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마태복음 19장 16∼26절
인간의 마음… 탐심과 욕심이 점령
예수 믿고 성령 받아 마음이 변화돼야
사랑과 행복 나누며 함께 잘 살 수 있어
인간의 이상은 모두 다 평등하게 잘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바라보면 빈부의 격차는 어느 사회든지 만연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권의 무시 및 유린이 항상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주의(主義)와 주장을 만들었지만 그 어느 것 하나도 완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근본적인 죄와 탐욕과 이기주의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해결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1.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탐심과 욕심이 점령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항상 탐심과 욕심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겉으로는 아주 근사하고 점잖고 훌륭하게 보이지만 속으로 파고 들어가면 욕심과 탐심과 탐욕이 마음을 꽉 잡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 욕심과 탐심에 잡혀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19장 16절로 26절에서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와서 무릎을 꿇고 “선한 선생님이여,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날 보고 선한 선생이라 하지 마라. 선한 선생은 오직 한 분이시니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시니라. 네가 생명을 얻고자 하거든 계명을 지켜라” “어떤 계명입니까?” 주님은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미 그 계명들을 다 지켰습니다” 주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고 “그러나 아직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그러면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주님을 따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근심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욕심과 탐심이 청년의 마음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은 받고 싶지만 재산은 놓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물질이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했는데 물질이 다른 신이 되어 있습니다. ‘우상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물질이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하나님께 복을 받아 부자가 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부자가 된 사람은 그 물질이 신이 되고 물질이 우상이 돼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우상을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못 믿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듭니다.
제가 한번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 한 분에게 전도하려고 여러 번 면회를 신청했다가 나중에 허락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비서실에 가서 1시간을 기다려서 점심시간이 되어 둘이 함께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는데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면 사업 투자에 대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야 됩니다”라고 하니까 “지금 인도네시아에 큰 사업이 있는데 거기 빨리 투자해야지. 시간이 늦으면 안 된다”고 그럽니다. 또 “사람이 오래 못삽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으십시오”라고 하니까 “나는 피를 다 갈아치웠다. 늙은 피는 다 뽑고 젊은 피를 몸에 넣었기 때문에 몇 십 년은 더 산다. 그러므로 지금 서둘러 믿을 필요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더니만 얼마 안 있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부자의 마음은 물질이 신이 되고 우상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주님,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로 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란 마음속에 들어오면 반드시 사망을 낳고 맙니다. 욕심은 우리의 분수 이상의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인간이 만든 최대의 주의(主義)
인간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찌하면 잘 살아볼까’에 대해 여러 가지 연구를 하고 이론을 만들고 실천했습니다. 이 가운데 인간이 만든 최대의 주의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입니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모든 사람이 평균적으로 잘사는 것입니다. 모든 생산수단인 공장이나 밭이나 논이나 집이나 물질은 정부가 다 가지고 일반 사람들은 절대로 소유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 함께 노동하고 함께 벌어서 똑같이 나누어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독재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재산을 국가가 다 빼앗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모든 재산을 다 소유하고 일당독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가 시키는 대로 공장이나 노동현장에서 일해서 돈을 벌면 국가가 다 가져갑니다. 그 돈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어 잘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이 듣기에는 참 복음 같으나 실제로는 망조가 든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일을 해도 자기 재산이 안 되니까 어찌하든지 일을 안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북한에 갔을 때 한 사람이 제게 말하기를 “정부에서 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일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더라도, 농장에 가서 하루에 풀 다섯 포기만 뽑아도 밥은 먹는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풀 다섯 포기만 뽑고 있었던 사람이나 똑같이 먹고 입는다고 하는데 누가 열심히 일합니까?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전부 가난해집니다. 게으르고 비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좋은 것입니까? 자본주의는 재산의 개인 소유권을 인정합니다. 개인의 이름으로 집도 등기하고 토지도 등기하고 재산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소유를 인정한 이상 이제 경쟁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합니다.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므로 생산성이 높아지고 전반적으로 물질은 풍성해집니다. 그러나 부정부패가 심합니다. 세금을 적게 내려고 특권을 얻으려고 뒷돈을 써서 부정부패가 심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빈부격차가 심합니다. 부자는 투자를 많이 해서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가난하게 돼서 빈부격차가 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도 온전하지 못합니다.
