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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2009.05.17 / 순복음가족신문 기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중략)…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장 19∼31절

 

이 세상은 천국 가기 위한 준비기간
예수 믿으면 마음속 천국 누리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 들어갈 수 있어


 조나단 에드워즈는 어느 날 설교하면서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단 5초만 지옥을 보여줄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존 웨슬리도 가장 효과적인 설교는 지옥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 세상에서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처사를 볼 때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동물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현실의 삶이 전부입니다. 인간도 불신앙에 있는 분들 가운데에는 종종 천국과 지옥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심지어 불신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그 마음의 깊은 잠재의식 속에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천국과 지옥은 사후의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 속에도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1. 마음속에 체험하는 천국과 지옥

 육체적인 쾌락과 욕망에 끌려 살며 거짓과 미움과 분노와 불안, 공포, 낙심, 좌절, 절망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며 사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에 지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불안과 공포와 초조와 좌절과 절망과 미움과 분노가 꽉 들어차서 술로 세월을 보내고 폭력으로 세월을 보내는 그 사람의 마음에 지옥이 안 들어 있고 무엇이 들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미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마음의 지옥을 체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살았던 그대로 심판받게 됩니다. 죽은 후에 심판받을 뿐 아니라 이미 내 마음속에서 내 심령이 나를 심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과 불안과 처절한 고통이 있으면 지옥이 벌써 내 마음에 있고 지옥의 심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제작자로 20대에 세계적인 억만장자가 된 미국의 하워드 휴즈는 말년에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머리도 깎지 않고 손톱도 깎지 않고 병균이 있을까 싶어서 사람들과 만나지도 않고 음식도 닭 스프만 먹다가 영양실조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고 난 다음에 누구 한 사람 와서 울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살아있을 동안에 지옥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 뭐합니까? 미국의 석유왕 폴 게이트 역시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말년에 그가 영국에 있을 때 신문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폴 게이트 씨, 당신의 인생은 행복했습니까?” 그러자 그는 “행복이 어디 있느냐?”고 버럭 고함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부자였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쾌락과 부귀영화와 공명으로 인생의 자랑을 삼고 그것이 인생의 참 가치인 줄 알고 그 안에 안주하는 사람들의 최후는 이처럼 외롭고 쓸쓸하며 처참합니다. 이들의 삶은 재물과 명예와 영화로움으로 겉으로는 화려한 듯하지만 마음속에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옥에 내려가기 전에 벌써 마음이 지옥으로 꽉 들어찬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과 욕망으로 꽉 들어찬 그 마음에는 지옥불이 활활 타고 있을 뿐 기쁨과 평안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 평강, 희락, 진실, 거룩함을 갖고 살며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감사하며 교회에 나가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갖고 살면 이미 천국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마음에 얼마나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이 강물 같이 넘칩니까? 벌써 마음속에 천국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 세상 환경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예수님이 마음 중심에 계시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하면서 살면 마음의 평화가 임하는데 그것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나 공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평안입니다. 마음의 평안은 돈 주고 못삽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를 주고도 살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성령이 임재하실 때 임하는 평안, 이것이 참된 평안입니다. 평안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평안하게 잠자리에 들어가고 평안하게 깨어나고 하루를 살아도 마음속에 평안을 가지고 살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요, 천국이 바로 그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평안이 없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공포가 있고 답답하고 잠을 자도 편하지 않고 깨어나도 편하지 않고 밥을 먹어도 편하지 않고 하루 종일 친구를 만나도 편하지 않고 마음속에 불안이 꽉 들어차면 그는 벌써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것입니다.

