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장 2∼3절
축복의 길은 고난의 광야 지나야 다가와
예수님은 고통에서 우리를 능히 건져내셔
고난당할 때 주님 의지하며 당당히 맞서야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고난과 함께 살아오고 있습니다. 고난 받지 않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어느 신앙이 깊은 자매님이 고난에 대한 간증을 제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가 고난당한 후 자신이 더욱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게 돼서 고난당하기 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고난당하고 고통당할 때 원망하거나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과적으로 내게 유익이라고 믿고 더욱 겸손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위기는 우리 삶에 축복으로 변화됩니다. 축복의 길은 고난의 광야를 지나야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축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축복이 있는 가나안 땅에 가기 전에 반드시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광야가 없는 축복은 결코 없습니다.
1. 요셉이 경험한 고난과 축복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째 아들로 특별히 야곱의 사랑을 받았는데 형제들이 시기, 질투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꿈에 추수하러 형제들과 나왔는데 자기의 단이 가운데 서고 형제들의 단이 둘러서서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밥상에서 이야기하니까 형제들이 굉장히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또 자랑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형들은 몸을 떨면서 미워했습니다. 아버지도 요셉을 보고 꾸짖었습니다. “해와 달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 아니냐? 네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들이 너에게 엎드려 절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나 야곱은 의미가 있는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가정에서 가장 큰 인물이 될 것을 꿈으로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 위해서 요셉은 기나긴 세월의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종이 되어 애굽에서 종살이를 10년 동안 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좀 살 만하니까 또 모함에 빠져서 감옥에 들어가 3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13년의 광야를 지나고 난 다음에 그는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위기에서 애굽을 구출하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온 가족들이 내려와서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해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면 선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해를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그냥 주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광야라는 어려운 해를 통해서 선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2. 광야 저편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광야 저편에 있습니다. 이편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은 지금 우리 편에 있지 않습니다. 광야 저편에 있는 것입니다.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광야는 지나가지 않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만 들어가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명기 8장 2절로 3절에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가지도록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자기들을 의지하고 원망, 불평, 탄식하다가 낙제생이 되고 버림받고 만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5절로 16절에도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시는 목적은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를 지나지 않고는 복을 받을 그릇이 준비가 되지 않습니다. 작은 복을 받을 사람은 작은 광야를 통과하고 큰 복을 받을 사람은 넓고 긴 광야를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골리앗은 다윗 성공의 가시
성경에 보면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죽이고 온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고 나중에 이스라엘 왕이 됐습니다. 그러나 골리앗과 싸울 때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집안 식구들도 인정하지 않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을 때 사울 왕과 군대들이 골리앗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이라는 어마어마한 적을 감당하지 못해서 쩔쩔매고 있을 때 다윗이 나아가 골리앗과 싸워서 골리앗을 죽이고 일약에 온 나라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위대한 인물이 됐던 것입니다.
골리앗이라는 가시가 있어서 다윗이 생겼지 골리앗 없이는 다윗이 생겨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는 골리앗이라는 엄청난 원수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와 싸워서 그를 죽이고 이겨야만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속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이 우리에게는 가시 같지만 나중에는 큰 축복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을 다 버리고 사망이나 고통이나 괴로움이 없는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영원히 모시고 살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우리는 구원만 보면 감사하고 찬미합니다.
그러나 그 구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합니다. 우리가 못 건너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업고 그 강을 건너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 절망과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우리가 못 박혀야 될 그 자리에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될 죽음에 예수님이 대신 들어가셔서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광야를 무사통과한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는 죽음의 광야를 통해서 영생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로 11절에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하나님께 얼마나 복종하셨던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셔서 33년 동안 먼지와 티끌 속에 사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그 무지막지한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있어야 용서와 구원과 천국이 다가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 고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광야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그곳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고 착각한다” 자기는 고난을 안 당해 봤으면서 고난당한 사람을 돌볼 수는 없습니다. 자기는 광야 근처에도 가지 않고 호의호식하고 호화롭게 살면서 광야에서 헐벗고 굶주려 고통당하는 국민을 이해하고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는 없습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영광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인간 세상에 오셔서 온갖 고통과 핍박과 고난을 몸소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십자가에 달려 몸 찢기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우리의 심정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죄와 질병과 환경의 고통에서 우리를 능히 건져내실 수 있으신 것은 예수님이 그것을 먼저 통과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대가를 먼저 지불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5. 고난의 열매
우리는 고난을 늘 피하려고 하지만 고난의 열매는 받기 원합니다. 그러나 고난 받지 않고는 고난의 열매를 취할 수 없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달고 향기로운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고난 받게 되면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건방지고 교만합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다 교만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다가오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이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직시하게 되고 겸손하게 됩니다. 많은 고난을 받을수록 많이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큰일을 하고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은 그가 엄청난 고난을 통해서 깨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고 겸손하게 깨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그것이 고난의 열매입니다.