3. 미국 금융중심 월가의 비극
현재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나라도 경기침체로 말미암아 직장을 잃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미국의 금융가인 월가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미국의 초대형 투자은행이 파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이들 대형은행들이 파산하게 된 주원인은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즉 주택담보대출 때문입니다. 은행이 주택을 사달라는 사람들에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서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돈을 은행에서 받아서 주택을 샀다가 도로 팔아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주택경기가 막 상승하기 시작하니까 많은 투자가들이 은행에 돈을 투자했고 은행에서는 수많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원금과 이자를 받아서 잘 되다가 어느 순간 거품이 꺼졌습니다. 주택 값이 떨어지고 부동산 값이 떨어져서 나중에는 도저히 원금도 갚을 수 없고 이자도 갚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자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모두 다 두 손을 들고 은행에 집을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빌린 돈을 갚을 수가 없으니 집을 가져가라고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은행 입장에서는 주택 값이 너무 떨어져서 빌려준 돈보다 더 낮은 가격의 주택을 받아야 되니까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재미교포 한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는 큰 집에서 공짜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아서 주택을 사고 열심히 원금과 이자를 매달 갚으면서 살아왔는데 집값이 너무 떨어져서 은행에서 빌린 돈보다 집값이 더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원금도 이자도 갚을 수가 없으므로 은행에 그 집을 도로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은행에서는 집을 안 받겠다고 했답니다. 빌려준 원금보다 집값이 싸니까 집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금이나 이자를 안 갚아도 집을 내놓으라는 말도 안 하니까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은행들이 완전히 몰락했고 은행에 투자한 다른 투자 회사들도 함께 몰락한 것입니다. 이렇게 도미노 식으로 은행과 기업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전 세계에 금융위기를 불러왔습니다. 가장 잘 사는 나라인 미국 월가의 비극이 전 세계를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돈을 자꾸 벌어서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돈만 벌기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은 결국에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합니다.
4. 해결책은 무엇인가?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가 인간을 평등하게 잘살게 하려다가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개인의 소유를 허락하나 경쟁이 심하고 부패가 심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서 못살게 됐으니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합니까? 사랑과 행복을 서로 나누는 도리밖에 없습니다.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따라오라고 하니까 따라 왔습니까? 부자 청년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부자가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고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사람이 변화돼서 행복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겨납니다.
야고보서 2장 15절로 17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큰일입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나누어 주고 행복을 함께 하는 일을 안 한다면 내 믿음은 헛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많이 나누어주든지 적게 나누어주든지 우리가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마음을 가져야 그 믿음이 참 믿음이지 사람의 욕심대로 사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로 9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가진 것을 흩어 가난한 자에게 주면 가난해 지느냐,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심으면 하나님께서는 더 나눌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넉넉하게 해주십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이 진리는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모릅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은 내가 끌어안고 손에 쥐고 모아야 잘살지 나누어주면 안 되는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우리가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는 진리를 알고 행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모든 일에 넘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다른 점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 믿는 신앙의 은혜가 없는 공산주의는 망했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 믿는 신앙의 정신이 없는 자본주의도 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주의라도 주님의 사랑을 그 마음속에 품지 않는 주의는 망합니다. 공산주의도 결국 망했고 자본주의도 오늘날 시련에 부딪쳐서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것을 이웃과 나누고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마음이 있어야 그 다음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적게 나누면 적게 거두고 많이 나누면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만 부흥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한다고 우리 교회만 부흥되느냐, 부흥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선교사를 내보내고 교회를 세우고 선교지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역에 자꾸 나누면 하나님이 그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교회를 자꾸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꾸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더 많은 헌금이 들어오고 더 많은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6절에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나누라고 하면 못 나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야훼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주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면 변화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몇 해 전, 대구에는 요술 쌀 단지가 있었는데 마음껏 퍼내도 결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쌀 단지입니다. 가난한 동네에 있는 쌀가게 주인이 하루는 어린아이가 굶어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파서 쌀 단지를 내놓고 글을 써 붙였습니다. ‘누구든지 배고픈 사람은 공짜로 퍼 가십시오’ 얼마 있지 않아 쌀 단지가 비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계속 쌀 단지를 채웠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언젠가부터 주인이 붓지 않아도 쌀 단지가 가득 차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쌀을 사가는 사람들이 그 쌀 단지에 쌀을 조금씩 부어놓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쌀 단지는 언제나 가득 차 있었고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쌀 단지에서 쌀을 마음대로 퍼가서 요술 쌀 단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여러 쌀집에서 요술 쌀 단지를 시행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도 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나누기 시작하면 수많은 사람이 나누게 되고 사회가 훈훈해지고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인간의 이상이자 꿈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주의와 주장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마음이 변화돼서 사랑과 행복을 나눌 수 있게 돼야 합니다. 내가 가진 조그만 것이라도 나눌 수 있으려면 마음이 변화돼야 합니다. 마음이 어떻게 변화됩니까?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아야 마음이 변화됩니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인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든 주의는 불완전합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되면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엘림복지타운을 통해서도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굿피플을 통해서 온 세계적으로 사랑과 행복을 나누고, 사랑과 행복 나누기 운동을 통해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호스피스를 통해서 가난하고 병들어 가는 사람을 도와주고 나누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누기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자꾸 자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수적으로 자라고 물질적으로 자라고 성도들이 들어오고 나가며 꼴을 얻고 축복을 받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행복과 사랑을 나눠야 나도 행복해지고 잘살게 됩니다. 행복과 사랑을 나 혼자만 가지겠다고 움켜쥐면 불행해지고 생활이 어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착한 일을 하면 너무나 기뻐하시고 박수를 치시며 “오냐 잘한다. 더 잘하도록 내가 복을 주마” 하시고 복을 남김없이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복음도 나누고 물질도 나누고 생활의 행복도 나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인간이 만든 주의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습니다. 공산주의도 불완전해서 망했고 자본주의도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 받아 마음이 변화돼, 사랑과 행복을 나눌 때 인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성령 받고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우리, 복음을 나누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자나 깨나 나누는 운동에 참여해서 행복하고 건강하고 장수하고 기쁘게 사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순복음가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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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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