 

 2. 사회적 천국과 지옥

 오늘날 이 세상에는 지옥 속에 있는 세계도 있고 천국 같은 세계도 있습니다. 정부의 권위와 법질서가 무너진 나라를 생각해 보십시오. 폭력과 집단 난투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고 빈부격차가 심하고 가정과 사회질서가 문란하고 평화가 사라지고 도둑이 들끓고 신용이 사라지고 사회보장이 무너지고, 이러한 생지옥의 사회가 되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지옥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말씀합니다. 마귀는 우리의 환경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부정적으로 만들고 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마귀를 경계하고 대적하고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안정되고 정부의 법질서가 확실하고 사회질서가 정연하고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사회보장제도가 견실하고 신용이 살아나고 집단폭력이 사라지고 윤리와 도덕이 서고 교회가 그 사명을 다해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며 시민이 평화롭게 꿈과 희망을 갖고 사는 사회라면 이미 천국입니다. 그런 나라는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부인이 세상살이가 너무나 힘들어서 자신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네 기도에 응답하셨으니 곧 너를 데려 가겠다. 그러나 그 전에 네가 할 일이 있다. 집안을 깨끗이 정리해놓고 와야지 이렇게 어지럽게 해놓고 너만 천국에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 집안을 깨끗이 정리정돈해라” 그래서 열심히 집안을 청소하고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집안 정리정돈을 다 했으니까 이제 데려가 주십시오” 천사가 다시 와서 “저 마당에 잡초가 저게 뭐냐? 마당에 잡초가 많아서 보기 흉하니 다른 사람이 이런 집에서 살려고 하겠느냐? 잡초를 정리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고 난 다음에 천국에 오너라” 그래서 열심히 정원을 가꿨습니다. 잡초를 뽑고 아름다운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정원을 돌보고 난 다음에 “이제 천국 갈 때가 됐으니 나를 데려가주십시오”라고 하니까 천사가 나타나서 “아직 멀었다. 네 집 주변을 봐라. 거지가 있는데 먹이지도 아니하고 입히지도 아니했지 않느냐? 이웃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느냐? 그것을 정리해 놓고 난 다음에 천국에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거지에게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이웃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고 남편과 자식들에게도 사랑과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 “이제는 다 됐지요?”라고 하니까 천사가 와서 그 부인의 손을 잡고 창문가에 나와서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바깥을 한번 바라보라”고 말했습니다. 보니까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고 나비가 날고 새들이 노래하고 보는 사람들마다 손을 흔들며 감사하고 남편도 우리 집사람이 제일이라고 하고 자식들도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만 보니까 천국에 갈 필요 없이 여기가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천국은 좀 더 있다가 가겠습니다. 여기서 좀 더 살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자기가 천국을 만들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5장 13절에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마음속에 소망과 평강이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망과 평화가 넘치면 마음속에 천국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다른 데서 찾지 말고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의 환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그 마음속에서 이미 지옥도 체험하고 천국도 체험합니다. 또한 사회에서 천국도 체험하고 지옥도 체험합니다. 그런데 진짜 천국과 지옥은 죽음 이후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육체는 언젠가는 다 썩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사람은 육체를 떠날 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갑니다. 지금 내 속에 천국이 있으면 반드시 천국에 갑니다. 그러나 내 속에 지옥이 들어 있으면 반드시 지옥으로 갑니다. 내 마음속에 지금 천국이 있느냐, 지옥이 있느냐가 내 미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3. 영원한 천국과 지옥

