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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
2009.09.2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태복음 12장 20절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심판하기 위함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은혜와 사랑 보여주셔
영원한 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하나님뿐


 가을에 풍성한 갈대밭에 가보면 군데군데 상한 갈대들이 바람에 이리저리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짐승들에게 짓밟히기도 하고 바람에 부러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갈대를 보면 자비와 긍휼을 느끼지 아니하고 쉽게 그것을 꺾게 됩니다. 옛날에 등불을 쓸 때 기름이 다하면 등불에서 연기가 나고 불길이 가물가물해집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훅 불어서 꺼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갈대와 같이 상처 입은 인간, 생명이 꺼져가는 등불 같은 인간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돌봐주십니다..

 

 1.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

 하루는 예수님이 아침에 일찍 성전뜰에 나오셔서 말씀을 증거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비명소리가 나고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바리새인, 사두개인, 교법사들이 한 여인의 머리채를 끌고 예수님 있는대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런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이지 말라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 아니다 할 것이요, 쳐죽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 없음을 지적하려는 술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이 여자를 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여자에게 돌을 던지지 못합니다. 또한 여자에게도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우리 이웃을 쉽게 정죄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사랑하고 우리를 죄에서 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근본 목적이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지,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새 삶의 은혜를 입은 이 여인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율법으로는 반드시 돌에 맞아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주님은 어찌하든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살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성령을 주셔서 우리가 죄를 이기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자 프란시스의 일화 중에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제자 한 사람이 기도하는 중 환상 가운데 천국에 가게되었는데, 보좌들이 많이 놓여 있었고 특별히 그 보좌 가운데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보좌가 있어서 “이것은 누구를 위한 보좌입니까?” 하고 천사에게 물으니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란시스를 위해서 예비한 보좌”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는 환상에서 깨어나 감격스러운 얼굴로 스승인 성 프란시스를 찾아갑니다. “제가 환상중에 하늘에 가보니까 제일 영광스러운 보좌가 있는데 그것이 선생님의 보좌였습니다”라는 제자의 말에 프란시스는 “나같이 못난 사람에게 하나님 은혜를 주어서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이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내 힘으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성령으로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를 도우사 회개하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피로 용서하시고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 것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상한 갈대를 많이 봅니다. 상처입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런 사람의 상처를 감싸주고 고쳐주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못나고 버림받고 슬픔당하고 괴로운 사람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상처입은 갈대를 주님께서 꺾지 않고 끝까지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 타버린 꺼져가는 등불도 살려놓으시는 분입니다.

 