또한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더욱 힘써 기도하게 됩니다. 고집을 부리고 자기 멋대로 살고 자기 원하는 대로 가려고 하던 사람이 고난 가운데 고통을 심히 당하면 회개하고 깨어지고 순종하게 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8절로 9절에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조차 고난으로 말미암아 순종을 배우셨다는 것입니다. 왜 순종하지 않습니까? 고난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고집을 부리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어려운 고통에 처하면 하나님 앞에 깨어지고 순종하게 되고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보통 때는 기도를 안 하던 사람이라도 고난당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은 믿음을 자라게 합니다. 고난을 안 받으면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이 왔기 때문에 믿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믿습니다’를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기도의 선생입니다. 평소에 기도하라고 하면 ‘시간이 없다’ ‘몸이 피곤하다’ ‘바쁘다’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폭풍우가 몰아칠 때 우리는 새벽 기도도 나오고 철야 기도도 하게 되고 스스로 산에 올라가 기도하게 되고 작정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은 다가올 축복을 감당케 하는 준비를 시킵니다. 고난당해서 변화돼야 하나님이 안심하고 축복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탕자가 어려운 고난을 당하고 깨어진 다음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사람이 고난당해서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깨어지고 겸손하게 되면 나중에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7절로 18절에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야훼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는데 그 능력이 언제 개발되느냐, 고난당하고 난 다음에 그 능력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는 재물 얻을 능력을 개발시켜 주지 않습니다. 고난을 통과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 능력을 개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으로 훈련받을 때는 너무나 생활환경이 어려웠습니다. 훈련병들에게 밥을 너무나 적게 주기 때문에 늘 배가 고파 허덕였습니다. 게다가 천막은 추워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훈련받을 때 한낮에 양지에서 햇볕을 쬐면 모두 앉아서 좁니다. 교관이 무엇을 가르쳐도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옵니다. 그러면 교관이 우리를 깨우려고 농담을 합니다. 교관이 농담할 때는 눈이 번쩍 뜨입니다. 그 농담을 듣고 ‘하하하’ 웃고 난 다음에 본론으로 들어가면 또 좁니다. 그러다가 교관이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야, 이놈들아! 눈 좀 똑똑히 뜨고 내 말을 들어라. 나도 너희 조는 놈들을 깨우고 싶지 않다. 나도 너희들을 보니 측은하고 안됐다. 그러나 내 말을 안 들으면 전쟁이 났을 때 제일 먼저 죽는다. 전쟁에서 안 죽는 법을 내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안 배워 놓으면 제일 먼저 총알받이가 된다. 죽지 말라고 훈련시키는 것이지 너희를 괴롭히려고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훈련을 받으면 안 죽고 살아남지만 이렇게 졸고 게으르면 전쟁 시에 죽고 만다” 그렇게 교관이 호통 치는 말을 졸면서 얼핏 들었는데 그 말이 제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렸습니다. “야 이놈아, 정신을 차려라. 네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는 것은 마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죽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믿고 순종하고 믿음을 강하게 만들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니 깨어 기도하라” 그 교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지금도 마음속에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훈련을 합니까? 살아남으라고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이 다가와야 깨어 기도하게 되고 그런 고난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보십시오. 고난이 와야 우리가 온전하게 되고 굳건하게 되고 강하게 되고 터가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고난당하지 않는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고난 안 당할 때가 고난당할 때보다 더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고난에 대해 설교할 때는 낭만적으로 하지만 실제로 고난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몸서리칩니다. 정말 괴롭습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을 들어도 “웃기는 소리하네. 너나 고난 많이 당해라!” 그런 말이 나옵니다. 저도 50년의 목회생활 가운데 하도 뼈저리게 고난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고난이라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고난이라면 다시 돌아보기도 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늙은 나이에도 하나님이 종종 고난을 주십니다. “깨어나라. 잠들지 말라. 세상에서 잠들면 죽는다.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고난을 통해 경종을 울리시는 것입니다. 싫지만 고난이 있는 것은 우리를 깨어나게 만들고 기도하게 만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왕 고난을 당한다면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고난당할 때, 고난에 대한 바른 이해와 용기를 갖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대히 고난을 통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고난의 비바람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고난의 비바람을 당해서 더 나빠지고 더 못살게 되고 더 고통 속에 떨어지는 것은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히 받아들이고 기쁨으로 견뎌내면 오히려 큰 축복이 되고 도움이 되고 변화 받게 돼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그릇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난을 통해서 변화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까지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는 고난을 통과하셨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는 것이니 고난을 영광의 전초기지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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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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