 여기 한 부자가 있습니다. 그는 권력도 있고 돈도 있고 즐거움을 누리며 살지만 그 대문밖에 거지 나사로가 병들고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데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지 않습니다. 밥 한 숟가락도 나누지 않고 국 한 숟가락도 나누지 않고 의복 하나도 나누지 않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입고 희희낙락하면서 ‘나는 유대인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선택받았으니까 천국에 갈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문밖에 있는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밥상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개들과 함께 있다가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자 천사들이 와서 그를 데리고 낙원에 올라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안 죽습니까? 부자도 나이가 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를 위해서 거대한 장례식을 치르고 영화롭고 화려한 묘지를 만들었지만 성경은 그가 묘지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옥에 떨어져서 불꽃 가운데 고통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늘을 쳐다보니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낙원에서 즐기는 것이 보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는 지옥에 떨어져서 이렇게 고생하니 저 나사로를 보내셔서 손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주소서”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너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서 이 나사로가 헐벗고 굶주리고 아프고 죽어갈 때 옷 한 벌, 밥 한 숟가락 나누지 않지 않았느냐? 너 자신만을 위해서 살다가 너는 지옥에 떨어졌고 나사로는 천국에 와서 즐거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너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그곳에서 이리 오지도 못하고 여기서 거기로 넘어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자가 하는 말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사로를 다시 세상으로 보내서 우리 집에 가서 전도하게 해주십시오. 내 형제가 다섯이 있는데 전부 다 나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들도 지옥에 오면 이 고통을 당할 것이니 제발 그들에게 전도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브라함은 거부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성경이 있는데 성경을 듣고 믿지 아니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간증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우리가 말씀을 저버리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와도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죄가 너무 많고 불의하고 추악하기 때문에 천국에 못 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우편과 좌편에 두 강도가 함께 매달렸습니다. 그들은 흉악한 강도였습니다. 살인하고 방화하고 흉악한 죄를 짓고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 중 한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회개하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는 말씀처럼 그가 마음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깨닫고 입술로 시인하니까 주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원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그의 마음속에 구원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임종하는 순간에 그 사람이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사람은 죽는 것을 보아야 그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저는 50년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을 수의를 입히고 관속에 넣는 일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다 가난했기 때문에 장의사가 와서 못하고 목사가 그 일을 다 했습니다. 천국에 간 사람은 얼굴에 웃음이 있고 몸에 긴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몸이 아주 부드럽습니다. 천국에 가는 것이 너무 즐겁고 기쁘니까 몸도 긴장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지옥같이 산 사람은 죽을 때 눈을 감지 못하고 흑암의 권세에 잡혀서 이를 갈고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며 온몸이 경직된 채로 죽습니다. 천국에 못가고 지옥에 가는 사람은 마귀에게 끌려갈 때 이를 깨물고 주먹을 쥐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몸이 긴장이 되고 뻣뻣한 것입니다.

 한국의 유명한 부흥사이며 ‘사랑의 배달부’라고 불리던 길선주 목사님은 임종 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내게 전보가 왔어. 이제 떠나야 돼. 다들 잘 있게” 그렇게 말하고 떠났습니다. 또한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 목사님은 죽기 직전에 그의 임종을 지켜보려고 모여 있는 자녀들과 많은 일가친척들 앞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광이로다! 땅이 물러가고 하늘이 내게 다가오는도다. 여러분, 내일 아침 신문에 무디가 죽었다고 보도되더라도 믿지 마세요. 무디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이렇게 하늘로 올라갑니다”라고 하더니 쓰러져서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후 세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인간이면 누구든지 낙원 아니면 음부로 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뿌린 씨앗의 열매를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선한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과 저주와 절망을 걸머지고 십자가에서 한없는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여 인간의 죄악을 다 청산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야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선한 행위로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어떠한 죄인도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간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배는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세상의 부귀영화는 잠시 있다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또 그런 것들은 겉으로 보면 호화롭게 보이지만 절대로 평안과 기쁨과 천국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의 겉과 마음은 다릅니다. 육체적인 쾌락과 즐거움이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은 하나님과 화해해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실 때 우리는 평안하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과 사후의 세계에서 다 같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음에 천국이 임한 분은 저 세상 천국에 반드시 갈 것이요, 이 세상에서 마음에 지옥이 이뤄진 사람은 저 세상에도 지옥에 반드시 갈 것입니다. ‘나는 우연히 천국에 갈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죄를 다 청산하고 평안을 마음에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산 사람은 이미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졌으니까 저 영원한 천국에 반드시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세상의 쾌락을 좇아 살고 마귀를 따라 살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을 따라 산 사람은 마음에 벌써 지옥이 이루어져 있는 사람이므로 반드시 음부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없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천국에 가기 위한 준비기간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준비된 사람은 천국에 올라갈 것이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쓰레기 더미인 지옥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을 섬기며 마음속에 천국을 가지고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야만 합니다. 한 사람도 그냥 없어지고 사라질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이미 마음에 천국을 체험하는 사람도 있고 지옥을 체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와 국가가 천국 같은 곳도 있고 지옥 같은 곳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후에는 반드시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천국 가게 도와주시고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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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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