 2.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

 예수님께서 정오에 사마리아를 지나가다가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물가에 앉아 있는데 사마리아 한 여자가 물통을 어깨에 걸머지고 물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보고 물을 달라 청하십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사람취급 안할 때였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미 마음속에 정죄를 받았고, 버림받은 심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죄많은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까 여자가 기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물을  달라는 자가 누군지 네가 알았으면 네가 오히려 물을 구했을 것이요. 내가 너에게 생수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여인과 대화하며 스스로 죄를 자복하도록 유도하십니다. 사람들을 피하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자 그 생애 가운데 순식간에 변화가 다가왔습니다. 죄의 용서와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가 마음속에 홍수처럼 다가왔습니다. 정말 마른 땅에 시냇물이 흐르듯이 말라 비틀어진 그 마음에 시냇물이 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꺼져가던 등불 같은 이 죄인 여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스스로 죄를 자복하게 유도하시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서 생수를 마시게 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로 38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강이 흘러내리면 강가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습니다. 강가에 있는 모든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의 강이 흐르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모든 것이 살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범죄는 과거에 비해 더욱 잔인하고 끔찍하지만, 아직도 살인범 ‘김대두’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김대두라는 사람은 사형수인데 16명의 사람을 죽이고 체포되어서 형무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형무소에 있을 동안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간증집을 내었고 ‘사형장의 찬송 소리’라는 제목으로 책을 지었습니다. 사형을 받는 날 당일에 그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해 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영영 이별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와서 저하고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를 믿고 고백만 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많은 생명을 앗아간 김대두 같은 사람도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생명이 꺼져가는 등불같은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신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감사와 찬양을 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율법과 사랑과 은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정죄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잘했다고 칭찬하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적해서 드러나게 하고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9절로 20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율법 아래서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네덜란드의 한 시인이 꿈에 천국을 갔는데 한 천사가 그를 맞이하며 금빛이 나는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인이 천사에게 그 책이 무슨 책이냐고 묻자 당신의 일생을 기록해 놓은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기록했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서 첫 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깨알같이 차곡차곡 기록해 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시인이 내용을 묻자 천사는 당신의 악한 행동을 다 적어놓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악한 행동이 많은지 모릅니다. 시인은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겼는데,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글들이 가득했습니다. 천사는“당신이 했던 사악한 말들이 여기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다음 장은 이보다 더 많은 글씨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천사가 “이것은 당신이 했던 악한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세상을 뜨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기독교신문 기자가 “한경직 목사님의 평생 살아온 삶을 한마디로 말해 주십시오”라고 묻자 “나는 죄덩어리입니다. 죄덩어리인 내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고 구원을 받아 천당으로 갑니다”고 답변했습니다. 존경받고 사셨던 그분도 그렇게 훌륭하고 올바른 삶을 살았지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볼 때는 죄악덩어리라고 말했습니다. 의로운 사람일수록 자기가 더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의롭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 이와같이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는 율법 앞에 서면 온통 죄덩어리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모두다 위선자입니다. 또한 율법을 다 지키고 사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0절로 11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일에 항상 의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 앞에서 다 정죄되고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지 율법을 지켰다고 어깨에 힘주는 사람 같으면 그 사람은 위선자인 것입니다. 세상에도 법이 있습니다. 법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지 그 법을 지킨다 해도 법이 우리를 의롭게 만들 정도로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항상 법보다도 사랑과 은혜를 중심으로 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용서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법은 정죄하고 심판하지만 사랑은 용서와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냈지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낸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세기에 활동한 사막의 수도사 압바 미오스에게 한 군인이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죄인을 용서하실까요?” 수도사는 대답하기를 “자네가 입고 있는 그 외투가 찢어지면 그냥 내버리느냐? 몇푼 안나가는 외투라 할지라도 찢어지면 도로 기워서 입는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은 존재라네. 그것이 찢어지고 흠이 있다고 해서 주님이 그대로 버릴수 있겠는가? 주님께 나오면 다 주님께서 꿰매서 고쳐서 구원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으로 보냈지만 온갖 곤욕과 고통을 당하시고 못에 박혀 몸찢고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말씀 가운데 놀라운 구절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값을 지불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값을 다 지불하고 우리에게는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 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 이외에 다른 것이 구원의 조건에 붙으면 안됩니다.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까 주일 예배 나오고 십일조 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셔야만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우리가 회개하고 자복하고 옛사람을 탄식하고 미워하고 벗어버릴 수 있고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감동을 주심으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을 수가 있습니다.

 디한(M.R.DeHaan) 박사는 율법과 은혜에 대하여 7가지로 표현을 했습니다. 첫째,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정죄하지만,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한다. 율법은 가장 선한 사람도 죄인으로 정죄하는데 은혜는 가장 악한 사람도 구원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율법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나, 은혜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라고 말한다. 셋째, 율법은 죄의 빚을 갚으라고 하지만, 은혜는 이미 죗값을 지불했다고 말한다. 넷째,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은혜는 죄로부터 구원을 받게 도와준다. 다섯째, 율법은 돌에 새겼으나 은혜는 마음에 기록한다. 여섯째, 율법은 두려움을 가져오지만, 은혜는 화평과 확신을 가져다 준다. 일곱째, 율법은 복종을 강요하지만, 은혜는 순종하는 능력을 줍니다.

 율법이 죄를 드러나게 하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데 반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그 죄를 덮어 버리고 심판을 무력화시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마음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상한 갈대요 생수에 갈급한 인간입니다. 우리 마음이 텅빈 공허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고 슬픔을 느낄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 중심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성령님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가운데 다가오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밖에 없습니다. 항상 이 영원을 가슴에 품고 그 영원의 가슴에 안겨 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로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고 심판의 그날까지 돌보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용기와 담력을 얻고 하나님 앞에 나오고 예수님께 의지하오니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셔서 다시 살아나고 힘을 얻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우리의 둔한 마음을 밝혀 주시옵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항상 주님을 즐겁게 하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적을 우리에게 충만히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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