입니다. 십자가 그 자체가 복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가기 전에 아덴에서 잠시 동안 머물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아레오바고라는 광장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바울 생애에 가장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연설을 했습니다. 굉장한 결과를 얻을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나온 사람은 세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에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린도전서 2장 1절로 5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이외에는 알지도 말고 말하지도 않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이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로 24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만 전하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사람에게는 큰 능력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하는 것은 누구를 택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 놓으면 택함을 받은 사람은 그 말씀을 들어 구원을 받을 것이요,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3. 성도들과 십자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에 짊어져야할 십자가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으면 죄에서 해방되고 불의에서 해방되고 병에서 놓여남 받고 저주가 떠나가고 영생을 얻게 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짊어져야 될 십자가가 있습니다. 월터 J. 챈트리는 ‘자기부인’이라는 책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특징을 설명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것에 대해 5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 십자가를 지는 것은 보편적인 일이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십자가를 지는 일은 영구적인 것입니다. 셋째,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의지적인 일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 선택해서 기쁘게 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십자가를 지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어 고통 당하셨듯이,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수고를 들여 봉사하고 일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십자가는 곧 죽음입니다. 즉 우리의 자존심과 자기 만족, 쾌락과 욕심, 이기심 등을 십자가에 못 박고 모두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구원받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쫓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통해 ‘성화’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면서 우리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제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짊어져야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서 우리가 죄와 불의에서 해방을 얻어야 합니다. 아무리 교훈을 해도 안 듣고 아무리 달래도 안듣지만 십자가가 와서 짓누르면 십자가에 고통을 당하면 사람들은 성화되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또 십자가를 짊어져야 우리가 깨어지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8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죽음으로 말미암아 깨어져서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십자가가 있어야 기도하고 믿음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편하고 걱정이 없다면 기도를 안하게 됩니다. 답답할 때 기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울 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믿음도 생기고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십자가를 주셔서 우리를 믿음이 강한 사람으로 만들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4. 십자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

 십자가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대해서 저항을 합니다. 남편이 마음에 고통을 가져오는 남편이면 그 남편을 저항하고 마음속으로 저주하고 욕합니다. 아내가 그러면 또 아내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식도 그렇고 부모도 그렇고 세상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십자가에 대해서 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대해서 저항하지 말고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생마사’, ‘말은 홍수를 만나면 다 죽지만 소는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은 성격이 급하고 빨리 뛰기 때문에 헤엄을 쳐서 홍수를 피하다 지쳐서 그냥 빠져 죽습니다. 그러나 소는 헤엄을 칠 줄 모르기 때문에 홍수가 나면 떠내려 갑니다. 떠내려가다가 나중에 집에 걸린다든지 언덕에 걸린다든지 낮은데 걸리면 살아서 걸어나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도 한가지입니다. 내 힘으로 십자가를 저항하고 밀어내고 안짊어지려고 발버둥을 치면 나중에 그 때문에 아주 신경쇠약에 걸리고 신앙도 잃어버리고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맡겨버리면 나중에는 십자가가 나를 변화시키고 오히려 십자가가 축복의 근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요한복음 15장 18절로 19절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믿는자들이 미움을 당하는 것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장 35절에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말씀했는데,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 자신을 죽이면 생명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리차드 범브란트는 ‘십자가’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한 크리스천이 하나님께 자신이 지고 있는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는 너무 무거우니 다른 십자가를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 십자가를 내놓고 난 다음 “네가 고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옥으로 만든 십자가로 참 보기는 좋은데 무거워서 걸머질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십자가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표면이 너무 거칠어서 고통스러워 걸머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십자가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것을 짊어지겠습니다” 하니까 하나님이 “그 십자가를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아라”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자기가 짊어지고 있는 그 십자가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할만한 십자가를 주십니다.

 김인서 목사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일제 강점시기에 3·1운동에 앞장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처음 예수를 믿게 되고 변화를 받게 되었는데,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깊게 체험했습니다. 조금도 죄책이 없었던 그가 십자가를 통해 변화되고 자신을 죽여 큰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았으면 부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면 반드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죽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 죽은만큼 예수의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이 몸에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장차 다가올 사건일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재 생활 속에 놀라운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내가 십자가를 짊어지게 될 때 체험하는 기적인 것입니다.

 토마스 드레이크는 “십자가는 하늘의 사닥다리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사무엘 러더포드도 “십자가 없는 믿음은 곧 얼어버린다”라고 말했습니다. 벗으려고 애쓰지 마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은혜를 받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끝까지 참으시고 죽으심으로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인간의 구원과 부활을 가져온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성도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나에게만 불행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남도 다 불행한 것입니다. 나에게만 슬픔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슬픔이 있는 것이고 내게만 근심 걱정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근심, 걱정이 다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없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누구에게나 다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의 영광도 없기 때문에 우리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개인의 십자가를 짊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를 싫어합니다. 목사가 십자가에 대한 설교를 할 때도 힘이 듭니다. 그러나 십자가 없는 구원도 있을 수가 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갈 때 제일 가슴에 큰 표적을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믿고 기도하고 변화되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이 세상 살아가면서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도 없음을 압니다. 하나님도 수많은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셨는데 우리라고 해서 어찌 십자가 없는 인생을 살겠습니까?  우리가 남에게 십자가가 되기도 하고 남이 우리에게 십자가가 되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를 원망하거나 밀쳐 내지 말고 십자가를 받아들여서 내가 죽게 만들어 주시옵시옵소서. 또한 내가 죽는 그 행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생활, 사회, 국가가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질 때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벗어버리면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십자가를 짊어질 수 있는 믿음과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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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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